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다른 분들도 모두 그렇다면
지우든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테니...
노래 품바 마당에 노래들이 풍성하게 실려야 하는 데
그러면 방 자체가 잘 열리지 않는다 해서
그냥 보고 즐기시라고 여기 따로 올렸는 데 열리지 않는다???
용량이 2 메가 이하인 것을 열심히 찾아 올린 건 데...
내게는 잘 열리는 데 왜 그럴 까요? 컴 맹이 뭘 알아야지...???!!
앞으로도 내가 갖고 있는 멋진 그림이나 동영상을 못 올리겠네요.
요술 지팡이 한 번 뚝딱 하면 이렇게 바뀌니 참!
내 컴에는 파일이 들어 있어서 그런 가 잘 나오던데...
나중 그 방법 좀 가르쳐 줘요.
항상 신세만 지니 미안해서리...
그리고 2 메가 이상 되는 건 안 되나요?
압축하라고요?
나 그런 거 다 잊어버렸다니까요.
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특집 등
화면이 이것처럼 꽉 차는
멋진 슬라이드 많은 데... 쩝쩝...!!!
용상욱님, 안녕하세요?
저도 잘 봤습니다. 지금 위에 올려 놓으신 것은 파워포인트로 만든 슬라이드 같아요.
위의 것은 용량이 그리 큰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각 게시판 마다에 올려 놓을 수 있는 파일 용량을 지정해 놓지 않으면
자신들도 모르게 아마 모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몰라요. ㅎㅎ
또, 써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절도 해야 하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서버의 크기도 들여다 봐야 하니까요.
샌프란시스코의 '은자' 선배님, 안녕하세요?
호문선배님께서 샌프란시스코엔 언제 가셨나요?
선배님께서 올려주신 konglish 는 잘 알아 들었습니다. 또, 인일여고 나온 사람들은 그 아래의 영어도 다 알아 들었을거에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그래도 저는 콩글리시가 더 편하네요.ㅋㅋㅋ
호문선배님 떠나시기 전까지 좋은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4점 귀인에게 한동안 붙잡혀 다니느라고
넋이라도 있고 없고 인 데
이번에는 4問 귀인?이라니?
이 몸은 언제까지 에버랜드의
도깨비 굴에서 방황해야 하오리까?
근디 내가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 보니
어딘 가 이모 냄새가 나네요.
이은자 님 키보드가 영타만 된다니
3 쿠션으로 하는 거 아녜요?
샌프란시스코 봄 바람이
이모의 장난기를 발동시킨 듯싶네요.
글구 제가 이 시점에서 잠수 해야 하는 것으로
각본이 꾸며져 있었더랬나요?
나 뭐 잠수탈 만큼 잘못한 거 없는디...????
단지 게시판 한 면에 한 번 이상
못난 내 이름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제목이 <노래품바>라
다른 때보다도 더 댓글 중간 중간에
노래등을 실으려 했건만
여의 치 않아 계속 무성영화만 보는 게
너무 심심해서 그냥 올려보았지요.
근디 어디선가 얼핏 기억에 남는 게
2메가 이내로 제한 되어 있다는 걸
본 기억이 나서 좀 작은 걸 찾아 하나 올렸고요.
용량이 좀 더 신축적이면
더 재미 있는 걸 가끔 번호 하나씩
별도로 잡아먹드라도 올리겠구만서도...
그건 그렇고 이모는 어찌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식 한 자 때리시지 않는다여?
그래놓고 알뜰하게도 ????만 날리시다니...!!!!
이은자 동기분과 30 여년의 쌓인 회포 풀기에도
너무 시간이 빡빡하시다고라?
GOOD BYE SANFRANSISCO 를
그냥 두 분이서 듀엣으로 내질러 뻔지세여.
아! 참, '앤' 공주님 저 위 열기를 클릭하면
열기, 저장, 취소가 나오는 게 정상인데
저장과 취소만 나와 아직 저 노래를
열지 못한다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건 왜 그러는지요?
4점 귀인이셨네요. 떠나라고요?
그게 대체적인 갤럽조사 결과인가요?
그렇담 생각해 봅시다.!!!!
귀인이 본인을 무척 걱정해 주시는 분인 듯하오니...
긴급 건의 합니다.
이 시간 이후에도 이런 불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실명이 아니면 나중 확인 후 삭제하는 식이 아니고
출입 자체가 되지 않도록
시스템 자체를 수정 보완하시기를 바라며 일단 물러나겠습니다.
안녕하세유~ 애니, 용선생님, 아니 동생님(아차, 내가 실수를 하지 않나 모르겠네요) 좌우당간에 디게 고맙구먼유~~
환영해 주시니~~~~
언자UN JA)언니!
안녕하세요?
저는 김춘자입니다. 꾸벅꾸벅 아니다, 넙쭉넙쭉!
언자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어 혼자서 소리내어 웃고 있음다~~~~
호문언니가 또 은제 쌤프란시스코엔 날라갔대유?????
홍길동여사입니다요~~~
은자야 ! 잘 도착 했다 ~ 글구 한글판 스틱꺼 붙여 주고 왔으니 아들 손 빌려서 컴을 한타 칠수 있게 알았지 ? 네가 올린 멜을 읽어보니 혼동이 와서 어지럽구나 ~ 하하하
글구 떠나던날 숲이 우거진 공원에서 나무가지 꺽어 하늘을 북 삼아 두드렸던 너와 나와에 승무는 결코
눈물 나는 추억이구나 춤사위가 일그러졌어도 장삼이 아닌 청바지라도 외씨 버선아닌 운동화라도
결코 우리에겐 한 없는 축복에 시간들이였지? 거기에 산동 중국 식당에 잊지 못할 쫄깃 쫄깃 중국 냉면 맛 !
시간 맹그러 올라 오너라
하루꼬야[ 6 김춘자 ] !이 내가 이미 샌 프란 시스코 은자에게 니에 대한 거한 평가를 ㅎㅎㅎ 해서
갸 머리에 입력 시켜 놓았으니 또 한분에 선배를 입학 시켰다고 영자에게 알리거라 내년에 나성에 가기로 했다
글구 광야 !느러지게 즐기다 왔지 30여년을 찿았던 동창이니깐 갸가 이 내 결혼때 와서 찍은 사진과
앨범을 카피해서 갖고 가서 밤을 지새며 그리운 동창 야기 꽃은 해외에서 이기에 상상 초월!
글구 조카님 오랬 만입니다 미국 시골 아줌씨가 대 도시 상항에 봄을 제것으로 하고 누볐습니다
올라오니 이곳은 아직 꽃들이 그곳같이 만개하지 않았기에 윤달이 낀 이해에
올려 버렸습니다 하야 !조카 ! 그래서 봄을 이번해에 두번 맞는다는 야그 !!!!

이모 님!
샌프란시스코에 잘 다녀오셨군요. 그 친구 이은자 라는 분이
이모 혼인식에 와 준 친구이고 30 여년 만에 처음 다시 만났다고요?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저도 그 정경을 그리니 초등, 중등 제 동창인
지금 SAN-JOSE에 사는 친구가 어지간히 보고 싶어지네요.
이은자 님도 이모 친구라서 그런지
글도 참 친근감이 들고 느낌이 푸근하네요.
