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크로키 김 정웅...............첫시집< 배우일지>에서 첫시집에서 산이할아버지는 너무 앳된 얼굴이다. 그 사진을 보고 대충 크로키 몇점 어설프게 그렸던 그 시절 이야기 .... 시보다 먼저 사랑하던 연극.......시집 말머리에도 써있다 ...나의 청소년기를 일관해서 열병처럼 휩쓸었던 것은 연극에 대한 집념이었다. 그러나 그 오랜 집념을 포기하고 좌절과 허탈감에 젖어 어느 시골 여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때, 전혀 밑진 기분 없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방법적 삶으로 나에게 시 쓰기를 권유하고 이끌어 주신 분이 미당 스승이었다. 이 보잘것 없는 시집이 지닌 작은 기쁨이 하나 있을 수 있다면 이제 그것을 나는 스승께 드리고자 한다............... ... 오래만에 시집 서두에 머리글을 읽으면서 꽃다웠던 나이때의 내 모습도 어렴프시 떠오르고 첫 시집을 내면서 불면증에 걸려 거의 탈진했던 삼십대초반의 산이 할아버지가 떠올려진다. 도리켜보니 고생이라고 여겨졌던 그때 그 시절이 우리 삶에서 가장 황금기 였었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이 어리석음을 탓해 무었하리요. 시집 말미에 황 동규 시인이 이 첫시집에 부쳐 쓴글도 오랜만에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의 시는 동시대 시인들의 걸어 갈 길 가운데 중요한 하나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생활의 단편들 속에 용해시키는일, 용해시킴으로 해서 더욱 더 드러내 보이는 일, 그것은 참으로 벅찬 일일지도 모르지만 당연히 시도되어 야 할 일인 것이다. 그 일의 한 걸음을 김정웅이 내딛고 있다. 그 걸음속에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여린 마음의 인간 김 정웅이 들어 있다. 따뜻하고 여림이 치열함과 동행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두번째 시집.....<천로역정, 혹은>으로 김 수영 문학상을 받고.... 긴 방황끝에 16년만에 세번째 시집..<마른 작설잎 기지개 켜듯이>를 펴냈다. 올 겨우내 시름 시름 겨울 나기를 힘들어 해서 걱정이지만 다시 봄을 맞아 털고 일어나 청탁 받은 시 열편도 써 보았으면 좋겠고 여행길에 나서기도 하면 좋으련만................. 어서 어서 따뜻한 햇살이 산이 할아버지 서재에 가득 하기를 바래본다.
아직 생각지도 않는
내 첫 시집에 넣겠다고
아내가 밤 밝혀 그린 내 크로키
지나치게 섬세하고 절제되지 못한 선들이
책으로 박아 내놓기엔 부끄러워
그 시에 그 그림이로군
하고 웃어버렸지만
내 꿈의 작은 시루에 매일 붓는
아내의 새벽 물소리가
그러리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내 시를 나무라는
고언의 선율같기도 하고
강둑을 걸으며
함박눈 내리는 강둑을
마음보다 더 독하게
천천히 걷는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쓸쓸한 일은
순은의 깃을 달고
저 하늘에 그득히 내려오는
그대의 눈부신 글발들이
기쁨보다는 슬픔 곁으로
자꾸만 자꾸만 쌓이는 일
그것도 시로 쓰는 일은
더 쓸쓸한 일
시로도 쓰지 못하는 것은
무엇으로 적어야 하나.
겨울 강
어딘가 스미지 못하고 흐르는
슬픔들 저리도 질펀히
발 뻗고 흐르는구나
멀리 멀리 도망쳐 흘러가도
둑에 막혀 흐르는 강물이여
오늘 내가 너와 같이
걷고 또 걷는다.
?? 은희야~
'강 둑을 거니며'~이 시는 너의 작품이니?
'내 꿈의 작은 시루에...매일 붓는 아내의 새벽 물소리....'~~~
산이 할아버지가 쓰신 한구절~ 한구절의 詩상이 너무 좋구나!!!
예술인의 옆에서 매사에 마음쓰며 보듬어줘야하는 아내의 따사로움~~~
그 포근함을 진정 느끼며 네 어깨를 감싸주시는 네 낭군님의 정성도 떠올려본다~~~
멋진 부부의 모습이로고!!!........
희순아~
오늘 꽃샘추위로 정신이 번쩍 드네............
그제 우리 수녀시누님 삼일절 휴일로 오빠 도 뵐겸 내려왔는데
동생이 오니 귀찮고 힘들어도 마중나가 데려오는 차속에서 그랬다 하더라.
"몸이 너무 아프니 이제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난 마누라라도 남편이 일생을 건강치 못하고 아픈적이 더 많아서
그냥 그게 정상적인 일 처럼 알고 지냈으니.............그러려니 하고 말이지..........
아픈 사람 본인 만이 그 아픔을 알고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팠으면 하는 에미의 마음을 지닌게 여자라지만
남편한테는 그리 되어지지 않더구나.........젊은때는 옆에서 아프다고 하면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어찌 저리 매일 아프다누....하고 원망 스러울때도 많았느니
그래서 더욱 더 외로워 시도 쓰고 했으리라.
시 쓰는일 또한 너무 힘든 작업이라...........그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의미 인것처럼 나에겐 보여지니
그만 그만 버티어주길 바랄뿐이다.
나....................글 제바로 쓰는일 아무나 할 일이 아니라서 손도 못댄다.
시 한귀절 가지고 몇날 며칠을 잠을 못 이루는 고통을 보아와서 말이지.....................
강둑을 걸으며..........는 물론 산이 할아버지 작품이다.
그 시절 .........연극도 아버님 반대에 부딪치고 문학하는 일도 또한 그렇고
그래서 아예 올망졸망한 아이들 셋을 두고 있지만 내가 선선히 머리깎고 나서는 것도
말리지 않았었네........그때가 삼십 초반 이었으니 그런 어려움 속에서 나온 시집이였단다.
미당 선생님 소개로 쌍계사 주지 스님 밑으로 들어갔었지.........
그때 쓴 시도 시집에 실려있다.
.........쌍계사를 떠나며...................
쌍계사 쪽에서
지리산 중턱을 혼자 더듬어 오르다가
한번 헛딛은 마음은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산밑으로 주저앉았다.
그날 밤
100 볼트용 휴대용 녹음기를
220 볼트 고압전류에 태워버렸다.
여행 떠난 이후 처음으로
아내에게 전활 걸었다.
왜 미리 묻지 않았냐고
고칠 수도 있다고
바꿀 수도 있다고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가위눌린 꿈처럼 날 흔들었지만
아니라고 아니라고
골물소리는 밤새도록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혼자 지나갔다.
