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봉숭아 꽃이 하도 탐스러워
베란다에 심어 놓은 봉숭아 꽃잎을 땄다.
잘 말린 꽃잎에 백반과 소금을 넣고 절구에 탕탕 빻았더니
빨간색 꽃물이 예쁘게 번진다.
옛날에는 피마자 잎으로 싸 맸지만 지금은 구할 수가 없어 그냥 봉숭아 잎으로
싸매고 그 위에 비닐로 꽁꽁 처맨다.
이것도 일이라고 양 손을 다 하자니 힘에 겹다.
예전에 우리 엄마는 딸들이 조금이라도 더 예뻐지기를 바랐을까?
여름이면 어김없이 봉숭아물을 들여 주시곤 했다.
7명이나 되는 딸들을 당신 혼자서 다 들였으니 얼마나 힘에 버거웠을까?
누구 손이 더 예쁠까
꽁꽁 묶은 손가락이 혹여 빠질까 봐,
두손을 이불위에 가지런히 놓고 자던 일곱 공주들.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아침이면 빠진 손가락이 있어 울상을 짓곤 했는데
알고 보니 동생의 소행.
몇일 전 나때문에 엄마에게 혼이 난 동생이 한 밤중에 몰래 일어나 내 손가락을 빼 버린 것이다.
후에 들통이 나 엄마에게 더 혼이 나고야 말았지만...
그 봉숭아 냄새 만큼이나 향긋하고 알싸한 추억들이 새삼스럽다.
지금은 봉숭아 꽃물을 들이고 다녀도 "예쁘다"라는 소리를 못 들어 보지만 예전에는 다들 예쁘다고 야단이었다.
심지어 아들 조차도 의리없게 "예쁘지? '하고 내밀면 엄마는 주착이라고 퉁박을 준다.
그 옛날 꽃물 들인 손톱을 보고 예쁘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딸만 일곱이라 샘이 많고 말이 많았던 우리 자매들.
다들 고만고만 해 싸우기도 엄청 싸우며 자랐다.
옷도 먼저 입고 나가는 사람이 임자고, 양말은 아예 잠옷 주머니에 넣어 놓고 잤다.
한 번은 5번째가 멋진 베이지색 모직 코트를 사 왔다.
눈에 확 띄길래 한번만 빌리자니까 절대로 빌려 줄 수 없다나....
다음날 꼭두 새벽에 일어나 옷장문을 여니 이게 왠 날벼락?
어느 틈에 자물쇠를 사서 단추와 단추 구멍 사이에다 자물쇠로 채워 놓은 것이었다.
그 후로 우리집은 옷마다 서로 입지 못 하게 자물쇠를 채우고 다녔다.
귀한 밍크 코트도 아니면서...
지금도 동생 집에 가면 낯익은 내 옷이 있다.
언제와서 집어 갔는지도 모르는 내 옷들이 얌전히 그 집 옷장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세째는 학교 갔다 돌아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쓰레기 통을 검사하는 일이다.
먹보인 세째는 자기 없을 때, 누가 혼자 먹었나해서 습관처럼 뒤지고 다니고는 했다
그러다 증거물이라도 나올라치면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았으니,
우리 엄마의 고달픔은
끝날 날이 없었다.
이런 철없는 우리들이었으니 봉숭아 꽃물이 잘 들고 안 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오늘 봉숭아 꽃물을 들이면서
철없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예쁘게 자라라고 봉숭아 꽃물 꼭꼭 싸 매주던 우리 엄마와
이제는 같이 중년이 되어버린 우리 일곱 자매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봉숭아 꽃물에 얽힌 사연들이 .....
봉숭아 이야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요즈음 산책을 하면서 봉숭아 꽃 비슷한 들꽃을 보면 어릴 적에 꽃물들이던 추억이 떠올랐었어요.
지금은 마치 손톱 끝에 조금 남은 꽃물처럼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선배님 글에서 봉숭아와 백반이 섞인 싸한 향기가 느껴지네요.
성씨 존함 공히 특별하고 (주위 인사 가운데 도 재경, 도 강록 등등이 있지만)
김 관수 병장, 총각의 어머니로
이 사람에게 각인된 분의 글은
물 흐르듯 유연하고 유유 합니다
그리고 진솔 합니다
7자매가 이불 덮고 나란히 누운
방안 풍경이 그대로 그려집니다
옷 경쟁 중 백미는
단추 구멍에 잠을 쇠 채우기
처음 읽고 잠시 두뇌가 정지하며
띵 하다가 결국 ㅎㅎㅎㅎ
이건 기상 천외의 보안 입니다
그 아우님 국정원 초빙 안 받으셨나 ㅋㅋㅋ
기상 천외라 곁에 있는 아들 애 (27세)에게
영어로 상황을 설명 했더니
Carpet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ㄲㄲㄲㄲㄲ
Dad, What? !
