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1-
여자는 고개를 든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보던 것을 중단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웁다. 호텔 바에는 여자 말고는 종업원 밖에 없다. 창밖을 보니 영원히 내릴 듯 비가 내린다. 호텔 앞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의 강도가 나타난다. 빗물에 불빛이 간혹 반짝 부서지는 것 같다.
일어선다.
문가로 가니 문이 스르르 자동으로 열린다. 마치 여자가 밖으로 나오기를 바랬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도 저쪽 해변에 정박한 배들이 보인다. 몇 달 전에 왔었을 때의 여름 열기가 떠오른다. 2012년 6월 어느 날 Biograd...늦은 저녁 10시에도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던 뜨거움...한국에서 온 또 하나의 여자와 같이 어항 속 물고기들마냥 느릿느릿 해변을 거닐었었다.
지금. 2012년 10월 14일 0시. 같은 곳이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옆의 호텔로부터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아! 토요일 밤이지. 아니, 일요일 새벽이라고 해야하나...결혼 파티쯤 되나.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종업원이 재빨리 그녀가 마셨던 찻잔을 옮기고 있다. 그동안 여자가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한 듯하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방 앞에 서니 복도가 너무 조용하다. 이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여자뿐인 것 같다. 방으로 들어와 우선 소파에 걸쳐두었던 옷가지를 침대로 던지 듯 놓고는 그 자리에 앉는다.
이제부터 무얼 하지?
내일 일정을 점검한다. 오전 Trogir, 오후 스플릿... 수도원 미사 참예.. 신자가 아니라서 미사드린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참예라는 단어를 창조해낸 것이 스스로 우습다. 어제 들렸던 자다르의 화보를 건성건성 들쳐본다. 올해에는 더 이상 이곳에 안 올 것이다. 수도원 나이들은 수사와 헤어지며 '내년에 봐요!' 했었다.
갑자기 내년이 아주 멀게 느껴진다. 아마도 집을 떠나 지내면서 하루하루가 느리가는 듯한 감각이기 때문이리라. 이제 닷새가 지났는데, 한 열흘이 된 듯하다. 매일마다 다른 곳으로 달린다. 차창 밖으로 풍경을 보며 여자는 지난번, 그 지난번,그리고 또 그그... 전에 왔을 때를 그려보았다.
도심 속에서 느끼던 계절 감각과는 다른 섬뜻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에서는 확실한 계절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한여름의 태양 아래 작열하던 바위산이 짙은 물안개 속에 몸퉁이를 반을 가리고 깊은 생각에 빠진 중년 남자 같다. 녹색의 반사로 찬란한 비췻빛을 나타내던 물빛은 권태 속 중년 여인마냥 감동이 적게 푸르딩딩하다.
사진기를 들여다 본다. 사진 속 여자는 시종 웃고 있다. 딸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 똑같은 표정 짓지 말아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감이 잡히다니...
(계속)
반가운 수인 선배님 ~!
예~ 지금 스플릿에 있어요.
아침 식사 후 보즈니아_ 헤르체고비나로 떠날 거에요.
선배님과 비엔나에서 만났던 작년 10월...
세월은 빠른 듯 느린 듯 여전히 흐르고 있어요.
선배님께서 다니셨을 때는 날씨가 좋았다고 했었지요?
제가 다니는 요즘은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더 많아요.
어제는 해가 나더니,
지금은 다시 비가 오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가라 앉으며 자꾸 상념에 젖네요.
이번 여행은
올 때부터 올해의 마지막 발칸출장이구나 ,, 하며 나왔어요.
같은 곳을 여러번 계절따라 찾아 오는 데,
윗 본문 올리는 날 밤에는
전처럼 여행기를 사진과 기록문 올리는 것에서 탈피해지고 싶어지더라고요.
한밤중 빗소리 들으며 잠이 안 와 제맘이 서성대더니...
무조건 무엇인가 쓰고 싶은 욕구가 솟았어요.
여행중이라 사진편집하며 시간 걸리는 것에 주력하지 않고 글만 쓰다보니
저의 상념은 시공을 초월하며 어떤 형식에도 자유로워졌어요.
삼인층인 한 여자로 모습을 그리면서
실화와 허구를 가미한 창작 산문내지는... 연재 소설이 될런지..
앞으로 어떻게 얘기가 이어질 지는 저도 몰라요..
일단 시작은 했어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샘이 솟는..
머리 한쪽이 회오리 치는...
비가 온 다음 햇살이 환하게 번지는 가운데 저 하늘 위의 백설 같은 구름...
이 모든 느낌이 제속에 머무네요.
선배님 항상 관심 보여주시며
제글을 읽어 주시니 고마워요.
(본문 계속)
-2.-
잠깐 그날 찍은 사진을 살펴보려던 여자는 디지탈 카메라에 입력되어 있는 사진을 처음부터 본다. 제일 첫 장이 5월 중순 영국 가든 주제 여행하던 때, 새 카메라 칩을 산 후에 제대로 찍혀지는지 시험적으로 그 가게주인을 찍은 것이다.
우하하하 !!!!
약간 사팔눈의 그가 어정쩡한 눈빛으로 쳐다 본다.
여자의 한 친구는 가끔 여자 사진기로 사진을 찍은 후에 찍힌 것을 다시 확인한다. 그러다가 방금 찍힌 사진이 마지막까지 가면 저절로 첫 번째 이 사진을 보게되는데 항상 똑같이, ' 너의 영국 남자 친구? 푸푸푸..' 라고 농담을 한다. 다시 그곳에 가면 그에게 보여줄까?
세상은 참으로 편리해졌다. 아날로그시대인 예전처럼 사진 현상이 필요 없이 이리 편히 볼 수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면. 현재 소유한 현상사진 중에 제일 어렸을 때 사진이 무얼까? 곰곰히 생각한다.
아, 맞아! 지난번 아버지 병환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한국에 갔었을 때에 금방이라도 돌아 가시는 줄 알고 아버지 살림 정리를 하면서 가져온 흑백 사진들이 있지..
여자 생후 6개월쯤에 찍은 것이 있는데, 할아버지를 비롯한 큰아버지, 아버지 , 고모 그리고 자손들까지 찍은 가족 삼대에 걸친 사진. 점점 더 기억 속의 그 사진은 확대되어 여자에게 다가온다. 이제는 그 사진에 담긴 사람 중에 세 사람만이 이 세상에 남아 있다. 그 중에 제일 어렸던 여자가 어언 오십여 년을 살아온 것이다.
한 여자의 오십여 년. 곧 다가올 60살이 주는 의미...여자는 문득 박영빈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제는 서로가 각자의 길을 가지만, 60이 넘어 나이가 들면 서로 손잡고 예전에 산책하던 덕수궁을 거닐 수 있을 거에요. 그래도 우리가 1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이라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가 말했던 60살이 가졌던 의미는 그냥 단순한 나잇수이기보다, 나이가 들면 사랑도 미움도 퇴색하여 젊은 날의 열정 없이 무덤덤해질 거라는 것이 였을까? 아니면 오랜 세월 후 나이가 들면 그 젊은 시절의 속박에서 벗어나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소리였을까? 그런데 이젠 정말 그 나이 때가 가까워 진 자신이다.
