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의 이방인 전혜린, 독일에서 재조명
2013.08.02

지난 7월16일 독일 뮌헨 슈바빙 일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모임 ‘Seerosenkreis’ 는 ‘슈바빙, 청춘이 황금빛 맥주로 넘치는 곳 : 한국 여성작가 전혜린의 뮌헨에 관 한 에세이들’ 제하로 뮌헨 시립문화회관에서 문학낭송회와 음악회를 가졌다. 이 예 술가 모임은 1940년대 슈바빙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정기모임을 갖던 레스토랑 Seerose에서 시작됐으며 전혜린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는 장소다. 1950년대 뮌헨과 관련하여 쓴 그녀의 산문을 독일 배우가 낭송하고 이에 맞춰 피아노 반주를 곁들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7월16일 뮌헨 슈바빙의 예술가 모임 ‘Seerosenkreis’은 한국 작가 전혜린을 주제로 문학낭송회와 음악회를 가졌다. 사진은 모임 포스터.

▲지난 7월16일 뮌헨 슈바빙의 예술가 모임 ‘Seerosenkreis’은 한국 작가 전혜린을 주제로 문학낭송회와 음악회를 가졌다. 사진은 모임 포스터.

전혜린(田惠麟, Chon Hye-Rin)은 지난 1965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국의 여성작가다. 몇권의 수필과 번역서를 남겼지만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1년 평안남도 순천의 상류가정에서 태어나 한국의 최고명문 경기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젋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됐다. 가부장적인 유교전통이 강했던 1950년대 한국에선 보기 드문 커리어우먼이었다.

출세욕이 강했던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판사나 검사가 돼 명예와 권력을 얻기를 원했다. 문학은 그녀를 끌어들여 세속적인 가치와 다른 길을 걷게 했다. 그녀는 1955년 독일 뮌헨대학(University of M?nchen, Ludwig-Maximilians-Universit?t M?nchen)으로 유학을 떠난다. 법학 공부는 접고 독일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머문 곳은 독일 남부 뮌헨의 슈바빙(Schwabing). 화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클레(Paul Klee)가 살았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시를 쓰던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거리였다.

독일 일간지 「S?ddeutsche Zeitung(SZ)」은 7월11일자 ‘자유로운 영혼(Freiheit des Geistes)’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그녀에 대해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뮌헨 대학에서 작가를 꿈꾸며 공부했던 유일한 한국인 여학생. 독일에서의 경험과 삶을 통해 완전히 변해버린 한국 여인. 혹은 여전히 몇 권의 저서만이 읽혀지는 무명작가”라고 소개하며 ‘슈바빙을 사랑한 21살 한국 여학생’에게 슈바빙은 ‘뮌헨의 몽마르트. 청춘과 보헴과 천재에의 꿈을 일상사로서 생활하고 있는 곳. 위보다는 두뇌가, 환상이 우선하는 곳. 하여간 슈바빙은 이 무서운 날카로움으로 발전해 가는 기계 문명 속에 아직도 한 군데 남아 있는 낭만과 꿈과 자유의 여지가 있는 지대’로 비쳐졌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이어 그녀가 독일에서 다시 조명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뮌헨의 저널리스트 유스티나 슈라이버(Justina Schreiber) 씨는 한국인 작가 이미륵에 대한 연구 도중 우연히 전혜린을 알게 된다. 수필가 전혜린은 1946년 독일어로 쓰여 진 이미륵(李彌勒, Mirok Li)의 베스트셀러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를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슈라이버는 이 무명의 한국 작가에 심취하게 어 2010년 그녀에 관한 라디오 방송을 기획하게 된다. "방송을 위해 나는 몇 개의 에세이를 번역의뢰 하였는데 그녀의 글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 작품들을 내 컴퓨터에만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이 후 슈라이버는 소위 독일유학 붐을 일으킨 이 무명작가의 글을 공개할 방법을 찾는다. 독일어로 번역된 그녀의 글들은 진실 되고 생동적인 그녀만의 언어를 통해 매우 독창적 문체를 갖는다고 덧붙인다.

'자유로운 영혼‘제하로 전혜린을 조명한 독일 일간지 SZ의 7월11일자 기사.

▲'자유로운 영혼‘제하로 전혜린을 조명한 독일 일간지 SZ의 7월11일자 기사.

이 신문은 그가 “사르트르(Jean Paul Charles Aymard Sartre),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를 읽으며 스스로 실존주의자라 여겼고 끊임없이 타자가 정한 규율에 서 벗어나고자 했다“며 ”이러한 그녀의 삶의 방식에 196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과 여성들은 열광했고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은 전혜린의 흔적을 찾아 슈바빙으로 여행 한다“고 밝혔다.

위택환·이승아 코리아넷 기자
whan23@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