...........김 정웅 시집 <배우 일지> 중에서..................
부자지간에 어려움 사이에서 내가 최선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이
힘들어 하는 남편 떠나보내는 일이였었다 ....그때는....
아이들 또 내 걱정말고 그곳에 정착해도 좋다고....
그런데 내 나이 되어보니 시아버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구나
현실 세계의 냉혹함에서 견뎌내기 쉬운일은.........경제적인 일이 우선이니 말이지.
?
???은희야!!!
흔히들 우리들은 말한다.
예술인들은 섬세하고, 까다롭다고......
그래야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시,그림,음악,연극,영화....등이 나오겠지.
산이 할아버지 내조 하느라고 애쓰는 것이 눈에 보이는구나.
산이 할아버지 후세에 남을 좋은 시 쓰시기를 빈다.
건강해지셔서 훨훨 좋아하시는 여행 다니실 빌고~~~~~~~`
순애 후배~
참으로 자기 식구 이야기를 쓰는건 어려운 일 이지만...........
또 그것만큼 마음 편한 이야기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
적어도 날 잡아 죽이겠다고 덤비지는 않을테니....................ㅎㅎㅎㅎ
세상이 무섭다고 생각이 드는 이즈음........가장 가까우면서도 힘든 사이
친구나 가족..........그래도 끝까지 남아주는 사람은 가족이니.......
얼마나 큰 업이 연결되어 끝까지 남아주겠나....생각하게되네.
끊어지거나 돌아선 인연은 그만큼 관계가 쉬운 사이였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고마운 사이란 생각이들지
미국서 동생같은 후배가 순애후배에게 반했다고 하더라구
전화 하고싶은 마음까지 생기더라구 하면서..............
예 선배님, 뵙지도 않은채.... 삶에 힘이되는 얘기들을
늘 공짜로 퍼가곤 합니다. 제가 군인과 결혼하게 되었다...하니, 큰언니(유명애: 인여중/경기 졸)가 그래요. 나 설대교수부인은 사람들이 사모님이라 그러는데, 군인부인은 사람들이 뭐라 하는지 아니? 에펜네라 그래....하더군요 ㅎㅎ
詩人의 부인....아까부터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인사동 천상병 시인 그 사모님네 가게 차마시러 가보면... 그 양반이 그리 미인도 아녜요. 그런데 다들 {천사}로 여기지요. 사람들은 詩人의 부인을 천사....로들 압니다.
천 상병 시인은 동백림 사건으로 모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벽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지요.
가난을 천직으로 알고.......가까운 문인들과 지인들을 만나면 막걸리 한잔값인 천환 한장을 달라하고 받아들고 아기같은 웃음을 띠우고
시대가 천상병 시인을 만들었다고도 생각되어 지네요.
유명한 대표 시 <귀천> 말고도
<행복>이란 시에서 그의 삶의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지요
.........행복.........천 상병............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있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헤구우,,은희언니이,,,
처음에는 번뜻 은희언니이,,크로키가 뭔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요오,,하고 장난을 먼저 칠려했는데,,,
돌아와 자세히 읽어보니 마음이 찌잉,,,하네요오,,
시인은 달래 시인이 아닝갑따아,,
산이할아버지꼐서 왜 시름시름 평생 하셨는지 알것 같애요,
그 분의 평생에 하지 못한 열정이 속에서 가슴알이를 한것 같아요,
그것이 육신의 아픔으로 나타날수 밖에,,,
속에 남다른 열정/정열을 품고 계신 분인데,,,
....
그것도 시로 쓰는 일은 더 쓸쓸한 일 시로도 쓰지 못하는 것은 무엇으로 적어야 하나. ???? 이 한마디로 실제의 열정이나 아픔을 피상적으로 불과 몇 %뿐이 표현이 안/못 하는,,, 새삼스레 시인의 세계를 언니를 통해서 Personal하게 알게 된것 같아요, 그런 삶속에서 언니가 참아온/넘어온 수많은 고개들,,,, 참으로 할말이 없이,,,,,,,,,,,,, 첫시집에 있는 시들,,,,올려주세요,,,언니,,,, . 존경을 표합니다.
?순자후배~
불과 삼사년전만 해도 이 산이 할아버지 흉을 서슴없이 가까운 친구에겐
털어놓고는 했지요...........
그러나 가깝다고 하던 사람들 어느순간 등 돌릴때 제일 가슴 아파하는 사람
그 사람이...................바로 평생웬수라는 자기 짝입디다
그러면서 하는말..........노력해도 안되는일은 자기탓으로 돌리면 더 좋으리라 했지요
신앙인으로 사는 순자후배는 당연지사 이겠지만서도 말이지요.
그래도 사람 마음이 약해 빠져서 순간 순간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요.
시 , 이야기,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라오
,,,,그러나 가깝다고 하던 사람들 어느순간 등 돌릴때 제일 가슴 아파하는 사람
그 사람이...................바로 평생웬수라는 자기 짝입디다,,,,
흐흐흐흐 언니,,,그 연습은 평생 했지요,,
결국 끝내 배우면서 세상 어느것에도 기대 안하는 자유,,,를 배웠죠,,
그 자유는 어쩜 우리의 삶에서 뱃짱으로 나타나기도,,,,하하하하
언니,,의도적이던 타의적이건,,,어차피 삶이 그런것일진데,,,
그래도 그 평생웬수가 자기 짝인줄 늦게나마라도 알게 됨은 축복이랍니다.
그전에는 무쟈 섭섭하기도 하여 내가 내 입으로/생각으로 상대방을 판단도/정죄도 하나...
이제는 그 모든것을 진리 스스로가 한다는 것을 알며 맡기는 자유함까지,,,,
언니,,마니 마니 어려우셨죠? 마니 마니 외로우셨죠???
그런들 그 위로는 서로, 두분 사이에서 얻도록,,,,
나머지 삶에서 더 늦기 전에 마니 연습하세요,,,
언니의 지금의 삶에서 그만한대로 무조건 매순간을 감사하시며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데 지금부터라도 인색하지 마세요,
사진에서 본 그 가정의 모습, 그 전원에서의 조촐한 모습,,,
삶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거든요??
매 순간의 감사와 자족이 뭐가 다른지 생각하게 되네요,,,,
언니, 인생에서 평범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는
그 평범을 잃어본 후에야 알지만
한번 나의 얼굴이 전국적인 카메라에 잡힌 후로는,,,,,아차 떄는 늦으리이,,,,하하하하
?.........생시도 꿈결처럼.............