박영빈은 여자가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중에 중매로 만났던 사람이다.
여름의 열기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하던 7월 17일 오후. 엄마 친구가 소개하였는데 그 아줌마네집에서 자연을 가장(?)해 만났었다. 그는 유학 중 책자를 번역하려 귀국한 김에 부모의 간청으로 선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여자에게는 엄마가 그녀를 유학 보내 고자 하여 이루어진 만남이었고, 첨으로 선본다는 긴장감 보다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것에 장난끼를 가지고 나갔었다. 옷도 선볼 때 입는다는 투피스 정장이나 얌전한 원피스 차림이 아니라 부드럽게 세운 칼라가 있는 연한 청록색 남방식 브라우스에 베이지색 폭 넓은 나팔바지 차림으로..
중매 아줌마가 여자의 차림새를 보고는 머리를 갸웃하더니,
"아인아! 너 선보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왔니? 차림이 그렇구나..."
그 말이 채 떨어 지기 전에 박영빈이 그의 동생 박성빈과 같이 나타났다.
푸하하하!!!그의 옷차림이라니 ㅋㅋㅋㅋ완전 히피였다.
장발 머리, 울긋불긋한 반팔 남방, 그리고 발가락이 훤히 보이는 가죽 샌들을 신고 동생 오토바이를 부르릉 타고서...
그해 그 여름 여자와 박영빈은 수시로 만났었다. 그의 번역일을 돕기도 하고, 그에게 유학장학비를 준다는 종교재단음악회에 출연도 하고. 그의 남동생 박성빈이 플루트전공자로서 실내음악이나 독주를 기획해서 여자에게 합주와 반주를 부탁했었다. 만나자마자 삼 주 정도 앙상블 연습과 반주 맞추기를 하며 저절로 영빈의 집에서 만났었다.
이북 평양에서 월남한 영빈의 나이 많은 부모는 여자를 손녀딸처럼 예뻐했다.
...니, 와 이제야 왔나.우리 리북사람들은 승질이 느긋하지만 나는 좀 안 그루쿠마니..요거이 요러케 요러케... 니 에미내이 메길라고 만든 것이라요... 으서으서 묵기요...
여자는 영빈의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서 몇 번이나 멈추어 서울역과 주위의 경관을 즐겼었다.
정부는 몇 차례에 걸쳐 경제계획과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전국에 시행 중이었다. 서울 곳곳에는 신건축물이 세워지며 서울 옛적 평면적 도로에 세워지는 고가도로 아래 매몰되는 건축물들이 음지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었다. 영빈의 집은 항상 해가 드는 양지에 고가도로 보다 높은 곳에 있어,아래를 바라보며 숨이 트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여자는 이 경관을 즐기고자 그의 집을 흔쾌히 방문했었는지도.
종교재단에서 열리는 8월 15일 성모승천기념음악회를 마친 며칠 후 그가 여자의 집을 방문했다.
바햐흐로 부모상면!
여자는 영빈이 오기 전에 은근히 걱정을 했었다. 또 히피차림?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영빈은 연하늘색 가는 세로줄 친 여름 양복에 맞추어 얌전한 구두를 신고 글라디올러스 한 아름 들고 나타났던 것이다. 여자의 식구들은 호기심 가득 그를 살폈다.
그가 돌아간 후에 여자의 아버지는,
..저 사람과 네가 생각하는 것이 너무 비슷하니 걱정이구나...좀 더 두고 보자..라고 회의적으로 말했다.
아---! 아버지! !!!
여자의 아버지는 이미 그 순간, 박영빈에게 딸을 허락 안 하리라... 속으로 결정했었다.
(계속..)
송미선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처럼 맛깔스럽게 쓰지도 못하면서
용기있게 시작을 했어요.
소설이 무엇이겠어요. 바로 우리 인생을 (+,-)? 하는 게 아닐까요...
저 스스로의 경험을 토대로 정제하기도,, 환상을 피기도 해보려고요
릴케가 말했던 것처럼 예술은 고독과 더불어 창조된다는 말을
이번 여행중에 절실히 느껴요.
어제 저녁 공식 일정을 마치고
혼자 묵을 호텔에 택시타고 찾아오자 마자 그냥 쓰러져 자고서는
새벽에 불현듯이 잠이 깨었어요.
그리고는 이곳에 들어와 정신도 서서히 깨우고 있어요.
오후 비엔나 귀가 비행기 탈 때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두브로브니크 구도시를 돌아다닐까... 항구에 나가 산책을 할까
그냥 호텔 방에서 느긋이 지내다 공항으로 직행할까.. 등등 생각 중이에요.
선배님께서 놓아 주신 글
반갑고 감사하게 받아드려요.
안녕히 계세요.
( 집에 귀가하면 처녀시절 사진 찾아 볼께요 ㅎㅎ)
춘자선배님!
오래 오래 다듬지않고
성큼 올려논 글을 재미있다고 하시니 송구하옵니다.
문학적 형식이나 구성을 떠나
생각나는것들을 그 때 그때 적어 보려구요.
그러다 보면 언제인가는 틀도 잡히고 그러겠지요..ㅎㅎ
-3.- (본문 계속)
여자의 가족과 박영빈이 상면한 후에 그의 부모는 아들이 다시 공부하던 곳으로 가기 전에 약혼이라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여자의 아버지는 아직 여자가 졸업하려면 반년이나 남았으니 시간을 더 두고 보자고 했다.
9월 학기가 시작된 여자는 마지막 학기를 아쉬워하며 가을을 만끽하였다.
어느 날은 영빈이 여자의 연습실로 찾아 들어왔다.
"아니? 어떻게 들어왔어요? " 여자가 다니는 여자 대학은 남자출입금지였기에 궁금헀다.
"다,방법이 있지요.. 성악과 신교수를 전에부터 알았기에 그분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통과시키데. 흠"
여자는 그런 그가 능청스러우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둘이는 교정언덕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며 지나는 여대생들의 흘깃거림을 은근히 즐겼다. 그해 가을은 이렇게 모든 것들이 은근하게 시작되며 지나고 있었다.
"나, 이제 돌아가야해요...10월 2일 출국 날짜에요. 아인씨가 졸업하자마자 오도록 내가 가서 유학생으로 초청해 볼게요. 졸업곡을 테이프로 녹음해서 보내요. 가서 준비사항을 우편으로 보낼게요"
"알았어요"
여자의 마지막 학기는 바쁜 일정의 연속이었으나, 영빈은 이제 가면 학위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못 올 것이라는 감상으로 찬찬히 서울 곳곳을 찾으며 때때로 여자를 대동하였다.
