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고향인천은 너무 방대해져서 구시가와 발전한 신시가지와의
큰 차이점으로 인해 어쩌다가 찾아가는 인천이 낯선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육이오 사변이 지나고 내살던 용동으로 다시 돌아왔을때
그렇게나 반가웠던 내 고향 인천!
모든것이 어렵고 가난했던 그 시절 답동에 있던 박문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경동 사거리를 지나 답동에 있던 답동성당과 학교를 다녔는데
큰 행길을 지나 한참걸어서 애관극장을 지날때는 무슨 간판이 걸렸나
그것이 큰 관심거리였었다. 극장간판에 여성극극단프로가 걸려있기나 하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떻게하면 볼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곤했었다.
지금도 잊지않고 있는 이름 조 금앵. 김 진진.등등..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찾아간 그거리.
넓었던 행길은 어디로갔나.
지각안할려고 한참 달려갔던 학교길은 몇걸음 안가니 그 곳에 있었다.
내가 소인국에 살았었나.
아하! 나는 거의 반세기동안 유년의 인천을 꿈에서나 만나지 않았던가.
꿈은 꿈으로 아름답고 그리운것이라 소중한것을.

지금도 화려하고 번화한 신시가지보다 유년의 단발머리 어린시절 그거리가
그대로 정답다.
유년의 고향 인천 용동 경동사거리 답동 그거리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