아침부터 내리는 비
창밖으로 빗소리 돌려놓고
목단추까지 마음 잠그고
빗소리 멎고, 멎으며 다시 내리는 비
잠근 마음 위로
마음이 쉽게 접히었던 곳으로
왼종일 비
빗물 스미는 마음 한 벌
빈 방과 함께 벗어버리고
부두쪽으로 내리는 생각 받으며
비닐우산으로 띄엄띄엄 걷는다.
구부러진 길목에선 비껴부는 바람
울울한 빗 줄기 사이
표정들킨 지난 날
내 마음과 내 마음 아닌 얼굴들
이리저리 몰리며 다름박질로 숨고
김 서린 유리처럼
지워지다 이어지는 길들.
비의 어깨너머로
항구의 안과 밖이 서로
넘겨다보는 방파제에서 길 끊어지고
내 발이 닿지 않는 곳
자꾸 내리는 비여
바닷바람은 육지로 몰리고 몰리고
맥없이 뒤집히는 내 우산,
누군가 먼저 버린 비닐 우산
굴러와 발길에 채이고
새파란 비닐껍질 속
뒤집힌 채 줄 끊긴 마음 비친다.
지금은 아직 꺾이지 않은 내 우산살
몇 번이고 바로잡고 뒤집히는 우산.
우산과 함께 생각을 접어들고
산낙지 한 접시 소주 한 병,
툭툭 끊어져 땅위에 딩구는 빗발들이
끊긴 채 꿈틀거리는 낙지발들이
확대경에 비친 세상, 거대한 접시에 담겨
주어 없는 문장처럼 중얼거린다
중얼거린다, 흐린 하늘
생시도 꿈결로 비친다.
?........詩人..........
표주박 하나
건드리지 않아도
노래한다
속 깨끗이 비어 있을 수록
더 맑은 소리가 난다.
?...........꿈의 뒤꼍에서.......................
주인 바뀐 너의 집으로 가서 보았다.
등 굽은 기둥 몇 개 들보 몇 개로 헐려있는 꿈,
봄 삘기 붓끝 같은 실눈 뜨고
흰 빨래 마르는 고요 머물던
어린 날의 담벼락에 등을 기대던
스스로 집 한 채가 되어 다시 헐리는 故鄕.
뿌리없이 쌓아올린 사랑이여
네 꿈의 뒤곁에서 제풀로 자라다가
밑 잘린, 개참죽나무 해묵은 등걸이
홀로 내 키보다 어린 곁순 하나 다시 기르고
받침대 쓰러진 빨래줄에 걸린
하늘 한 자락 겨우 들치고 서있다.
문득, 공중에 작은 새 한 마리,
빈 터에 흙발로 몰리는
다시 한 떼의 바람.........
희야~~~~
오늘은 세편만 올리마................
제 기분에 빠져서 나도 .........네 말처럼 울컥 하네.
지나고 나면 지난세월이 꿈 같다.
형부의 시를 읽으면서 세월이 켜켜 쌓일수록
참맛이 나는 냄새가 맡아집니다.
이렇게 섬세한 시인의 아내노릇 하기가 얼마나 어려우셨는지요.
가정일에....
바깥일에....
자식일에....
머리와 가슴이 나뉘여 받아들여야하고.
머리보다 가슴이 더 깊어져야하고,
저렇게 아름다운 시가 나오려면 왼갖
잡사에는 눈을 감으셔야 하셨을터.....
언니도 한끼 하시는 분이신데
내조하시느라 정말 애쓰셨습니다.
얼른 다리 다나으시어 형부께서 잡아 주시는
손잡고 여행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형부~! 우리 언니 많이 업어드리세요~~~~)
순호야~
어느 누구든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사는 동안 한번이라도 슬프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니
그런데 제일로 슬픈 일은
부모가 자식을 자기 잣대로 움직이려고 하는거지
그런 오류속에서 사는 부모 또한 슬픈 사람들이다...........예전엔 더욱 그렇지 .....지금은 그 반대 현상이지만....
실제 상황으로 그 시절
급해서...........내가 형부를 업고 뛰던 때가 있었다.
초인적인 힘 그거........사실인거 나는 알지
그려.................
이즈음 형부가 마음으로는 나 다치고나서 많이 업어주었다.
고맙다 순호야~
조 금앵 임춘앵...여성국극단 쫓아갔으면 이런 중요한 인생살이를 해 보았겠나싶다......ㅎㅎㅎ
은희 언니~
김정웅님의 詩속에 지나온 세월이 다 묻혀있네요.
단 한권 남은 첫시집을 들여다보며, 은희언니 감회가 새롭고
그 속에서, 그때 생각하면 슬프고 기쁨의 온갖 순간들이 다 떠오르지요?
그 순간들을 이렇게 시로, 글로 적어보시니,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詩에서 잊고 살던 한국의 산천이 눈 앞에 떠오르듯 합니다.
새벽 물소리. 산구비. 한기. 겨울 저녁놀. 가물가물 한떼의 새들.
겨울강. 비닐우산....등.
한꺼 번에 많이 올리지 마시고, 세 편 정도만 올려주세요.
읽고 음미하고...새길 수 있도록요.
음악과 함께, 젖어 든 시간....감사합니다.
여행 일정 끝내고 오렌지 카운티에 살고있는 친구 집에
얼마간 머물기로 했는데..................
친구네선 아예 한달간 붙들어 놓을거라 하는데..........ㅎㅎㅎ
우리 산이 할아버지 하는데 따라야 하니까 ......기간은 모르겄네
남정네 끼리도 이젠 친구들 이리 저리 다 떨어져 나가고 얼마 안 남은 중의 두 사람
실로 오랜만에 얼굴 마주 하게 된다고 하면서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다고 하네
그 며칠중에...........친구집 피아노실 에서 아마 작은 음악회도 할거고
아마도 좋은 시간 있지 싶네
규희도 그 먼곳에서 온다면 같이 있으라고도 하는데..........편할때로 하라고 할려고 ...
내가 씨에틀까지 또 동부도 다 돌아보려고 했는데
같이가게 되어서 그건 힘들게 되어서 동부 사는 친구도 함께 여행하면서 보려하고
모두에게 너무 힘들게 하면서도 그날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지.
?...............물 소 리 1...............
어느 풀뿌리
나무 잎새 하나 붙들지 못하고
다만 흐르는 일로 모여서
흐르는 일 뿐인 것들이
요즘 정처없는 밤물소리를 이루고
흐르는 물소리의 발목 잡으며
거듭 올가미를 걸어도
끌어당기면 빈 매듭에
마음 속 캄캄히 엎드린
부끄러움만 한 줌씩 뽑힌다
의사에게 들키지 않는 미열이
다시 오른다.
...............물소리 2...............
오늘 또 한 계단
내려 디뎌본다
내 발 끝이 이젠
어디 닿을 데가 있을 것이라고.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添黑(첨흑) 같은 물소리
더 깊이 모를 水深(수심)으로
자꾸 내려 딛는다.