"아인씨, 부탁이 있어요. 친한 친구랑 만날 수 있을까요? 아인씨의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요.친구를 보면 아인씨도 더 잘 알게 될 것 같고요."
영빈의 부탁으로 여자는 친구와 한국은행 앞에서 그를 만나 미도파 쪽으로 산책을 했었기도..
무엇을 했던지는 생각이 가물거리는데, 그 친구는 지금도 박영빈을 만났던 첫 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여동생과 만나기도. 영빈은 이렇게 아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를 만났던 동생은,
"언니, 저 사람은 영화에서 만났던 사람같애.실제의 사람같지가 않네..언니는 그렇게 안 느껴져?
아까 내가 의자에 앉으려니까 재빨리 의자를 뒤로 꺼내 주는데, 기분이 좀 ㅎㅎ"
"아니. 나는 저사람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 같애. 그가 말해주는 것들이 모두 바로바로 내 안으로 스며들거든."
"정말 아버지 말대로 두 사람 너무 비슷하네. 그래서 아버지가 걱정이 많아. 둘이서 똑같이 하늘의 구름을 보고 이야기나 하며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나 가겠냐고."
동생의 얘기를 들으며,가족들이 여자가 없는 때에 영빈과 자신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얘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웬지 먹구름이 끼는 예감이 ...
하룻 저녁은 덕수궁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돌다가 영빈이 갑자기 땅에 구부르고 앉아서 좀 커다랗게 둥그런 원을 그렸다.
"아인씨, 이리 앉아봐요.이 원이 바로 우주에요. 그렇다면 아인씨는 이 원의 어디쯤 있을까요?"
여자는 그를 찬찬히 바라보며 이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이리 시작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아무 대답을 안 하고 바라만 보는 여자를 가만히 뒤로 안으며,
"당신이 바로 이 원 안의 우주중심에 있어요. 이렇게 내가 싸고 있는 원 안에 있는 것처럼 그 원이 넓어질 때도 있고 좁아질 때도 있지요. 또한 또 다른 원과 공통구역을 갖으며 좀 다른 구역을 각각의 원으로 가질 수도 있고요."
여자는 영빈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들을 듯 말 듯했다. 그가 현재 공부하는 철학의 한 이론을 가르쳐 주는 가 싶었다. 수학에서 배운 합집합 공통집합등.. 두 개, 세 개의 원이 그려지며 설명되던 것을 떠올렸다. 결론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이루어 나가는 것이 그 스스로의 우주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했다.
그 날은 유달리 영빈이 얘기를 많이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만남에 영빈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주고 싶어 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차이 일까? 여자는 그리 헤어진다는 것에 실감이 안 났다. 헤어져 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그가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떠나기 며칠 전에 영빈은 여자를 정동 MBC꼭대기 층에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 데려갔다.
"아인씨, 그동안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오늘은 우리끼리 송별의 날로 삼을려고요. 공항에는 나오지 말아요. 내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요. 가자마자 연락 할게요. 그리고 우리 집에는 종종 찾아주어요. 엄마가 나 대신 아인씨 보면 기뻐할 거에요.울 엄마가 아인씨 아주 좋아해요"
30이 넘은 나이인데도 항상 엄마 아빠 라고 부모를 칭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이상하더니, 점점 그렇게 부르는 것이 훨씬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옥인후배~~~
조간신문 활자 냄새 맡으며 우선으로 눈길을 두던 연재소설 처럼
글사랑방을 찾아오는 기쁨도 이 가을 나를 풍요롭게합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묘하지요?
도저히 좋아할수 없는것까지 다 좋게 보여지기만 하느걸....
그래서 눈에 콩깍지가 씌였가하고...
제눈이 안경이라하고요....
처음의 만남그대로의 감정을 쭉간직하고 살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계속 행복의 나라 에 초대받고 싶어요.
옥인후배~~~
집에 돌아오셔서 푹쉬시며 좋은글 남겨주새요!~~
미선 선배님~
어제 귀가하여 늦잠을 푹자고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저의 대학시절에 불리워지던 '바바라 스트라이산드'의 음악을 찾아 들었어요.
the way we were... 바로위 본문에 올려 보았지요
그 외에도 womon in love... 제목자체가 요즘시대와 다르죠?
지금 전개 되는 저의 글이
바로 70년대 중반시절이라 다시금 그때의 음악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선배님 대학 시절은 66년~ 70년대가 되겠네요.. 비틀즈 전성시대 였겠군요...
글을 엮으면서 타임머신탄듯 과거로 향해보았고요.
안녕 옥인!
우연히 들어왔다가 열열한 독자가 되었네
지속되는 이야기....
내게는 행복한 기다림이야
가을이어서 더 그럴테지?
이가을 그리움만 있지 말고
행복감도 만끽하길
안녕 은희!
그래 잘지내지? 오랫만에 직접 글로 만나는구나.
그동안 사진에 치중하여 글쓰던 것을
이번 여행하면서 글만 쓰니 홀가분한 기분이 되더구나..
시작한 글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모르나
그냥 그때 그때 실타래를 풀어 놓을려고..
어제 잠깐 비엔나 숲을 드라이브했어.
가을색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다시 돌아온 비엔나에서
노곤한 행복감이 넘치었어.
은희야 너의 댓글에 힘나네... 고마워. 잘지내고.
-4.- (본문 계속)
남겨진 여자...
박영빈이 떠나고 나서야 헤어짐을 실감했다. 영빈의 부탁대로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가 없는 그 곳은 그 전 같지가 않았다. 영빈의 가족은 여자를 반기며 마음대로 서재의 책을 보거나 피아노 연습도 하라고 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던 서재에 머물면 바로 그가 나타나서 영롱한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얘기를 할 듯했다. 가을 햇빛이 길고 노랗게 내리면 그곳을 서서히 떠나 언덕길을 내려왔다.
집에 돌아오면 먼저 영빈으로부터 온 우편물이 있나하고 찾았다. 여자의 눈치를 챈 동생이,
"언니,너무 기다리지마, 초청하기가 그리 쉽겠어?"
"그 사람은 어려우면 어렵다고 연락 줄 사람이야" 그러면서 다시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며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날에 여자는 오랫만에 영빈의 집을 방문했다.
그의 어머니가 무척 반가워 하며,
"내래 무척 기다렸시요.. 무신 일이 생겼나 싶어 걱정 했구마니.. "라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느새 저녁녘이 되어갔다.
"내 후딱 석반 채릴께니 좀 쉬고 있기요"
영빈의 어머니가 막무가내로 부엌에 못 들어 오게 하여, 거실에 앉아 잡지라도 보려고 탁자 근처에 놓여있는 신문정리대로 갔다.
아! 그런데, 탁자 모퉁이에 그림엽서가 보였다.
뒤를 후딱 돌려보니 낯익은 영빈의 글씨체가 보였다. 부모님에게 안부 인사 보낸 엽서였다. 지금 미국에 있는 누나집에 잠시 다니러 와 있다고. 엽서 제일 밑에 그의 동생 성빈에게 쓴 아주 작은 영어글씨가 보였다. '아인씨에게는 아무 얘기 하지 마라' 라고.
