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사모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3.이명구
운명의 힘에 이끌리어. ( St.페테스부르크 첫날 )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니콜라이 궁으로 갔다.
궁전에서의 점심식사.
마침 우리는 오페라에 갈 복장을 하고 있어서 붉은 카펫이 깔린 궁전의 계단과도 잘 어울렸다.
천장이 우리나라 아파트의 세배 이상 되게 높고
무도회를 열기에 적합한 넓은 홀에 우리의 식탁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옛 궁정의 시종 복장을 한 젊은 종업원들의 정중한 시중도 좋고
러시아식으로 요리를 한 수프와 샐러드, 쇠고기 요리도 아주 맛있었다.
무대로 쓰였을 앞쪽 가운데에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고
혈색이 좋고 금발인 러시아 여인이 아주 경쾌한 표정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더니 <백만송이 장미><백학>등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곡을 들려 주었다.
음악이 지니고 있는 신비로운 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녀의 피아노 소리는 내 심장 깊은 곳을 파고 들어와 온 세포 구석구석을 다 헤집고 다니며
내 안에서 잊혀졌던 기억들과 내 속에 있는 다른 나를 다 불러냈다.
늘 엉뚱한 꿈을 꾸던 유년의 나와 지독히도 힘들어하던 청년의 나와 잔망스럽게 어린 것이 죽음을 화두로 사색하던 나와 간신히 삶의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나와 늘 배수진을 치며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내게 닥친 시련을 이기려고 기를쓰던 나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깊어서 냉장고에서 꺼내 놓은 그릇처럼 언제나 물방울이 성글성글 맺혀있던 나와 게처럼 겉만 단단하고 실상은 여리디 여린 속살만 있던 나와 옹졸하고 이기적인 나와 입만 살아서 큰소리 치고 실속은 없는 나와 울면서도 억지로 감사하고 기뻐하려고 몸부림치는 나와 때로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나와 작은 일에 집착해서 끝까지 밀어붙이는 나와 하잘것 없는 일에도 목숨을 거는 나 등....
여하튼 지금은 어린 시절에 막연히 꿈 꾸었던 영화같은 순간.
내 삶 자체가 귀한 선물처럼 느껴지고 모든 것에 대한 감사로 마음이 벅차다.
이래서 인생은 살아볼만한 것이로구나.
감동과 함께 먹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겨울궁전으로 향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계속)
겨울 궁전(에르미따쥐 박물관)은 예까쩨리나 2세 여제가 건립한 궁전으로
현재 대영 박물관, 루블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거대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특히 이 곳에 전시된 물건들은 모두 값을 쳐서 지불하고 구입한 것으로
외국에서 훔치거나 일방적으로 약탈을 해 온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자랑이라고 했다.
1057개나 되는 방에 전시된 작품만 해도 300만점이 넘어서
하루에 8시간 동안 본다는 걸 전제로 한 작품을 1분씩만 보고 지나가더라도
한바퀴를 제대로 돌아 보려면 5년은 족히 걸린다니
그 규모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작석과 대리석과 황금과 카펫과 크리스탈로 치장을 한 내부의 화려함은
보는 이의 입이 저절로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가이드는 우리가 꼭 보아야 할 중요한 방만 보여 줄테니 잘 따라오라고 하면서
작은 무선 인터폰을 우리 귀에 하나씩 걸어 주었다.
우리는 눈으로는 그 모든 보물들을 보고
손으로는 슬쩍슬쩍 사진도 찍고
귀로는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부지런히 그 많은 방들을 누비고 다니느라
총체적으로 바빴다.
비록 우리 머리는 보고 돌아서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건물 입구의 중앙 계단에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여왕이 긴 드레스를 입고 오르내리기 쉽게 하려고 그랬는지
다른 궁전보다 계단의 높이가 낮고 경사가 완만했다.
- 여러분, 이 붉은 카펫에서 벗어나지 마시고 당당하게 올라오세요.
이 카페트는 우리기업 삼성에서 새로 싹~ 깔아 준 것이거든요.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가이드의 상기된 목소리에 우리도 기분이 으쓱해졌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자동적으로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말이 맞다.
하기사 나도 20여년 전에 미국에서 살 때
거리에서 지나가는 현대 자동차만 봐도 반갑고 자랑스러워서 콧등이 찡하곤 했지. (계속)
모스크바 가이드 민정씨는
러시아 여자는 신의 걸작품이고 남자는 졸작품이라고 했다.
