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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하나로 살아온 세월
꿈같이 흘러간 지금
당신의 곱던 얼굴, 고운 눈매엔
어느새 주름이 늘고
돌아보면 구비구비 넘던 고개길
당신이 내 곁에 있어 등불이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여서
이 못난 사람 위해 정성을 바친
여보,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한마디 뿐이라오   ('부부의 정' 노래 가사)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음에 직면하고 있을때 다른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다.
병원이 다르기 때문에 잠시 나와서 어머니를 만나 뵐 수도, 마지막 인사도 하실 수가 없으셨다.
감정이 풍부해서 더 상처 입기 쉬운 아버지께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의 힘든 모습 때문에 쇼크를 잡수셔서 혈당이 오르고
횡설 수설까지 하셔서 입원한 것이니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기 조차 겁이 나는 일이었다.
 
동생은 처음에 아예 모르게 장례를 치르자고 했다.
주치 의사 말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보면 쇼크로 더 나빠질게 뻔하다고
죽은 모습을 보이지 말라 하는 바람에 동생은 그렇게 주장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생각하는 식구들이 더 많았다.
64 년을 함께 하신 부부가 헤어지는 마당에 어찌 모르게 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나중에 아시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 꺼냐고 그러면 안된다고 목소리들을 높였다.
결국 조금씩 조금씩 소식을 흘려서 마음을 강하게 잡숫게 하며
돌아가신 것을 천천히 알리는 것으로 의견 절충을 하게 되었다.
 
잠시 양노원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장례식에 오셨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꿈만 같아요." 라는 한마디를 자꾸만 외우시며 사람들의 위로에 대답하셨다.
오랫동안 몸 약한 어머니를 감당하셨기에 언젠가 먼저 보내리라는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으셨지만
그래도 그 안타까움이야 말로 할수 없었을 터...
 
사흘 후 불편해 하시던 양노원에서 아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네 엄마에게  내가 노래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불러 주었어야 했는데..."
그래서 "무슨 노래요, 아버지?" 여쭈었더니 '부부의 정'이라는 노래 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번 해 보세요." 라고 하고 대신 들어 드리기로 했다. 
50 년도 더 된 촌스런 유행가 가락에 절절한 아버지의 설움이 묻어 나왔다.
평생 어머니의 귀에 몇번이나 불러 드렸던 노래였을까?
가사를 87 세나 되어도 안 잊어버리고 잘 외우시는 아버지의 기억력에 새삼 놀라진 않았지만
그 따뜻한 정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절대로 이만큼 사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늘 60 도 못 살줄 알았지만 80 을 넘어 산다고 감사하시던 어머니...
시간이 되면 약을 한알씩 날마다 바치던 정성,
마음을 하나도 상해주지 않으려 하신 아버지의 다정한 마음 씀씀이...
어머니는 짜증을 내신 적이 많다. 늘 몸이 아프니까 그러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잘 참아내신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안 싸웠어"
아버지 기억에는 어머니의 짜증이나 신경질이 조금도 싸우자는 것 같이 안 느끼셨던 모양이다.
그런 아버지께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지 모른다.
 
아버지께서 가만히 혼자 부르신 노래...
내가  대신 들어드린 그 노래를 어머니는 하늘에서 같이 들으셨을까?
만약 들으셨다면 홀로 두고 떠나는 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좀 숙이시고
부끄러워 하시면서 들으셨을 것 같다.
감정이 자주 오버 되시는 아버지께 '아이참~"핀잔을 주시며 겸연쩍어 하시지만 
속으로는 웃으면서 들으셨을 것이다.
"사랑합니다."
64 년 동안 한번도 한눈 안 파신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 사랑의 고백이
참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니까...(징검다리 9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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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되신 아버지는 노인 아파트에 살고 계십니다. 그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아버지께 미국 시민권을 빨리 따서 영주권 없는 노인을 하나 구제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한달 전 일입니다) 아버지는 그러마고 선선히 약속을 했던 모양입니다. 얼마나 복잡한 일이 그 일 안에 들어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직은 안되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어떤 낯선 여자 노인네가 새 어머니로 들어 온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정략결혼인지 뭔지 모르지만 어쨎든지 우리 아버지 아파트에 그 노인이 있다면 우리가 아버지 아파트도 가기가 어렵고..이제까지 꺠끗히 살아오신 아버지의 일생이 마지막에 그 사람으로 인해 어떤 파문을 가져 올지도 모르고...

아직 70 대 이시라면 우리가 앞장 서서 새 어머니를 얻어 드릴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 87세 노인에게 새 장가를 가라는 이웃 분들이 제 정신일까요? 아마도 작년까지 채소농사도 지으시고 누구보다도 여유가 많고 늘 행복하신 아버지를 남몰래 좋아하는 여자 노인네들이 아주 많은 모양입니다. 워낙 다정 다감 하시고 인격적이고 자상하시니 그럴만도 하지요! 어머니 생전에도 여자 노인네들이 아버지께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우리에게 귀띔해 주셨던 것도 기억나는데 그렇다면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입니까? 이제 돌아가신지 두 달도 안되어 재혼을 꾸미려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당황과 분노입니다.

어쨎든지 아버지께서 건강하시고 인기도 좋으시고 가끔은 슬프시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노년을 지내시는 것에는 감사할 뿐입니다. 대체로 부부가 서로 정이 많아 행복하게 살았다면 한사람이 먼저 갈 경우 재혼을 빨리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설마 우리 아버지가 그 케이스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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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바라보아요

그댄 정말 가셨나요

단 한번 보내준 그대 눈빛은 날 사랑했나요

또다른 사랑이 와도 이젠 쉽게 허락되진 않아

견디기 힘들어 운명같은 우연을 기다려요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난 널

너무 사랑했었나봐요

그댈 보고싶은만큼 후회되겠죠

 

같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면

서러웠던 눈물이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겠죠

 

날 위해 태어난 사람 그댈 이젠 떠나줘요

힘들어 지쳤던 그댈 그리워하며 살아가요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그댈

난 사랑할 수 없었나봐요

 

이젠 그저 바라볼 수 밖엔 없겠죠

나 살아가는 동안 다시 만난다면

차마 볼 수 없음에 힘든 눈물을 흘리죠

나는 정말 그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