다만 저는 앞의 이두 식(式) 영어 표기는 더 헷갈려 알파벳
조합하는 게 힘이 들더군요. 뒤의 보통 영어가 더 편하데요.
<숲이 우거진 공원에서 나뭇가지 꺾어 하늘을 북 삼아 두드렸던
너와 나의 승무는 결코 눈물 나는 추억이구나.
춤사위가 일그러졌어도, 장삼이 아닌 청바지라도, 외씨버선 아닌
운동화라도, 결코 우리에겐 한없는 축복의 시간들이였지?>
역시 이모이십니다.!!!!
이러니 이모의 그 파격적이고 초탈할 수 있는 품새에
이 조카뿐 아니라 이모를 아는 모든 이들 마음을
이모에게 저당 잡히고 다닐 수밖에 없지요.
오늘도 아침 일찍 한 바퀴 돌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무심코 고개 들어 본 어느 집 담장에 늘어진 개나리가
노란 병아리 떼를 담뿍 품어안고 있지 않겠어요?
분명 그제도 어제도 같은 길을 다녔건만
그리고 그 때도 눈을 뜨고 다녔건만
그날은 눈을 떴으되 열지 않고 다녔던 것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 한 쪽에는
영산홍도 피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오늘이 반드시 춘분(春分)이라 그런 게 아니고
다시 찬찬히 둘러보니 여기저기 태양과 면회시간이
운 좋게(?) 길었던 개나리들은 노란 옷을,
좀 짧았던 녀석들은 아직 연두 빛 눈을 틔우고 있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지들이 뭉쳐있는 영산홍, 찔레꽃 등이
뿌리에서 생명의 기운을 길어올리느라고 뿜어내는 땀이 배인
아지랑이와 같은 김이 서려 있는 게 보이고 느껴지대요.
자! 이모!
이제 그 친구 분과도 전화 자주 하시고 이번에는 그 분이
이모를 찾아 올 TURN이니 금년 봄은
두 번이나 맞이하고 더욱 즐겁고 기쁘시겠어요.
(저 사실 TURN이 TRUN으로 오타가 되어 있어서 잠시 헷갈렸어요.
저는 영어를 오랫동안 손을 놓아서 그런 관용어가 그냥 습관적으로
눈에 들어와야 하는 데 아직 서투르거든요.
그리고 저 위 내가 쓴 댓글들이 좀 서로 연결이 되질 않고
생뚱맞게 느껴지지요?
4점귀인인 지 4점귀신인지가 쓴 글 2 개와
그에 대한 내 긴 댓글이 사라져서 그래요.
4점의 글은 그 사람이 지웠다 쳐도
내가 쓴 글은 어떻게 사라졌는 지 지금도 헷갈려요.
아마 내가 당시 흥분을 해서 실수로 날렸나봐요.
물론 제 기억을 가동하면 3개 글 모두
120% 되살려 놀 수도 있지만 당분간 덮으렵니다.
그건 나중에 말씀 드리죠.
아! 참 요즘은 거기 시애틀이 여기 한국시간과 180 도 뒤집힌
5시간 차이가 아니라 4시간 차이인 가요?
밀린 장사 열심히 하세요.
우선 이만... 총총!
어제 저녁에 은자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답니다.
우리 홍길동언니가 쌘프란시스코에 가셔서 은자언니와 두밤을 함께 주무셨다지요???
호문언니의 기억력은 정맣 국제적이지요.
아니, 국보급이예요.
어쩜 그렇게 엣날일들을 그렇게 잘 기억하세요?
동네 남학생이 누구와 사귀었고, 또 그 건너집의 둘째딸이 누구를 좋아했고...........
은자언니가 신이 나셨드라구요.
이제 인생이 바빠지시게 됐어요.
가을에 씨애틀에 단풍이 들때 "Lievenworth"에 가서 파티할까요??????
지난번에 묵었던 그 호텔 참 이쁘고 정겹고 좋았었어요.
손님이 와서 기다리고 있네요.
이만 총총~~~
오랜만이네요. 요즘 장사가 바쁜 가 봐요. 교회 일도 그렇고...
호문언니가 기억력이 그리 좋군요. 주의해야겠다. 나도...
여름 시애틀이 그리 좋다더니
가을 단풍이 들 때의 시애틀도 좋군요.
나는 하루꼬 동생의 윗 글만 보아도
동생의 열린 마음이 보여요.
LA로 오라는 게 아니고 동생이
언니에게 달려갈 생각이 먼저 나는 걸 보고...
나는 내 원 <노래 품바>에 댓글 15개씩의 작은 마당에
노래등을 끼워넣지 못하니 흘러가는 시간이 조금은 싱겁네요.
당췌 그러다가는 열리지 않는 분들이 많으니...
세상이 내 맘대로만은 되지 않네요.
아니 안 되는 게 더 많은 가봐요.
거기에 쓸데 없는 시시비비에 휘말리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미쳐 만나지 못했던 보석같은 영혼들은 아직도
나에게나 에스더 아우에게나 불쑥 찾아오죠.
마치 할머니가, 그 시어머니가 물려준 사연 깊은 실반지 하나를 매일
당신의 비밀서랍에서 꺼내어 비벼보고 만지고
손에 끼어보다 다시 집어넣는 그런 반지와 같은 영혼이...
니가 다녀간 여기 독일 마을 우리가 묶었던 그 숙소 말이다 6인 일실
austrian suites 이라고 view deck kitchen 아! 또 기회가 있겠지 ?
누워서도 보이던 믿음직한 산 등성이 !
아침에 눈꼽도 띠기전에 침실에서 부르던 너에 창가도 ~~
그 독일 마을이 부르는구나 ~ 은자가 온다면 바로 그 방에 데빌고 가서 니 재롱을 떠 올리며서 룰루
가만 있어 ! 2번방에 올려야 하는데 여기 이미 용량을 다해 너머간 1번 방에다 두두렸네
그래고 크릭 해보자!
이아침에 횡설수설 한 마디
작년 10.26에 여기 인일 동산에
처음 고개를 디밀고 벌써 5개월이 되는군요.
그간 몇 몇 좋은 분들과 홈피에서 만나
즐겁고 유쾌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에
많은 익살, 재롱, 주책, 꽈리, 썰을 풀었습니다.
또 내 마음 속 진지한 핏덩어리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내게 “댓글이란 그저 받은 글에 대해 몇 마디 감사나
답례차원의 짧은 인사말 정도나 쓰는 것이지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다”는 분들도 계셨고
“본문게시판에 자주 들락날락하지 않고 댓글 란을 빌려
이런저런 소회(所懷)를 풀어놓는 게 오히려
더 바람직하고 보기 좋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실
저는 인일출신의 여자가 아니잖습니까?
따라서 “얘 너 강아지 이번에 새끼 몇 마리 낳았니?
나도 한 마리 얻을 수 있겠니?” 라든가
“네 딸 00 언제 시집가니?
국수 먹을 때 나 빼지 마라” 등등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지요.
나는 인일에 제대로 아는 분, 하나 없는 에뜨랑제이니까요.
또 내 생각엔 모든 일에 어떤 고정된 틀이나
여태껏 그렇게 알고 지내왔던 방법이나 형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그런 식의 주고받는 댓글은
각자의 개인 메일로 소집단내에서 하는 게
더 좋다고 보는 견해도 가능할 테니까요.
