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날개위에 품바 其 09

1: 냉면 살 게 나와.
자하문 옆 너른 공터에서 그가 손짓하고 있다.
냉면 좋아한다는 내 말에 맛있는 냉면 한번 사겠다는
M의 전화를 받고
부지런히 나왔다.  그를 태우고 자하문을 넘어가려는 데 한 300m정도 지났을 까
갑자기 M이 좀 천천히 가자며
저기 오른 쪽에 잠간 서잔다.
거기 딸 또래의 웬 젊은 여인이 서 있다.  “아 차 또 걸려들었구나.  녀석의 꼼수에...
”아무 사전 얘기도 없이 낯모르는 이들을 동반하고 나타나기 일쑤인
M,  그래서
그 버릇을 무척이나 싫어하던 나를 잠시 속이려고
그렇게
500m 좀 떨어진 곳에 여인을 한 명 동반한 것이었다.

2: 뽕짝 말고 없어요?
“야 상욱아 음악 좀 틀어봐라.”
차에 갖고 다니는 게 그런 종류뿐이기도 하지만 내 애청곡인 문주란의 <이슬비>를 튼다.  그런데...
“아이 그런 거 말고 ~~ ~~ 노래 없어요?”   그나마 유일하게 아는 외국어인 영어조차
Hearing이 좋지 않은 나는 무슨 소린지 영 모르겠다.   아마 표정이나 억양으로 보아
다른 곡 없냐는 소리인가 보다.   이번에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튼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뭇 몸까지 비비 틀며
 “아이 ~~--. 뭐 이런 노래 없냐?” 한다.   나중 보니
불란서 샹송과 칸초네를 그렇게 원어로 주문한 것이었다.
“미스 Lee가 수준이 엄청 높거든.”
“수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속으로 구시렁대고...

불어라고는 봉주르 와 며루치(=멜시) 정도,
이태리어는 오 솔 레 미오나 겨우 아는 무식한 내가
어찌 원어로 주문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나?
“짜식 지 멋대로 사전 귀띔도 없이 저런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남 열 받게 하네.”
에어컨이 빵빵 들어오는 차안에서 나는 덥기만 했다.   기자촌을 지나 어느 절 마당의
풀밭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눈다.   나는 시쁘둥한 표정으로 하릴 없이 날벌레만
쫓아내고...

친구가 한 턱 산다는 냉면은 별로였다.   물론 내 기분이 별로라 맛까지
그렇게 판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야 찬찬히 둘러보니 녀석은
꼭 끼는 홀태바지에 백구두,   그리고 샛노란 선글라스 차림의 그야말로
제비족에 다름 아닌 차림이었다.
 
“아, 당신이야?   여기 지금 용상욱 씨와 냉면 먹고 있어.”
“아니 뭐야 내가 녀석의 알리바이 증인 대용인가?”
계속 기분이 좀 언짢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그만 가자고 하니 M은 어디 노래방이나 가잔다.
“내가 지금 노래방 갈 기분인가?.”   그래도 겉으로 표현을 할 수는 없어
노래방에 애마 고삐를 달아맨다.

3: 노래방에서
“아까 보니 샹송이나 칸초네 등만 주로 즐겨 들으시는 듯싶은데 어쩌지요?
난 아는 게 뽕짝뿐이라서...”   그냥 불러보란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이런 저런
노래들을 풀어 제친다.   그 처자는 정말 노래솜씨가 영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자기가 편곡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가 리듬감이 없다.
아니 멜로디조차 없다.   난 그 여인이 몸 사래질까지 했던 문주란의 <이슬비>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그렇게 대충 좀 놀며 어영부영 한 시간 쯤 때우고 그 둘을 자하문
근처에 다시 내려놓고 왔다.
 
4: 외로운 늑대(=Lonely Wolf)

난 그날 기분이,  통쾌는 고사하고 그다지 유쾌하지도,  상쾌하지도,
명쾌하지도 못한 채 내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 후 다시 녀석과 어느 날 술자리에서 만났을 때 갑자기  “따르릉”
녀석의 휴대폰이 울린다.   잠시 받는가싶더니 녀석은 느닷없이 나에게
전화를 건네주며 받아보란다.   난 영문도 모르고 받았고...
바로 그 처자였다.    “한 번 보고 싶다나 뭐라나...”

그 무더운 한여름 밤에 <마른 꽃 걸린 겨울찻집>을 연출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던
내 모습과 <아~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로 온몸을 바쳐 절규하던 내 몸짓에서
그 처자는 마치 외로운 늑대(=Lonely Wolf) Pathos를 읽었고 그래서
<영혼의 깊은 울림>을 받아 나를 다시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는
M의 얘기다.
그 후에도 참 여러 번,   M과 만날 때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그의 핸드폰을 타고
날 보잔다.    언제는 그런 뽕짝 말고 샹송이나 칸초네 없느냐 더니...!
수준 높은 분 들 끼리나  잘 지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