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68.-
따르릉! 따르릉! ...
흐흠! 초인종이 옛날 전화벨처럼 고전적인 소리네. 호호
여자가 현관 문을 열자 카를이 서 있다.
? 준비 마치셨습니까? 와! 상쾌한 차림이시네요.다른 분 같습니다“
? 호호! 그래요? 놀리는 것은 아니지요?"
? 아닙니다. 제가 진작에 제이드님께서 일에 어떻게 집중하시는 가에 대해서는 얘기를 들어왔지만
개인적 정보는 별로 없어서요.“
? 이제 점차로 알아지겠지요.
참고로 말하면, 저는 개구장이 기질이 많으니까...
흠..그 정도만 미리 알아 두어요. ㅎㅎ“
? 아.. 그러십니까? 예, 참고하겠습니다.“
참, 사람이 담백하니 괜찮네.. 순수하게 말을 받아 드리는 것도 좋고..
카를이 여자의 가방을 들고 앞선다.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라고 물으려다 관둔다.
로렌스옹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동행하니 맘이 편하다.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사람이 맘먹기 달렸다더니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박물관 공터에 이미 헬기가 도착해 있다.
사파리 쟈켙과 채양이 살짝 달린 골프모자를 쓴 로렌스옹이 다가오는
여자를 보면서 환하게 웃는다.
? 아! 이리 차리니 제이드가 제법 스포츠한 걸.. 허허허! 오랫만에 보는 경쾌한 모습이네.“
? 어르신도요.“
? 허허허! 정말 얼마만의 하늘 데이트인고... 자, 올라가지.
카를! 내가 언제쯤 도착한다고 그쪽으로 연락을 해 놓게.“
? 예, 그럼 즐거운 여정이 되시기를 ..“
여자와 로렌스옹이 탑승을 하자
처음 보는 조종사가 인사를 공손히 한다.
? 좋은 날씨를 예약하셨나 봅니다. 아주 쾌청하여 조망을 감상하시기에 안성마춤입니다“
? 예, 잘 부탁해요.너무 빨리 날지 마시고요“
여자의 말이 마치자마자 헬기가 이륙한다.
헬리콥터가 제법 커서 넉넉한 자리가 있고 앞에 앉은 조종사가
두사람이다.
우리 두사람을 위해서는 좀 큰데.. 혹시 나중에 누가 더 타려나?
여자가 아무 소리 안 하고 헤드폰과 연결된 소형마이크를 쓰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로렌스옹도 자신의 헤드폰과 마이크를 조심스럽게 걸친다.
헬기가 공중을 나르기 시작하자 마이크를 살짝 퉁기며
? 어!어! 흠! 조종사,들리나 ?“
? 예! 잘 들립니다.“
? 음, 그럼 우리 개인얘기를 하려니까 우리쪽 소리는 좀 꺼주게.“
? 예, 그러지요. 도착즈음 신호드리겠습니다.“
? 오케이. 그럼 안전을 잘 부탁하네“
아래 경치를 보며 좀 지나자 로렌스옹이 제이드의 헤드폰을 두드리는
모션을 취하며,
" 제이드. 어째 아무것도 안 물어 보는가 ?
? 그냥 일어나는 일들을 즐기려고요 ㅎㅎ“
? 제이드가 이제 정말 인생에 초연해진 것 같구먼..내가 자네 나이엔 아직도 총총거렸던 것 같은데,
왜
그랬던지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쉬운 것들이 많네그려..“
? 어르신께서는 아직도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그러니 예전에는 더 하셨겠지요.“
? 맞아. 나는 일하고 결혼한 사람이라고 카타리나가 요즘도 불평이 많지.허허허!“
햐.. 부인이 이번 여행에
대해서도 뭐라고 불평을 했겠구나.
바깥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어느새 오스트리아를 떠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천은 나라에 따라 특성이 있다.
오스트리아가 녹색이 많다고 한다면 주위의 나라들은 브라운 톤이
더 많다.
이탈리아로 간다면 남서쪽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어찌 계속 남쪽
방향으로 나르는고?.
여자는 차고 있는 손목시계에 장치된 나침판을 드려다 보면서
방향을 가늠한다.