문제는 어떤 고정된 사고방식에 갇히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예를 들면
이건 이래야 한다, 저건 저래야 한다,
이건 고상하다, 저건 유치하다 등, 등의 기준도
짜장 웃기는 얘기 아닙니까?
그 기준을 누가 정한 거냐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비롯해서 여기 드나드는 분들
글 자체로만 보면 모두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글로 밥 먹고 사는 전업(專業) 작가(作家) 분들 말고는...
(물론 각자가 갖고 있는 영혼의 무게와는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만...)
우리는 아무리 보헤미안이고 자유혼이고 방랑자이드라도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고
내가 잘못했거나, 내가 의식을 했든 안 했든
나로 인해 남이 상처를 받았다면
솔직히 얼른 사과를 해야 하는 게
그 인간의 재주가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禮儀)일 겁니다.
말이란 “나 그런 말 한 기억이 없다”고
모르쇠로 통할 수 있지만
글이란 일단 써 날리면 지울 수 없는 것으로
그토록 어려운 것이니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겁니다.
나는 소위 지도편달이라는 것을 떨쳐버리고 난 이후
그리도 마음이 편하더군요.
한 예로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라.” 고
나도 오랜 세월 아이들에게 잔소리 해댔죠.
헌데 어느 날 치약을 밑에서, 그리고 다음날은 중간에서,
또 다음날은 맨 위에서
그리고 그 다음날은 그걸 다시 맨 밑에서부터
펴가면서 짜보니 새로운 재미가 생기더군요.
남편이 출세하고 자녀들이 모두 사회의 동량(棟樑)으로 자라서
흐뭇한 마음을 안겨주는 가정이요?
그게 뭐가 어쨌다는 얘기입니까?
누가 더 자식들을 잘 키웠고 누가 더 잘못 키웠다는 겁니까?
자식이 키워지는 겁니까? 그들은 그냥 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누가 더 행복하다, 아니다, 라는 걸
잴 수 있는 저울이 과연 존재하는 겁니까?
그냥 내버려두자고요. 그리고 우리도 그냥 흘러가자고요.
아! 안되겠네요.
오늘 제가 새벽댓바람부터 마음이 좀 흥분이 되어 있어서
그 흥분의 불길이
어디로, 또 어디까지 튈지 모르니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어차피 나는 작든 크든
소위 모임의 리더도 못 되고 그럴 생각도 없는 사람이니
공연히 내 개인적인 일로
요즘 마음이 편치 않은 푸념을 여기에 쏟을 뻔 했네요.
오늘 내 다중인격 중에 그 불같은 성정(性情)을 이기지 못하고
너무 마음을 풀어 제친 결과 적(敵)을 만들어
요절한 <조광조>의 인격이 잠시 헛소리를 하게 했습니다.
기억을 추수리어 3월 18일 저녁에
4問 鬼神과 4點 貴人이 차례로 올린 글과
그에 대한 나의 댓글을 다시 복원해 봅니다.
<????
용 선생님... 잠수를????>
<....
떠나야 할 때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지요
지금은 용상욱 님이 떠나야 할 때...>
도대체 이번엔
???? 과 .... 을 번갈아 쓰며
번개처럼 나타나 무슨 비결(秘訣)이 들어있는 듯한
비단보자기를 던져놓고 가버리시듯 하신 귀인!
지금이 제가 떠나야 할 때라고요?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귀인이 가라, 오라 하지 않아도
떠날 때라고 생각되면 내 발로 떠나드리리다.
하지만 귀인!
이런 게 인터넷 문화입니까?
기왕에 이렇게 저보고 떠나라는 게
저에 대한 귀인의 충정(衷情)이라면
귀인도 가면을 벗고
이제는 어지간히 드러난 제 꼬리를 찾아
넌지시 따로 알려주시던지
아니면 제일 좋기로는
귀인도 당당히 실명을 밝히고
저 용 아무개 퇴출 운동에 횃불을 지피시는 게
가장 떳떳한 방법일 듯 사료됩니다.
제가 떠나야 할 때라면 떠나야죠.
헌데 그 때라는 것이 귀인 혼자서
맘대로 정하는 매뉴얼입니까?
대관절 귀인이 누구고 뭔데 이렇게 가면을 쓴 채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단 말입니까?
귀인이 인일 홈피의 살생부를 움켜쥐고
좌지우지할 자격이 있는 분이십니까?
지금 그 꼴란 <한치> 하나 보냈다고 유세(有勢)하는 겁니까?
인일 홈피가 이토록 게스트가
발붙이기에는 어려운 곳이었습니까?
역시 저는 별 수 없는 에뜨랑제 이었을 뿐이었군요.
하지만 귀인의 이러한 방법은
적잖이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군요.
왜들 이렇게
가면을 쓰고 도깨비 장난을...
아님 안 보이는 뒷마당에서 김동길 교수나 흉내 내는 등...
짓고 까불고 사람을 나무에 올려놓고 흔드십니까?
자랑스러운 인일여고의 기상과 얼이 담긴
홈피가 고작 이 정도입니까?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되면 내 스스로 떠나리다.
귀인도 떠나는 뒷모습의 미학(美學)을
깨나 사랑하는 듯싶으니
전에 한번 올렸던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 라는 시와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올리며
소생도 미리 아듀를 연습하겠습니다...
낙 화(落花) /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섭하게 ~~~구지 누가 떠날 때라니 떠난 다던가 그러지들 마시고 ~ 필요할땐 들~
현 미 노래 부르세유 들~~~ 그 노래 나성 하루꼬가 현미보다 더 잘 부르는디
"떠날때는 말 없이 "
이 장소는 여러분들이 즐겁게 누리는 장소이니 만큼
못다한 싸이고 싸인 아릿다운

나성 하루꼬야 ! 불러 제끼드라고 !
참 이상하네요, 분명히 내가 조금전에 댓글을
괘 길게 그리고 진지하게 써서 올렸는데, 그 댓글이 지금 들어와서 보니
없어졌네요~~
댓글을 심사해 보고 글같지 않으면 올린글도 지워버리남요???
참말로 요상하네요~~~
내깐엔 용상선배님을 위로한답시고 상당히 진실하게 올렸는데.......
가시려거든 情마저 가져 가시든지.......
용선배님~!
인생사는 다 그런것이 아닐런지요.
말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데
알고도 내뱉은말,
모르고 내뱉은말,
다시 쓸어 담을 수 없으니 그말로 상처입히고,
상처받고....아파하고....
그러면서 나이들어 가도 끝까지 배우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후회하며 나름대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귀인이든,
????귀인이든,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순없죠.
좋을글과 음악과 사진으로까지
인일홈을 즐겁게 해주시는데
이곳에 댓글다는 사람들은 눈에도 아니 보이시나이까?
호무니 온니 말씀처럼 하루꼬의 노래 들으시며
봄날을 즐겨보시지요.
호문온니~!
건강하시지요?
온니 샌프란시스코 잘 다녀 오셨어요?
아릿다운 온니의 음성을 듣고...
정성어린 체취를 맡으며 가슴 시린
봄날들이 여지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봄엔 5기 일본여행 때문에 조신하게 살림(?) 하느라
벚꽃이 남도에 상륙을 했는지...