여자는 그 후 어떻게 저녁식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 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 날이 여자가 그곳을 찾은 마지막 날이었다. 여자는 그 후로 그 집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One Moment in Time" is an Emmy Award winning song written by Albert Hammond and John Bettis, and recorded by American singer Whitney Houston for the 1988 Summer Olympics
and the 1988 Summer Paralympics held in Seoul, South Korea.
그리고 12년이 지나 서울이 올림픽열기로 한창 들뜨던 1988년.
그리스에서 행사하는 성화 점등식이 TV중계되고 있었다.
화면이 확대 되며, 중앙 단상 위에 서 있는 박영빈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머나!!!!!!!!!!!!!!!!!!
동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든다.
...언니! 지금 텔레비죤 보고 있어? 동생 아경의 어색한 목소리가 수화를 통해 들린다.
... 응..........근데, 아경아! 왜?
...박영빈씨가 나오길래....아! 어떻하지... 이제는 언니에게 사실을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애..
... ??????????????
(계속)
옥인후배~~~~~
술술 풀려가며 혼인이 정해질거라는 내 상상을 완전히 반전시키네요.
너무너무 흥미진진~~~~
세상에 12년이나 간직해온 사연을 이제서야 말하게 되는 동생의 인내심은 너무대단(?)하게 느껴지고...
논픽션이 픽션으로 전개되는 느낌이네요.
길게 쭉~~~
써 주실꺼죠..
기대합니다.
미선 선배님~~~
여행지에서 제 안속의 실타래를 풀며 쓰던 글이었는데요,
귀가해서 한숨 푹자고나서
비엔나숲을 드라이브하기도..
고성을 찾아 단풍물들은 아름다운 정경을 눈으로 담으며
가까운 이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현실에 돌아와서
먼저 쓰던 글이 멈추어 지더군요...
픽션을 논픽션처럼
논픽션을 픽션처럼 써나가는 글이 소설의 묘미겠지요..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모델로 해야 하는 시점에서
깊은 상념에 젖어보기도...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델로 하면서
혹시라도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고요.
얼마마큼 제가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요?
갑짜기 두려움이 생기네요.
윗 본문에서
여자: ????????? ... 으로 된 그순간이
바로 글을 멈추게 한 순간이 되었어요.
미선 선배님 께서 주시는 댓글을
독려로 생각하고 천천히 이어볼께요.
-5.- (본문 계속)
여자가 아무 소리를 안 하자,전화선 저쪽에서 수화기를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생은 수화기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나 보다.
...언니! 내 말 들려?
...들려.
여자는 스스로가 왜 퉁명스럽게 말하는지 신경이 쓰인다.
...정말 세월이 많이 지났지... 언니 아직도 박영빈씨 생각이 나?
...그게 갑짜기 왜 궁금한데?
...나는 모든 일은 그때 다 끝난 줄 알았어.그런데... 음...지금 박영빈, 그 사람을 보니 갑짜기 그때가 다시 살아나서 그래..
...뭐가 ? 네가 뭘 그리 잘 안다고 그래? 그때 얘기라면 그만 하자.
여자는 점점 더 평소와 달리 퉁명스러워지는 스스로가 싫다. 전화기를 놓아버린다.
12년, 그래 긴 세월이 지났네...
여자는 순간 그때로 돌아간다.
박영빈의 집 출입을 중단하고, 그를 잊으려고 했었다. 자기에게 일별의 소식도 없이 그의 동생에게 부탁했던 글귀가 너무나 여자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해 어느 누구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그녀도 세월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졸업, 결혼, 그리고 딸아이 출산. 이제 4살이 된 딸애는 그녀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기쁨으로 생명에 대한 신비를 한없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동생은 느닷없이 이제 박영빈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는가?
띠르르... 뜨르뜨르...
초인종이 울린다.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초인종 모니터를 본다. 동생 아경이 서 있다.
...그냥 가.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아.
...안돼. 오늘은 언니가 꼭 알아야 되.
여자는 동생의 낯을 살펴본다. 거의 쓰러질듯한 모습이다. 문을 열어준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동생의 손에는 연보라빛 수국꽃다발이 들려있다.
꽃을 건네받고 화병을 찾는다.
엄마가 좋아하던 수국...하늘나라 가신지가 벌써 7년이 되었네.. 엄마! 보고 싶어요.
백자 안에 수국을 담아 거실 탁자 중앙에 올려놓는다. 아경은 가만히 앉아 언니의 행동을 주시한다.
이제 여자는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동생이 앉아 있는 자리 바로 건너편 소파에 앉는다. 동생은 거실의 등을 바라보다 눈이 부신듯 찡그린다.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거실등의 촛수 조리개로 불빛을 내리고는 전등갓 바깥쪽인 빛이 덜 닿는 어둠이 머무는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곧은 시선으로 동생을 바라본다. 동생은 시선을 꽃으로 보내며 말을 시작한다.
"언니! 오늘은 엄마가 그리워 지네... 울 엄마가 참 이 꽃을 좋아했었는데..언니.. 고마워. 언니가 엄마 대신 나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데..그런데, 그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미안 했던 줄 알아? 언니가 옛날 박영빈씨와 유학을 갔었더라면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식구 모두 힘들었을거야. 특히 아버지가..."
"잠깐! 그 얘기가 지금 왜 필요해. 나는 여기 있고, 바로 너와 식구들 곁에 있는데.."
동생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다시 이어간다.
"그러니까 ... 그해 가을 아버지가 하루는 엄마 몰래 나보고 밖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구.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를 만나러 나갔었어. 아버지가 하는 말이 박영빈이라는 사람이 아직 학생이라 언니를 건사하기에도 벅차고 제일 중요한 것은 부부가 너무 똑같으면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것이야. 한 사람이라도 현실을 파악하고 생활해야 되는데, 언니랑 그이는 둘 다 이상주의라고..또한 언니가 외국으로 가면 언제 돌아 올지도 모르는데, 유학가는 것을 말리는 것이 말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더니 박영빈씨가 언니에게 보낸 편지봉투를 꺼내는 거야. 언니 대신 나보고 답장을 쓰라고.. 언니필체와 내필체가 거의 같았잖아. 물론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 그런데 아버지가 이러는 것이 언니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하는 것이라고 그러시더라고...사실 나도 언니와 멀리 떨어 지는 게 겁났었어. 아버지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나오셨더라고..편지지와 먹지를...나는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편지지에 먹지를 대고 글을 썼어.
'... 박영빈씨!
...지난 여름의 만남은 저에게 앞으로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에요. 앞으로 영빈씨가 학위를 무사히 받고 원하시는 장래를 설계하시기를 바래요. 떠나신후 다시 생각하니, 저는 한국에 머물고 싶어요....'
