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위기는 기회" -- 이것도 젊을 때의 예기라!
급격한 변화에 느끼는 위기감
마음이 젊으면 가능한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나이의 벽을 넘기란 어렵겠지?
미 대통령 후보 멕케인(McCain)의
이메일 쓸 줄 모른다는 고백을 보면 위기인데
처연하게 대처하는 72세의 미 대통령 후보 처럼 말이다.
변화 속에 변하지 얺는 진리가
동양의 道에서 보여지는 참 가치 같다는 네 고백
나도 끄덕인다.
노인네들이 읊기에 딱 맞다 싶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님이요
그렇다고 중용이라 해도 그게 무엔지
뭐라 꼬집을 수 없는 道의 알맹이
누군가 그러더라.
道는 물과 같다고.
위 ?아래 한길로 흐르되 어느곳에든 채움이 있으되
유연하며 자유스러우며,
누구에게나 필요하나 그렇다고 교만하지 않는…..
사람답게 살려고 발버둥칠 때 추구되는
眞, 善, 美, 和, 愛, 正, 淑, 등 등....
< 道> 란 압축된 단어로 밖에 달리 설명될 수 없어서가 나온 지혜의 표출같아.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이 보여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이
아가페적 <사랑>이란 언어 이상으론 표현할 수 없기에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거라고 보여지네.
그렇담, 결국 道이건 그리스도의 사랑 (愛 보담 더 포괄적) 이건
인간을 포함하여 무생물까지 모든 것과의 <관계>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내 자신을 보물처럼 여기듯 "내가 아닌 他(타)"도 아끼는 삶에 필요한 요소들을 몸과 가슴과 혼이 다 품어야 한다고
어찌보면 동서고금에서 한결같이 동감하고 그것을 향한
인간의 안스러울 만큼의 발버둥이 아닐까 싶다.
道 도 그리스도의 사랑도 우리의 삶에 그대로 묻어나게 하기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이기심/욕심이 너무 지배적이라서
상그레라를 꿈꾸고 천국을 향하듯이
그래서 종교로 남을 수 있는거 아닌가 싶다.
분쟁과 논쟁의 불씨가 쉽게 일기 쉬운 “종교”란 화두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무거운 돌을 두드려 본다.
`정례야~
위기는 기회다 라는 말도 젊은 시절에 해당하는 거드라구.
급격한 변화 마저 위기로 느껴지는 빠름이 두려운 나약한 나이에 이르렀어
세상을 바꾼 인터넷 혁명!
앞으로 또 어떤 혁명이 나타나 우리 노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까?
나이들수록 동양의 道가 변하지 않을 참 가치처럼 생각되는구나
아 참 너는 기독교의.....그럼... 사랑이니?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 그 또한 참 가치가 되겠구나.`
나의 댓글....이에 대한 정례의 댓글이 멋있어 본문으로 올렸다
정례야 괜찮지?
`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님이요
그렇다고 중용이라 해도 그게 무엔지
뭐라 꼬집을 수 없는 道의 알맹이`
그래서 두리뭉실이 좋은 개념으로 통하는 사회 분위기,
좋은게 좋은 거라는 애매모호가 패스되는 기본선이 무너지는 사회가 된 것이라 생각해
융통성이 얼렁뚱당은 아닌데..
원만함이 애매모호는 아닌데 말이다.
이 점이 道의 수난이지.
나는 기독교는 잘 모르지만 네가 말하는 `사랑`으로 그야말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경선아,
“얼렁뚱당”, “애매모호”가 道의 방식은 아닐진데
동일시 되는 정서가 만연하면
“道가 수난받는” 사회가 된다는
뛰어난 통찰력 높이 사고 싶구나.
그래서 위기(危幾)가 아닐끼?
그럼에도 불구하고 .
“위험은 기회임 (Danger is an Opportunity)을 증명한 사람들이
인류 역사에서 기억되는게 아닐까?
성자, 현자, 선구자, 예언자, 개혁가, 등으로 기억되는 분들….
종교 창시자들 뿐만 아니라 철학은 물론 문학, 예술, 의학 등을 통해서도
근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道의 정수로 들어가는 듯 싶다가도
일단 사람들에 의해 제도화/조직화되면 경직의 시작이 되고,
그 순간부터“道가 수난받는” 위험으로 반전되는
역사의 반복 가운데 오늘날 우리도 예외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게 道에 가장 근접한 걸까?
그리고 근접이라는데 자족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우리일진데
그 한계를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절대화할 때
위험이 기회가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위험 벼랑 끝까지 몰아가
결국 멸망에까지 이르는 거겠지?
지금 우리 세상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리고 그런 세상을 줄자 (0 -? 10)에 놓으면
난 어디쯤에 와 있나?
벌써 20년이 되어온다.
성격 유형에 대해 배운 적이 있어.
16가지로 나뉘더라구.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단 16가지 성격으로 구분짓다니!
흑백으로 나누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하나씩의 섬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렇다면 마음에 드는 섬과 들지 않는 섬으로 큰 분류를 해놓고....
그런데 마음에 들고 안들고의 분류는 부질없기도 해라
하나씩의 섬에 스스로도 모를 괴물들이 감춰져 있다는 의혹...