매화가 산등성이에 흐드러지게 피었는지...
구례 산수유가 골짜기를 얼마나 덮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일 안저지르려면 자꾸 쏘댕겨야 하는데
몸이 묶여있으니 그저 이곳에 들어와
시름을 달래고 있습니다.
늙도 젊도 않은 할매들은 졸지에 애보게들로 전락하야
담뱃대 땅땅 두드리며 갖다주는 곶감이나
기둘려야 했었을 울할머니 대에 비해
너무나도 하루가 바쁩니다.
젊은것들 살자고 애쓰는데 도와는줘야 겠지만
안해줄수도 없고...
전적으로 봐주자니 힘도 부치지만
내 생활이 없어 애궂은 파란 하늘만 흘겨봅니다.
언니~!
건강하시고 씨애틀의 봄날소식 자주 올려주세요.
이모!
아니 이런 것도 남세스럽다고 할까요?
호문 선배님! 이리 불러야 할 까요?
무슨 잣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눈으로 보면
이것도 웃기는 호칭이겠지요.
제가 인일을 나온 여자도 아닌데
무슨 선배고 후배냐? 라면서요
하지만 오래 전에 제 마지막 남은 이모는
저 세상으로 바쁜 걸음 하셨고
제게는 호문님보다 더
밥숟갈 운동 많이 한 누님이 있으니
그냥 이모라고 부르고 싶네요.
그래요.
그냥 이모로 부르죠. 아현동 이모라고요!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제가 한참이나 여기 댓글 마당을 어지럽혔죠?
사실 제 머리 속에서는, 그리고 입속에서는
더욱 격렬하고 끓어오르는 말들이 맴돌았지만
그나마 내 쉬는 숨을 길게 하며 어지간히 가라앉힌 표현이었죠.
저요! 사실 이 정도로 무지 협량(狹量)의 소인배였어요.
저는 여기 여자들 노니는 마당에 처음 고개 들이밀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주인이 아닌 게스트라는 걸
한 시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또한 제 글이 너무나 서투른
장돌뱅이 무지렁이의 글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사람이 그 재주의 높고 낮음, 능력의 넓고
얕음만으로 살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전 영원한 보헤미안이지만 그 이전에
그 누구보다도 예의는 확실히 지키려고 하죠.
싱가포르의 옛 수상인 리콴유 재임 시
그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계획했었다하죠.
바로 천재, 아니 초인들을 양산하는 유전자 조작을...
즉 베토벤, 괴테, 피카소처럼 음악이나 문학, 미술의 천재들의
유전인자를 채취해서 싱가포르를 천재 집합소로 만들려는
계획을 장기적으로 추진했었죠.
어찌 보면 그럴듯하고 멋지고 웅대한 생각인 듯싶지만
얼마나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생각일까요?
이 세상에 괴테, 베토벤, 피카소만으로 가득 찬 그 광경을 그려보세요?
천재나 초인보다는 먼저 인간이 돼야하고 그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 때 그것이 더 멋지고 살만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 런지? 이건 저만의 답답한 낭만일까요?
오늘도 말이 길어졌어요.
저 이제 길든 짧든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으려 해요.
때로는 한 줄 짧은 외마디 같은 글일 때도
있고 때로는 미시시피 강처럼
늘어진 글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자!
에스더 아우가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를 불러주는
노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싶네요.
그래요 이모가 잘 콕 집어주었네요.
떠날 때는 이러고저러고 군말 하지말고 떠나라고...
저도 나중 떠날 때는 그리 할 게요.
하루꼬 동생! 나도 답가(答歌)로 내 무지 쉰 허스키에 잘 어울리는
자니 리의 <뜨거운 안녕>을 불러 드리니 어때요? 잘 들리죠?
그래요. 이제 말을 아낍시다. 일일이 대거리 하지도 맙시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의 소이부답(笑而不答)식으로 살며
술이나 한잔 걸칩시다요!
어제 저녁 술이 참 달았어요.
아! 그러나 아가페모우는 고개를 돌려 버렸지요.
이리도 협량인 사람에게는 눈조차 뜨고 보고 싶지 않다며...
아! 이모!
바짝 가까이 찾아온 봄이 사람 미치게 하네요.
늙은 애마라도 여물 잔뜩 먹여 봄바람 맞으러 달리고 싶네요.
그리고 에스더!
동생이 쓴 글을 관리자가 지운 게 아닐 거에요.
아마도 여기 홈피가 가끔 술에 취해 글을 물지 않고
떨어트리는 일이 있는데 하루꼬의 경우도 그랬을 거에요.
지금 우리 안광희 님은 잠시 몸이 아파서
컴을 조금 덜 들여다보고 안정을 취하고 있대요.
부군이 좀 쉬라고 강력히 명령(?)했다나봐요.
내 먼저 글도 처음 앤 공주가 지운 줄 알았더니
요즘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따라서 지운 적 없다고
두 번이나 확인해주셨어요.
그래서 나도 다시 기억을 되살려
먼저 글들을 복원시켜놓은 거고요.
자! 여러 분들
오늘도 장사 열심히 하시고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
0O1-Bohemian
무험하게 그 어느 Nom 인가 했더니 우하하하 도망가자
바로 조카! 글이 올라가 부렸네 이내 보다 쎄군유 ~ 이래서 오늘은 이 내 용량이 한계가 ! 해서 냘 올람니다
수노! 잘 읽었고 다녀오고
하루꼬야 ! 오늘 대목인데도 들어와서 이 내 모양 날렸다고 ? 냘 더 바쁘거라 !
혹시 <수정>을 하시려다 <삭제>버튼을 누르시지는 않으셨나요? - 기본적으로 여쭙는 것이니 심각히 생각지 말아주세요.^^
긴 글을 쓰실 때에는 모니터 좌측 맨아래의 <시작>버튼을 눌러 보시면 <메모장>이라 있는데,
그 곳에다 미리 글을 작성하셔서 글 전체를 드래그 하셔서 붙여넣기를 하시면 안전합니다.
저도 왕왕 그런 일을 아직도 저지르고 있는데, 제일 안전한 방법 같아요.
해결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끔 이런일이 있더라구요.
분명히 "댓글등록"을 클릭하고 나갔는데, 나중에 보면 안 올라가 있더라구요.
광희씨에 complain하는것은 아니고요.
어째 읽어보니 무슨 뼉다구가 있는 말처럼 썼네요. (용서하세요!!)
내일이 Easter Sunday라서 가게가 많이 바쁘네요.
미국사람들은 부활절 아침에 교회에 갈때 새옷에 새 머리(가발)에 새 내의까지........
부활절을 맞아 우리 깨끗한 마음으로 이 봄을 새로이 시작합시다!!
Happy Easter!!!
저는 내일 예배후에 1번 도로를 끼고 북쪽으로 유채화구경도 하고
야산에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러 갑니다.
모두들 평안하시길!!!
용상님도 평안하세요!!
여기 우리 몰은 상점마다 사탕을 대두 두되씩 [오랫만에 이런말 해보네] 돌려주곤
어린아들 예쁘게 드레스 입히고 앞세워 사탕 얻으러 다니느라고 지금 한창인데 ~
[이럴때 어른들이 더 분주]
냘은 각 교회마다 성찬식에다 부활 특별 점심 이후엔 이낸 언니네로 가서 바베큐와 미니 보링 시합 예정
지는사람 설거지 ~ 이렇케 미국에 부활절 소식을 전합니다
조카 ! 부활 켄디와 계란 받으세요 쉭 !
