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2008년 7월 13일.
여행을 떠나온 지 닷새째 되는 날.
오늘은 오전에 시내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여름궁전을 둘러 보고
오후에 시간이 되는대로 페테스부르크의 명소들을 관광한 후에 기차를 타고 핀란드로 간다.
우리 일행은 이제 시차도 완전히 적응을 하였고
매일 아침마다 7, 8, 9 에 맞춰서 움직이는 일에도 익숙하게 되었다.
7은 모닝콜 시간, 8은 아침 식사 시간, 9는 행장을 차리고 버스에 오르는 시간을 말한다.
오늘은 모두들 아직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기된 얼굴로 일찌감치 아침을 먹으러 나와
각자 자기의 인생을 움직이고 있는 <운명의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어제 우리가 본 오페라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서서히 삶의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서로의 속내를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동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먼 곳에 와서 내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남의 말 하듯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인양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들어주게 되는 것.
그래서 평생지기처럼 허물없고 가까운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이런 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9시 정각에 버스를 타고 여름 궁전을 향해 떠났다.
금빛 화려한 그 많은 분수를 모두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물의 낙차를 이용해서 돌린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건물 안에 들어가지는 않고 정원만 한 바퀴 돌아보았다.
러시아에는 <다차>라고 부르는 개인 여름별장 겸 주말농장이 있단다.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예프 사원으로 가는 길에도 예쁜 다차가 많이 있었는데
여름 궁전에서 페테스부르크로 오는 길에도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다차가 많이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주중에는 도시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 되면 주말농장 겸 별장인 다차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휴식도 취한다고 했다.
페테스부르크에서 만난 가이드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악도였는데
호리낭창 마른 몸매에 왠지 불쌍해 보이는 표정,
목소리는 가늘고 말투도 맥이 없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우리 일행이 엄마나 이모처럼 편하게 느껴지는지
쉴새 없이 종알거리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오가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는 마치 독백을 하듯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러시아의 물가가 얼마나 천정부지로 올랐는지,
집세는 얼마나 비싼지,
한국 음식은 또 얼마나 먹고싶은지 등....
그녀의 일화 중 한 토막.
한번은 김치 대신 깻잎지라도 먹고 싶어서 큰 맘 먹고 한국에서 들깨를 공수해 왔다.
사 먹으려면 너무 비싸니 씨앗을 심어서 이파리를 따 먹겠다는 심산이었다.
자기 소유의 다차도 없으면서 농사 지을 궁리를 하다니...
꼭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 처럼 말이다.
그 씨앗을 이웃에 사는 러시아 아줌마네 주말 농장에다 뿌려 달라고 부탁을 했고
마음 좋은 아줌마는 선선히 들어 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그녀의 씨앗에서 소출이 나왔으니 집 앞에 두고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그리도 먹고 싶었던 깻잎을 먹겠다 싶어 뛰어나가 봉투를 얼른 열어 봤더니
그 안에는 뿌리를 자르고 이파리도 다 떼어버린 들께 줄기만 소복했단다.
러시아 여인은 생전 처음 보는 그 야채가 줄기를 먹는 것인 줄 안 것이었다.
그녀는 기가막혀서 봉지를 내던지고 말았다.
먹을건 다 따버리고 쓰레기만 소복하게 담아오다니....
그 씨앗은 잎을 먹는 야채라는 이야기를 안해 준 것을 후회해도 이미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다시 몇 개월을 더 기다려서야 깻잎을 먹을 수 있었단다. ( 계속 )
갑자기 로빈손 크루소가 생각나네.
밀을 씨 뿌려서 빵을 만들어 먹기까지 까지 몇 년을 기다렸쟎니?
그래도 결국 해먹었으니 그 아가씨 피아노도 잘 해 내겠다.
난 요즘 4층 엄마가 옥상에 상추 심어 놓고 따먹으라고 해서 몇 번 따다 먹었는데
더우니까 거기도 올라가기 싫던데.................................
놀라운 사람들이 많네!!!!!!!!!!!!!!!!!!!!!!
계속하세요.
좋아하는 책 아껴 읽는 것 처럼 열심히 읽고 있다.
계속 화이팅~
명옥아 ~
너도 대단해.
