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대부분의 우리들 한국여자들이 실수했던 한가지는
비싼 돈주고 화려한 드레스를 맞추어서 가져온 일일 것입니다.
그때는 미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쓸데 없는 것들을 가지고 왔었죠..
할리우드에서 만든 미국 영화에 의례 등장하는 파티하는 장면들...
그래서 우리도 미국오면 화려한 옷을 입고 왔다갔다 할일이 좀 있을줄 알았거든요.
그때 혹 누가 "미국 가면 일만 죽도록 해야한다"고 알려 주었더라도 절대로 그말을 믿지 않았을거얘요.
상상력도 마음대로고 젊은 피가 끓던 시기였으니까요.
친구 용화는 시골 학교 선생으로 벌은 돈 중에서 거금을 들여 파티복 여러벌과 무용복까지 가져왔었대요.
그녀의 화려한 옷들은 한번도 기를 펴보지 못하고 옷장 깊숙이에서 숨도 못쉬고 살다가
유행이 세월따라 지났기도 하고, 옷 주인의 늘어난 허리싸이즈 때문에 결국 쓰레기장으로 내려갔답니다.
눈물을 머금고!ㅎㅎㅎ
저도 한두벌, 그리 화려하지 않은, 롱 드레스를 가져왔었던 것을 기억해요.
그러나 아무 도움없이 연년생 아이들 넷을 혼자 낳아서 키울 뿐만아니라
공부 외에 아무것도 할줄 모르던 약한 남편을 도와 못박는 일부터
한 살림을 몽땅 맡은 억척 하인쯤으로 살게 되니
롱 드레스는 가끔 혼자 입어보고 거울을 들여다 보며 한숨 쉰 것 외에는 써먹을 데가 없었죠.
그래도 하나님 믿는 덕에 주일날만 되면 정장을 하고 교회를 갔으니 그것만도 감지덕지였죠!
그런데 우리 고교 동창회에서 이루지 못했던 그 때의 회포를 늦게나마 풀어주고 있답니다.
파티드레스를 입을 기회를 우리들에게 매해 한번씩 선사하는 것이죠..
물론 아이들 결혼식에서나 연말 파티 같은데서 입을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욕심이상 요란하고 화려한 옷이야 어찌 미쳤다고 용감하게 입을수 있는가 말입니다.
더구나 해가 다르게 퍼져가는 몸에 무에 어울리겠다고?
하지만 모두 어슷비슷 늙어가는 동문들이 모여 이웃의 눈도 없고 남자들도 없는데서
멋진 잔치를 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겠습니까?
김애옥 선배님이 후배들을 위해 매해 100여벌씩 희사를 하셔서
평생 마음 한쪽에 남아있는 여자의 허영심을 만족시킬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몸에 맞는 옷을 이것저것 바꿔가며 입어보고 고르는 것 부터 참 재미있지요.
어떤 날씬한 후배는 내가 보는데서 네 벌을 잠깐 사이에 바꿔 입더라고요. 다 잘 맞고 다 이뻣고..
눈썹까지 가지고 와서 달아주는 친구도 있고 가발로 듬성이는 머리도 감추면서
하루만은 할리우드 배우처럼 꾸며 봅니다.
점점 친해지는 선후배 모두가 최고로 멋을 내고 등장하니
서로 쳐다보며 행복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는 분위기지요.
저도 팔자에 없던 동창회에 이번까지 4년이나 연속으로 갔었는데
(너무들 열심히들 하니 멀리 살지도 않는데 안 가기도 정말 미안해서요)
야한 드레스를 점점 대담히 소화하는 나를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웃기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어깨 내 놓는 드레스는 쑥스러워 쇼올로 어깨를 싸느라 더 어색했는데 이제는 당당히 입죠.
이번에는 실은 집에서 가지고 간 편한 옷을 입으려다가 시작 30분 전에 혹시 맞는 것이 남았을까 하고 갔는데
어쩌면 꼭 맞는게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대박이었구요.
멋지게 꾸민 김에 우리는 팻션 쑈도 하기도 하고 댄스파티도 합니다.
이번에는 댄스 경연대회가 있어 우리 동기들도 쑈를 했어요.
선배님들의 귀여운 춤과 후배들의 정열적인 춤들에 이어
이번에 우리가 한 것은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 노래에 맞춰 그의 춤을 흉내내는 것이었는데
모자에다 은색 별을 붙이고 번쩍대는 장갑을 한손에만 끼고, 까만 색안경을 쓰고 궁둥이를 흔들었답니다.