위에 파바로티 안 들리니 ~ 조카 별명이 파바로티라고 들었으니 생방송으로 대신 올리시면 어떨지 ~
동문 여러분! H appy Easter!
|
드디어 이 내가 젤 먼저 귀를 고 하게 했네 ~
조카는 환생한 파바로티라고 하더니 올릴만도 하군요
어디서 구하셨는지 뒤에 비추인 배경 사진들 화려함에 두번이나 눈 마춤 했습니다
아이고~ 이 내는 언제 그런곳에 가 볼려나 ~~
별 5개 입니다 총총

저도 좀 잘 생겼으면 하나 걸어놓고 싶은 데요. 뭘!
저같은 사람만 있으면 카메라맨 다 굶어 죽을 거에요.
어쨌든 왈츠는 봄에 들어야 제 격이네요.
자 ~ 한번 추실까요 하고 얌전하게 상대에게 [용 상욱] 손 내미는 포즈 같구먼~
한 손은 차랑 차랑한 드레스 자락을 붙들고 말이야 ~
우리 학교때 점심시간 그리고 공설 운동장에서 스케이트 탈때 늘 참견하던 흥겨운 !!!!
이내에 부활절은 조카가 보링 시합을 하자 하여 예배후 모였다 언니네로
원래 마루가 널버서 미니 보링장을 설치 했는줄 알고 갔는데 ~
웬일! 이층에 큰 티브 한대가 내려와 서 있어서 이상하다 했더니!
Neitendo Wii 라는 신상품 Game 기로 정구 탁구 보링 야구 등등등 할수 있고
실제 몸을 치는것 같이 움직여야 하기에 땀을 흘려야 할정도 인데다
여러명이 실내에서 즐길수 있는 이 기계는 지난 성탄때 품절로 인하여 서너달을 기다렸다가 구입한
성인도 즐길수 있는 장난감인 것이다 가격 $ 250 정도에 기본 4가지 따라오나 더 원하는 게임은
별도 지불 가정에 한대 있을만함 ~ 한국에도 이런 기계 있겠지 ? 일본이 가까우니깐 ~
가락에 왈츠 잘 추고 내려 갑니다 조카!
주일날 부활절예배를 마치고 점심에 BBQ로 교우님들을 대접하고
모처럼 막내아들과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봄나들이를 했답니다.
1번 해안도로를 끼고 도로옆 산에 노오란 유채화와 이름 모를 보라빛 들꽃이 산을 덮고 있었어요.
호문언니!
지난번에 권오인선배님과 함께 갔었던 그곳을 또 갔었는데
봄이 되어 더 이쁘고 아름답더라구요.
이틀간 정말 잘 쉬고 왔어요.
막내아들 데이빗과 많은 얘기도 나누고 정말 좋은 여행이었어요.
우리 엔젤도 함께 갔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 이제 오늘부터 열심히 일해야지요~~~
아들 데이빗과에 대화는 상당한 힘이 되었을 것이야 거기에 엔젤라 까지 !
이 내도 그러 하니깐 ~ 내가 못 알아 들으면 그림을 그려서 또는 일어서서 몸으로 표현 해가면서 라도
이해 시키려는 그것에 늘 감동을 먹지 ~ 아! 아들 보고자파라~~~
김 철웅 장노님께 안부를 전해 주길 ~
내가 지난주 갔던 샌 프란시스코도 역시 레드 우드와 함께 1번 도로 선상이여서 우리가
갔었던 곳과 같은 분위기에 산을 오르며 맑은 날씨와 함께 참! 아름다운 세계를 만끽하노라니 절로 감사함과
같이 했던 후배들 얼굴 ~ 특별히 쉼 없이 뭔가 일행을 위해 동분서주 했던 하루꼬에 샘 솟는 힘힘힘! 박카스! 이 아련하구나
아! 꿈이련가~ 지나고 나니 모두 그립구나 박카스야 ! 이래서 또 하나에 별명이 만들어 졌꾸나 ~
헌디 이방 주인은 어디 가셨나 ????? 몸이 불편 하신가???? 잠수???? 시애틀에서 안부 여쭙니다
모두들 건강 하세요
호문언니!
엔젤라가 아니라 Angel이옵니다.
사람이 아니고 강아지옵니다.

춘자언니가 여기 올리신 사진이 두장 같은 것이라서 한장만 다운받아 올릴게요. ^^
ㅎㅎㅎ 호무니온니,춘자~!
반갑습니다.
두분의 도란도란 아름다운야그 들으면서
맘으로 두분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씨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의 불야성과
해안 1번도로는 불현듯 개나리 봇짐을
싸고 싶은 맘을 들게 하는군요.
그래도 맘을 가라앉혀 6월의 곰배령이나 기둘려야 하겠죠?
6월부터 8월중순까지 흐드러지게 피어날
야생화를 그리며....
왈츠에 맞춰 너울대는 행주치마나 여며야 겠네요.
두분 건강하세요.
(ㅋㅋ 잘잘 끓인 밥에 청양고추 송송썰어 넣은
우거지 된장찌게 한그릇 비벼 먹고 올께요~)
(근디~진짜루 이집 쥔장께선 곰배령에 멧돼지 사냥 가셨나부다.)
헌디 그 곰배령이 무엇으로 유명코 어디멘고 ? 지도책이나 펴 볼까하고 ~
하루꼬 박카스야 !
그러니까 니 딸이라는 갸가 언젠가 사진 올렸던 한접시 못되게 생긴 강아지 ㅎㅎㅎ
데이빗 여 친구인줄 알았다
언제 수노를 1번 도로를 태울 날이 오겠지 ? 그 땐 이 내가 내려가던지 올라오던지 하자
하루꼬 박카스 말데로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있는일이 아니니깐 ~
헌디 왈츠 혼자 추니깐 썰렁이네 어디 가셨나 두리번 두리번 총총
이래 인사하니 마치 故 허장강 님의 무대인사 18번 멘트 같으네요.
모두들 봄 바람난 앵두나무 우물가의 처녀들 같아요.
에스더! Angel이 강아지라는 건 호문 이모도 알았을 거에요.
나도 옛날부터 아는데...
권오인 친구와 갔던 곳이면 그 친구에게
멋들어진 그곳을 담은 사진도 있을텐데 한 두장 올려보라고 부탁해요.
사진으로라도 상상하며 더 약오르게...
그런데 곰배령~~~!!! 무쟈게 여러번 들었는데,
그리고 그 곰배령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함께
커피 두 번 이상 마시지 못할 사람으로 분류한다는 데...
나 솔직히 그런 말 들으면 혼자서 슬그머니 먼저 한번
사전 답사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사전 답사는 커녕 나중에라도
내 발로 거길 밟을 수 있으려는지...!!!
나는 심장이 비명을 질러대서 근처에도 못 가는 청양고추를
常食하는 분들이나 갈 수 있는 곳일테니... 쩝쩝!!
백두산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어
가까스로 오르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그리고나서 나중 무슨 <인간승리> 냄새가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주던
당시 안내하던 북한출신의 예쁜 아가씨도...