?..........다시 봄을 위하여................
다시 봄을 위하여
묵은 서랍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게서 오랜 동안 버림받았던
녹슨 쇠못 한 개를 찾아들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몸둥어리의 어느 구석에건
단단히 박히기만을 기다리다가
지칠대로 지쳐서 스스로 산화된 나의 못이여
윤기 흐르던 너의 지난 날의 꿈,
그 날카로운 의지의 첨탑은
단 한 번만으로 강직하게 박혀져서
박힌 후에는 물이 스며 그 속에서 썩을지언정
다시는 뽑히지 않기를 바람(願)이 아니었던가.
쇠못의 일생이 보인다.
기둥과 들보, 바람벽과 지붕들을
앞으로 뚫는 길과 가로지르는 길들을
넘어짐과 일어섬, 풀림과 조임들을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들을
마음과 마음, 간격과 간격들을
함께 꿰뚫고 대지의 중심에 깊숙이
뿌리박아 영원의 수액을 빨아올리려고
오, 버티고 서는 생명의 쇠의 핏줄,
견고한 정신과 힘의 어깨가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내 창백한 손에
소책자로 들려있는 녹슨 쇠못의
무너진 슬픔의 거부할 수 없는 重量이
나를 가위눌린 꿈처럼 무겁게 누른다.
기다리다 지친 영혼이여
내 이제 스스로 감기는 두 눈에
촉촉이 젖어 오는 눈물의 기름방울로
네 전신의 슬픔을 닦아내어 윤택하게 하고
네 아직 남겨둔 그리움과 사랑을 거느리고
나와 내 아비의 부끄러운 역사와
역사의 담모퉁이를 돌며 돌며
낮은 대문 닫아걸고 들어앉은 사람들
찬 바람 몰리는 절터마다 찾아다니며
뺨 비비리라, 자유와 자유, 꿈과 꿈들을
삶과 삶들을, 죽음과 죽음들을
詩와 시들을 함께 엮어서
오래도록 그 오래인 적막함을
잊지 않게 하리라 잊지 않게 하리라
다시 꿈꾸게 하리라 헤메이게 하리라
못이여, 나의 녹슨 못이여.
?...................同 行..................
구름 한 점 없이도 흐린 하늘. 와우산 팔부
능선까지 바락바락 매달리는 골목들 뿌리치고
나면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 눈 찔린 산길 하나.
무릎 싸매고 산상으로 간신히 빠져나간 길 대신
철조망에 걸린 허공이 이따금씩 中質紙 원단이
풀려내려 펄럭이는 듯한 소리를 냈다.
길마처럼 등 벗은 와우산 고지. 산길은 다시
한 번 몸을 도사리며 숨어버리고, 그 어귀에 걸
려 있는 [사진 촬영 금지] 팻말.- - - - - 못 박힌 시선
하나 더 걸어두고, 여의도 광장으로 흐릿하게
사라지는 한강대교 바라보며 멈추어 서는 길 밖
의 길 마른 풀섶.
그 동안 소주는 숨가쁘게 흔들렸지만 거품이
일지 않았다. 북으로 연희고지, 동으로 남산,
남으로 관악줄기 안쪽이 눈에 익숙한 전부였지
만 그 너머도 잘 보였다. 사방으로 구겨던진 원
고의 파지처럼 움츠린 산맥들 찌그러진 네모칸
들 , 어둔 창문들 ....... .
잠시, 빈 소주병에 어린 센티멘탈한 석양빛.
마포강이 붉게 떠오르고, 산밑 철조망 두른 녹
지대에 가까스로 피신한 고목 몇 그루가 포연
속의 구한말 서강 마을 쪽으로 마른 가지를 드
리 우고 있었다. 길지도 않은 산그림자가 서서히
우리들의 이마를 덮고 있었다.
어느 새 기척없이 서쪽으로 돌아앉은 와우산.
누군가 산비탈에 먼저 아프게 깨어버린 병조각
들이 구두 뒤축에 섬뜩 밟혔다.
詩를 읽으면...
세차장에 들어가 차가 먼지때를 벗을 때처럼... 맘이 말끔히 때를 벗는거 같아요.
<다시 봄을 위하여>...詩人은
우연히 집어든 녹슨 못을 보고
어찌 저런 생각을 끄집어 낸다냐.... 놀랍습니다. 실은 생물학자도 같은 생물에서 뽑아내는 결과가 다르긴 하지요 ㅎㅎ(죄송합니다)
청년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 그보다 훨씬 전이네요... 그때에
부모님과 우리집 외동아들인 제 동생과 말이 통하질 않아요, 그런데 제가 그 사이에서
좌측보고 얘기듣고 우측으로 고개돌려 통역하면 아무 문제가 없이 서로 잘 이해합니다.
그러니 동생은 저더러 우리 결혼하지 말고 다같이 살자 ㅎㅎ~~했었죠.
어머니는 지금 그러세요, 참 속도 많이 썩였다.... 하시기에
어머니, 미안하다, 고맙다 그 소리만 하세요, 어머니는 청년 시절 그의 치졸한....모든 꿈을 꺾으셨잖아요....
이제 생각해도 그 꿈들은 그에겐 환상이었는데.......
그 어려웠던 때에.... 당시 청량리 국립뇌병원 카운셀러로 있던 제 동기 7지명제가
-의논해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그저 너른 품으로 많은 일을 품어주었었습니다. 잊지못할.........귀한 추억입니다.
순애후배.........우리집 산이 할아버지도 딸만 많이 낳으신 중에 얻은 외동아들 이지요.
아버지 엄하셔서 어릴적엔 아버님 기침 소리만 들려도 오줌이 찔끔 나도록 무서우셨다네요.
태어날때 부터 약하고 약하게 태어나서 어릴적 동네에서 개구쟁이 동무들 하고
많이 뛰어놀지도 못하고 감수성은 뛰어나서 장마당터에 곡마단이 오면 몰래 구경하러 나가고
끝나고 떠나가는 곡마단 패거리들 돌아가는 모습들을 조그맣게 보일때까지 동구밖에 서서 바라보았다지요.
고등학교시절 외아들이라고 서울로 유학 보냈더니 연극반에 몰래 들어간 걸 아시고는
어느날 삽 한자루 들러메게 하시고 따라 오라 하셨다네요.
집 논으로 데리고 가셔서 질퍽한 논을 파라고 하시고는 그 구덩이에 들어가라 하셨다네요.
얼마나 혼줄이 나고 혼을 내셨을지는 그냥 짐작으로만 압니다
그나마 말이 통하고 착하셨던 누님 한분이 열일곱살때 돌아가셔서 그 슬픔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네요.