이런 내용이었어. 불러준 대로 써서 더 이상은 기억이 안 나네. 사실, 이 사실을 영원히 잊으려고 했거든..그래서 정말 기억이 안 나는가 봐. 아버지는 원본을 부치시고 그 먹지 종이아래 적혀진 종이를 간직 했을 거야. 그런데 오늘 TV에서 그를 본 순간....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었던 가를 상기하게 되었어.
언니는 그해 가을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다 잊어버릴 거야..이제부턴 박영빈씨의 얘기는 하지 마' 라고 나에게 부탁했어.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쓰고 난 이 삼 주 후 같더라고.. 짐작으로 언니가 그의 가족으로부터 무슨 소식을 들었나 보다 했지.
언니의 겉모습은 별로 변함이 없었어. 그러나 자꾸 혼자 있으려고 하는 모습이 내맘을 얼마나 쓰리게 했던지..그 해 겨울이 지나고 언니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머리도 자르고 밝은 옷을 입고 명랑해지더라고..아버지와 나는 언니가 그때 정말 모두 잊어버린 줄 알고 안심했었어. 그런데, 언니는 속으로 계획을 하고 있었지?.. 집을 떠나려고.. 그리고 정말 우리를 떠났었지. 그러니까 엄마가 돌아 가시기 직전까지.
엄마는 언니가 돌연히 떠나 버리자 내내 아버지를 원망했었어. '쟈가 당신에게 실망하여 우리 모두를 떠나는 것이야요' 라고...엄마는 박영빈씨의 편지사건을 몰랐는데도 직감적으로 아버지의 아집이 얽혀서 언니와 박영빈씨가 결합이 안 되었다고 생각했었지.
언니가 엄마 대신 우리식구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아버지 시키는 대로 했던 것이 잘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지. 다... 나의 이기적 생각이었을 거야. 그러나 내 잠재의식속에는 계속 그때 언니의 인생을 바꾸어 논 것에 자책감이 있었나 봐. 오늘 그를 보자 내 모든 의식이 이제라도 사실을 말해야 한다고 종용하는거야. 언니... 이제는 돌이 킬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사실을 언니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여자는 동생이 얘기 하는 동안 수치감에 몸을 떤다.
아! 그가 그 편지를 보고 느꼈을 모욕감... 편지 뒷편에는 분명히 먹지의 흔적이 있었겠지..내가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쓴 것이라고 생각했었을까? 아 아 아! 어째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었단 말인가..
여자는 더 이상 동생과 같이 있고 싶지가 않다. 거실에 동생을 남겨두고 서재로 들어 간다.
(계속)
내컴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아요
컴퓨터 고장으로....
글 읽으며 내내 아쉬움이...
훗날 컴 고치면 다시 찬찬히 읽어보는 즐거움을 갖을꺼예요.
인생이란 자의가 아니라도 이런 큰 변화와 결과를 갖어 올수있다는것...
행복한 결말이면 좋으련만..
난지금 옥인후배의 행복을 빌고 싶어지네요.
송미선 선배님~
집 떠나 객지에서
밤바다를 보고싶어하다가
빗줄기의 강세에 눌려 호텔방으로 돌아와
갑짜기 인생60을 돌아보는 계기를 맞게되었지요.
이 얘기의 주인공 여자는 어느 한 여자에요.
물론 저와 연관된 부분도 있지만,
별개의 여자로 보아주세요.. .
저의 실제얘기를 그대로 쓰기에는
아직 더 용기가 필요하거던요. ㅎㅎ
저는 그 여자의 한부분을 그리고 있고요.
글을 쓰면서 외로움, 회의, 번민,슬픔, 이별 그리고 기쁨, 행복, 환희... 등등
더 깊게, 더 높게... 떠오릅니다.
실제 김옥인이는 요즘 가을을 무척 타고 있어요.
가을이 깊어가면 항상 아프거든요....
제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위에 올렸는데,
선배님 컴퓨터로 들을 실 수있으면 좋겠는데요...
선배님께서 옆에 계시면
달려가서 어리광을 한 없이 부리고 싶네요.
부디 건강하세요.
-6.- (본문 계속)
올림픽 경기가 끝나자 한국은 썰물이 빠져나간 바닷가 처럼 적막한 가을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은 철지난 유원지 마냥 연말연시도 예전보다 쓸쓸하게 지나갔다.
1989년 봄이 오면서 언제 올림픽을 치뤘냐는 듯이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활기가 차왔다. 여자에게도 화창한 봄이 다가왔다. 5월의 햇빛이 쏟아지는 오후, 여자는 딸애와 이태원으로 여행용 가방을 사러 나갔다. 5살짜리 딸애는 마냥 즐겁게 조잘된다.
"엄마 낼 모레 우리가 비엔나 가지요? 오늘 유치원에서 인사했어. 애들이 잘 다녀오래. 호호! 유치원 방학도 아닌데 나 혼자서 방학한다고 부러운가 봐. 그런데, 거기가 얼마나 멀어요? 그리고 내일은 어린이 날인데, 우리 어디 놀러 안 가요?"
반말을 하다 존댓말을 섞어 구사하는 딸애는 기분이 상기한 것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쌍카플진 커다란 눈동자에 오른쪽 입가에만 살짝 보조개가 생기는 딸애가 귀엽다. 여자는 연상 딸애 머리를 만지작 거린다. 얼마 전에 앞머리를 자르고 가볍게 파마를 시킨 머리가 보드럽다.
오랜만에 이태원 거리를 느릿느릿 거닐며 햇볕을 즐겼다. 새로 들어온 피자 헛,
버거킹..
등등 외국
브랜드 체인 음식점들을 보면서 88 올림픽이
남긴 유산인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사려고 하던 것을 준비하고 나니 어느덧 시장기가 돌았다.
딸애가 먹고 싶다는 버거킹으로 들어간다. 곳곳에 가족들이 옹기 종기 앉아있는 것을 보니 내일 어린이날을 대비한 가족 모임인듯 싶다. 주문대에 가서 주문을 하려는데 왼쪽옆 주문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박영빈의 목소리 !!!
반사적으로 멈칫하며 오른쪽으로 비껴서며 여자는 주문을 한다. 주문한 것이 나오는 동안 그쪽을 외면하다가 갓나온 햄버거를 쟁반에 담아 돌아서는데,
"김아인씨! 아니 이게 얼마 만이에요..주문하는 목소리가 기억 속 누구와 닮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보니 바로 그 아인씨네요.. "
여자는 그제서야 그쪽을 바라본다. 박영빈의 동생 박성빈이 쟁반에 햄버거 뭉치들을 받치고 서 있다.
아, 그의 동생이구나...어쩌면 목소리가 영빈씨와 이리도 비슷할까...