박카스라!
물론 불뚝대는 근육의 남자가
한숨에 들이켜는 모습의 광고가 기억되지만 그래도 그건 酒神인데...
혹시 하루꼬 동생이 술도 쎄다여?
이 페이지가 넘어가면 앙드레 류의 왈츠 하나 더 때릴게요.
봄이 무르익어가는 이 때 실컷 듣자고요. 봄의 음악을...
우물가에 바람난 할매들 ㅎㅎㅎ 캉 같이하면 먹여줘 재워줘 그럴날 분명히 있습니다
오인언니 갔었던곳 보다 더욱 환상적인 하늘인지 땅인지 [하루꼬 버전]구별 못하는 비경이 서린곳 말입니다
그런곳에선 신선과 야기도 할수 있고 끊임없는 하루꼬에 가락도 곁드리니 바람 아이 나면 팔불줄!
지도를 한번 펴 보세유 그리고 그 옆에 소한국을 놓고 ~ 가는 시간들이 안타깝기만 합죠
워싱톤 주만도 평생을 다 못 보고 하직 한다는데
안드레 리유? 좋지요 기대 합니다 다시 만나 방가 방가
헌데 자미 선녀가 그 노란 드레스 입고 원한님과 한번 이 방을 쓸만도한데 진짜 바람은 자미가 난것 같네 총총
제고에 있던것을 어떤 오라버니가 <봄날>에 올려주셨어요.
온니~!
<봄날>목록 68번에 자세히 올라있어요.
꽃들 이름도 나오고,
가는길도 나오고.
한번 들어가 보세요.
자면서도 그리운곳이랍니다.
자미야~!
워디 갔니?
빨랑 들어와라~
.gif)
6월에 곰배령가자....!!!
아현동 이모, 하루꼬 상 모두 춤을 잘 추시나 봐요.
나는 유일하게 출줄 아는 춤이 주책 난리블루스이고
가장 즐기는 노래는 장타령 품바인데...
자! 그럼 품바 들어간다.
인터넷이란 무엇인가? 과거 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빗장 걸고 끼리끼리만 노니는 마당일 런 가?
이미 인터넷은 빗장도 걸어 놓을 수 없거니와 국경도 없다.
여기 인일홈피도 마찬가지다. 일엽스님이 주석(駐錫)했던
수덕사 뒤 견성암(見性庵)도 아니고 성철스님의 따님인 OO 스님이
머무르는 언양의 석남사(石南寺)도 아니다.
캐롤 베이커가 테레사 견습 수녀로 명찰달고 머물렀던
스페인 마드리드 어느 수녀원도 물론 아니다.
이곳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다.
지구촌 누구나 자기 취향에 맞추어 아무 때나
골라가며 볼 수 있고
공짜로 들어 다닐 수 있는...
아니 요즘은 우주인도 보고 있을 런지 모르겠다.
에스더 아우!
그 천사 요크셔테리아 종인가요?
이모 말처럼 한 접시도 못되게 작은 게 무지 이쁘네요.
우리 삼촌도 무자식 외로움을 때우려는 듯 그 개를 지금 18년 째
기르세요. 여기저기 유방암도 생기고 녀석 이제 소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측은히 여기고
보살피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지요.
내가 왜 강아지를 기르지 않았느냐면 강아지 수명은
평균 15~20년이기에 내가 정을 붙이고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었던, 길들였던 생명을 먼저 보내야 하는 게 싫어서이죠.
지금부터 기르면 얼추 비슷하게 하늘나라에 가겠지만
이제 다시 강아지에게 정을 주기에는 너무 늦었고요.
그리고 하루꼬 동생!
내가 호무니 언니를 이모라 해도 하루꼬는 내게는 작은 이모가
아닌 동생이야요. 배도 씨도 다른 내가 호문 선배에게
언니, 누나 하면 좀 징그러울 것 같아요.
나 무지 원초적 섹시함이 묻어나는 사람이니까요,
최소한 겉모습으로만은...
오죽하면 <노틀담의 곱추>의 콰지모도를 연상하라잖아요.
하지만 동생이 읍빠하는 건 OK야요.
아! 곰배령!
곰이 배를 내보이고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곰배령이라는 저 완만한 등성! 증말 멋지다.
헌데 바로 저런 밋밋한 등성이가 보기에는 그저 평지 같은 느낌이
들어 우습게 알고 올라갔다가 몇 번 죽을 둥 살 둥
졸도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어서리... 영 무서븐 생각이 나네.
하지만 언제고 나도 그 곰의 품에 안겨보리라.
그리고 수노후배요?
일찍도 일어났다고요. 아니 그 후배에게는 “도대체 언제 잠자리
들어갔던 게야?“ 하는 것이 맞는 얘기일 걸요. 시선(詩仙)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새벽 2시에 일어나야 돼요. ㅎㅎㅎ.
어제 밤 12시가 넘어 밤길을, 다시 오늘 새벽에 거리를 달려보니
여기도 저기도 앞에도 뒤에도 천지사방이 온통 봄이더군요.
색깔은 말 할 것도 없고 겨우내 얼었던 동토(凍土)가 여름 땡볕에
뒤틀어지는 스폰지 운동화처럼 봄기운 머금고 떠들썩하게 들려 있는
그 숨쉬는 느낌이 느껴지는 정말 봄이에요.
봄. 봄.!!!
저도 곧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새벽을 도와 애마 갈기에 땀 돋게 하렵니다.
그런데 참 이모 말대로 자미 후배는 어디로 아예 봄을 따러 갔나?
내 품바와 주책블루스에 함께 춤추고 노래부르기를
누구보다도 즐겨하던 후배인데...
춤추는 개와 앙드레 류가 연주하는 <러시안 왈츠>도 올려봅니다.
말썽 없이 잘 컴에 올라가야 할 텐데...
춤추는 개는 나중에 올려야겠네요. 두 동영상이 싸워요.
또한번 시작에 크릭을 하시면 안드레가 정렬적으로 뛰쳐 나오면서 음악은 정상으로 흘러 나오니깐
그때 같이 왈츠를 추시면 됩니다 오늘 완존이다 [완전히 자존심 상하는 조카 입에 혀 노릇 ]
그렇케해서 잘 추었습니다
아! 그래서 곰배령이군요 그럼 그 곰은 흙곰은 아니겠죠 ㅎㅎㅎ
하루꼬 ? 갸는 또한 무용 전공 할려다 말았으니깐 ~
갸는 성악도 그렇도 또 뭐이 있던데 ????
아아 코메디언 ! 아 또 MC ! 이그 더 두두리다 내 혀 달아날라
어제 꿈이 무었이었나 ? 놈에 혓바닦 ?
제가 여태껏 주절댄 것은 대체로 말도 안 되는 억지 품바였습니다.
60 여개에 불과한 금강산 봉우리를 일 만 이 천봉이라고
허풍은 떨지 않았다 쳐도 억지 논리와 웃기지도 않는 횡설수설을
많이 뇌까려댔습니다. 다시 새삼 옷깃을 여미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에서 제 터무니 없는 글 대신
한번 여기 홈피에 올렸던 친구 만정이 졸업 30여년 만에
연세 연경소식 제 43호에 <지금 어디 있니?> 라는 코너에
기고했던 슬프지만 아름다운 글을 옮겨 담습니다.