무슨 연유인지 외모적으로도 여자는 출중한데 비해 남자는 형편없고
다른 모든 면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는 뜻이었다.
모스크바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선뜻 수긍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와서 예까쩨리나 2세 여제를 만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대단한 러시아 여인이 거기에 있었다.
옛날 중국의 측천무후와 견주어 보아도 결코 손색이 없는 여걸, 예까쩨리나 2세.
그녀는 많은 스캔들과 남편과 아들까지 살해한 도덕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를 안정시킨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러시아에다 최초로 유럽 발레를 도입하였고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미술품들과 각종 보물들을 사들여 놓았고
지금도 전 세계의 사람들을 다 불러들여 앉아서 외화를 버는 겨울궁전을 지었다.
겨울궁전은 그녀의 취향과 안목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유적지였다.
나는 건물 곳곳에서 쾌락과 사치가 극에 달했던 그녀의 흔적을 보았다.
솔로몬의 영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호화로움의 극치....
그러나 그녀가 누리던 모든 것들은 그대로 남아서 옛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데 반해
그녀는 이미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인생은 풀이나 꽃과 같아서 곧 시들고 말라버린다던 성경 말씀이 맞다.
그녀 몸은 이미 백골이 진토되어 넋조차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되었지만
그 행적만은 지금껏 통속적인 흥미를 유발하며
가이드들의 입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계속)
그녀는 원래 독일 사람이었다.
표트르 대제가 죽고 그의 딸이 왕위에 올라 있을 때
왕위 계승자인 표트르의 손자인 황태자에게 시집을 온 그녀는
러시아에는 아무런 정치 기반도 없는 한미한 이방 가문의 평범한 여인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외모가 그리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끄는 힘이 있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총명함과 대범함, 정치적 야심을 골고루 갖춘 여인이었다.
남편이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여자를 품고 살자
그녀도 이에 질세라 남편 대신 다른 남자들과 즐기며 살았다.
황태자비 시절부터 공공연히 정부를 3명이나 두었고
그녀가 낳은 아들들도 모두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독일 태생이었지만 시집온 후에 철저히 러시아 여인으로 변모해 나갔다.
종교도 기독교에서 러시아 정교로 개종을 하고
러시아의 역사와 풍습과 법도를 익혔고
황태자인 남편보다도 더 러시아를 사랑하는 지도자로 정치적 역량을 쌓아갔다.
결국 그녀는 표토르 대제의 딸이 죽고 난 후에 스스로 대권을 쟁취하였고
공식 왕위 후계자인 남편도 암살을 해 버렸다.
남편이 없어도 그녀는 결코 외롭지 않은 여제였다.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情夫만 해도 9명이었고 등재되지 않은 연인은 부지기수였다.
호색가인 그녀는 특히 젊고 싱싱한 남자를 좋아하여서
연병장에서 그녀의 눈에 띈 병사는 담박에 저 비밀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수 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노리개로 쓰이고는 곧 버림을 받았다.
남자들은 그녀의 정부임을 자랑스레 떠들고 다녔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각종 진귀한 보물들을 찾아 진상하였다.
온갖 부귀와 영화와 권세가 다 그녀 치마폭 아래 있었다. (계속)
마린스키 극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무척 화려했다.
소리의 공명이 잘 되게 하느라 그랬는지 천장이 아주 높고
오케스트라는 무대 앞에 푹 들어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뒤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앉은 바로 뒷 줄에 격식을 갖춰 차려 입은 노신사들이 예쁘게 치장을 한 파트너와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할머니들이었는데
하나같이 곱게 화장을 하고 옷 색깔에 맞추어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근사한지 나도 모르게 싱긋 웃으며 눈 인사를 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정성껏 자신을 가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늙음은 초라함이 아닌 품위 있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계속)
오페라 <운명의 힘>은
1861년 베르디가 러시아 페테스부르크 왕실 가극장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27년 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시연된 바 있는 연극을
대본가 피아베에게 개작시킨 다음 작곡한 것이다.
이 작품은 베르디의 중기에서 후기로 옮겨가는 과도적인 작품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기, 중기에 비해 오케스트레이션이 보다 충실해졌다고 하겠는데
이는 바그너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내용은 18세기 말엽에 스페인을 무대로
비극적인 운명의 힘으로 주인공들이 죽어 버린다는 줄거리 이다.