“안녕하세요? 성빈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아마 13년쯤 되었지요..“
“예, 그렇게 되었네요. 어디 앉으실래요? 저는 우리 애들과 아버지하고 같이 있는데요..제가 이 음식을 가져다 두고 아인씨자리로 올게요.“
여자는 딸애와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저쪽 귀퉁이에 박성빈의 가족들이 앉은 모습이 보인다. 고만고만한 사내애들 셋이 열심히 얘기를 한다. 성빈의 아버지, 즉 영빈의 아버지 모습도 보인다. 그 사이 많이 연로해 보인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당장가서 인사드리고 싶지만 혹시 그분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싶어 그냥 앉아 있다.
잠시 후, 성빈이 여자의 자리로 건너온다.
“아니.. 그동안 주욱 한국에 있었던 거에요? 그때 왜 갑짜기 소식을 끊고 안 나타난 거에요? 참...참.. 이렇게 만나다니...“
여자는 성빈이 아무 사연도 모르는 것이 다행이라고 안심한다.
정말 이렇게 만나다니...
성빈의 검은 뿔테 안경은 그대로인듯한데, 남방에 청바지 모습으로 가늘었던 모습은 아니다. 정장으로 갖춘 모습이 중년에 도달한 넉넉함을 보여준다. 주름이 새겨진 이마 아래의 눈빛은 그때 그대로의 샤프한 감각 그대로이다. 그가 예의 그 눈빛으로 가만히 여자를 바라본다. 둘이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
무슨 말을 시작하리요...여자는 이런 만남에 놀라울 뿐이다.
그가
여자의 딸과 말을 시작한다.
"이름이 뭐에요 아가씨?"
"호호호! 아가씨가 뭐에요.. 제이름은 은지에요.나이는 5살이고요. 내일 모레 비엔나 갈 거에요...그리고.."
물어보지 않는 것도 다 얘기를 한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여자는 딸애의 손을 잡으며 그만 하라고 눈짓을 한다.
성빈은 여자를 쳐다보며, “ 비엔나 갈 거에요?”
묻는다.
"예, 좀 다녀올 일이 있어서요."
"그럼, 가신 김에 같은 유럽이니 영빈형님을 만나보세요. 지금 유학하던 그곳에서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어요."
"글쎄... 제가 얼마나 체류할지도 모르고..."
"제가 전화번호를 드릴테니 비엔나 가시면 전화라도 드리고 이번에 될 수 있으면 만나보세요. 그때 형이 아인씨와 성사가 안 되고 한동안 독신으로 지냈지요. 그곳에서 그대로 머물다가 대사관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어요.. 아들 하나 두었고요. 우리형제가 만나면 종종 그해 아인씨와 같이 음악회했던 그때 얘기를 했었지요..참으로 아름다운 그해 여름이었어요. 저절로 아인씨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 많이 궁금했고요...울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종종 아인씨 얘기를 했었어요."
그분도 돌아가셨구나...우리들의 엄마들은 이제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시는구나..
여자는 그의 말에 " 아.예...“ 멈칫거리듯 대답하며 작년에 여자동생이 들려준 얘기가 새삼 귀에 맴돈다.
성빈은 상념에 찬듯한 여자를 느끼며 말을 멈추고 잠깐동안 여자와 딸애를 번갈아 보더니,
"그런데, 아인씨도 결혼이 늦었었나 봐요. 딸애가 어린 것 보니..“
여자는 그저 조용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7.-
아인은 이태원을 떠나 오는 차 안에서 카스트레오를 크게 틀어놓고 강변 도로를 힘껏 달렸다. 여자가 즐겨 하는 것 중에 하나라면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속주하는 것이다. 스피커를 옵션으로 앞뒤 양쪽 4개를 달어 놓은 까닭에 차 안의 음향은 그녀를 완전히 묶어놓기에 충분하다.
얼마쯤 달리다 뒷자리를 보니,딸애는 낮의 산책이 피곤 했던지 이미 잠들어 버렸다. 음악의 볼륨을 줄이고 잠실 한강 고수부지 쪽에 차를 세우며 핸들에 머리를 놓고는 생각에 젖는다. 성빈이 헤어지면서 주었던 명함을 펴본다. 'SS 캄머오케스트라 주관' ..등등 그의 활동영역을 알기에 충분했다. 그 뒤에 적힌 박영빈의 전화번호...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전화를 해야 하나..
여자는 그 시절 사람들과 어느새 다른 길에 들어선 자신을 돌아본다. 만남이란 헤어짐으로 단절되고, 또 다시 만남이란 어떻게 다시 이어갈 것인가...작년 올림픽 중계 때에 동생의 얘기를 듣기 전에는 그녀가 박영빈으로부터 이유 없는 거절을 받은 느낌이었다.
동생이 전해준 영빈의 편지건 내용을 듣고 처음에는 놀라웠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남겨진 여자라는 감정이 사라져 오히려 가벼운 마음이 되었었다.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았다.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여자도 물굽이를 돌아 흐르고 싶었다.
그런데, 성빈을 갑자기 만나 영빈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저절로 그 시절로부터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졸업하고 결혼도 어찌 어찌 했고....누군가가 들으면 기이하다고 하겠지만, 정말 여자는 그냥 피동적인 결정으로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한동안 여자는 칩거하며 모든 과거의 인연과 끊고 살았다.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의 지인들과 교제하며 저절로 여자는 겉늙어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너무나 지루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여자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삶이 영원한 듯이 지루해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엄마의 마지막 병상에서 간호하는 아버지 모습에서 부부라는 것은 신성한 것이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2년 후에 여자는 임신을 했다. 아버지는 엄마대신 딸을 위해 여러 충고도 해주며 보살폈다. 딸애를 출산한 후 여자의 삶은 다시 빛나기 시작하며, 그녀의 하루는 모두 딸애와 더불어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었다.
지난 4월 초에 여자의 남편이 불쑥 말을 꺼낸다.
"당신 5월에 비엔나에 가서 내 대신 일 좀 봐 주구려..내가 바뻐서 갈 수가 없는데, 서류에 싸인 대신 해주고 간 김에 여행도 하고 오면 좋겠네 그렇지?..애도 데리고 가지.. 내가 봐주기도 그렇고 하니....
여권과 비행기 표는 며칠 후에 나올게요. 애는 동반여권으로 된다고 하는구료"
어디 국내 부산이나 제주도로 떠나 보내는 것처럼 말하는 남편을 쳐다 보다가,
"알았어요. 이미 결정된 사항인데, 뭐라 하겠어요. 그래도, 내가 하는 일도 정리 할 시간을 두고 비행기 표를 구하면 좋겠네요" 라고 대답했었다.
삼 일 전에 남편으로부터 비행기 표를 받았다.그리고 여행가방을 사러 나왔다가 박성빈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그일로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여자는 자신의 신경 쓰임이 맘에 안 든다.
다시 시동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계속)
옥인후배~~~~
어젠 거친 소낙비가 우산을 막 헤집고 들어와 코트자락을 흠씬 적시더니
오늘 구름낀 사이로 보이는 가을 하늘이
집에만 박혀있기 아까운 시간..
그래도 옥인 후배 글 읽으며 내 젊은 시절을 잔잔히 추억해 봅니다.