이해를 못했나 해 다시 영어로 설명 하자
No! No! I understood what you explained me
세상에 그런 사람이 처음이어
재미있어 되물었다는 겁니다
싸움이 아닌 다툼이 있으셨지만
동기간 우애가 각별히 돈독해지는
정겨운 다툼이었으라 생각하니
잔잔한 미소를 띠게 됩니다
아들 8 형제 중 6째
늘 순번 밖이죠
바로 위 형과 7살 차이
입학 Orientation에
형 신사복 정장을 흘쩍 해서
입고 등교 했죠
하교 길 버스안에서 사단이 났죠
Gum이 붙어 있는 좌석에
살펴 보지않고
털석 주저 앉은 거다
내리려고 좌석에서 일어서는데
뒷 좌석 아주머니가
학생 바지에 Gum이 느러 붙어 찌~익 느러 나네
아이쿠야 큰일이구나
이 심정 형제 많은 집에서 성장해
잘 아시리라 짐작 합니다
재미 있게 읽었고 감사 합니다
어머니 봉숭아에 대한 관수 군의 언급은 쑥스러워서 일거고
속 마음으로는 "참 고운 색으로 잘 하셨네요" 였을 겁니다
우리 아들도 비슷한데 아들 들은 쑥스러우면 마음에 없는 퉁명을 떱니다
ㅎㅎㅎㅎ
아들만 8형제 이시라구요?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요.
저희는 딸 7명끝에 엄마가 10년만에 아들을 47살에 나으셔서 8형제가 되었지요
우리 엄마 엄청 마음 고생이 심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
정말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금 그렇게 살라하면 다들 이혼하고 말겠지요?
형제 많은 집 아이들...
우리는 같은 학교에 쪼르르 다녔는데
집에서 보는 것도 지겨우니까, 학교에서 보면 모른 척 하자"라고 해서
학교에서 보면 서로 고개 돌리고 다니기도 했지요.
여자 아이들이라 좀 앙큼했나 봅니다.
남자들은 어림없는 일이지요?
마약같은 사이버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되도록 금기하고있어요, 도산학선배님!
진솔한 선배님의 글을 그간 보고 댓글을 못단 이유가 바로 그런거죠.
그러나 오늘은 로그인하게 만드는군요.
마술상자에서 솔솔 피어나는 연기처럼
선배님의 진솔한 글들이 술술 연이어 나와
읽는 사람들을 마술에 걸리게 하고 계세요
추억으로의 마술!
이런 마술은 깨어나지 않아도 좋겠죠?
어머니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으면 손가락마다 봉숭아 꽃잎을 쌓아 묶어주셨지요.
밤새 빠지지 않으려고 손을 올리고 자든지 얌전하게 자던 기억도 나고...
봉숭아물이 첫눈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워진다던 친구도 생각나고...
잠시 아련한 추억에 젖어 행복했습니다.
도산학 선배님, 감사합니다.
봉숭아물 들여주던 아직 젊은 우리 엄마 모습도 떠올라서
이것저것 아련한 추억에 젖습니다.
딸 많은 엄마는 일도 많았는데 그런 여유를 어떻게 갖으셨는지.
백반에 살짝 혀끝을 대고 맛보던 기억도 납니다.
백반맛 같은 갖가지 추억들.
요즘은 어린애에게 매니큐어를 하게 하기도 하고
노랑머리 염색, 귀를 뚫고 귀걸이 걸어서 학교에 보내는 엄마들이 있어요.
이 애들은 커서 엄마랑 같이 미용실 다니던 게 추억이 되겠지요?
봉숭아물 들이던 시절에 살았던 우리는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에 속합니다.
덕분에 저 갑자기 40년정도 젊어졌었어요.비록 글 읽는 순간이었지만...
형,누나에게 귀여움받으며 컸던 옛시절이 생각나 미소짓고 있습니다.지금요...
재미나게 읽었어요. 답례로 카드 한장 놓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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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려서 혼자 자라서
항상 북적대는 형제 많은 집이 부러웠지요.
좋은 것 같아요~~~많은 형제들
전 큰집에 가서,할머니가 봉숭화물을 들여주시던 기억이 있어요.
여사촌들이랑 같이~~~
어렸을땐 엄마가 나가 놀지도 못하게 하셨어요.
집안에서 일하는 언니랑 줄 묵어놓고 고무줄 하던 기억뿐이 없어요. 뛰어 놀던 기억이라곤~~~
별로 안 좋아요.
백반을 생각하니 입에서 침이 생기네요~~~
도산학후배의 글을 읽노라면 눈앞에 그림이 그려져요.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정말이지 너무 부러워요.
이렇게 오랫만에 들어와 후배의 글을 보니 맘이 평화로우네요~~~
지금 만나도 아직 열다섯살 소녀이다.
知天命의 나이에 들었음에도 아직 꿈이 많고, 정이 많아,
초등학교 모든 친구들이 그녀를 사랑한다.
우리들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우리 친구들을 과거와 현재로 방황케하는
재주를 가진 여인이기도 하다.
산학이의 봉숭아 꽃물들이기를 읽고 있노라니 내 스스로 웃음이 절로 난다.
