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즈음에 / 김옥인


성령강림절인 오순절휴일을 맞아 근교 전원에서 지냈다.


오순절을 독일어로 핑스턴( Pfingsten)이라고 하는데,

이 즈음 피어나는 모란과 작약 ( 약간 늦게) 꽃을 핑스트장미( Pfingstrose)라고 부른다.


우리 전원에도 한창 꽃몽오리들이 맺히며 피어나고 있다.


이쪽 사람들은 꽃이름을 지을 때 모두들 시인같다.

어찌 계절과 상황과 적절히 맞게 지으는지 신기하다.


중국으로 부터 전해오는 꽃중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모란의 이미지가 

이 곳에서는 종교축일과 어울려서 '오순절장미'라고 불려지니 이미지가 전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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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곳에 오게되면 ?지대가 높아 인터넷 연결이 수월치 않아 거히 손전화를 놓고 지내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불편하더니 세월이 갈수록 자연에 몰두할 수 있어서 오히려 시가지를 떠난 한적함에 여유로와 진다.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눈뜨자 마자 손전화를 열어보니 고국의 친구가 피천득님의 '오월'이라는 수필을 보내온 것이 반갑게 아침인사를 한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스물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글귀를

모래 위에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것이다

머문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의 '5'전문 >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전원으로  나가 윗글을 음미하며 산책을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오월을 보내며 영상으로 전원의 모습을 담아 본다.
먼저 한국정원이라고 이름지어 가꾸는 곳으로 간다.
초봄에 계단모서리에 심은 데이지가  청초히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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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서도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면서 향수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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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전원 곳곳을 살피니  피천득님이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라고 했듯이 
이즈음에 피어나는 여러색갈이 오월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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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에게 언뜻 닥아온 글귀는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이다.


11년전 심은 오빠나무의 바늘잎이 연한 녹색으로 보드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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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솔방울이 달렸다. 즉 이제 이 나무도 성년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나보다 작고 여리여리 하던 나무가 이제는 하늘을 솟을 듯이 늠늠히 자라나서 나를 푸근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세월은 그냥 지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세월동안 오빠나무를 통해 나의 속마음을 풀어 내고 있었구나.
앞으로 나보다도 더 오래 오래 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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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나무_MG_3499.jpg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것이다

머문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2015년 5월을 보내며 

나의 사랑 부클리게벨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