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당선생(=추사)의 고택은  충남 예산 삽다리 부근에 있습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셔서 인생에서 여러 쓴 맛을 본 분이시지만 그의 학문과 예술은 높은 자리에 올라와 있지요.

몇년 전 책을 읽다가 한번 다녀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났었는데  그리 멀지 않아서  한 번 길 떠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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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조부께서 영조의  사위가 되면서 하사받은 예산 용궁리의 고택 솟을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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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솟을 대문으로 들어서면 아담하게 복원된 사랑채가 나옵니다. 생전에 쓰신 글씨들이 기둥마다 붙어있는데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앞 뜰에 있는 모란을 보며 마당을 걸어다니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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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 모습입니다.  앉지도 들어가지도 말라고 써있는데  사실은 대놓고 대청마루에 앉아 완당선생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문구는          "대팽두부과강채" (최고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고회부처아녀손" (최고 좋은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

 

                    완당선생이  나이 많이 드셔서 쓰신 대련 글씨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 이런 글이 참 좋아지네요.

                 양수리의 연꽃 많은 세미원 정자 앞에도 이 글이 있지요. 어렵지 않은 뜻이며 다 공감하는 내용이라서 그런가...SANY4269.JPG

고택 솟을대문으로  나와서 왼쪽으로 돌면 이런 풍경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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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우물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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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인물로  찍다가 바꾸지 않았더니 사진이 너무 밝게 나왔네요.   완당 김정희 선생의 묘입니다. SANY4273.JPG

          고택 오른 쪽에는 증조부모의 합장묘가 있고   이렇게 화순옹주 정려문이 있습니다.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는 13살에 시집와서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자 열흘을 굶어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네요.

         아버지 영조가 말렸는데도 .... (아마 남편을 무지하게 좋아했나봅니다. )

       영조는  괘씸해서 열녀문을 내려주지 않았는데  정조임금이 조선왕조400년간 역사에서 처음나온 왕실의 열녀라고

       열려문을 내려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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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증조부가 세운 경주김씨 원당 사찰로 지은 화암사가 있습니다.   액자에 세한도가 보입니다.

세한도는 완당이 제주도 유배시절 고마운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과 글씨로 완당 예술의 최고 명작으로 손꼽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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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암사 뒤뜰에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는데 이 곳에 완당선생이 새겨놓은 글씨가 있습니다.

                                           "천축고선생댁"  (천축국의 옛선생댁=석가모니의 집= 절집)

        사실 이런 글씨가 남아있다하니  대학자이며 금석학의 대가이며 또한  예술가인 그 분의 자취를 보고 싶었습니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교수 의 책을  읽고 이곳에 와볼 생각을 했는데  책을 다시 보며 복습하고 사진과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오늘 무릎팍도사에 그 분이 출연합니다.

  "좀 있다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