뭐든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요즘 피아노 연습해서 우리 즐겁게 해주는 것도 그렇고 언제나 열렬 독자가 되어 기운 북돋워 주는 것도 그렇고~
그리구 재미있쟎아?
우리가 댓글 하나 쓰고도 그 다음 글을 기다리는데 이 아름다운 글을 공짜로 읽었으면 추임새 정도는 넣어주는 게 예의지
( 위에서 계속 이어 씁니다 )
어느 나라에나 전설이 있고 영험한 신통력을 가진 존재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영역을 뛰어넘는 소원을 이루고자 하거나
도저히 다스릴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살려 달라고, 낫게 해달라고, 이루게 해 달라고, 도와 달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간구하며 매달리고픈 순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神보다는 눈에 보이게 형상화 한 신적 존재를 찾아 의존하고픈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신령한 건축물을 짓기도 하고, 성화도 그리고, 신성한 조형물도 만들곤 한다.
우리가 오후에 찾은 카잔 성당도 그런 마음으로 지은 건축물이었다.
옛날에 카잔 지역에 있던 어느 성당에서 불이 났다.
불은 성당을 송두리째 삼켜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말았는데
잿더미 속에서 불에 타지 않은 성모마리아 이콘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성모의 영험한 능력이 가득하여 불길을 이긴 것이라 여기고
이 그림을 페테스부르크로 모셔다가 커다란 성당을 짓고는 <카잔성당>이라 불렀다.
카잔 성당은 여느 성당과는 달리 웅장하고 시커먼 대리석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찾아 갔을 때에도 촛불을 밝혀 어둑하게 느껴지는 성당 안에는
순례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기적의 성모마리아> 이콘에다 키스를 하며 자기의 소원을 빌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기에 와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 병도 낫고 소웓도 이루게 된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가 절을 하듯이 숭배 대상에게 키스를 하는 모양이었다.
성당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양초에 불을 밝히며 무릎을 꿇고 한바탕 빌고는
성당에 가득한 수많은 이콘이나 죽은이의 시신을 모셔 놓은 관들 중에서
특히 의존하고픈 대상에게 머리를 조아려 입을 맞추는 그들을 나는 물끄러미 구경하였다.
세르게이예프 사원에서도 그랬고 모스크바에서도 그랬다.
예수님을 섬기고, 같은 성경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나 카톨릭과는 확실히 다르고 낯설었다.
같은 종교라 할지라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발전을 하며 토착화 되는 모양이다. (계속)
( 바깥에서 본 카잔 성당 )
( 기적의 성모 마리아 이콘 )
원래는 러시아를 침공할지 모르는 스웨덴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요새로서의 기능은 전혀 발휘를 못하고 감옥으로 사용되고 말았다.
피터 폴 요새는 뾰족한 탑의 총 높이가 122.5m나 되어
시내 어느 곳에서나 볼 수가 있는 페테스부르크의 명물이다.
한번은 화재가 나서 이 탑이 훼손된 적이 있었는데 너무도 높고 뾰족해서 쉼사리 수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포상금을 걸고 수리할 사람을 찾았는데
야로스코프라는 사람이 나타나 말끔히 수리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그런데 야로스코프는 지독한 술꾼이어서 포상금을 모두 술로 바꾸어 마셔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술값도 없는 가난한 술주정뱅이로 전락해버렸다.
이를 딱하게 여긴 왕이 그에게 표찰을 만들어 주며 이것만 보여 주면 공짜로 술을 내어주게 했다.
계산은 나중에 왕이 하기로 하고...
술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갈수록 술이 술을 마시다가 결국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되고 마는 것이어서
야로스코프는 왕이 준 표찰을 수도 없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때마다 새로 표찰을 만들어 주던 왕이 한 꾀를 내었다.
그를 만취하게 만든 후에 그의 목에다 지워지지 않는 표식을 새겨 넣었다.
그 후부터 그는 술이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술집에 가서 목에 있는 표식을 톡톡 치기만 하면 되었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지금도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우리 술 한 잔 할까? 하는 바디 랭귀지가 목을 손으로 톡톡 치는 것이라고 한다. (계속)
( 피터 폴 요새 )
멋지다.
왕의 신하 사랑이 그 쯤은 되야지.
그 왕도 술을 끊게 하고 싶었을텐데.............................
<피의 사원>은 이름과는 달리 건물 전체가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이었다.