<연희 동산서 만났던 경이로운 사나이들>
가을안개는 유심하다.
어느 작가의 얘기처럼 한 많은 여인이
토해낸 한숨 같기도 한 이 안개는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때때로 삶의 날카로운 예각을
부드럽게 감싸는 윤활유와도 같다.
이 아침 갓난 애기의 포근한 포대기와도 같은
이 안개에 젖어.....
그러니까 그해 김신조는
청와대를 할큄으로써 세상은
총검이 번뜩이는 아수라판이었고,
이런 가운데서도 자의식의 세계에
눈을 튼 열여덟 젊음은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가버린
첫사랑에 할퀴어 큰 상처를 입고
세상 밖으로의 외출을 거부하고 있었다.
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서성이는 이 영혼에 안개를 걷게 하고
한 줄 햇살을 비춘 것은
백양로를 통해 이르는 연희동산과
그곳서 만난 경이로운 사내들이었다.
우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듯
굴다리 이편과 저편을 이어
속세와 이상의 경계를 만들던 백양로는
내 화려한, 그러나 슬픈 감성의 불꽃놀이의 발원지였다.
봄날 벚꽃 흩날리던 동산에서
<불 꺼진 창>을 멋들어지게 불러 제키던 Y군,
넘치는 생명력으로 늘 목욕탕에서
갓 나온 것처럼 풋풋하던 K군,
그리고 저 멀리 바닷가에서 올라온
그래서 약간 상한 매력을 풍기던 S군
이 모든 야생마들을 만난 것도 이곳이었으니 연희동산은
새로운 영혼들과의 만남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러고 30년.... 모두는 이 연희동산의 기억을
조금씩 정표로 지닌 채 모두의 길을 간다.
연희동산의 파티는 막을 내리고 이제는
그 흥성하던 파티 장을 빠져나와 각자의 길을
운명처럼 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저 처자를 앞세우고 뒤세우고 흙바람 속을 간다.
Y군의 사업실패, K군의 건강악화, 그리고 S군의 타계쯤에도
무심해진 목마른 중년이다.
빗속의 백양로에서 만난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백양로는 검은 머리로 찾아들어 흰 머리로 추억하는 길이다.
가끔 잘 나가시다가 썽렁한 글귀로 우리를 슬프게 하시네유
자! 이제 일어 나셔서 남은 20% 삶을 건강하게 누리는 누리꾼이 되자고요
자기비하 는 지나치면 거만입니다 삼가 하시길 조카 홧팅
아! 아무리 젊음이 용솟음치는 한참 때의 청년이,
비록 자조와 냉소적 냄새로 희화적으로 분장했지만
이런 글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만큼
가슴 찟어지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썼을 것을 알기에
그저 쓴 웃음 웃고
탄식같은 한숨 쉬며 먼 산 바라봅니다.
<어떤 남자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자에게 쓴 글>
만약 우리 둘 입장이 바뀌어
네가 군인이 되고 내가 고무신이 된다면
넌 절대 내게 기다려달란 부탁을
할 수 없을 꺼라고 했었어.
날 믿지 못하느냐고 격분 했을 때 너의 한마디
" 이렇게 힘든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부탁을 하겠니.. "
목이 메이는 게 뭔지 절실히 느낀 날 이었다.
나는 늘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 가득한 편지를 받고
쾌활한 음성만 들어가며 통화를 하고
즐거운 소풍처럼 면회를 오는 너를 만나며 살았는데
너는 늘 고생했을 훈련얘기만 가득한 편지를 받고
무뚝뚝한데다가 군기까지 잡혀있는 재미없는 통화를 하고
먼 길을 왜 고생하며 왔냐는 내 핀잔에 서운해 하며 지냈겠지.
하지만
힘든 훈련일정을 받아놓고 나면
늘 니 목소리가 그리워서 이병 주제에 객기부려 가며
행정반 앞전화기에 줄을 섰었고
면회를 오겠다는 네 전화를 받고나면
여자 친구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서 선임들이 다려주는
A급 전투복에 각이 제대로 서지 않을까봐 그날 오전은 늘 서서 지냈지
택시에서 내리는 너를 보기라도 하면
군기고 나발이고 손을 높이 흔들어 보이고 싶었는데
고작 멀리서 웃기만 했었다.
제대까지 기다리는 여자들이 몇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선임들이 훈계조로 애인을 믿지 말라고 말할 때마다
보물 같은 너는 다를 거라 믿으면서도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일에도 미쳐보고
내가 아니다 싶으면 되도록 빨리 말하라고 대못을 박았다
그땐 그게 남자다운 말 이라고 믿었다.
휴가 때마다 부대 앞까지 마중을 오는 너를 보면서
한번도 고맙단 인사를 해주지 못했지만
예쁜 너를 앞세우고 버스를 탈 때면
내일 모레 전역하는 병장들도 부럽지가 않았어.
복귀 때면 눈물 그렁그렁 한 채로 건강하란 인사를
훈련소 입소하는 애인을 보내듯 간절하게 말하던 너
포상휴가라도 따서 곧 나오겠다고 말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늘 그렇게 네 눈물 밟아 가며 뒤돌아서곤 했지.
내가 상병을 달던 날
정작 기뻐해야 할 나보다 더 행복해하던 너
훈장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들떠있던 너를 보면서
침묵을 지키던 나였지만
뿌듯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달려가 상병약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리고
제대를 2개월 남짓 남겨 놓았을 때
넌 헤어지잔 말을 했었지
너무 힘들다고
너도 힘들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왜 모르고 지낸걸까?
그리고 지금
우린 연락조차 닿지 않는 남남이 되었지만
나...너에게 꼭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젠 PC방 전전하며 널 속상하게 하던 내가 아니라고
막노동한 돈으로 등록금 내고 이번 학기엔 장학금도 탔는데
아직도 넌 날 치기어린 옛사랑쯤으로 기억하고 있겠지
아니 이젠 잊고 다시 일어날 시간일지도 모르겠구나.
한번쯤은 네 소식을 들을까 싶어서 귀를 바짝 세우고 다니는데
누구나 나 때문에 눈물을 달고 살던 너를 기억할 뿐
행복했던 기억이 한 조각쯤 남아서
네가 나를 그리워 해준다면 그마저도 행복할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내가 울고 다녀
너를 울보라고 늘 놀리던 내가....
이모 다녀가셨네요!
그래요. 저 위 제 친구나 저나
근본적으로 물기 어린 科인가봐요.
오늘 저에게는 저 왈츠도
왜 그리 처연히 가슴을 적셔올 가요?
그저 오늘은 젖어있고 싶네요.
지금 거기 시애틀은 낮 1시인가요?
이모가 씩씩하라고 사랑의 매를 드시니 다시 맑은 글 퍼나릅니다.
<천천히 살아가는 인생의 5가지 지혜>
1. 들을 것
대개 듣기보다 말을 하기를 더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듣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잊는다는 것이다.
급하게 대답하는 것을 자제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몰입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며
그만큼 삶은 성숙해진다.
2. 권태로울 것
권태로움은 아무 것에도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느끼는 것이다.
우리를 가두어 놓는 온갖 것들을
느긋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만족스런 하품도 해보자.
