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숙명(宿命)은 바꿀 수 없고 운명(運命)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거친 자갈밭을 걷는 대신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걷는 것처럼 살짝 조절할 수 있다.>
바꿀 수 없는 숙명의 수레바퀴인 운명은 곧 그 자체가 숙명일진대
도대체 이런 웃기지도 않는 말장난이 어디 있는가?
그 어떤 이유로든 죽음을 택하는 사람,
죽을 용기면 무슨 짓이든 못하겠냐 하며 떨치고 일어나 나중 크게 성공하는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 살아지는 사람,
즐겁게 사는 사람,
괴롭게 사는 사람,
슬프게 사는 사람,
신나게 사는 사람
그 모든 게 다 운명이고 숙명인 것을...
오늘 아침엔 배우 최진실이 자살(?) 한 기사가 컴화면을 우울하게 한다.
마음이 내내 아프네요.
용상욱님도 울적하시죠?
죽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마음의 병이 짙어진 것이지요.
우울증이 아니면 어떤 상황의 누구에게도 죽을 용기는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울이라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죽음을 상상할 수는 있을 지언정 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주변 사람들이 최진실의 병을 더 심각하게 알아주고
전문의로부터 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런 일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술이 준 순간적인 용기일 수도 있겠지요.
운명이었을까요?
이미 지나버린 일,
아픈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용상욱님, 일부러 댓글 허용을 안 하신 것은 아니지요?
바로 위의 댓글을 쓰고 났는데 보이지 않아서 깜짝 놀랐어요.
본문으로 들어가서 봤더니 '댓글 허용'에 체크가 되어 있지 않네요.
체크해서 댓글을 달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댓글 쓰는 난이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댓글을 쓰지 못하셨을 거예요.
(관리자 모드에서만 보인답니다)
요렇게 체크가 되어 있어야 댓글 쓰는 난이 보이고 실제로 쓸 수 있답니다.
반대로 댓글을 받고 싶지 않다면 저렇게 체크를 해놓으면 되겠지요.
영주 님 죄송했습니다.
사실 이 글에 대해서는 아무 댓글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주님 말씀처럼 그 우울증이라는 거 참 무섭습니다.
정말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배우 최진실의 자살이 공인으로서의 극단적인 행동과
파장이 충격을 주는군요.
자살이 사회병리현상이라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일어서 자수성가하고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그녀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운명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가슴아픈 일이군요.
누구나 말을 합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난관을 극복할 힘도 남아있지 않겠는가 하구요.
이번에도 인터넷 살인이 아닌지 개탄스럽군요.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 네티즌들의 비난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화려함이 결코 행복이 아님을 알게하고 평범하게 살아감이
얼마나 힘든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부귀영화는 뜬 구름 같은 것(floccinaucinihilipilification)임을 깨달아 갑니다.
현실에 만족하려 노력하고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행복을 멀리서 찾지 않겠습니다.
가을에 주렁주렁 달리는 과실처럼 주변에 달린 행복을 선배님과 나누렵니다..
운명이 따라주는 죽음의 잔을 피하지 않은 한 유명 연예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도 산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오늘 운명을 개척하며
삶을 영위해야겠지요.
모두 힘을 내야지요.. 그리고 다시한번 감사해야겠군요.
오늘 살아있음을. 말이죠.
아직 어린 자식을 둘이나 남겨두고 세상을 버릴 때는 오죽 했겠습니까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서 늘 다 알지 못합니다.
세상이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고
사람들은 공인(公人)이든 아니든 많은 면을 지니고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의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재단(裁斷)은 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각자 자기의 그릇대로, 운명대로 살다 가는 것이지만
오늘 어쨌든 안타까운 마음에 젖는 것도 오늘의 내 운명입니다.
울며 불며 매달렸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는 일을 저는 이해를 못 한답니다.
일본인들처럼 명예를 위해 죽는 이도 있기는 하지만요.
어찌되었든 나를 내가 죽이는 것 "살인"입니다.
태양 때문이라는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도 생각이 나기도 하고요.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한 많은 여인의 명복을 빕니다.