장기여행을 자주하면서 부터 장만한 나침판이 이제 여자에게는 필수품이 되었다.
? 허허허! 제이드! 방향이 이상한고? ?
? 예. 이탈리아로 가는 방향이 아니네요..“
? 슬로베니아를 경유하여 아드리아쪽 이탈리아 해안도시로 가는 거야.“
아드리아 해안도시?
? 아!.. 그럼, 혹시? 트리에스트로 가는 것인가요.?“
? 아니 이렇게 쉽게 들통이 나다니.. 제이드는 내가 못 당하는 게임상대야 하하하!!!!“
아주 유쾌하게 웃는 로렌스옹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파울이 파안대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언제였던가!
? 어르신, 제가 이번 여행은 사업적이 아닌 개인여행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개인적 질문을 좀
해도 되겠는가요...“
? 흠... 좀 뜨끔해지려고 하는데? 나중에
생각 좀 더하고..요즘 내가 혼자 생각하면서 그동안 제이드에게 강요를 많이
했던가 싶어 회한이 나던 참이거든.“
? 어르신, 그럴 필요 없으셔요. 저는 어르신을 모시면서
인생을 많이 배우고 보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파울을 생각하면...“
? 제이드, 그만! 우리 그 얘기는 안 하기로 약속했었잖나.“
? 그래도.. 세월이 이리도 지났는데...“
?...............“
로렌스옹은 침묵한다.
여자도 더 이상 말을 안 하고 바깥경치를 바라본다.
바로 트리에스트 해안 항공을 나른다.
아드리아 해변에 길게 나온 항구의 모습이 눈에들어온다.
저기를 거닐던 때의 감동이 불러 일어나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베르디극장!
그 곳에서 공연했던 라트라비아타에서 나오던 아리아
Un di' felice, eterea (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의 멜로디가 머리에 꽉 차며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헬기가 드디어 도착한다.
내려오니 공기가 벌써 바닷바람을 타고 있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탄다.
? 제이드, 그럼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가늠 되는가?“
?..........“
가로등이 즐비한 해변도로를 지나는 동안,
도착할 곳을 예상하며 여자의 상념은 점점 고조를 더해가는데
차가 멈춘다.
그란드 호텔 두키 드아오스타.
Grand Hotel Duchi d'Aosta - Triest
이렇게 다시 이분과 여기를 오게 되리라고는.
호텔 앞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웃음 가득 담으며 가까히 온다.
아니?!!!
(계속)
제가 본문 올리고 집 떠나와
지금 체코의 Brno에서 지내는 중인데요.
시내중심에 강이 흐르지 않아 뭔가 아쉽더니 (제가 물을 무척 좋아 하거던요)
지금 한밤에 이곳에 들어와 바다 사진을 보니
반갑고 시원하네요 ㅎㅎㅎ
지난 연말연시 출타가 많아 좀 공백이 있었어요.
이러다 아주 중단하게 될까 싶어
12월말 로마 여행 가기전에 적어 두었던 것으로 대문을 열었어요.
재미있게 읽어 주시니 감사해요.
바로 다가온 그가 차문을 열어 준다.
여자는 너무나 놀라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내리는데,
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 제이드, 내가 살아 있으니 이리 만나는군.. 이게 얼마만인가. 허 참!“
? 클라우스 선생님! ....“
여자는 말을 이으지 못 하며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 허! 참! 제이드가 이리 놀라는 모습을
보이다니... 자,자! 진정하고“
등을 가볍게 두드르며 살짝 포옹한다.
세상에 이리 야위시다니..나이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호칭을 생략한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며 특유의 제스쳐로 유모어가 넘치고 건장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오랫동안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연주회 동영상 통해 보던 지휘하는 모습과 사뭇 다르게 아주 마르시다니.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가는 제이드 모습을 로렌스옹이 쳐다보면서 달랜다.
? 제이드, 진정하고 우선 호텔안으로 들어가지..“
클라우스도 그녀의 어깨를 두른 손을 거두지 않고
? 그래, 제이드 우리 들어 가서 천천히 묵은 얘기하자고“ 권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호텔 메니져가 다가와 인사를 하며
눈시울이 젖은 여자를 보며 놀란다.