준비하면서 우리끼리 한도 없이 많이 웃었지만 얼마나 많은 폭소가 터져나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연습 때는 그럭저럭 따라 할 것같더니 앞에 나가서는 왜 엉망진창이 되는 것인지..
그 유명한 마이클 잭슨이 춤추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왕 무식장이 나와 수인이 때문이었는지...
그래도 그렇게 웃고 떠드는 동안 우리는 잠시 고등학교 여자애들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웠거든요.
상금으로 거금 사백불을 타기도 했으니 보통 신나는 일이 아니었답니다.
김춘자후배 처럼 일류 사회자가 있고 (내가 본 최고의 사회자는 온 가족을 동원하여 완벽한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김혜경 선배님처럼 일류 사진사도 있어서 철두철미 멋진 진행이 되었죠.
이제 그 일도 두세주일 지난 추억거리가 되어 사진을 가끔 들여다보며 웃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려한 옷을 입은 나는 나같지가 않습니다.
사진속 조화라지만 환갑넘은 사람 같지 않게 너무 젊고 이쁜 걸요.
그래서 네 아이들에게 이멜로 보여 주었더니 다 노 코멘트~
엄마가 늙어가면서 정신이 돌았나? 발악하나?...라는 것이겠지요!
너무나 보수적인 애들이거든요. ㅎㅎㅎ
오늘 아침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천국의 잔치는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울까, 지금 우리가 제대로 상상할수 없겠죠.
우리의 한계된 경험을 기초로 생각하는 것과는 틀린 것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라고요.
아마도 "솔로몬의 모든 부귀와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못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비로소 실감할 수가 있겠지요.
다시 영원한 젊음을 되찾고 온갖 행복으로 취하여 주님 손에 들린 백합화 같은 나..
나의 모습을 그곳에서 찾을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꼭!
그때는 세상의 욕심과 염려가 다 헛된 것이었던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쥐고 싶고, 놓치 않으려는 것들이 실은 쓰레기와 다름 없다는 것을요.
(2011년 2월)

사랑하는 명옥아, 이쁘다 해주니 몸둘바를 모르게 신난다.
실은 나는 평생 이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본 편이 못 되어
그런말 들으면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면서 깜빡 죽거든.ㅎㅎㅎ
왜냐하면 내 얼굴은 한국 여자 평범 그자체, 납작코에 이상하게 큰 입이 문제였지.
게다가 화장을 잘할까, 머리를 잘 만질까
화장품은 이제껏 일년에 백불도 투자해 본적이 없어.
완전 정신나간 아줌마처럼 그렇게 4 50대까지 넘겼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서 이쁘다는 소리를 조금씩 들어 보게 되어서 나자신도 신기하게 생각해.
빈말로 말해줘도 다 믿고 싶어 죽을 지경이겠지만
사진이 가끔 내가 봐도 이쁘게 나오는거 있지? ㅎㅎㅎ
순전히 내 얼굴에 붙은 웃음 덕분에 그런 소리를 듣는 줄을 요즈음에야 알았어.
그런데 웃는 얼굴 거기에도 사연이 있단다.
내 친구 은희랑 얽힌.
은희가 같은 대학교에 가게 되니 내 옆에서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는지 몰라.
신발을 질질 끌며 걷지 말라,, 웃을 때 입을 오무리고 웃지 말라..등등
아마도 촌티나는 내가 부끄러웠는지...
서울에 조금 일찍 입성했다고 유세를 떠는구나...하며 속으로 욕좀 했지만
그래도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많이 했어.
입이 크다고 생각해서 입을 오무리고 웃던 버릇은 그래서 일찍 떼어 버리고
마음놓고 웃는 것을 익히려 노력혔단다.
미국오니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잘 웃으니 또 본받게 되고..
더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마음껏 웃을수 있는 이유가 있지 않겠니?
근데 명옥이 너 아주 능력있는 일꾼이었던 것 같다야.
그리고 그때 니가 얼마나 이뻤겠냐?
모든 사람의 친절을 받을 만큼 귀한 사람이요,
군중 일학처럼 예뻣으라고 믿어져.
지난번 부산에서 너 만나고 깜짝 놀랐지.
고등학교때 청초한 모습위에 품위있는 귀부인의 모습이 나오니까.
엣날에는 우리 모두 얼마나 시행착오를 많이 하면서 살았던지...
특히 이민 오는 사람들 이야기 참 웃기지?
장장한 옛 이야기 나눌수 있어서 참 재미있었다.
고마워. 좋은 답글!
인선이 언니, 명옥이 언니,
올려 주신 글 정말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5기 언니들이 추신 마이클 잭슨 춤,
박장대소 하며 즐겁게 보았지요.
