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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고개를 든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보던 것을 중단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웁다. 호텔 바에는 여자 말고는 종업원 밖에 없다. 창밖을 보니 영원히 내릴 듯 비가 내린다. 호텔 앞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의 강도가  나타난다. 빗물에 불빛이 간혹 반짝 부서지는 것 같다.

 

일어선다.

문가로 가니 문이 스르르 자동으로 열린다. 마치 여자가 밖으로 나오기를 바랬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도 저쪽 해변에 정박한 배들이 보인다. 몇 달 전에 왔었을 때의 여름 열기가 떠오른다.  2012년 6월 어느 날 Biograd...늦은 저녁 10시에도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던 뜨거움...한국에서 온 또 하나의 여자와 같이 어항 속 물고기들마냥 느릿느릿 해변을 거닐었었다.

 

지금.  2012년 10월 14일 0시. 같은 곳이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옆의 호텔로부터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아! 토요일 밤이지. 아니, 일요일 새벽이라고 해야하나...결혼 파티쯤 되나.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접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종업원이 재빨리 그녀가 마셨던 찻잔을 옮기고 있다. 그동안 여자가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한 듯하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방 앞에 서니 복도가 너무 조용하다. 이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여자뿐인 것 같다. 방으로 들어와 우선 소파에 걸쳐두었던 옷가지를 침대로 던지 듯 놓고는 그 자리에 앉는다.


이제부터 무얼 하지?

 

내일 일정을 점검한다. 오전 Trogir, 오후 스플릿... 수도원 미사 참예.. 신자가 아니라서 미사드린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참예라는 단어를 창조해낸 것이 스스로 우습다. 어제 들렸던 자다르의 화보를 건성건성 들쳐본다. 올해에는 더 이상 이곳에 안 올 것이다. 수도원  나이들은 수사와 헤어지며 '내년에 봐요!' 했었다.


갑자기 내년이 아주 멀게 느껴진다. 아마도 집을 떠나 지내면서 하루하루가 느리가는 듯한 감각이기 때문이리라. 이제 닷새가 지났는데, 한 열흘이 된 듯하다. 매일마다 다른 곳으로 달린다. 차창 밖으로 풍경을 보며 여자는 지난번, 그 지난번,그리고 또 그그... 전에 왔을 때를 그려보았다.

 

도심 속에서 느끼던 계절 감각과는 다른 섬뜻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에서는 확실한 계절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한여름의 태양 아래 작열하던 바위산이 짙은 물안개 속에 몸퉁이를 반을 가리고  깊은 생각에 빠진 중년 남자 같다. 녹색의 반사로 찬란한 비췻빛을 나타내던 물빛은 권태 속 중년 여인마냥  감동이 적게 푸르딩딩하다.

 

사진기를 들여다 본다. 사진 속 여자는 시종 웃고 있다. 딸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 똑같은 표정 짓지 말아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감이 잡히다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