너무 외로운 시절을 보냈으니 ..........
시 아버님은 일찌기 자수성가 하셔서 김포땅에서 현금부자란 소리를 들었다고 하시는데.......열 여덟살서부터 장사를 하셨답니다
가세가 기울어진 집안을 이르키느라 얼마나 이를 악물고 하셨으리란건 짐작은 가지만 ....어찌 다 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인지 아들도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하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셨겠지요.
내가 시집와서도 보면 교사가 된 아들을 못마땅해 하시고 당신이 하시는 사업을 물려 받으라고 하셨지요
하루는 말단 교사하는 삼십대 초반에 아들에게 당신대신 세무쟁이(그 시절엔 그리들 불렀다는군요) 들을 만나라고 해서
저녁 대접을 하는데 그시절 방석집이란 이름에 기생들까지 참석하는 요정엘 불려가서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돈을 지불하고 하는 작태를 보고는 .......죽어도 장사는 못하겠노라 .....했지요.
더욱더 미운톨이 박혀서 부자지간에 힘들다가 농사는 짓겠다고 해서 아버님 하시는 인삼재배를 시작했지요
교사직 그만두고...........그러니 하고싶은일은 다 접고 하는일 몸도 고단하고 했지요.
다행히 농사짓는일 이라던지 나무기르는일등은 좋아해서 다행이었지만 자꾸 몸이 아파서
일년 시한부로 병원서 진단받고는..........그래서 이곳 김포로 내려와 .....다행히 지금까지 견디고 있지요.
이곳에 내려와 모교에서 겸임교수로 몇년간 재직도 하고.... 세번째 시집도 내고
손주들도 보고..........프라하에서 뒤늦게 그곳 예술 국립대학 파무에서 공부하는 늙은 딸년은
엄마하고 같이 에니메이션 작업을 하자고 하면서 풀 죽은 엄마 기를 세워주려 하지요.
글쎄요.................그래서 더 열심히 컴을 익히려고도 하지만.......여튼 순리대로 ....되어가는대로...
이즈음 생각은 그렇다오.
그냥 집에서 요즈음 옛것을 들여다보는 맛이 좋으니.........
문인들은 세번째 시집이 좋다고 하는데
난 사십년전....삼십몇년전 이 시들이 좋아서........실은 여기 올리면서 내가 더 빠져서 있지요.
늙으면 추억만 먹고 산다든가........
집안의.... 혹은 知己들의..... 혹은 오랜 친구들의..........
해묵은 비밀은 좀처럼... 제입에서 새나가지 않아요, 강순옥 선생님은 저를..........크레물린이라 그러셨죠
고2,3 두해를 연거퍼 담임하시면서 반장이 뭐 고해바치는게 없으니....ㅎㅎ(사실 당시 3학년5반 理科반, 전교 모범인데요 뭐..
아 그때 강순옥 선생님은 박사과정차... 이화여대 대학원으로 종례도 못하시곤 출발하셨죠)
요런건 자주 말해요,
큰언니가 첨 그림개인전을 하곤... 지도교수님 등 어른들이 주시는 맥주를 마셨나 봅니다. 당시 공보관 전시실로
어두워진 길을 데리러 간 나에게... 중1이었던가... 내 얼굴에 술내음을 하~~~ 불어주면서
순애야 깨끗한 손 으로는 연애 못해, 엄마말 잘들으면서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쌈: 깨끗한 손은.... 아시는 분은 아는... 어머니가 저를 모델로 지으신 동화제목입니다, 엄마말 잘들으면 착한아이 된다는.....한국사람은 누구나 읽으면 엔돌핀이 샘솟는 ..ㅎㅎ
詩를 읽으면.... 어휘가 적확하고 맞춤법이 바르니...
공부가 많이 됩니다. 인터넷에서는 장난으로라도 그저 틀리고, 그러면서 웃기려들고....
한글로 장난을 하지요 ㅎㅎ
은희야, 안녕?
이 드넓은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만이 감정을 느끼고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시
그러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시...
몇 해 전에 산이 할아버지 교수님의 시집을 들고
밤 늦도록 페이지를 넘겨 가며 마음을 가라앉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 때 난 은희와 교수님을 시 속에 나란히 그려 가며 큰 감흥을 느끼며
부부의 삶을 내 나름대로 정의해 보기도 했었지.
오늘 다시 만나니
순애 얘기처럼 마음이 씻기고,, 순간 새 흙으로 마음의 밭을 갈아 주는 것 같고,,, 좋구나.
영선아~..........그래 ...그래....
어제 네 소식을 들엇었단다.....네가 길 영의 교장 선생님이 연관된 모임에
참석했더라고..........우리집 오시는 제고 8기가 이야기 해주더구나.
너처럼 돌아가신분의 유지를 잘 받드는 착한 아내가 또 어디있을가나...........내가 그랬다.
집에서 많이 있어 그런가
겉으로는 산이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서 내색 안하지만
그냥 슬프기도하고 ............해서..........자꾸 이런 글도 쓰고 하네.
햇볕이 나고 밝은 봄이 오면 여행도 가고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하면 좋아지겠지 한다.
??..........추 억.............
바람에 지는 꽃잎이야
지는 꽃잎이라지만
시방도 생시처럼 다정한 누이여
또 한 해 초가을
저녁 해으름 산을
저만치서 짙은 안개 내리고
네게로 가는 숲길을
더 가까이서 지우누나
꿈꾸다 돌아누우면 잊어버린다는
돌아누운 꿈속에서 만난 사람이듯이
언듯언듯 보이는 등이 슬픈 누이여
바람과 이별하고
안개 걷히고 나면
그 햇살 그 웃음결로
새파랗게 돋아날까
조심스럽게 네게로 손짓하면
낯설게 돌아서서
생시도 꿈처럼도 아닌 누이여
풀잎에서 뜨고
한밤내 개똥벌레 한 마리
어둠 속을 날아다녔다.
날이 밝으면 탈색되는 한 점 불빛,
불빛으로 떠돌던 마음 풀잎으로 잠재우고
풀잎에 듣는 새벽 찬 이슬길
방울방울 발 적시며 언덕에 서면
보이누나, 인줄 두른 바다의 굳게 잠긴 문들이
누군가 버리고 떠난 발자국들이
해안에서 해안으로, 부서지며
쪽배처럼 이리저리 떠밀리고
흐르지 못하는 하늘이
수평선 밑에서 떠밀려 올라오고 있다.
한 발 다가서면 한 발 물러나는 수평선......
밤마다 개똥벌레 한 마리
풀잎에서 뜨고,
눈 내리깔고 얌전히 모여 서있는
인가의 낮은 지붕들, 눈몰린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날으며 치켜드는 한 점 불빛..... .