우~와 ! 우리 선배님들 정말 짱이다.
그 어려운 마이클 잭슨 춤을 추시다니 ~ ㅎㅎ
7기 회갑연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멋진 드레스에 화려한 파티까지.....
우리 친구들 모두 미주 동문회 여러분들의 환대 속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드레스 입고 파티하는 장면 사진 보고
한국의 가족, 친구, 친지, 동료 등등
야 ~ !! 인일여고 대단하다 ~ !!!
감탄사 연발이었죠.
왈 ~
역시 학교는 좋은데 다녀야돼 ~
(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하신 말씀) ㅎㅎㅎ
5인선언니,
다음번 회갑 기에게 할말 있어요.
이번에 저희들 차림새가 그런대로 다 괜찮았어요, 그런데...... 소위 <파티용 화려한 신발>, 이걸 준비한 이도 있고
대개는 그저 평범한 신발이었어요. 기왕이면.....
평소 못신던 그런 신데렐라 구두! 이날 한번 신어보시라, 권하고 시퍼요~
MD 김규란, 조지아 한혜원, 토론토 김용순, 스포트댄스 권위자 이춘주 등
제대로 준비해온 친구들의 영롱하게 반짝이는 굽높은 신발을 보면서 아이구 나 촌스러-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아유, 나름
센스있는 옷차림이다... 늘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했죠. 대단히 화려한 한벌의 장신구들과 저 구두!
꼭 필요함다, 물론 자기에게 걸맞는 것으로...
Walking Gallery 별명의 시애틀 정정숙은
구두도 스스로 디자인해요. 헌구두라도... 파티 용도에 맞게 비단으로 주름지게
발등도 또 굽에도 붙이고(무슨 뽄드인지...) 글쎄 비드까지 자기 손으로 달던걸요.
그니의 아들이 스페인에 성을 가진댁 따님과 결혼했는데, 그 혼사에 이렇게 입고는
그 구두와 손수 만든 비드 목거리 등을 입체액자에 넣어 거실 벽난로 위에 놓아두었더군요~~ 제가 그랬죠. Vincent, 세상은
그 누구에게보담도 당신에게 가장 아름다웠군요~ 라는 말이 너에게도 걸맞는 말이다..어쩜 그리 끝없이 모든걸 사랑하니!!
(실은... 이번에 정숙이에게 힘입어, 또 워싱턴대학과 뱅쿠버대학, 빅토리아대학 들려보고는
학과장으로서 우리과 전용공간 레노베이션을 결심하였습니다. 2월중 할거에요. 특히..... 대실험실에 정숙이가 그린 꽃 그림
세밀화..... 저희과에 딱이죠! 걸어놓을 예정임다. 우선 모사품을 해놓고, 나중엔 사서 진품을 걸 예정; 애걸복걸해도 아직 안팔더군요
전시회 하고 팔려나봐요)
인선언니!
인선언니의 금년 드레스는 유난히도 이뻤어요.
목에 두른 핫핑크 스카프도 너무 매력적이었구요~~
언니는 미술전공으로 아는데
어쩜 글을 이리도 맛깔나게 쓰시는지.......
너무 맛있어서 자꾸 먹게되네요~~~
내년에 또 오세요~~
내년엔 더 많이 많이 재미있을거예요.
지금부터 제가 준비하고 있거든요????
지금의 그 몸매와 그 이쁜 웃음 고대로 간직하셨다가
내년에 싱싱한 모습으로 만나자구요~~
명옥언니!!
까아~~꿍!
언니도 내년엔 한번 여기 오시지요???
춘자후배, 정말 너무나 뛰어난 고마운 후배!
늦게나마 정식으로 인사할께.
정말 그 모든 수고 진심으로 감사했네.
실은 우리 교회가 아주 약한 교회라서 나하나 빠져도 휘청하거던.
그래서 안 빠져야 되는데 이상하게 작년에는 서너 달 밖에 집에 없었고
또 빠지려니까 얼마나 미안했는지...
친구들 덕분에 재고의 여지없이 가기는 갔지만
좀 쩔리는 것은 사실이야요.
그래도 선후배간에 함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있어서 너무나 좋았지.
참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부영후배랑 영희후배랑
조영희 회장님과 수고하신 모든분들 애쓰시는 것 보면
정말로 그리 멀지도 않은데 어찌 안 갈수가 있겠나...
그리고 가면 갈수록 선후배 간에 정이 막 생겨서 보고싶어요.
지금 막 정례랑 전화했는데 정인옥후배랑 식사를 같이 했다고하네.
인옥후배도 생각하니 사랑스럽던 그 얼굴이 보고 싶더라니까.