? 안녕하세요? 콘테 로렌스,
그리고 제이드님, 오랫만입니다. 이리로 가시지요.“
메니져가 이끄는 로비를 지나 커피숍으로 가니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일어서며,
? 오!제이드! 정말 우리가 이리 만나네요.
반가워요.“
제이드는 찬찬히 그 여인을 쳐다보다가,
? 어머! 오르넬라! ...“ 말을 멈춘다.
갈색의 굵은 컬과 빛나던 머리결이 사랑스러웠던 오르넬라...잿빛의 머리라니...
잘룩한 허리를 강조하듯 '플레어스커트'를 즐겨 입었었는데 이제는 두리뭉실하게 옷들을 겹쳐입고 역시 세월은 비껴 못가는 구나. 그래도 빛나는 눈매는 여전하네.
? 내가 이리 늙어 가는데도 알아보네 ㅎㅎ 역시 제이드는 보통눈을 가진게 아니야,
파파가 오늘 제이드를 만난다고 말해서 얼마나 놀랬던지.. 우리는 제이드가 오래 전에 한국으로 돌아 간줄 알고 있었거든..지금도 파파가 기대감으로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실감이 안 났었는데.. 정말 . 제이드야? 어디 꽁꽁 숨어 있다가
...“
?..............“
여자는 갑자기 클라우스와 그의 딸 오르넬라를 만나자 아찔한 충격에 젖어 할말을 잊다가
? 나도 늙기는 마찬가지잖아 ..“ 혼자소리로 뇌인다.
두 여자가 서로 반기는 모습을 바라보던 클라우스는 웃으며
?율리오! 당신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잘못한 것을 알겠소?
이리도 제이드를 혼자서만 차지를 해 왔으니..“ 로렌스옹에게 말한다.
? 그러니까 내가 늦게라도 자네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이리 자리를 마련했으니
즐거움으로 지내며 회포를 풀구려 ?
“ 알았오, 이제라도 다시 만나니 얼마나 다행인지. 고마우이.
율리오! 제이드! 우리 점심식사를 해야지?
오르넬라가 두이노 쪽에 예약을 했는데, 피곤하지 않겠나? 공중을 날아왔는데“
클라우스가 친절함이 함껏 담은 목소리로 묻는다.
? 제이드, 어떻게 생각하지? 오늘은 자네 맘대로 해.“ 라고 로렌스옹이 여자에게 말한다.
? 저는 점심은 그냥 여기 호텔에서 간단히 하고 싶어요.시간도 좀 늦은 시간이니까요.“
? 그럴까? 그럼 저기 야외에 식탁을 보라고 하지..
그 사이 율리오와 제이드는 방에 올라가 체크하고 내려오는게 좋겠군..“
로렌스옹을 친구처럼 율리오라고 부르는 클라우스의 모습이 자못 경쾌하다.
내가 오랫동안 못 만나는 동안 두사람이 막연한 지기가 되었는가? 친하게 이름을 서로 부르고..
? 클라우스, 오르넬라! 그럼 좋은 자리로 알아 주게, 자! 제이드! 우리는 방으로 올라가지.“
두 사람이 일어서자 대기하던 종업원이 다가와 앞선다.
여자는 종업원이 안내해 준 ?쥬세페 ?라는 문패가 달린 방앞에 서자 가슴이 멍해온다.
종업원이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 여자의 가방을 한구석에 놓으며
? 오랫만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이방을 꼭 비워 놓으라고 메지져님의
당부가 있었어요.“
? 그랬어요? 고마워요.
장기투숙객용으로 이용하는 방인데, 하룻밤만 묵을 나를 위해 신경을 이리 써 주셔서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 예, 그러지요.
그럼 나중에 또 뵙지요“
종업원이 나가자 여자는 다시 찾아 온 반가움으로 깃드는 방을 빙 둘러본다.
이 도시가 한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시절에는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이곳을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이 방의 이름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의 황제 요셉 2세’ 의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 쥬세페 2세 아스보르그’라고 붙여진 것이다. 방안 중앙에도 황제의 초상화가 붙여있다.
얼마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 왔었고 지금도 찾아오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다.
여자는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었을 때 파울이 설명해주던 것이 바로 어제처럼 떠오름에
뭉클한 감정으로 한쪽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언제 클라우스를 마지막으로 보았던가?