카잔 성당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 사원은
암살을 당한 알렉산드로 2세의 핏자국이 튄 불행한 역사의 현장에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 3세가 세운 것이다.
더 이상 피를 보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러시아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담아 건축을 했는데
유명 화가들이 직접 도안을 한 모자이크화가 가득 하여 건물 전체가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특히 여러가지 색깔의 돌로 만든 모자이크의 견고한 느낌이 좋았다.
< 피의 사원 >
핀란드로 가는 기차 안에서 먹을 도시락까지 챙겨 들고는
다시 겨울궁전 앞 공원으로 갔다.
어제 비가 와서 아름다운 네바강변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였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날씨가 쾌청하니 좋다.
네바강 옆에 있는 작은 숲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니 더욱 푸르다.
강 한복판에서는 분수가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 하얗게 부서지며 피터폴 요새를 안고 있고
강 저편에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건물이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 겨울궁전 앞 네바강의 분수와 피터폴 요새의 금빛 탑과 숲 )
( 네바강에 병풍처럼 둘러 있는 건물들 )
신혼부부로 보이는 사람들 여러 커플이 떼를 지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흰드레스를 입은 신부도 있고 핑크드레스를 입은 신부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오직 초혼인 경우에만 흰 드레스를 입는다고 했다.
재혼식도 초혼처럼 떠들썩하게 하기는 하는데 신부는 흰색이 아닌 드레스를 입어야 한단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각각 증인 1명씩만 세우고 간단히 치르기도 하지만
며칠 동안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성당과 명소에서 사진을 찍는다.
신혼여행은 따로 가지 않고 이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모스크바와 페테스부르크 시내에서
하얀 드레스보다 색깔있는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더 많이 보았다.
초혼보다 재혼이 훨씬 더 많다는 증거다.
러시아에서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를 하는 부부를 찾아보기가 참 어렵단다.
하지만 그건 단지 러시아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상 풍조인 듯 싶다.
이렇게 쉽게 이혼하고 재혼하고 또 이혼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자꾸 번지다 보면
머지않아 평생 결혼을 한번만 하고 사는 사람들은 박물관에다 모셔 놓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계속)
( 하얀 드레스 입은 초혼신부 사진 찍는 모습 ) ( 핑크 드레스 입은 재혼신부 사진 찍으러 가는 모습 )
4시 4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 핀란드로 갈 것이다.
여기에서 핀란드의 헬싱키까지는 약 6시간이 걸린다.
러시아의 모든 기차역들은 목적지의 이름을 붙여 놓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며
우리는 진작부터 와서 대기하고 있는 기차에 올랐다.
짐이 많아서 기차가 연결되는 곳에다 가방을 산같이 쌓아 놓았다.
기차는 무궁화호보다도 낡고 비좁았다.
우리들 말고도 한국인 단체가 여러 팀이 있는지 기차 안이 한국말로 시끌벅적하다.
차창 밖에 가이드 아가씨가 보인다.
도시락을 포함한 짐도 다 실었고 가이드 팁도 다 받았으니 그만 가도 되는데
그녀는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의 전형과도 같은 그녀에게 우리 모두가 짙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모양이다.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강물이 있는게 분명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그 강물을 타고 흘러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니 말이다.
그녀가 돌아서서 슬쩍 눈물을 훔친다.
그 모습이 감동적이다.
천천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모자를 벗어 들고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우리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보이는 창에다 손을 흔들었다.
마치 딸을 두고 가는 것처럼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멀고 낯선 곳에서 눈물로 배웅해 주는 이를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녀에게 용돈이라도 한푼 쥐어줄 것을.....
힘들어도 잘 참고 견디라고 등을 토탁이며 따뜻하게 안아주기라도 할 것을.... (계속)
정말 멋진 표현이다.
그 강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애틋한지 모르겠다.
러시아 기행문 너무 좋았어요.
핀란드가 기다리고 있네.
우리의 춘선양 역시 멋져요~~~~
뻬쩨르(페테스부르크의 러시아식 발음)에서 핀란드로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나무의 껍질이 희끗희끗하고 쭉쭉 뻗어 곧게 자라는 자작나무는
내가 러시아에 와서 꼭 보고싶은 것 중 하나였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 속에 단골 엑스트라처럼 자주 등장하면서
동토 대륙의 추위와 눈에도 끄떡없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자작나무.
