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1969-1970 우리가 고등학교 2 학년과 3학년때였지, 우리가 정처없이 헤메이며 우정의 숨결을 깊이 깊이 나누어 쉬던때가?

어제 한 시간여 못치는 타이핑을 치며 (응, 챙피한 일인데 미국에서 한타를 칠 일이 없었어.) 김영주 네게 우편을 보내던 중 무엇인가를 잘못 눌렀는지 쓰던 것을 다 잃어버리고 기운이 쏙 빠졌었단다.

영주야ㅡ 너 혹시 선수와 연락이 되니? 7월에 이사를 가기전에는 선수와 연락을 조금 했는 데 이사중에 그 애의 연락처를 몽땅 잃어 버렸어. 선수의 작은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기로 했고 또 우리 작은 아들은 한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나누었는데 이제 선수아들에게 전화라도 해 주려니 연락할 길이 막막하구나. 우리 작은 아이는 서울 어느 영어시사학원에서 1년 계약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그 곳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어와 한국의 옛 서민음악을 공부하고 싶어해.

나는 평균 일 이년에 한 번 이사를 다니는 편이야. 우리 남편교회는 목사관이 없어서 내 교회의 목사관에서 살았는데 내가 이리 저리 조그만 교회로 파송을 받느라고 자주 이사를 다녔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러느라고 생활이 조금 복잡해.

이제 이 우편을 잃어 버리기 전에 우선 보내야겠다.
짬이 나는 데로 한 몇자 적어 줄래? 옛날 함께 떠돌던 시절이 자꾸만 떠 오르는 것은 이 곳이 외로운 탓일까 아니면 우리가 늙어 간다는 것일까?

덴버 콜로라도에서 옛 친구 고 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