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이 사과 좀 먹어 봐, 달고 단단해”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을 내리자 곧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고객님 전화는 저희들에게 다시없이 중요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녹음 음성을 들으니 ‘아 정말 한국을 가는구나!’ 하며 마음이 들떠왔다

친절한 여직원이 가고 싶은 날짜와 시간을 묻더니 내 목소리가 젊은사람 같지 않았는지뭔지 “ 참 노인분들께는 할인이 있는데요”

아니 내가 노인인 것을 어떻게 알았지? 좀 언짢다 싶었는데 곧이어 “60이 넘으셨어요? 그러면 20% 할인입니다” 하는 바람에 태도를 돌변하여 “예” 똑똑한 소리로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후 지난번 인일홈페이지를 통해 몇십년 만에 만난 영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 한국간다, 만나자’



창밖을 보자 무르익은 여름 숲과 시작되는 초가을의 여린 단풍이 어우러진 사이로 영규의 모습이 아련한 기억 속에 웃음 짓고 있었다

이마가 이쁜아이,

어느 것에도 당당한 아이,

주장이 분명한 아이,

남이 괴로울 때 같이 울어주던 아이



어느 해 그러니까 우리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던가?

장마가 시작되는 7월 중순께 우리는 집을 나섰다

여름방학 임상실습을 울릉도 자매병원에서 해야 한다는 해괴한 각본을 짜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우리들. 무전여행을  떠났다

배낭, 모자, 청바지차림으로 포항으로 내려가는 삼등열차에 몸을 실었다

연일 비가 내려 울릉도에 가는 배가 뜨지 않았으나 우리는 아무 걱정도 없이 짝지어 새로운 도시 포항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틀 후에 우리는 울릉도 가는 청룡호를 탔다

밀렸던 손님을 가득 태운 배는 그 몸도 가볍게 움직이며 동해바다를 향해 파도를 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난간에 앉아 쉬지않고 노래를 불렀다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밤도 낮도 없이 치기가 어린 말들이 공중에 튀어 물방울 속에 부서져갔다

이 젊은 날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우리의 착각을 부추기라도 하듯 바닷바람은 우리를 감싸 안으며 인생의 초록비 같은 이 한 때를 같이 즐기고 있었다



영규에게서 이 메일 답장이 왔다

‘응, 빨리 와 명순, 현경, 헤순이랑 같이 안면도에 가기로 했어, 곧 보자’

잊고 있었던, 가끔씩은 얼굴을 떠 올리며 얘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문득 생각나던 아이들, 그 이름들을 입속에 뇌어버자 그 여름날의 파도가 내 속에서 다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우리 넷이 동암역에서 만나 영규의 학교로 갔다



재회-.

40년 만의 만남.

영규가 교문을 향해 뛰어왔다

‘아 맞아, 저게 영규야’ 어지러울 정도로 흘러간 시간들이 그 얼굴에 포개져 갔다

영규와 나는 지구의 양끝에서 서로 다른 자기의 삶을 살았다

나는 나의 일, 나의 아이들, 나, 나, 나,로 인해 옆도 돌아 볼 새 없이 지친 삶을 살았다

영규도 또한 누구라도 당해내기 힘든 어려움을 겪으며 반 평생을 지냈다

인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인생의 반 이상을 돌아 와 만남 우리들, 사십년이 흘렀음에도 말하지 않아도, 그저, 마주만 보고 있어도 상대방을 그냥 다 아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든 어려움으로 정교하게 깎여진 영규가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앉아 있었다

휴게실에 잠깐 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았다

영규가 봉지에서 스넥을 꺼내어 놓으며 “ 애들아, 사과 좀 먹어봐 아주 달고 단단해”



우리는 이제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까지의 삶이 이 세상의 무엇이라도 포용할 것 같은 영규를 만들어 냈듯이 앞으로 펼쳐 질 그의 인생도 더욱 더 달고 단단한 영규를 창조해 낼 것이라는 것.

그래서 이 지구를 온통 품안에 안아도 부드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아이가 될 것 같은 흐믓한 예감!.



한여름을 몸에 담은 사과를 한 입 깨물었다


향기가 몸 안에 퍼져간다

‘영규야, 더욱 더 단단해지고,  sweet해져 응?’



가을의 햇볕이 우리의 사이를  끼어들며 만남의 축제에 건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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