....?다만 내리는 저 눈발이.........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철망으로 둘러친 임업시험장
마음 편히 넓고 곧게 발 뻗은 길
시험적으로 성장해 있는 나무들
아주 어린 것들은 볏짚으로 감싸여 있었다.
우리는 걸었다, 아직은 마음 편히.
어깨 깨진 채 그대로 웅크린
징검다리의 돌들을 두 번 건느고
두 갈래 길에서는
되도록 편한 길을 택했다.
가파른 산길을 접어 오르며
마음도 발길도 각기
바람결에 엇갈리고
점점 굵게 내리는 눈발,
내리며 녹지 못하고 쌓이는 눈발들이
더러는 어디론가 휩쓸려가기도 했다.
쓸려가는 눈발들이 조용히 가리켰다.
물 흐르지 못하는 계곡의 상류 가로지른
시멘트 철근 담벼락의 견고한 힘을,
현수막처럼 펄럭이는 검은 글씨들을.
지키는 이 아무도 없었지만
잠시 후 우리는 돌아섰다.
하산 길에서 우리의 등 뒤로
금지구역의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지만
다시 발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다만 내리는 눈발이
우리들 오르던 발자국들을
희미하게 희미하게 지우고
지워지는 길 위에 되돌아오며
하나 하나 찍는 발자국들이
뒤로 뒤로 선명한 아픔으로
멀어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를 빠져나온 우리의 앞뒤 어디에서도
눈발은 끝도 없이
모든 길들을 지우며 내리고 있었다
내리고 있었다.
?열 일곱 꽃봉우리같은 나이에 누이가
사랑하는 선 생님 장례 묘역에 갔다가 돌아와 한기를 느끼고 아프기 시작해서
불과 얼마 앓지도 않다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의 애절함이야 이루 말 할 수 없었겠지만
특히 시어머님의 오른팔 역활을 하면서 다섯살 밑에 약하고 여린 남동생을
누구보다 위해 주웠었답니다...........공부도 전체 일등을 하고 암산도 잘해서
아버님 장사하고 난 장부 회계일을 도맡아 도와 주고 하는 집안에 귀한 인재 였었나 보더군요
6.25 사변때 외동이라고 일곱살 먹은 어린 아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피난길에 나섰었는데
자전거에 태워 데리고 가느라 신발을 아차 안 신키고 태워서
열두살 먹은 누이가 신을 벗어주고 자기는 맨발로 다녔다고 하는군요.
시키지 않아도 모든걸 동생에게 양보하는 그......어릴때 부터 착한이 였었다는데
그래서 홀연히 일찍암치 떠나버렸나 그러네요.
처녀때 부모 두고 먼저 떠난 자식은 불효라고 비석도 없이 매장 했다는데
동생은 가끔 부모님 몰래 묘소에 찾아가 두다리 뻗고 소리내어 울곤 했답니다.
김은희 선배님!
오늘 마침 조선일보에 "시인의 아내" 라는 제목의 컬럼이 있어 읽다보니 언니 생각이 났습니다.
강화의 50세 된 함만복시인이 제자와의 늦결혼을 앞두고 축하겸 격려의 글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인에게 아내의 내조란 태산과도 같아
미당 서정주님은 아내를 보내고 얼마 되지않아 뒤따라 갈 정도였다고요.
은희 언니
교수님이 요즈음 많이 감당키 어려울만큼 힘이 드시구나 라고 생각이드니 괜시리 울컥합니다.
그래도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언 땅에서 싹을 틔우는 봄기운처럼 솟아 오를실 것입니다.
물론 언니는 비옥한 大地이어야 하시니 얼마나 더 힘드실까 짐작하지만........은희언니 힘내세요.
그래서
교수님의 좋은 시, 많이많이 올려주십시오
여기 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당 선생님 돌아가시기전 두달 동안의 그 슬픈 이야기
산이 할아버지가 지켜보면서 시로도 쓰기도 했고
곡기 끊고 ........드디어 병원에 가 계실때
김포서 좋아 하시는 간장게장 잘 발라내어서 게 껍질에 담아 좋아하시는 콩 누룽지
누른밥 끓여서 보온통에 넣어 보내드려서 다시 잡숫기 시작햇다가
산이 할아버지가 디스크로 거동 못하면서 나도 본인도 자기 발등 불 끄느라
챙겨 드리지 못하고..................드디어 가셨지만...........
결국에 장례에도 참석 못하고 애절해 있던 기억이 새삼 생각나네요.
미당 선생님 생전에 끊임없이 드나들고 은혜를 입었던 제자나 가까웠던 사람들이
지금에와서 먼저 등에 비수 꽂는 행태를 저지르는것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미당 선생님 시는 아직도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지요.
어찌 보면 본인 스스로 예정된 길을 가시겠다고 굳게 다짐하셨지 싶읍니다.
가끔 살다가 청승 맞은 때가 있는가보이........
너무 하다싶게 아프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그러면서 지내 왔는데
내가 몇달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시들어가서 그런가 싶기도 하네.
마음이 쓰여지는게 분명하긴 해...........산학아.........
아까 말로는 다 못하였지만
첫시집을 만드느라 기진 했을때.............치열하게 부자지간 맞서 있었을때.
그러면서도 몰래 몰래 명동국립극장에서 <페드라> 연극공연 참여 하는 사람.......같이 감추느라 조마조마 하던
그 시간........그 열정이........그리운걸 보면 참 그러네.
또 언제인가는 컴퓨터앞에 앉아 있는 일 이 시간도 또 생각 날 때도 있겠지?
시만 쓰다보면 그 일로는 밥 먹고 살기가 어려운건 사실 이지만
그렇다고 시 쓰기 위해 가난 하고싶은 사람은 없지싶네.
어렵지만 어렵게 어렵게 그 일을 놓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 나름대로 행복한 사람들이지 .
삼십대 후반이면 지금 우리집 막내 산이애비 나이인데
첫시집에 친구이자 같은 시인이며 동문이라서 그들 나이 이십대 초반 청년시절서 부터
친구인 홍 신선 시인이 시집 후미에 축하 하는 의미에 글을 올린걸 다시 읽어보면서
몇몇 시인들.....또 이 두 시인 친구가 삼박 사일로 술을 마셨다던지........
첫 시가 현대 문학지에 실린뒤 김 정웅 이란 인물이 누구인가 물어 물어 찾아내서 서로 교류를 시작한
황 동규 시인 마 종기 시인 평론 하시던 돌아가신 김 현씨등과 삼삼 오오 여행을 다니고
하던 ..........산이 할아버지에겐 제일 행복 했었을 그 시절
지켜보던 내 여러 일상들이 떠오르게 된다.
