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이 글을 읽고 "청춘은 아름다워라" 했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동백장"사건 이후 B와 나는 누가 알까 숨어서 만났다.
우리는 절대로 불륜이 아닌데도,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남녀처럼 조마조마 했다.
괜시리 군인인 K가 걸린 것이다.
나를 꼭 챙기라며 입대했던 K가 우리 사이에 알게 모르게 숨어 있었다.
그래 그랬는지 다른 친구들이 아는 것도 두려웠다.
모임 전체가 명동에서 만나기로 하면, B는 이미 3시간 전에 인천으로 내려와 같이 삼화고속을
타고 서울로 오고는 했다.
그러다 K가 휴가라도 나오는 날이면, 이핑게 저핑계를 대고 빠지고는 했다.
어쩌다 부득이 만나게 되면 그렇게 자리가 어색할 수가 없다.
그러다 B도 입대를 했는데 바로 배치 받은 곳이 월미도 였으니............
우리는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어느 일요일
면회만을 기다리는 그를 위해 월미도로 갔는데, 그날따라 하필이면 친구들이 들이 닥친 것이다.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꼼짝없이 현장을 들킨 것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모든 비난이 바로 나에게 쏟아졌다.
군대에 간 사이 고무신 거꾸로 신은 나쁜 X
친구의 친구를 유혹한 여우같은 X
못쓸 년 등등
그러나 나는 결백하다.
왜냐하면  단 한번도 K를 남자로 느껴 본 적이 없고 그냥 무색무취의 순수한 친구였으니까.
친구들의 충고가 차갑게 들리고 드디어 제대를 앞둔 K가 내 앞에서 술에 취해 울고 있었다.

      숨어서
      네 곁에서
      서성거렸지.
      말하면
      떠나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
그 당시는 순수해서 그런 비난을 감당할 수도 없었고
나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게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깊은 상처만 남기고 떠나버린 나의 여름밤의 꿈이었다.

어느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는 닮은 곳을 찾다보니 발가락이 등장했듯이
별로 예쁜 구석이 없는 내가 "발이 예쁘다"라는 말에 홀랑 넘어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그래도 내가 B를 많이 좋아 했는지, 그 후로 하나의 습관이 생긴 것이다.
발을 끔찍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손에는 손톱 손질은 커녕 메니큐어도 하지 않는 내가 발바닥에 조금이라도 각질이 생기면
반질반질 하게 해 놓아야 잠이 오는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등산을 갔다 계곡에서 탁족이라도 할라치면
모두들 내 발을 보고 감탄을 한다.
어쩜 그렇게 삶아 놓은 계란처럼 예쁘냐고....,

디들 모르지요.
어리석게도 내가 "발이 예쁘다"라는 말 한마디에 어떤 상처를 입었으며
그 기억때문에 발에 대해서만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 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지울 수 없는 기억은 때로는 습관으로 남는다는 것을.

나에게 있어 "청춘은 아름다워라"가 아니고 "청춘은 상처"만 남기고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