칼라트라바 후작의 딸 레오노라와 알바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아버지는 알바로가 귀족이기는 하나 인도인과의 혼혈아로 의심을 하여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야반도주를 하려다가 아버지에게 발각이 되고
후작은 하인들을 불러 알바로를 체포하게 한다.
알바로는 레오노라와의 결백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후작 앞에서 피스톨을 버리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게 폭발하여 후작이 죽게 된다.
당황을 한 두 남녀는 허겁지겁 도망을 치는데 밤중이라 서로 길이 어긋나 헤어지게 된다.
레오노라는 남장을 하고 수도원으로 도망쳐 숨어 지내게 되고
알바로는그녀가 죽은 줄 알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신분을 숨기고 이름을 바꿔 군대에 들어가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하는데
하필이면 레오노라의 오빠 카를로스도 같은 부대의 전우가 된다.
카를로스는 자기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친구 알바로가 바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였음을 우연히 알게되고
두 사람은 결국 검으로 결투를 하게 되는데 카를로스가 쓰러진다.
순찰병의 제지로 대결은 거기에서 끝이 나고
알바로는 낙심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사가 된다.
카를로스는 5년 동안이나 수소문하여 신부가 된 알바로를 찾아내 다시 결투를 청하고
두 사람은 하필 레오노라가 숨어 지내고 있는 동굴 앞에서 일전을 벌인다.
이 결투에서 카를로스는 알바로의 칼에 죽게 되고
레오노라마저도 그의 칼에 찔려 죽는다.
알바로는 기구한 운명의 장난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를 다 죽이게 되는 것이다.
죽어가는 레오노라는 알바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싸움없는 천당에 먼저 가노라며 숨을 거둔다.
이러한 소재로 오페라를 쓰기 위해 베르디는 10년 동안이나 생각하고 검토했다고 한다.
베르디는 이 비극에서 한층 극적인 힘을 추구하였고
가장 박력이 넘치는 극적인 장면에서는 종래에 쓴 레시타티브와 아리아의 인습적인 것을 피하여
통일된 음악으로 힘찬 음악을 썼다.
구성은 서곡과 1막 ~ 4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속)
공연하는 내내 무대 위의 작은 전광판에 러시아어로 자막이 떴지만
이태리어나 러시아어나 못 알아 듣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를 절감하며
그저 벙어리 눈치보듯이 대충 줄거리를 짐작하며 보다가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 객석에 불이 켜지자
우리는 복도로 나와 물을 마시며 다음에 전개 될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페라 감상을 위한 그룹스터디인 셈이었다.
그렇게 공부해 가며 열심히 감상을 하고 있었는데
오페라는 테마 음악도 클라이막스도 없이 시시하게 끝이 났다.
엉뚱한 순간에 객석에 불이 들어 오고 사람들이 우~ 하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치 우롱당한 기분이 되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밤 10시가 넘었건만 여전히 훤한 백야의 거리를 가로질러 버스로 가면서
뭐 이런 오페라가 다 있느냐고 다들 볼 멘 소리를 했다.
이렇게 다짜고짜 끝나는 작품은 생전 처음 보았다고..... (계속)
모스크바는 어딘지 칙칙하고 조금은 경직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유럽풍이 강했다.
아참...
모스크바에서는 하룻밤을 자도 거주신고를 해야 했다.
체크인을 하면서 여권을 호텔측에 보여 주어야 하고, 며칠을 머무를 것인지 다 문서로 작성했다.
그랬다가 모스크바를 떠날 때에는 여권과 함께 그 증명서를 보여주어야 했다.
호텔에서도 키를 가지고 마음대로 다닐 수 없고,
방에서 나오면 복도 끝에 지키고 있는 감시인에게 키를 맡기고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종이를 받아 가지고 다녀야 했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에도 종이를 보여주어야 하고
저녁에 방에 들어갈 때에는 그 종이를 감시원에게 주어야 키를 내주었다.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 입구에도 거구의 감시원이 떡 버티고 서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잔재인가 보다 하면서도
드나들 때마다 왠지 불쾌하고 심기가 편하지 않은게 사실이었다.
내 스스로 자유인임을 자처하며
매 순간을 내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기 원하고
누군가에게 통제 당하는 것 자체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 성향 때문에
조금 더 예민했을지도 모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