친구인 홍 신선 시인은 모교인 동국대 학장도 지내고 이제 은퇴후 문학잡지를 펴내고 있다
??............김 정웅을 말한다..................홍 신선...시인.........
김 정웅, 그도 이제는 굿판의 냄새가 많이 가신 30대 후반의 후줄근한 한 사내일 뿐이다.
시로써 그나름의 자기를 찾고 있는 이 사내에게 구태어 굿판을 들추는 것은 그 굿판이
만만치 않은 무엇을 끼친 것 같기 때문인데 그러면서 후줄근하다는 표현으로 그를
사진 찍는 것은 광기가 빠져버린 상태 때문이다. 광기가 빠져버린 상태, 한 때 바바리코트는
때를 좀 묻혀서 입고 다녀야한다든가 또는 세련되게 목에는 머풀러를 둘러야한다든지 하는
행색에 대한 생각도 이제는 평범한 것으로 바뀐 것이 한 예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무렵 주어모은 굿판틱(?)한 와이셔츠나 구두 등이 우리 앞에 등장해서 어느 한시절의
보다 젊은 김 정웅을 슬적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얼룩처럼 남은 광기를 확인케하는
것은 작은 즐거움의 하나이다. 나로서는 어쩌다 번쩍이며 마그네슘처럼 터지는 그의 광기가
싫지만 그나마 오늘날 연극에 관심을 갖고 구경을 다니는 것은 오로지 이 친구의 덕일 것이다.
다른 무엇에 대한 생각없이 먼지 자욱한 무대에서 오로지 뒹구는, 자기 예술에만 몰입하는
연극하는 이들의 그 단호함과 결벽성이 좋게 보이고 또 실제로 그런 기질을 언듯언듯 보이는
정웅이가 좋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좋게 보였다는 내 고백은 여기서 얼른 덮어두자.
그것은 이 말을 백프로 받아들여서 내게 또 쳐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밤 11시가 넘어까지 술을 마시자든지, 전부터 싸워오던 시 이야기를 끝장내자든지 그런 엄청난
일이 나는 싫기 때문이다. 김 정웅이란 사내는 내가 아는한 제 기분과 흥이 날 때는 두서없이
달겨들어 모든 것을 끝내보겠다는 투의 남자인 것이다. 어린애같은 단순함과 순수함을 내가
이 친구에게서 종종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극판에서 살다 어떻게 선생자리를 하나 얻어
이천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시를 본격적으로 썼다고, 이제는 시 쓰는일 때문에 밤에 잠을 자주
설친다고,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느냐고 그는 요즈음 말한다.
나는 이 자의 이런 열정이 때로는 싫고도 무섭다. 그것은 아직도 광기가 얼룩처럼 남아서
이 친구를 괴롭힌다는 소린데 죽은 화산에서 불이 언제 다시 터지는지 하는 유의 불안과
두려움인 것이다. 전과 달리 다소 믿을 수 있다면 앞에서 적은 대로 그 광기도 식어서 후줄근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든다는 탓도 있지만 이것은 이 세상의 예술과 생에서 자기제어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가 술이든 시든 무엇에나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제어와 물러서는 일을 분간하는 정도쯤 우리는 이제 구태어
말로 지껄이지 않아도 좋을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시집을 내는 그가 이뻐보인다.
아니 광기와 열정을 깊이 감출 줄 아는, 그래서 삶의 깊이를 갖는 그가 더욱 어른스러워서
싫어질지 모른다.
제가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어머니....
어머니 사이트 www.ilovegrandmother.com 을 94년인가..... 만들어 오픈하면서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할일을 많이(백여가지...) 생각했는데요....
물론 온오프라인으로 수채화 Musem 해야죠 (화랑을 겸합니다ㅎㅎ 즉 인터넷으로 그림을 팝니다...아이디어 多)
그리고는..............<구할 수 없는 책, 이미 절판된 책> 등을 소량이라도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자 생각했었답니다.
그런데 김정웅 詩人의 책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는군요 ㅎㅎ~
(실은 교보...에서도 이걸해주는 사업부를 최근 만들었던데요)
순애후배~
고맙긴 하지만 너무 일을 크게 벌리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학교일, 등등 하는일이 내가 보니 너무 많은듯 하던데...........
말 꺼냈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요.... 나는 그냥 스캔해서 친구들 읽게 한다는 정도로 알았지요.
그건 그렇고......어머니 사이트에 가서 순애 후배일기만 보았어요 다 보기엔 내가 시간이 없어서
점차적으로 보아나가지요.....대단하신 어머니시라는건 소문으로 아는 정도였지요.
그리고 나도....친정집에선 딸이 넷이 있는데 그중 막내딸이고 그러니까 순애후배랑 같네요
다른건 위에 오라버니 한분 계시고 내 밑으로 남동생 둘 그렇지요
그래도 외동이신 친정 아버지를 두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내가 남동생을 또 보았다고
엄청 귀여워 하셨지요....그래서 특별 대우를 받고 자랐답니다.
우리 여형제 넷은 지금도 자주 모임을 갖고 있고 언니 셋은 모두 인천여고 출신이지요
그 시절에 인일여고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점이라서.........
큰언니가 현재 생존해 있는 인천여고 총동창회장 2대 째 회장이라서........제일 고참 고문이시고
지금은 총동창회장 이하 모두가 인천여고 백년사서부터 시작해서 언니에게 무게를 두어서 바쁘게 동창일을 보신답니다
언니들은 같은여고 동창이라서 날보고도 너도 인천여고를 나올걸 그랬다 그러시기도 합니다....ㅎㅎㅎ
오라버니는 우리나이 세대이상인 예술하는 분들은 다 아는 분이시고....이제 79세가 되셨네요.
그러니까 하도 내가 평범하게 여고를 다녀서.....학생땐 모르시고 계시다 나이들어 우리 오라버니란걸
아신 서 순석 선생님, 전에 고 3때 담임 하시던 최 경섭 선생님은 깜짝 놀라셨었지요.
우리 오라버니 동생이란 사실에.....ㅎㅎㅎ....
민주화 운동이 유행병처럼 성행했을 때 `굿판`이라는 말이 떠올랐었지요.
`광기`란 단어는 전혜린에 책 속에서 처음 읽었던 것 같습니다.
홍신선님이 쓴 굿판은 시인의 굿판.
맘 속에 이는 소용돌이- 그게 광기에 속할까요?-를 언어의 굿을 벌여 結晶시킨 것이 시가 아닐까 합니다.
요즈음 *나*나 다 시집 한권 씩 내고 있는 세태를 나쁘게 볼 수만은 없겠지만
시를 읽을 때 眞僞랄까 뭐 그런 분별력은 갖춰야겠습니다.