산학 님!
끝까지 친절하시군요. !!!
自死라는 자동사대신 스스로를 죽인다는 自殺이라는 타동사.
참 중국어는 촌철살인입니다.
개스관을 물고 자살한 가와바다야스나리,
"인생은 不可解"라는 말을 남기고 죽은 시인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 젊은이가 죽어간 게곤노다키 폭포,
대낮에 추종자에게 목을 내맡겨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등
일본은 유독 죽음의 미학을 신봉하곤 하지요.
그들은 散華해버리는 벚꽃에서 죽음의 미학을 보기에 그리 벚꽃에 미친다지요..
태양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그래서 결국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뫼르소.
최근 중국 영화 <야연>에서 독약이 든 줄 뻔히 알면서 죽음의 독배를 기꺼이 마시는
황제가 보여주는 장면도 참 죽음의 미학의 극치로 보이더군요. 내가 그 황제라도 죽고 싶을만치....
하지만 슬픔의 미학까지는 좋지만 죽음의 미학은 "굵고 짧은 생을 살아라" 고
아무리 칼라일이 부르짖었지만 어느 종교에서나 자살을 가장 나쁜 일, 큰 죄로 규정하듯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겠지요..
특히 타력신앙이 아닌 자력신앙인 종교나 심령과학에서는
이렇게 몸을 받아 있는 동안에 부지런히 갈고 닦아 解脫의 경지에 가도록 하라 하지요.
심지어는 天使들도 지금 몸을 받아 있는 우리 인간을 제일 부러워한다지요.
우울하다는 것과 우울증은 엄연히 天地차이지만
세상은 참 어쩔 수 없이 죽음의 유혹이 도처에, 그리고 늘 서려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산학 님!
그 누구는 누구였습니까?
모두에게 !
우린 살아 있어 행복 합니다
요즘은 100년에 한번 지나는 공항 가운데 있기에 도처에서 어렴에 하소연을 하기에
여기 홈에 들어와 누리는것 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지난 여름은 후배 딸이 병석에 있어 후배가 손주 손녀 까지 간호 하느라고 애쓰는 소식이 있었기에
그때도 선배로서 그랬습니다
오늘 여기는 월욜입니다 최근 몇주를 BK MONDAY에 시달리지만 지는 숨쉬기에 행복 합니다
어린 아이를 두고 책임 없이 그렇케 가는것은 사회를 어지렵히는 일입니다 [우울증 환자?]
사낙 후배!
두어달전 여기어린 두 아이를 둔 암 환자인 엄마가 방송에다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아품과 도움을 호소해서 하여금 따뜻한 맘과 손길을 보냈지만
결코는 가 버렸네 ~
울며 불며 방송을 탔던 그 목소리가 바로 위에 그분 같이 징 하구먼 ~
허나 숨을 쉬고 있으니 계속 감사하며 어젠 어려워 하는분 ~
왕복 140마일에 스키장 언저리에 사시는분을 방문하러 갔었습니다
인적이 드물고 집은 절벽에 붙여 지어졌더군요 [ 절같은 으시시 별장!]
그 언저리엔 모두다 그런것을 즐기는이들 천국이더군요
미국이 문제가 그 어느나라보다 외로운이들이 10000 다는것이죠
미국 남편이 그런 환경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부인에게는
넘 외로운것! 이제 눈이 올터이니 눈속에서 5개월을 지내야 한다는군요
방문하며 돌아오는 길은 있어야 할 비도 없기에 어우러진 오색 비경을 헤치면서
즐거웠군요 뒤엔 80순 독거 노인이 즐거워 하시기에 더욱이였습니다
밤엔 갈을 방에 가득 드려 놓으려고 카텐을 열어 제치고 잠을 청했습니다
창너머 엔 15-20 메타 짜리 상록수 수십구루가 건강하게 내 방을 지키고
사이 사이 이름 모를 새가 구르륵 구르륵 짝을 그리워 하는것 같으나
곧 아침이 되니 숙면이였군요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