밋밋하고 사건도 없이 평범한 일상으로 보내온 날들이 훗날 거센 세풍앞에 몸가누기 힘든 시절이 있었어요.
이젠 면연력과 저항력을 키워 굳센 노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월아!~~` 덤빌테면 덤벼라!~~"하구요.....
추억할 어느 낭만적 사건이 없이 메마른 정서속에 지낸날들속에
그래도 여행했던 기억들은 이따금 끄집어 내어추억하다 보면기슴이 뭉클해지며 먹먹할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멤돌때도 있어요.
그래서 여행은 나를 꿈으로 인도하는 희망의멧세지 입니다.
오늘도 실현성이 희박한 여행을 설계하며 요모조모 맞추는 퍼즐처럼 즐거운 헤메임이 나를 지탱시켜주지요..
후배의 글 읽으며
젊은 시절 유복한 가운데 정성과 사랑으로 부모님의 보살핌 지낸 날들속에
상상치 못할 우연의 일들이 얽히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계속 애독자로 남을것임을 잊지마세요!
미선 선배님~!
누구나 젊은 날을 떠올리면 잔잔히 그 시절의 주위 모습도 같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더구나 저처럼 고향과 고국을 오랫동안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모습보다 그시절의 모습이 더 아련하게 그리워지지요.
정말 살다보면 우연치고는 정말 소설같은 우연이 일어날때가 있는데,
지나놓고 보면 우연성만이 아니라 필연성도 알게 되고요..
이제 본문글에서 여행가방얘기가 나왔네요 ㅎㅎ
여자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장장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여행이...
며칠전
저의 딸애에게 엄마가 소설비스무리 쓴다 했더니..
....엄마 ~! 우리집얘기 쓰는 것은 아니지요?
눈이 똥그래지며 다짐을 하더라구요..
애 아빠가 살아 생전에
.. 우리얘기 내생전에 쓸 생각하지마...라고 강조했듯이요.
부전 여전이란 말이 떠 올랐어요^^..
제일 처음 본문글을 읽어주었더니,
한자어를 잘 몰라 몇몇 단어를 되 묻더라고요.
이곳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독일어로 공부를 했으니
한자어에 약해요.한글도 가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하고요.
선배님~
제 자식이 이해못하는 글을 계속 써야 할까 잠깐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딸애가 노력하면 모두 이해하게 되리라 기대해 보았지요.
그제와 어제는 비엔나 근교 동알프스의 오두막 집에서 지내면서 낭만에 흠뻑 젖어 보았어요.
비가 내리는 창밖의 모습과 안개낀 전원을 보면서
신비로운 안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 Caspar David Friedrich/카스파 다비드 후리드리히'의 그림이 떠 올랐어요.
아마 그이도 이런 환경에서 지냈었나 보다고요..
( 위의 동영상 슈베르트의 "방랑자"에 나오는 그림을 그렸었어요)
Franz Schubert's song "Der Wanderer" with visual art by Caspar David Friedrich.
자연이 인간을 지배하는 때가 바로 요즘 같다고 문득 생각해 보았어요.
선배님과 두런 두런 얘기하는 느낌이
쌀쌀한 날씨의 이 저녁을 따스하게 하네요.
-8.- (본문 계속)
빗소리가 점점 가라앉는지 창밖이 잔잔하다. 과거로 달려가던 상념에서 깨어난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잠자던 딸애를 차 안에서 내렸던 그때 그날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다가, 요즘 딸애가 그때를 그리워 얘기하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엄마랑 여행다니던 어린 그 시절, 아무런
걱정이 없었는데..이제는
모든 일에 걱정이 많아지네...“
여자는
딸애가 갑짜기 보고 싶어진다. 딸애는
엄마를 친구처럼 같이 산책도 하고, 요가도 같이 다닌다.요즘
비엔나 또래 친구들과는 별다르게 엄마를 따른다. 여자가
출장을 나오면 저절로 딸애는 요가를 혼자 가게 되는데
대부분 빠지고 있는듯싶다.
귀가하면
딸애랑 무엇을 할까? 가을이
완연하겠지... 그래, 우선 비엔나 숲을 거닐고..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딸애를
생각하면 여자는 어느새 가슴이 촉촉해 온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자라던 애를 어른들이 그 애 삶의 뿌리를
옮겨 놓았던 것이다.
딸애는 아직도 한국에서 살았었을 때 추억을
되새긴다. 특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할 때는 너무도 선명한
표현을 해서 여자의 속마음을 울리게 한다.
? 엄마! 엄마가 나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나서 일 나갔었잖아요..참, 엄마는 그때도 좀 웃겼어.호호.. 다른
애들은 모두 셔틀버스 타고 유치원 가는데, 나만 엄마 차 타고
늦게 가서 교실에 들어갔었잖아..도시락도
유치원 앞 분식점에서 김밥 종종 사주고...엄마! 그렇게 피곤했어요?
나를 셔틀버스에
데려다주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려고서리..
ㅎㅎ 그런데,
그때 교실에 늦게
들어가면 얼마나 창피했던 줄 모르지요? 유치원
마치고 셔틀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가 오셔서 늘
기다리고 계셨지요.
'은지야 서랍에 엄마가 용돈 넣어두었으니 가지고 나가 맛있는 것 사먹어라' 매일매일 똑같은 얘기였던 것 같애..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할아버지는 내가 당연히 서랍을 열고 용돈을 찾는 그런 기회를 주고 싶지 않으셨나봐..할아버지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았어. '할아버지 저도 알아요' 라고 대답하면, '그래? 우리 은지 많이 컸네. 허허! 은지야 빨리 다녀와. 그리고 할아버지랑 장기 두자. 조금 있으면 웅진아이큐 선생님이 오실거야. 그전에 한 판 두자.' 라고 하셨어"
아!아버지...여자는
어느새 눈물이 나고 있었다.
여자는 침대에 엎드린다. 모든 일들이 바로 어제 같은데,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 이젠 이 세상에서 만날수가 없네.. 생각을 접고 잠자리에 든다.
며칠이 지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여행 열흘 내내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던 여자는 어제 저녁 늦게 여행 동반자들이 이탈리아로 떠난 후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느즈막이 일어나 식사를 마친 후 공항 택시를 불러 조금 일찍 공항을 향했다. 택시 기사에게 부탁하여 중간에 두번 쉬어가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드리아... 올해는 너를 자주 보았구나.. 또 보자...
택시가 다시 달려 올리브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논 공항 입구로 들어선다. 여자는 올리브나무를 보면 항상 남국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금년여름에는 특히 유럽 여행을 제일 처음 하면서 보았던 올리브가 종종 상기되었다.
올리브! 야자수! 태양! 그리고 바다! 모두가 남국의 정취라니....
출국장으로 천천히 올라가는데,
여자의 긴 그림자가 그녀를 배웅하듯 같이 간다.
