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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키 


아직 생각지도 않는

내 첫 시집에 넣겠다고


아내가 밤 밝혀 그린 내 크로키



지나치게 섬세하고 절제되지 못한 선들이

책으로 박아 내놓기엔 부끄러워

그 시에 그 그림이로군

하고 웃어버렸지만



내 꿈의 작은 시루에 매일 붓는

아내의 새벽 물소리가

그러리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내 시를 나무라는

고언의 선율같기도 하고

 

 

김 정웅...............첫시집< 배우일지>에서

 

첫시집에서 산이할아버지는 너무 앳된 얼굴이다.

그 사진을 보고 대충 크로키 몇점 어설프게 그렸던 그 시절 이야기 ....

 

시보다 먼저 사랑하던 연극.......시집 말머리에도 써있다

...나의 청소년기를 일관해서 열병처럼 휩쓸었던 것은 연극에 대한 집념이었다.

그러나 그 오랜 집념을 포기하고 좌절과 허탈감에 젖어 어느 시골 여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때, 전혀 밑진 기분 없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방법적

삶으로 나에게 시 쓰기를 권유하고 이끌어 주신 분이 미당 스승이었다.

이 보잘것 없는 시집이 지닌 작은 기쁨이 하나 있을 수 있다면 이제 그것을

나는 스승께 드리고자 한다...............

...

오래만에 시집 서두에 머리글을 읽으면서  꽃다웠던 나이때의

내 모습도 어렴프시 떠오르고

첫 시집을 내면서 불면증에 걸려 거의 탈진했던 삼십대초반의

산이 할아버지가 떠올려진다. 

도리켜보니 고생이라고 여겨졌던 그때 그 시절이 우리 삶에서 가장 황금기 였었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이 어리석음을 탓해 무었하리요.

  

시집 말미에

황 동규 시인이 이 첫시집에 부쳐 쓴글도 오랜만에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의 시는 동시대 시인들의 걸어 갈 길 가운데 중요한 하나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생활의 단편들 속에 용해시키는일, 용해시킴으로 해서

더욱 더 드러내 보이는 일, 그것은 참으로 벅찬 일일지도 모르지만 당연히 시도되어

야 할 일인 것이다. 그 일의 한 걸음을 김정웅이 내딛고 있다.

그 걸음속에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여린 마음의 인간 김 정웅이 들어 있다.

따뜻하고 여림이 치열함과 동행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두번째 시집.....<천로역정, 혹은>으로 김 수영 문학상을 받고....

긴 방황끝에 16년만에 세번째 시집..<마른 작설잎 기지개 켜듯이>를 펴냈다.

올 겨우내 시름 시름  겨울 나기를 힘들어 해서 걱정이지만

다시 봄을 맞아 털고 일어나 청탁 받은 시 열편도 써 보았으면 좋겠고

여행길에 나서기도 하면 좋으련만.................

어서 어서 따뜻한 햇살이 산이 할아버지 서재에 가득 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