추운 밤에 페치카에서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그 나무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광활한 대지와 나무 위에 소복히 쌓인 눈, 밤새 달리는 기차가 떠오르곤 했다.
내 오랜 상상 속의 자작나무 숲을
이렇게 기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비록 눈은 내리지 않지만 내 오랜 갈망을 채우기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오후 3시로 느껴지는 강렬한 태양이 만들어 내는 白夜 때문이다.
5월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해서 6월에 피크를 이룬다는 백야는
밤 12시가 되어도 초저녁 어스름같은 어둠만 깔릴 뿐 칠흑같은 어둠이 없는 밤을 말한다.
우리가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을 보고 나왔을 때도
밤 11시 30분이 지난 시간이었건만 하늘은 여전히 훤했다.
오페라는 그다지 유명한 작품도 큰 감동을 주는 내용도 아니었지만
베르디 당시에 초연을 했던 유서 깊은 극장에서 보았다는 것과
백야를 체험하며 공연을 보았다는 것 때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았다.
말 그대로 <백야 축제>를 즐긴 것이 내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에어컨 시설이 아예 없는 기차 안으로 햇볕이 쏟아져 드니 덥다.
창문도 활짝 열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기차가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리는지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해가 드는 바람에 잠을 청할 수 없이 아주 덥다. (계속)
춘선아~
여행기 어쩜 그리 실감나게 잘 쓰니~
신영이 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강물이 있는게 분명하다"
그 표현 명문장이다.
가슴은 서늘하기도 하고 출렁거리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하니 말이다.
피의 사원은 정교하고 아름답고 네바강 분수도 너무 멋져~
후배를 잘 둬서 앉아서 러시아 다 가본것 같으네.
언젠가 가게 되면 너의 기행문 생각날꺼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어느덧 기차는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에 들어선 듯했다.
창밖엔 여전히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자일리톨 껌 포장지에 있는 사진과 똑 같은 풍경이다.
이 나무들은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하는 동안 가져다 심어준 것이란다.
덕분에 핀란드는 지금 울창한 숲을 지니게 되었다니 역사는 아이러니다.
러시아의 자작나무.
러시아인들에게 자작나무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자작나무 껍질은 벗겨서 바구니나 소쿠리를 만들고
나무는 곱게 다듬어 마트로슈카 인형을 비롯한 공예품을 만들고
뿌리로는 묵직하고 고급스런 가구를 만들고
수액은 자일리톨이라 부르며 먹는다.
어디 그 뿐인가?
모든 것이 얼어붙는 추운 겨울날에 페치카에 넣고 불을 지피면
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제 몸을 불살라 모두에게 따뜻함을 선사한다.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요긴하고 멋진 나무는
아낌없이 다 주고 다만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돌아간다.
내 삶의 자작나무는 누구였을까?
나는 누구의 자작나무로 살았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기차는 그림같은 뭉게구름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진 길을 계속 달린다.
여전히 해가 너무 눈부셔서 잠도 못드는데 생각에 지쳤는지 몸이 피곤하다.
한국은 지금 새벽 세시가 넘었을 텐데..... (끝)
다음 핀란드 이야기는 새로 방을 열고 쓸 예정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함께 읽어주시고
늘 격려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핀란드만 바다와 산림욕장 같은 숲이 잘 어우러져 나무랄 곳이 없었다./
페테스부르크 시내에는 네바강이 있어서 쾌적했는데
여름궁전은 바다를 아예 호수처럼 통째로 정원에다 들여 놓아서 쾌적함을 더했다.
참, 모스크바에도 커다란 강이 있었다.
모스크바 강.
모스크바라는 도시 이름도 강 이름에서 따 왔다고 했다.
강이 흘러가는 굽이를 따라 도시를 짓고 숲을 가꾸어서 그런지
모스크바에는 도심 한복판에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이 많았다.
내 상상 속의 모스크바는 얼어붙은 척박한 땅이었는데 말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 유산이라는 페테스부르크에도
아주 큰 강이 마치 바다처럼 흐르고 있었다.
강 이름이 <네바 강>이란다.
네바란 하늘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하늘 강>이 되겠다.
어제 갔던 겨울 궁전도 바로 네바 강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