비엔나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아나운서가 모든 전기, 전자기구를 끄라는 안내방송을 한다.몇 분 후면 이륙할 것이다. 휴대폰을 끄려고 하다가 들어 온 문자가 있음을 알게된다.
'Mom! 지금 어디? 은지' 짧디짧은 문자에 웃음이 돈다.
'하이! 10분후면 이륙함. 오후 4시반 도착. mom' 여자도 짧은 메세지를 보낸다.
'아! 선약이 있어 마중 못 나가겠음.'
'안 나와도 됨.' 여자는 휴대폰을 끈다.
옆자리의 남녀가 한숨을 쉬면서, "오! 태양의 나라를 떠나는구나..." 서로 손을 잡고 아쉬워한다.
맞아! 이제 우리는 회색 구름이 도는 비엔나로 가는 게야. 안녕! 내년에 보자..아니 또 오려나?
창밖을 내다 보다 속으로 얘기를 한다.
전에는 언제라도 또 올 거야 했던 생각이 근래에 들어서는, 또 오려나? 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이 탓일까...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인다. 회전하면서 사뭇 주위의 경치를 보여주려는 듯 느껴진다.
드디어 이륙.
아드리아해가 점점 멀어져 간다.
-9.-
비행기간은 불과 1시간 15분 정도이다.
거기에 비해 지난 며칠간을 육로로 곳곳을 지나 온것을 생각하니 대단한 KM 거리와 시간의 소요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득은 어떠한 것과도 비교가 안된다. 한국에서 전시될 고미술품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만났던 감격...현지의 담당자가 일일히 설명하며 얼마나 귀중한 것을 강조하였던가. 이제 내 임무는 마친 것이다. 두 쪽 다 만족해하며 모두 성사되었다. 임무 마친 후의 귀가행은 언제나 기분이 상쾌하다.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찾아와 봐야겠다. 겨울에 한번 와 볼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비행기 안을 둘러본다. 지난번 한창 더울때 보다 시월중순이 지난 두브로브니크는 하이시즌을 지나 한가하지만 비엔나행 비행기에는 중국계 여행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그들의 곳곳에서 왁자한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비엔나 오던 때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동양계 승객이 별로 없던 시대였다.
1989년 5월..
한달쯤 머무를 생각으로 간단히 여행가방을 준비하고 딸애에게도 장난감과 독서할 책을 넣어둔 자그마한 가방을 메어주었다. 김포공항에 나오기 전에 친정아버지에게 '한달 후에 올게요' 라고 안부 전화만 잠깐 했다.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다음 날 돌아 오는 양 발걸음도 가볍게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대한항공 점보 여객기가 알래스카에 머물 때, 승객들은 북극곰 스템프를 받으려고 혼잡을 이루었다.
( 참조: 당시는 소련항공을 한국비행기가 날 수 없어 알래스카를 경유 했었음) 스위스 츄리히에 착륙하기 전에 항공에서 보이는 빨간지붕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서야 유럽에 왔구나...기분이 들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에 무료한 시간을 메꾸듯이 면세구역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딸애는 졸린 듯 반 눈을 감고서도 열심히 여자를 따라다녔다. 그때부터 이미 여자와 딸의 운명은 지남철과 자석처럼 떨어지지 않는 사이가 되었었다.
츄리히로부터 비엔나로 오는 비행기는 경비행기였다. 오스트리아 승무원의 옷들이 몽땅 빨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딸애에게 자그마한 색연필세트와 스케치북을 선물로 주었다. 딸애는 모든 게 신기한 듯 방긋거리며 비행내내 그림을 그렸다.
비엔나 공항은 생각보다 자그마했다. 남편의 지인이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폭스바겐차에 몸을 싣고 시내로 향하면서 여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주아주 먼 곳에 와 버렸구나!' 생각이 들었다. 딸애는 23시간에 걸친 비행시간에 지쳐 잠이 들었었다. 고속도로는 주위가 농촌처럼 조용하고 목가적이었다. 5월의 하늘은 한국 가을 이상으로 맑고도 맑았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니 가로수가 쭉 늘어선 가도가 어디서도 실제 보지 못 했던 정경이었으나 프랑스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연상시켰다.
아! 이 도시가 나를 흡연하는구나...정신 차려야지..
예감인냥 그냥 이곳에 머무를지도 모른다고 언뜻 생각이 드는 것을 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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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후배~~~~~~
슈벨트의 방랑자음악에 그린 그림을 보며 겹겹이 포개진 산세와 수목에선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했어요.
제컴에 음악이 곁들여 나오면 좋으련만...
게으름이 나의 정서생활의 걸림돌이 되네요.
어젠 아침나절 구름낀하늘이 걷히며 전형적인 가을날씨가 집구석에만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아서
딸과 둘이 장수천변 소래길을 걸었어요.
쾌적한 가을날씨가 걷는 발걸음도 가볍게하고 머리도 맑게 해주더라구요.
소금밭에 절로 자란 가을빛 갈대가 물결치고 이름모를 빨간 갯벌해초가 조화를 이루는 장관을 볼수있었어요.
그리고 길섶엔 아직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는해당화와 그 빨간 열매가 어찌나 곱던지....
모처럼 제대루 가을을 음미 할 수 있었지요.
마지막엔 소래포구 둘러 젖갈도 사고 홍합도사고..
집에와선 좀 늦은저녁으로 홍합탕 끓여 먹었는데 얼마나 시원한 맛인지 코빅고 먹었답니다.
사진에 보니 그곳 비엔나도 가을이 무르익은것 같네요.
선홍색 단풍잎과 주변들을 보니까요...
여행후 낭만적인 휴식을 취하는 옥인후배의 여유가 부러워지네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비엔나의 생활이 시작되겠네요.
우리와 사뭇 다른인생이 펼쳐지리라 예감하면서 다음글 기대합니다.
"젖갈"이란 단어에 혓끝의 감각이 벌써 그곳 으로 달려갑니다.
인천~! 제1의고향~
그리고 비엔나~! 제 2의 고향이 되었어요.
여기에서 시작한 인생의 30대~ 40대~ 50대.. 어언 60대 문턱까지...
살아 있음에 추억도 할수 있는 것이겠지요.
실제얘기의 등장인물과 일어났던 사실의 가지를 치어내려니
얘기의 연결이 어려워 지네요... 잠시 중단하고 심호흡을 해 봅니다.
어제는 살짝 첫눈이 잠자는 사이에 내렸어요.
가을이 지나기도 전에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선배님께서 놓아 주시는 글.... 제게 큰 힘이 되어요.
소설의 한 페이지 속을 거닐고 있는 듯.....
혼자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은 상념이
무질서 하게 오락가락 하지요.
옥인씨
지금 크로아티아에 계신 거군요.
작년 10월의 하순에 그곳에 있었던 기억들이.
트로기어. 스플릿, 드보르닉.....
돌로 다듬어진 오래 된 골목길과 집들......
(계속)
뭔가 흥미로운 일들이 있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