1995년... 2013년...
그 사이 18년이란 공백이 ...
처음 만났던 해는 1989년..
그해 6월...
연주회 사진 촬영하다가 만나고 나서 며칠 후 잘츠부르그 산장호텔에서 또 만났었지.
그리고는 파울과 더불어 여러 도시에서 만났었고...아! 빛나던 순간들이여...
조금 전 야윈 클라우스와 비교하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안돼! 약한 이런 내모습을 보여주면...
여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짐가방을 열어 저녁식사때 입으려고 준비했던 옷을 집어들고 욕실로 간다.
지난 번 왔었을 때와 변함이 거히 없는 욕탕 구조와 장식을 보면서
어느 늦은밤 창문을 열어 놓았을때 바깥에서 유쾌하게 토요일 밤을 즐기는 청소년들 소리를 들으며
젊음의 열기가 전이 되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은 차분하게 레이스 커텐으로 닫혀진 우유빛 창문이 한낮의 햇빛에 음영을 나타낸다.
거울을 바라보니 그 속에 눈이 거히 잠겨진 한 여인이 있다.
누구야? 너? 왜 울어?
부은 눈을 가라앉히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찬찬히 엷게 화장을 한 다음
얇은 쉬폰 검은색 천에 커다란 장미무늬가 있는 원피스로 갈아입는다.
부드러운 실크 검은색 숄을 어깨에 걸치며 다시 거울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이제 어리어리한 여자가 서 있다.
도대체 너! 무얼 하는 거야.?
무엇을 감추려고 그러는 거야?
그동안 살아 온 너의 인생이 부끄러운 거야?
왜?
그냥 너의 모습 그대로 보여줘..
너는 너대로 열심히 살아왔잖아?
그래. 맞아. 나는 나야.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띠르르르... 띠르르르
전화벨이 울린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나?
여자가 수화기를 들자
아래에 식탁준비가 되었으니 내려오라는 오르넬라의 전갈을 받는다.
여자는 검은색 손가방을 집어들고 다시한번 거실의 대형거울에 전신을 비추어 본다.
아니! 무슨 칵테일파티 차림이잖아?
여자는 차려 입은 옷을 부랴부랴 서둘러 벗는다.
그리고는 간단한 비치웨워식으로 옅은 주홍색 바탕에 가는 붉은색과 보라색 줄쳐진 소매없는,옷길이가 발목아래까지 느러지게 길고 높은 허리선이 가슴밑 가까이 처리 된 원피스로 갈아 입은 후, 흰색 숄을 양쪽 팔에 살짝 걸치며 거울을 본다.
흠.. 그래 자연스럽네.자,
이제 내려가자.
방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 마주보이는 방에 있던 로렌스옹도 방문을 나오며 여자를
본다.
? 허! 제이드!
정말 아름다웁네... 오늘 우리 데이트를 위해 준비를 했는가?“
? ....“
아무 대답도 안하고 여자는 평소와 달리 곧바로 로렌스옹을 바라만 본다.
그러는 그녀의 태도에 그가 짐짓 당황한다.
? 제이드, 자네가 그리 놀랄
줄 몰랐네.. 미안하군. 미리 얘기를 해주었어야 할걸...“
? 괜찮아요. 이미 만났고. 이제부터라도 놓치는 시간없으면 다행이지요.
그런데, 클라우스 선생님께서 이렇게 쇠약해 지신 줄은 몰랐어요. 그 생각을 하면 맘이 아퍼요.“
? 나도 그래서 이번에 꼭 자네와 만나게 해주고 싶었네..“
? 예, 고마워요.
저도 클라우스 선생님을 언제인가는 꼭 보고 싶었었어요.“
? 자 , 그럼 내려가자구..
모두 기다리고 있을 거야.“
(계속)
La Traviata - Maria Callas, Gabriele Santini - Un di Felice (Track 2)
Highlights from the 1953 recording of La Traviata performed by Maria Callas, Francesco Albanese and Ugo Savarese with the Symphony Orchestra of Radiotelevisione Italiana, Turin conducted by Gabriele Santini. (World Record Club recording catalogue No. OHP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