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직선(直線)의 문명(文明)만으로 살 수도 없고 곡선(曲線)의 문화(文化)만으로 살 수도 없겠지요.
또한, 우리들은 자신(自身)이 현재(現在) 처(處)한 입장(立場)과 욕구(欲求)에 따라 필요(必要)한 것 좋은 것이 다르게 미련입니다.
뜨거운 사막(沙漠)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갈증(渴症)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세계적(世界的)으로 유명한 어느 '오케스트라'의 공연(公演) '티켓'을 준다한들 아무런 고마움도 못 느낄 것입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한 모금의 '물'이 더 귀중(貴重)하고 필요(必要)할 터이니까요.
우리네 삶에서는 이처럼 "그 무엇이 어떠하다."는 절대적(絶對的)인 정의(定意)나 불변(不變)의 가치(價値)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나에게는 처치(處置) 곤란(困難)의 불필요(不必要)한 것이라도 남에게는 더 없이 필요(必要)한 것일 수도 있고,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는 나쁜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길고 짧음도, 크고 작음도, 높고 낮음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는 아래 위, 전후(前後) 좌우(左右), 옳고 그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러니, 이 세상(世上) 그 무엇인들 '좋다.' '나쁘다.' '선(善)이다.' '악(惡)이다.'를 어찌 단정적(斷定的)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옳음과 그름, 좋음(善)과 나쁨(惡), 필요(必要)와 불필요(不必要) 따위의 서로 상반(相反)되는듯한 온갖 모순(矛盾)들을 어떻게 조화(調和)시켜 어우러지게 하느냐에 따라 행(幸)의 길과 불행(不幸)의 길이 갈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勿論), 이런저런 모순(矛盾)들을 조화(調和)시켜 행(幸)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직 나'만을 주장(主張)하는 아집(我執)에서 벗어나 남의 처지(處地)와 입장(立場)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졌을 때라야 가능(可能)한 것입니다.
- * 저 절 로 * -
P.S.) 이 글을 '그 사람들'이 보기나 할는지.......,
김홍철 - 목동의 노래
목동의 노래 / 김홍철
웨기스 산에 오르면 요들레이~~ 사랑하는 님 있네 요들레이~~ 디 리리리립 요들레이~~ 디 리리리립 요들레이~~
목동의 흥겨운 노래 요들레이~~ 골짜기를 울리네 요들레이~~ 디 리리리립 요들레이~~ 디 리리리립 요들레이~~
들에 핀 아름다운 꽃 요들레이 우리의 사랑 위하여 요들레이~~ 디 리리리립 요들레이~~ 디 리리리립 요들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