그것이 참 시인에 대한 예의라 생각되는군요.
은희언니~
김선생님 시는 물론이거니와 시를 올리며 하시는 언니의 에스프리 잘 읽고 있습니다.
계속 올려주실거죠?
경선이랑은 그동안 참 많은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 했는데
어찌 어찌 하다보니 실상 제일 재미있을 이야기들을 해 보지도 못한채 6년여를 그냥 지나쳤네
그동안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이젠 이 나이되어보니
물인지 불인지는 겨우 분간 하게 되기 시작하니 발 띠는 돌잡이 기분이기도 하고
그냥 걷기도 전에 쓰러지지는 말아야겠다 다짐은 하는데 말이지..........
나중에 후미에 쓴 황 동규 시인에 글을 올리면
경선이는 더 그 시절이 떠 올려질거야........
끊임없이 책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는 경선이 답다.
은희언니!
일본 아들집 갔다가 어제 왔어요.
노트북으로 몇 번 댓글을 썼는데 뭐가 잘못됬는지 하나도 안 올라갔어요.
시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저로서는 그냥 언니에게 안부만 전했는데
순애랑 주고 받으시는 대화가 가슴에 파고 드네요.
저희도 알게 모르게 자식에게 그런 멍에를 지울 때가 많지요.
저같은 사람은 부모님과 다른 생각 같은 건 감히 입밖에도 못내고 살아왔지만 ......................
사실 어릴 적에는 다른 집에 비해서 아주 민주적인 가정이라고 믿었지만
점점 커 가면서 커다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지더라구요.
넓고 자유로와서 그게 굴레라고 여겨지지도 않지만 막상 그 성을 떠나보려고 하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우리 시절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그렇게 살았지요.
이런 저의 답답함을 이해하기는 커녕 친정 부모님은 나래를 펼치지못한 걸 아주 다행스럽게 여기셨어요.
그래서 평탄하게 살아 온 거라고요. ㅎㅎㅎㅎ
언니를 아내로 가지신 형부는 진정 행복한 분이세요.
얼마나 갈 지 모르는 인생을 앞으로나마 언니같은 아내로 살고 싶어요.
근데 난 니네집 잘 모르지만 큰 언니는 몰라도 둘째 셋째언니가 엄마 속 썩혔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ㅎㅎㅎㅎㅎ
순애야.
이번 여행에서도 들었는데 너처럼 전공과는 무관하게 음악이 좋아 못사는 사람들이 많더라.
숨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일반 패키지 여행과는 다른 의미에서 재미있었어.
그냥 어시장도 가 보고 요트 하버에서 석양도 보고 새벽 산책도 하고
남의집 주방에서 있는 재료 다 꺼내서 요리도 하고.
그래도 조 위에 있는 사진 보니 순영언니같은 여행이 또 부러워진다. ㅎㅎㅎㅎ
사람이 이래요.
다음에 그런 사람들 모아서 작은 음악회하자고 했어.
범위가 넓어지니 장소도 아주 다양해지겠더라구.
명옥이 잘 다녀왔구나............반갑네.
시에 문외한이란 없다고 보는데 나는...............
특히 가끔 가끔 명옥이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도 나는 시어를 읽기도 하는데
피아노를 공연히 했겠나 싶기도 하고 ...........음악을 한것도 그만큼 감성을 잊지 않게 한 큰 힘이였다고 생각되어지네
명옥이는 행복한 사람이야.........그게 보기좋기도 하고
허긴..........
참 용케도 버티어 나왔구나........감사한 일이야.
홈피에 이러쿵 저러쿵 글 올리고 요새는 아예 켜두고 짬짬이 일 하면서 시간을 내곤해요
그러자니 새벽 두시까지 고추장을 담갔네.........여전히 쩔뚝거리면서....ㅎㅎㅎㅎ
은희언니!!!!!!!!!!!!!!!!!!!!!!!!
언니가 올리신 형부의 귀한 시들
오늘에야 읽어보았어요.
저는 정말 시에 대해 너무 문외한이지만
한 시 한 시 읽어나가며 가슴에 와 닿아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그 감갓어을 가지신 시인과 한평생 사시는라 언니의 끼는 죽이시고 사셨겠구나했어요.
형부가 미국에 오시면 한번 뵙고싶네요.
건강이 괜찮으실까요?
춘자 왔구나~
약한데다가 젊은때 너무 많이 기운을 소진해서 그러지 싶기도하고.........
한 겨울마다 꼼짝 못하고 했다 다시 봄이 되면
앞마당이 푸른색을 띠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나...........하고 같이 소생하니
올해는 유독 더 힘들어 하지만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여행 같이 가자 했어.
나이 들면서 장거리 여행은 피하려고 하는데....순순히 그러자고 하더라구
일생을 여행하면서 살아 왔으니 딱히 여행하고 싶은것 보다 ....마누라 말을 들어주는 차원인거같아요
아마도 이번 여행에 가게 되면 보게될 기회가 있지 싶네.
그러길 빌어야지
?길 위에서
산구비 하나 더 돌면
두 겹으로 몰려있는 한기,
거기까지 간신히 풀려나온 길들
뒤엉킨 채 다시 얼어붙고
음지의 잔설 위엔
어딘가 더 내딛지 못하고 돌아선 발자국들.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언덕에서 언덕으로
더 몰아갈 것 없음 또 몰며
길게 휘두르는 바람의 채찍,
산등성이엔 붉게 번지는
겨울 저녁놀.
돌아가야 할 길목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풍문처럼 흐린 하늘
낮게 낮게 뜬 하늘을 들여다본다.
가물가물 한 떼의 새들
날아가고 있다,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울음소리도 ㄱ자로 꺾이어서 철새들
힘겹게 날아가는 곳은 어디 ?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생각을 더듬는다.
더듬는다, 마지막 한 음절까지
뜨겁게, 뜨겁게 입술이 탄다.
흐린 하늘 어디선가 구령소리
누가 선창한다, 철새들 바삐
서로서로 자리 바꾸어 날기.
길이 보인다 환영처럼
추위 깊은 저녁 하늘에
선창없이 후창으로 일제히 떠나는 새들
서로서로 발 바꾸어 발 맞춰가는 저 새들
까마득히 꿈처럼 날아가는 곳은 어디 ?
길이 보인다.
안보인다, 풍문처럼 흐린 하늘.
......김 정웅..........
첫 시집이 우리집에도 단 한권만 남아있다.
그 시절에 몇번인가 재판을 한 것으로 생각나는데
정작 우리집에 달랑 한권뿐이라서.....
새삼스럽게 우리 기수방에 한편씩 졸작이라도 남편시이니
만만하다 싶어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