그래서 道도 닦아야 하고 기도도 해야하고 等等
다행인 것은 좋은 쪽만으로의 다양화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다양성 때문에 예술의 꽃은 피어난다는 생각이다.
우리 삶의 허기짐을 메워주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수단인 예술.
예술의 主 소재는 결국 인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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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뒤죽박죽인 세상을 휴머니티로 끌어 안을 수밖에 없는 인간 관계의 부조리!
가만있자니 무관심해 보이고 쓰자니 뭔지 어른들 이야기에 애가 끼어드는 것 같게도 느껴지고......
나도 자격지심 있나봐? ㅎㅎㅎㅎ
정례의 말에 동감이야.
요즘 CTS(기독교 TV)는 정말 역겨울 때가 있어.
기독교 방송과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는데 기독교방송의 높은 수준에 비해 너무 원색적이더라.
내가 믿는 하나님, 아니 내가 믿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너무 격하시켜 버리는 듯한 불쾌함!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어야 미래가 있듯 내 가까운 곳을 뛰어넘는 멀리만 있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지?
기독교의 근본사상을 투쟁과 쟁취라고 바꾸게 한다면 나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씁쓸한 기분!
허지만 종교는 이성으로 믿어지는 게 아닌만큼 난 나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단다.
나의 방식으로 말이야.
이런 이야기 읽는 이에게 혹시라도 거부감주는 건 아닐지 좀 조심스럽긴 한데
그냥 내 생각을 한 번 표현 해보고 싶었어.
미안해.
재미없게스리
심각하게 생각하는 고약한 버릇 땜시
니네들 다 피곤하게 만들었네.
명옥아,
믿음은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참 단순한 거 같애.
그리고 "종교는 이성으로만 믿어지지 않는다"는 네 고백
그거 하나로 충분한건데. 그치?
순호야,
내가 미안하지.
편안하게 사는게 얼마나 좋은건데.
내 경험담 한가지.
처음 미국교회에 부임해서 첫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지.
Good morning! 으로 시작해서 묵도.... 설교... 축도의 마지막 부분 “아멘”까지 몽땅 써서 읽었는데..
나한테 참 잘해주시던 할머니 한분이 꽤 시일이 지난 후에 그러시더라고.
어찌나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떠는지 맨 뒤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도 안스러워서 혼났데
그러기를 매주 못하는 영어로 설교 준비를 할려니 내 삶이 어떻겠니 상상될거야.
"우리 엄마, 토요일이면 온 집안을 헤메고 다녀요."육아원 다니던 한샘이가
교회에 가서 엄마 사는 모습을 그대로 예기하는데 아이에게 거짓말하라고 할 수도 없구
.
단위에 서면 사람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다 보이는데
꼬맹이 한샘이가 예배시간에 어찌나 여러번 고개를 파다닥 숙이는지.
그리고 집에 와선
"엄마, 무슨 영어가 그래." 그런 핀잔이 민망한지 그래도 좀 철이 들었다고 오빠 한뜻이는
"엄마, 참 잘 했어. 근데 어떤 말은 ”Doesn't make any sense." 그러는거야.
"한뜻아, 그럼 그럴 때 마다 적어 놓았다가 뭐가 틀렸는지 가르쳐줄레."
한뜻이는 주일날이면 주보 용지에다 꺼적이는데...
그 놈도 너무 어려서 틀린 것 까지는 알겠는데 그걸 설명할 줄 모르고 끙끙대는거야.
그런 엉터리 영어실력에다가 액센트는 한술 더 떠서 내가봐도 기가 막힌데
교회에선 다른 목사님 모시자는 예기가 전혀 없으니 참 이상했어.
그래서 4년째던가 목회 협조위원회 모임에서였지
영어 실력도 없고, 게다가 액센트까지 있는 나를 계속 목회자로 받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어봤어.
어떤 분이 그러더라.
내 설교가 "쩍"이 없어서 듣기에 편하데 (grounded on earth).
남자분들 설교는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라나.
그래서 아참 했다.
일본에 있을 때 조용기 목사님이 큰 전도 집회에서 영어로 설교하셨는데
어찌나 쉬었는지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거던.
바로 그거였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야.
설교는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이면 된다더라.
단문장에다가 그냥 그냥 사람 사는 예기로 성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
그래서 엑센트는 미국분들 말데로 귀에 익히듣다보면 문제될게 없고
동네 신문보고 나오는 예기, 아이들 학교 예기, 집에서 다툰 예기로 만들어진 설교 예화들이 바로 자기네들 예기라나.
내가 미국교회에서 10년 이상 버틴 거
사람들 편하게 와서 예기하면 잘 들어주고, 집에서 하듯 기도드리고, 하나님 이야기 쉽게 풀어 나누고…
영어가 신통치 않으니까, 또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잘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건데 말이다.
생각을 깊게 하는 버릇이 나쁜 거 같지는 않은데
그걸 쉽게 우리 예기로 푸는 능력이 부족하단다
.
그래서 내가 인일 홈피를 좋아하나봐. 편안하니까.
자꾸 보면서 배우고 싶은데 어릴 때 버릇이 잘 안고쳐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