내년에 싱싱한 모습으로 또 만나자고 하니
한번 또 기대해 보자구요!
I love you!
이인선 후배님 우리 팜스프링에서 인사하고
이제 여기서 만나는군요.
5기의 불사조팀의 댄스 넘 인상적이고 멋있었습니다.
아리조나에 까지 가서 합숙하며 연습했다니 그렇게 멋진
춤이 나왔겠지요. 실버장갑 검은모자 짧막한 바지에
흰양말 정말 다시금 마이클 잭슨을 본다는 생각이 들정도 였지요.
5기 후배님들 드레스의 모습이 아주 예쁘고 아름다워요.
옷이 그박에 없어서요 ㅎㅎㅎ
헌데 검은테 안경까지 썻더라면 교장 선생님 하고
불르기도 했겠네요.
비교적 3기들의 드레쓰가 내것보다는 화려했지만
거의 상의가 있는것들이지요.
어린 시절 여자애들이면 누구나 한 번씩 아니 수백번씩 꿈꾸며 살았을 그 "드레스 입고 러시아 궁전에서 요한 쉬트라우스 음악에 맞춰 월츠를 멋지게 추는 장면" 그러다가 평생 한 번도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신세 타령하던 시절도 지나고~~~~~~~~~ 흑흑흑.....
언젠가 기분은 맛 보았다.
월츠 연수를 받는데 난 물론 엉거주춤 이었지.
무용전공인 체육샘(남자는 아주 드물지) - 아주 점잖고 말이없는 분이었는데 그 분과 잡으면 내가 나비가 된 기분이었어. 저절로 되는거야.
아! 이게 춤이구나 했어. 그 후론 아쉽게도 그런 분 못 만났지만 그런 분 다시 만나면 참 좋겠다.
나도 드레스 입고 저 음악에 맞춰 춤추고 싶어라~~~~~~~~~~~~~~
5유인애 언니도 가끔 총동피 들어옵니다.
이인선 선배님
행복해 보이는 뒷면에 그런 애환이 숨어 있었네요.
그리고 그 애환을 딛고 이국에서 우뚝 선 인일의 동문들......자랑스럽니다.
신년회 후일담이 더 흥미롭습니다.
더 기대해도 될까요?
아아아,,,,저 화려한 드레스뒤에 숨은 야그으,,,,흑흑흑,,,,
나 위로 받았답네다래에,,,,요 대목에서어,,,
,,,,,,,,,우리남편 박자치에 음악치에 아이구 폼 버려서 생각도 못해보았지 뭐.,,,,,
내껏도 똑같혀유우,,,,,하하하하하
그런 남자하고 사는것은 수녀원에서 사능것과 별로 다르지 않음....하하하하하하
다 버리고 다 내려놓고 사능거지 뭐,,,
그 남자속에 있다는 '진실'이라능거 하나보고 살라나아???
긍게 다른 남자들은 진실이 읎따능거지비이,,,하하하하하
에그으,,,그래도 그렁거 다 옛날야그로 돌리고 서로 털어놓고 웃을수 있는 오늘은
우리 모두 축복받응거지비이???
처음에 맞추어 온 화려한 드레스 뒤에 숨은 이민 이야그,,,유학생활 이야그,,
전집을 써도 마땅하건만 우리에게 주어진 '망각' 그것은 단연 축복이여라아,,
이젠 생각이 희미해졌써어,,,,,,하하하하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뭐 그런 노래도 있었지비이?????
,,,,남편들이 박자치에 음악치에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아요?,,,
하하하하 더구나 그 당시에 어려운 여러남매속의 집안에서 자기가 목표한 길을 가려는 젊은이들이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지요,,,
이런 남자도 있드라구요오,,
여럿이 모여도 영 노래를 안 해서 억지고 떠밀면 일어나서 에헴하고는 도로 주저 앉았대요.
남자가 체신없이 그렁거 하면 안 된다라로라아,,,,,하하하하하
체격좋고 잘생긴 그 칭구에게 사진에 웃음이 없어서설라무네,,,,
밖에서는 근엄해야 한다기에 아아 그럼 집에서라도 웃는 연습 좀 하시구랴,,하니
그러다가 밖에서도 웃음이 새어나오면 워쩌냐고 해서 웃었답니다,,,하하하하하
그런둘 그 남자가 내 남자 여지껏,,,,,,,,,,,,,,그저 감사하네요,,,하하하하
그렁게 지금 공주님 소리도 듣잖나벼어???
춘자후배님 야그도 또 굴러가며 웃었네에,,,,하하하하하
우리 조경배는 그 당시의 공주님,,
또 좋은 남편 만나서 공주처럼 살았나비여어,,,,
내가 작년에는 좀 어려웠다구우???