어린시절,
여자 애들이 봉숭아 꽃물을 드리려 손가락마다 비닐을 씌워 고무줄로 여쁘게 동여멘 것을 보면,
심술궂게도 슬며시 다가가 냅다 풀러 버리고 도망을 갔었던 악동이 시절이 나를 조소케 한다.
왜..??
그렇게 여자애들을 못살게 굴었을까..??
고무줄을 끊고 멀리 도망을 치고, 치마를 들추며 놀려 주었던 그 친구들.
아마 그런 행동들이 어린 남자 애들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을까..??
그 당시 피해를 본 여친들이 누군지는 잘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그리워지는 것도 어쩌면 人之常情(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산학이의 글을 읽노라면,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여 나를 과거로 돌리는 신기를 가진 '도산학'친구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윤석만이
용감하게 들어와 댓글까지 달았네요.
거기에 한술 더 떠
"소녀같은 도산학" 이라는 아부성 발언과 함께.....
언제부터 글이 술술 나올 정도로 잘 썼을까요?
혹시 여학교에 들어 온다고 연습을 엄청 한 것은 아닌지요..............
다음에 만날 기회가 오면
쓴 커피 한잔이라도 꼭 사겠습니다.
올랫만에 밀린글 읽으면서
써내려간 글이 초딩때로 되돌아가 흐뭇하게 미소 짓게 만드네.
이참에 우리엄니는 뭐 하셨나?
봉숭아 추억도 없고....
추억이라곤 오직 밥상에 오빠 앞에만 맛있는 반찬 다 밀어 놓으시고
꼭 감시하듯 식사 하시니 동생들 우리 4남매에게는 업동이 취급을 하셨는지?
젓가락이 생선이나 오빠 앞으로 눈길이 가면 눈총~~~주고....
속으로 더러워서 안먹는다 안먹어 하며 꾸역 꾸역 김치만 먹던
생각이 머리를 맴도니....
모친 연세 높아지셔
5년 가까이 모시면서 하루는 옛날 일을 물어 보니
너희 오래비는 냄편보다 훨씬 위의 조상과 같은 수준이셨다고
고백을 하시는데...
이해는 하지요.
헌데 지금은 울 오빠께서 평생을 왕따를 당하며 사시는데
우리가 이러면 안되지~~~~ 하며 늘 반성을 하는데
울 오빠께서 사랑을 줄 줄 모르시는 단점도 많이 있지만....
울 엄니께서 천국에서 보고 계신다면
야 이놈들아~~~~
내가 평생 왕자님으로 모셨더니만
요것들이 똘똘 뭉쳐 그리 보복을 하는 것인가?
회차리 가져와 하실 것 만 같네.
산학아!!!
어쩜 글도 우리를 취하게 해서 계속 안 읽고는 못배길.....
마력 주사 한방씩 주는 것인가?
내가 와 이리 딴 소릴 썼지.
참. 참. 참.
제고14. 조영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김민숙씨의 단편소설 "봉숭아 꽃물"이 있습니다.
90년대에 씌여진 이 소설, 문화방송인가에서 그해에 단막극으로도 만들어져 소개되기도 하였지요.
장기 미결수와 그 어렸을 적 아내, 그와의 사이에서 난 딸 하나.
전향서에 지문도장 한번 누르면 석방이 될 수 있는데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 할 수 없었던 장기 미결수.
일년에 한차례 단 하루 주어지는 미결수의 귀휴일.
그 귀휴일에 맞추어 남편이 좋아하던 콩국수를 준비하는 아내.
자신의 손톱 보다는, 이제는 장성한, 딸아이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드려주던 엄마.
그 엄마의 그리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딸아이.
그 딸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큰 분단의 비극이 낳은 작은 분단에 대한 애절한 이야기입니다.
도산학님의 이 글을 읽고 있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이 소설이 생각납니다.
먼저 한선민성님께 문안인사 드립니다.
참 오랫만이네요~~
가내 무고하시지요?
미남 형부님께서도 여전하시구요??
이쁜이 손녀딸은 요즘 또 무슨 자랑거리가 없나요????(은근히 샘이 나서루~~)
도산학후배는 참 행복하겠다~~
소꼽 남자친구로부터 "소녀같은 도산학"이라 불려지니.....
내 진즉에 도산학후배가 그런 여인인줄을 알았지.......
오늘도 또 남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도산학 선배님,
소녀가 되시어 마음을 붉게 물들이시고
봉숭아 물을 아름답게 수 놓으셨군요.
순수의 그 마음을 존경합니다.
영원한 소녀가 되시어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세요.
저도 누나가 손가락에 칭칭 동여매 주던
그 때가 그립답니다.
다칠세라 조심조심...
다음날 학교에서 놀림은 어찌하구요.ㅎㅎㅎ
지우느라 고생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앞마당 화단에 핀 봉숭아,
농익은 씨앗 건드리면 톡 터지는 그 찰라...
그리움이랍니다.
고운 글에 마음두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