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먹지, 이게 웬 사서 고생이람?" 결론은 그랬지만

그래도 한번은 고사리 좀 꼭 따보고 싶었어요. 마음껏!

이상하게 미국와서 그리오래 살았는데 그 흔한 고사리 밭을

한번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글쎄 사람들이 고사리 밭에 지들만 가고

나는 안 데리고 가 주더라고요. 섭섭하게 시리.

그런데 올해 드디어 그 한을 풀었네요. ㅎㅎㅎ

 

거의 삼십년도 더 넘었나? 이민 초기에 우리 엄마랑 인디아나 둔즈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눈에 뜬 고사리를 정신없이 뜯다가 경찰에 걸렸던 일이 있었어요.

챙피하게스리 경찰은 우리에게 꺽은 고사리를 다시 심어 놓으라고 호통을 쳤고...

살이 통통히 찐 그 많은 고사리를 다 뺴앗긴 것이 얼마나 억울 무쌍했는지 몰라요.

다행히 아무 전과가 없고 처음이라고 해서 무사방면 되기는 했지만

그 뒤로 고사리는 보기도 싫고 따러 간다는 것은 생각도 안해 본 일이었어요.

 

그게 내셔날 파크안에서 땄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이지

보통 야산에서 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리고 이곳 아리조나에도 고사리가 흔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 고사리를 꼭 한번 따러 가고 싶어졌어요.

 

근데 7 년이 다 지나도록 아무도 나를 안 데리고 갔다니까요.

고사리 밭이 너무 많이 알려질까 다들 조심하는 모양이고

나는 한국 아줌마 악착정신이 부족해 보여서 낙제를 했는지, 인심을 못 얻었는지..

또 철마다 여행을 떠나버려 철을 놓치고 말았던간 아무튼 섭섭했던 제목이었죠.

고사리 제철인 지난 석주간에 여행을 다녀와서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은

다들 고사리를 따러 갔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어떤 권사님 말은 대번에 "벌써 다 끝났지, 너무 늦었어." 하더라구요.

 

올해도 또 한을 못 풀고 지나가는가 했어요.

그런데 엊그제 드디어 고사리 밭을 따라 가 볼 기회가 생겼어요.

그날 무슨 용꿈을 꾸고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아침에 사모님에게서 연락이 온 거예요.

"오늘 고사리 따러 가는데 같이 갈래?" 하고.

여행 후 할 일도 너무 많고 몸도 고달팠지만 무조건 오케이 하고 신이나서 점심을 쌌지요.

 

천기 누설일까만 비밀한 그곳은 우리 동네에서 두시간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있었습니다.

17 번 하이웨이에서 260 번 길 동쪽으로 나가 한참을 시골길로 올라가서  87 번을 타고 더 가다가

비포장 도로로 털털대며 산으로 올라가면 양 옆으로 고사리가 가득한 산이 나오더라구요.

글쎄, 아직도 고사리가 무궁무진 하더라고요!

피닉스에서는 볼수 없는 키 큰 나무들 밑으로 작년 고사리들 시체 속에

초록색 짙게 빛나는 연한 고사리들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어요. 눈이 번쩍 띄였습니다.

자세히 보면 머리 숙인 얼굴을 부끄러워하며 가만히 올라 오는 놈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기온도 피닉스보다 2-30도쯤 더 시원하기도 하고

나무 그늘이 햇볕을 가려 주니 고사리 따기에 아주좋았어요. 

 

나무그늘에서 점심을 나누어 먹는 재미는 보통이 아니고요.

위의 점심 외에 잡곡밥과 김치, 각종 나물들이 더 있었어요.

두 차로 나눈 총 열명이 배부르게 먹고 부지런히 따기 시작했는데..

두어시간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하며 허리굽혀 고사리를 따는 일이 보통 고되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나를 위해 아직도 남아 있는 고사리 순들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열심히 손을 놀렸지요.

 

고사리는 이렇게 아무리 따주어도 또 솓아나는 것이고 오히려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 한국 아줌마들의 극성이 고사리 멸종을 가져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너무 힘들면 안된다고 하면서 두시간만에 그만 따고 내려 가자고 하더라구요.

우리 부부 수확은 네 봉다리!

 

그런데 집에 와서 그 고사리 뒷처리가 또한 굉장히 힘든 일이었어요.

대강 다듬어 아이스 박스에 넣고 뜨거운 물을 끓어서 붓고 뚜껑을 닫아 30분을 기다린 다음

펼쳐 널어 말려야 하는 것인데 그 작업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밤 열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니까요.

다음날은 아스피린을 먹고 끙끙 앓았답니다.

 

아침에 바깥에 나가보니 밤새 꼬짱꼬장 싹 말라 버렸어요.

그래도 하루 해볕을 더 쪼였는데 아리조나의 뜨거운 볕이 고사리에 최고로 좋겠더라구요.

말리지 않고 얼린 것도 너댓봉지, 그러니 당분간 아주 근사한 반찬 거리가 많이 생겨서 신이 납니다.

어제는 손님이 오셔서 첫 요리를 해서 드렸더니 아주 맛나게 드셨어요.

 

고모가 제발 팔라고 하지만 이거 너무 힘들게 한 것인데

선물이나 주면 모를까 돈으로 바꾸기는 허망할 것 같네요.

어떤 이는 직장 잃고 힘들때 고사리를 따다 팔아서 렌트도 몇달 해결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극성스럽게 많이 해서 선교비로 몇천불씩 헌금을 했다는 고사리...

상당히 고급스런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영양도 좋아서 아주 인기가 많다고 해요.

글쎄 또 가고 싶냐고요? 아마도 일년에 한번씩은 꼭 가고 싶을 것 같아요!(2011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