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을 견뎌낸 홍도평 벌판에 가을이 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려놓은 작품처럼 하늘은 아름답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

유난히 사납던 여름이 꼬리를 내리고 저만치 쫒겨나고 있었다. 

그 자리에 벼와 수수가 여물고 김장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기전 저 벌판에서

봄이면 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물고기를 잡고

가을이면 새몰이를 하고

겨울이면 눈 내리는 둑길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내가 자랐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환갑이 된 나이에

딸 사위와 손주와 저곳에 갔다.

나도 손주들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 아버지 품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에는보이지 않던 북한산이 멀리 보였다.

 

북한산은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같은 모습이었다.

 

늙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던 산이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보이지 않던 생의 윤회가 보이고

보이지 않던 사랑이 보이고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가물거리며 간 유년처럼

내 노년이 가고 있다.

 

홍두평.jpg

(김포평야에서 본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