한 여자 (2)전편

 

 

-19.-

 

비행기가 착륙하며 스르르 굴러가듯 하다가 완전히 정지하는 순간에 여자의 과거를 돌아보던 상념이 현재에 머문다창밖으로 내다보니 새로 신축된 비엔나 공항건물과 더불어 모두가 새롭게 보인다.


23년 전 모습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지난번 6월에 개항한 신축공항으로 첫 번째 입국하면서 공항을 잘 못 들어왔나? 두리번거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저절로 난다.


자리에 앉아 먼저 나가려고 줄을 선 탑승자들을 보면서 여자는 그대로 앉아 있다.


급할 것 하나도 없다....


비행기 문이 열렸는가 보다사람들이 움직인다.여자도 일어나 출구로 나선다.


짐 나오는 곳으로 오니 어느새 여자의 짐이 짐벨트를 돌고 있다.먼저 나온 사람들이 집어간 짐들이 거의 빠져나가서 그런지 여자의 짐만이 서서히 계속 돌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짐가방을 들어내서 손가방을 그 위에 올려놓고  출구 쪽으로 가만가만 움직인다.


한쪽 벽면 전체가 프란쯔 레하르 / Franz Lehar 의 작품 “ 유쾌한 미망인” / Die Lustige Witwe 악보로 장식돼 있다.

 

vienna Airport 1.JPG


!!!.... 누구의 발상일꼬?

음악의 도시라고 자처하며 악보를 그려 넣은 것이“유쾌한 미망인”???


여자는 이날따라 본인이 미망인임에 더욱 더 실소한다.

여자 주위에서는 그녀를 보고 곧잘 '유쾌한 미망인' 이라고 농담을 해왔다.


그랬던 것은 물론,남편과 사별 후에 별로 변함없이 생활하며 곧잘 웃고 남을 즐겁게하는 모습이 여전하고 즉 슬픔의 그림자가 별로 두드러지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알꼬? 내 마음을 … 나 스스로도 모르겠는데...


인생이란 어떻게 보면 확실히 주기가 있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6살에 초등 교육을 받기시작하고 졸업하면 12..

12년의 배수로 인생의 전환점이 오는것이 아니었을까?


대학졸업하던 24..

비엔나 왔을 때가 36...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빠르게 회전되던 때가

12년이 세번째 반복되던해부터 1989년이 아닐까... 


그 해는 여자의 인생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커다한 변환점이 되는 해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 중에 동서 베를린장벽이 19618월 13일에 세워지고 28년 후인 198911월 9일에 무너졌던 것이다.이것은 냉전체재가 끝나가고 소련의 공산주의 체재붕괴에 잇따라 독일을 통일시킨 국제 정치의 변환을 가져왔으며 얼마 후 유럽경체체재에도 커다란 변환을 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변수가 존재하는 시기에 여자는 유럽으로 왔었다.정확히 말하면 아직 이런 변수가 표면적으로 부상되지 않은 시기였다.여자의 남편은 이런 다가올 11월의 국제적 변환기를 예상치 못하고 동유럽의 중심지인 비엔나를 근거지로 삼아 무역의 장을 펼치려고 불과 몇 달전에 준비하는 것이었다.여자는 그 시절 국제 정세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개인적, 가족적인 계획으로부터 그녀의 인생이 앞으로 펼쳐질 것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현수와 쉔브룬을 다녀온지 며칠 후 밤에 남편의 전화를 받았었다.


얘기인즉은,그동안 비엔나에서 사업하는 S라는 사업가를 K를 통해 서울에서 만나 교제하게 되었는데,앞으로 동유럽에서 비엔나가 중심이 될 것이므로 이번 부인이 들어간 김에 비엔나에 지사를 세우는 게 좋겠다고 권면을 받았다는 것이다.우선 사무실 명목으로 집을 구해놓으면 그다음 일은 S사장과 K가 한국을 오가며 도와주겠다는 것이다또한 간 김에 7월에 열리는 여름음악연수과정도 밟는게 좋겠다... 라는 것이었다.


여자는 일방적인 남편의 처사에 화가 났다.

무슨 일이나 의논을 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고형식인 것이다.


여자가 답하기를,

원래 계약건은 곧 마무리될 것이니 계획했던 여자의 의무는 사실상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얘기가 서울에서 그 정도로 진전되었다니,당신이 원하는 사무실건은 채재 중에 힘닿는 데로 하겠다.

이제부터는 7월 연수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사무실건을 알아볼 것이다. 온 김에가 아니라 연수를 위해 머무는 것이 여자의 1차 목적이 될 것이며 다음 날 여자에게 정말로 연수가 꼭 필요한 것인지,어느 교수가 연수를 담당하는지, 등록일이 언제까지인지 알아본 다음에 연락 주겠다. ..라고했다

 

남편은 허허.. 하며

"그게 그거 아니냐당신 왜 예민한 반응을 하는 거요? 집을 구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거고.그러다 보면 7월이 올거고.그러면음악연수도 하.그 사이 모든 일이 마무리될 거고..그 다음 한국에 오면 될 거 아니요?"


여자는 그동안 들어왔던 간 김에.... 온 김에... 라는 말이 맘에 안 들었다.

무슨 일에나 먼저 계획하고 수행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 아닌가?

또한 그녀의 여름연수건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연수를 하려면 훨씬전 부터 스스로 연습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여자는 통화를 마친 후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다.현수와 현수의 교수가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언니가 이번에 여기 온 것이 언니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거야.그런데 이왕이면 여름마스터 코스도 해보고 귀국하면 어떨까다른 이들은 일부러 그 연수를 하려고 오는데,언니는 왔던 김에 좀 더 체재기간을 늘려서 말이야.“


"아인씨! 한국 가시기 전에 또 뵙기를 바래요.제가 7월에 연주회가 있는데,그때 만이라도 아인씨와 같이 연주하게 되면 좋겠는데요..조금 귀국날짜를 연장하시면 안 될까요?“


여자의 예감은 한 달이 석 달 되고..석 달이 삼년 되고...삼 년이 삼십 년이 될 것 같은 것이다.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