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댁을 생각하며 지난 8월말에 다녀온 전라도여행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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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     그리 멀지도 않더구만 어째 그리 못  가 봤을꼬 ?
2 박 3 일의 여정으로 본 전라도는 나에게 안타까운 감질만 나게 했다.

그 이유  첫째.   “너무 짧어!”  
이 구비구비 아름다운 곳들을  단 사흘동안에 허겁지겁 뛰어다니며 후다닥 바라만 보고 오다니……..  
시간이 너무 짧어!

둘째.  “너무 늦었어!”
왜 나는 진작에 여기에 못 와 봤던고?   그리 크지도 않은 내 나라인데 좀 더 젊어서 싱싱할 때 왔었다면  
향일암 오를 때 그토록 소나기같은 땀을 흘리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며
보리암 오를 때도 그같은 기관차 화통같은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모름지기 젊어서 기운 좋을 때 여기 저기 열심히 쏘다니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의 방법임을 나는 그 때는 미처 몰랐노라.

세째.  “너무 아까워!”
옛말이 하나 그르지 않다.  혼자보기 아까워.  
남편을 두고 친구와 동행했던 이번 여행은 내내 두고 온 남편 생각에 괴로웠다.   정말?
내내는 아니지만 정말로 수천번 ( 흥! 내내보다 더 하구먼)  그를 생각했다.  
바다와 그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을 너무나 사랑하는 내 남편.  
그가 여수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오동도까지 건너갔다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그가 여천 회타운에 내려서 어느 집으로 들어갈까하고 이집 저집을 기웃거려보았다면 얼마나 흐뭇해 했을까.
자욱한 안개속에서 하나씩 윤곽을 드러내는 꿈같은 섬들을 보았을때 얼마나 희열을 느꼈을까.

네째.  “너무 행복해!”
오랫만에 해후한 친구가 넘치는 반가움과 사랑으로 초대해 준 이번 여행.  
공짜로 비누한장만 받아도 즐거운데 이런 멋진 여행을 선물받은 내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리.

다섯째. “금상첨화!”
비가 와서 그랬나  여행 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다녀야 할 동승객들이 별로 없어서 호젓한, 여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내내 우리와 같이 다니게 된 인원은 단 한 사람뿐이었고  
그날 그날 일정표에 따라 몇몇 사람들과 잠시 잠시 같이 만났다 헤어졌다는 여러번 했다.
내내 같이 한 오직 한 사람은 아주 젊잖으신 젠틀맨이었다.  역시 젠틀한 우리들과 아주 좋은 동행이 되었다.  정말?  
우리도 정말 젠틀한 사람들이냐구 ?   글쎄, 그렇다니까요.

첫날, 첫인상이 깍쟁이같아 보이던 어여쁜 우리의 가이드 아가씨는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정체가 드러났다.  
역시 깍쟁이,  얼마나 일을 앙그러지게 잘 하는지,  운전은 또 얼마나 능란하게 잘 하는지,  
열과 성을 다하여 첫새벽 다섯시에 매몰차게 우리를 불러내리는 그 불타는 열의.  
그래서 나는 그가 젊디 젊은 아가씨인줄 내내 속았었지.  
알고봤더니  한참 아줌마 더구마는 웬  스태미너가 그리 왕성한지 가히 슈퍼우먼급이었다.  
그녀는 ‘일인이역’ 정도가 아니라  ‘혼자서 다해’ 였다.  
다만 그녀가 끌고 다니는 애마는 결코 그녀의 수준이 되지 못했다.  
우리 세 사람만 다닐 때는 몰랐는데
섬진강에서 합류한 아줌마부대가 와르르 몰려들어오니 갑자기 늘어난  인원에 차가 비좁아지고  차안이 후덥지근해졌다.  

더웁다고 투덜대는 손님 달래기,   카메라가 고장났다고 낙담하는 손님 사진 찍어주기,  
혼자 외로운듯해 보이는 청일점 아저씨손님 동무해 드리기,  
바삐 돌아가는 식당에서는 쟁반들고 날라다 주기까지 이 여자의 일은 너무나 많았다.  
과연 슈퍼우먼!  

그림같은 보성차밭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전라도 ‘수박 겉핥기’   여행은  
포근한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쌍계사를 끝으로,  아니,  
이도령과 성춘향의 로맨스가 아직도 뭇 사람들을 설레이게 하는 남원 광한루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오늘 겉만 핥아 본 이 수박을 나는 어느 날 꼭 속을 먹어보고 말리라.  


지리산 불일폭포까지 꼭 올라가 보리라.  
보리암에 자동차로 거저 올라가지 않으리라.  
섬진강을 달리는 차안에서 고개를 외로 꼬고 그냥 바라만보고 지나가지는 않으리라.  
천지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바다를 헤치고 솟아오르는 향일암 일출을 꼭 보리라.  
여수 돌산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던 초록색 작은 섬,  
찐빵처럼 둥글고 스폰지처럼 푹신푹신해 보이던 장군섬(이름은 장군,  크기는 미니) 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리라.
청매실 가득 담겼을 수천개 (?) 의 항아리들을 멀리서 가까이서 좋은 앵글로 작품사진(?) 을 꼭 찍어보리라.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과연 나는 그 어느 날,  이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
아마 소망 그대로 끝나고 말 확률이 거의 백프로일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처음 한번 와 본 주제에 갑자기 웬 꿈이 그리 많아졌노?

만족과 미련이 똑같은 질량으로 남게 된 이번 여행은 나에게 두고두고 추억과 꿈을 똑같이 선사하리라.  
삼천리 금수강산에 대한 절절한 내 사랑과 함께.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한 전라도여.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