내가 어디감시 좀 점잖을 빼야,,,,내 이미지가 그나마 위험수준을 안 넘지않나비여어,,,,그쥐이???하하하하하
인선아.
너 너무 아름다와.
다른 뭣보다도 그 순수하고 때묻지않은 네 표정이 엄청 젊게 보이는 것 같아.
난 너 웃는 모습밖에는 기억이 안나.
파티복 준비해갔다는 말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어.
결혼하고 여권과 비자 나올 동안 기다리면서 한정혜요리학원 잠깐 다녔댔어.
그 땐 비자보다 힘든게 여권이었지
사돈의 팔촌 중에 조금이라도 이상스러운 점이 발견되면 그냥 정보부로 넘어가서 한 참씩 기다려야 했으니까.
3기 혜경언니랑 함께 한 두달 다녔나?
그 때 미국으로 시집가는 새댁이 한 명 있었는데
난 일반 반찬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애는 파티음식을 잘 해야한다고 야단이더라구.
그것도 인연인지 훗날 일본에서 한국 선박회사 동경사무소에서 알바이트 할 때
본사 사장 딸이 미국 언니네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거든.
대학생이니까 하루 놀아주라고 해서 함께 다녔는데 말하다보니 바로 그 때 요리학원 다닌 사람 동생이더라구.
언니가 가발 상점을 하는데 너무 힘든다고 그러더라.
아마 집에서 파티하는 일은 그 당시에는 없었을 것 같았어. ㅎㅎㅎ
그 여자동생 부잣집 딸같은 냄새는 전혀 없고 무척 친절하고 좋은 학생이어서 인상에 남았었지.
여담인데 우리 동경사무소 소장님은 재일교포셨는데
술집 2층에서 내려오시다 계단에서 넘어지셔서 갑자기 세상을 뜨셨거든.
내가 장례식도 한 번 안가본 형편에 임종을 다 했어.
병원에 갔는데 심장 박동이 점점 느려지더니 그냥 한 줄로 되더라.
그런데 그 다음 광경이 한국하고 다르더라구.
소장님 아들이 (엄청 잘 생겼더라구 ㅎㅎㅎ)일어서더니
정식으로 그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아보며 (중환자 실이었겠지?) 절을 하고는
소란스럽게 해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똑부러지게 인사!
가족중 누구도 일단은 울지도 않아요.
말이 사무소지 소장님 과 엉성한 여직원 한명 뿐인 데 갑자기 그것도 월급 하루 전 날 그리됬어.
그 때만 해도 세상이 따뜻해서
소장님 사모님 이하 근처의 소장님과 친한 일본 회사 사장님까지 모두 내 월급 걱정하시고 대신 주시고 그러셨다.
그 사모님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훌라워디자인이라는 걸 가져오신 분이야.
꽃꽂이 연구가 고하수 씨의 친 언니셨고.
본사에서는 송금이 어려워서 항상 몇 달씩 기다리다가 오곤 했거든.
나만 제 때 받고 살았지.
그 본사 사장님이 미국 출장가신다면서 일본에 들러서 내 월급 맡겨놓고 가셨댄다.
그 당시 외화 유출 단속이 심해서 외국 갈 때 100불 가져갈 수 있을 때니까.....
옛날 이야기네.
그 때는 철이 없어서 그게 고마운 일인지도 몰랐어.
참 그 분도 윤 씨성 가진 분이다. ㅎㅎㅎ
내가 mrs.윤이걸랑.
참 고마운 분 들이셨어.
암튼 그 일로 난 졸지에 실업자가 됬는데
또 다들 걱정해주셔서 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서 올 때까지 잘 살았어요.
딱 3년 근무했는데 직원들이 또 이사비용 만들어준다고 3달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주시더라구.
요즘과 달리 그 당시는 지사에는 평사원이 없어서 힘이 있더라.
본사에 전화 몇 통으로 그리 됬어.
지사장님, 부장님(이 분은 곧 이사가 되시고), 그 다음이 나.
실무는 본사에서 장기 출장들을 나와서 하시는 시스템이라 일년 열두달 본사 사람들이 .와 있었어.
그 출장 온 분들은 내가 없으면 되는 게 별로 없으니까 (일본은 영어가 잘 안통하걸랑요)
다들 나한테 친절했어.
덕분에 나 일어 무지 잘했었는데 이제 다 잊어버린 것 같다.
갑자기 잊고 살았던 옛생각이 나서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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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방인 줄 알고 읊어댔는데 지울 수도 없고 으째야쓰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