그러나 '권태'는 세상을 보다 성실하게 살기 위한 것이므로
언제나 절제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3. 기다릴 것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가능성이
자신에게 열려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자.
내가 꿈꾸는 것이 삶 속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조바심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면
미래는 곧 눈앞에 활짝 펼쳐질 것이다.
4. 마음의 고향을 간직할 것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퇴색한 추억들을 떠올려 보자.
개울에서 발가벗고 멱 감던 일.
낯설음에 눈물짓던 초등학교 입학식,
동무와 손잡고 걷던 먼지투성이 신작로...
지나간 흔적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평안과 삶의 애착을 느끼게 된다.
5. 글을 쓸 것
마음속 진실이 살아날 수 있도록 조금씩 마음의 소리를 글로 써 보자.
자신의 참 모습에 가까이 다가서려면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꾸미고 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실에 귀기울여 보자.
지지지지지............
음악은 안 나오고 사진도 나왔다 말았다하고..........
용상옵빠!!!!
오늘 내가 오ㅃ빠에게 선심 한번 썼어요.
이렇게 매력있는 여자에게 오빠소리 듣는것 진짜 행복한거예요, 안 그래요????
이제 살찌고 다 뭉그러져서 그렇지 저 정말 인기 쨩이었어요~~~~(믿거나 말거나)
왕년에 멋 없었던 사람 잇겠어요???
호문언니 옛날사진 보니까 꼭 영화배우 조미령같더라구요
그러나 저러나간에 봄이 오니 으째 맴이 싱숭생숭하니 어디 뛰쳐나가고싶고
밤엔 잠도 잘 안 오고, 꼭 바람난 강아지 같아요~~~
워쪈디요????


용상오빠!!!!!봄의 왈츠로도 이 내 마음이 잡히질 않으니
무신 베토벤의
"황제"를 올려주든지, 좌우간 뭘 좀 꽝꽝 울려주세요~~~~
에스더!
오늘 새벽부터 여기 이방 뿐 아니고 다른 방들도 영 잘 뜨지 않네요.
지금은 내게도 여기 러시안 왈츠가 거의 안 들리네요.
이 방만 그렇다고 하면 동영상이 여러 개 실려 무거워서
그런 거라 하지만 그것이 아닌 가봐요.
어쩐다? 난 여기 15개가 넘어가서 다시 새로운 커튼이 내려오면
전에 아우가 부탁했던 <엔리코 카루소>를 올릴 작정인데...
저 앞에 다른 마당에 올려야 하나?
요컨대 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 Enrico Caruso -

나폴리의 한 빨래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해 조그만 콩쿠르에 나가 보지만 보기좋게 떨어지고 맙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풀이 죽은 아들을 향해 위로가 아닌 확신을 보냅니다.
"너는 재능이 있단다. 아가야. 이다음에는 정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너는 성악가도 될 수 있다고 믿는단다."

그의 어머니는 비록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집안이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들 중 이 소년만큼은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항상 다정하고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소년은 어머니가 모아둔 돈으로 음악교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음악교사는 그가 성악가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혹평해버리고 맙니다.

"너는 노래는 안 되겠어. 전혀 소리가 나지 않으니.... 마치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군"
이번에도 힘이 되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실의에 빠진 아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이죠.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틀림없이 위대한 가수가 될 거야"
어머니의 이 절대적 사랑과 신뢰와 희생을 바탕으로 소년은,
세계적인 테너로 성장했습니다.
성공한 후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어머니를 회고하곤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나를 가수로 만들기 위해서 신발도
사 신지 않고 맨발로 지내셨죠."

소년은 15세 때 자신의 지주였던 어머니와 사별합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밥을 얻어 먹게 되죠.
때때로 저녁을 얻어먹은 대가로 사람들에게 불려가기도 합니다.
저녁을 사준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집 창문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음치에 가까운 그 사나이는 달빛 아래서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하면서 여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의 괴로움'을 부릅니다. 이 로맨틱한 장면은 여자만 모르는 트릭입니다.
실제 목소리의 주인은 불려간 소년이고 문안에 숨어서
열심히 밥값에 상응하는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 것이죠.
학창 시절, 글 잘쓰는 친구들이 대개 대타 연애편지를 써주느라
바빴던 것을 떠올려보시면 금세 그 광경이 상상되실 겁니다.

소년의 이 대타노래 습관은 성공한 후에도 가끔씩 도졌습니다.
1900년대 초, 필라델피아에서 라 보엠이 공연되었을 때, 콜리네 역을 노래하던 가수가
예기치 않게도 공연 도중 목소리가 잠겨버립니다.
당장 “Vecchia Zimarra (낡은 외투의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가수는 노래를 시작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노래가 아닌 립씽크입니다.
진짜 노래는 로돌포 역을 노래하던 세계적인 테너 (창밑에서 남의 연가를
대신 불러주던 소년)가 등을 돌린 채로 테너가 아닌 완벽한 베이스로
콜리네의 낡은 외투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죠.

1995년 12월 31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천 년동안의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설정 발표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꼽았습니다.
그럼 가장 뛰어난 성악가로는 누가 뽑혔을까.
이태리 벨칸토 창법의 규범이라 불리는 사람, 그를 빼고는 아리아를 논하지 말라는 가수,
자신의 음성을 음반으로 남긴 최초의 음악가, 바로 엔리코 카루소 입니다.
20세기 성악의 역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위대한 테너로 평가 받는 가수 카루소.
그는 1873년 2월 25일 나폴리의 빈민가에서21명의 아이들 중 18번째 아이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도 엄청난 숫자라 ^^;;)
아버지는 창고 인부였고 술주정뱅이였으며 음악은 커녕 학교에 보낼 생각도
안하던 사람이었다고 하죠.

음악과 무관한 가정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연히 음악적 성취를
이루기 힘든 분위기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사그라 들지 않습니다. 여기엔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어머니의 역할이 대단했습니다.
열살 때 부터 빨래 공장에 나가 밥벌이를 해야 했던 그는 아버지 몰래
야간음악학교에 다니면서 음악을 배웁니다.
그러나 마술이라도 부리는 듯한 이 아름다운 목소리도 처음에는 약하고
가느다랗다 하여 음악교사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는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을 굳힌 뒤 나폴리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천부적인 성악 소질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체계적인 성악 수업을
받도록 해준 사람이 굴리엘모 베르기네라는 교사였습니다.
정식으로 성악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는 카루소에게 있어서 베르기네의
가르침은 대단히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난생 처음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1894년, 스승이 데뷔시키려 했던 무대에서 카루소는 망신만
당하고 내려서게 됩니다.

마침내 스물 한 살 때 단역으로 오페라에 출연하는 기회를 잡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행운이 찾아옵니다.
어느 가수가 병에 걸려 오페라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 대역을
맡게 되는 것이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데 실패합니다.
결국 해고를 당하고 말죠.
이를 몹시 비관한 그는 자살을 결심한 채 마지막 남은 1리라로 술 한 병을
사 가지고 집으로 가서 어떻게 죽을까, ... 골똘하게 연구 중이었습니다.

그때 극장의 심부름꾼이 찾아옵니다.
"카루소, 해고는 취소라네. 유력한 손님 하나가 찾아와서 아까 대역을 맡았던
신인을 내놓으라고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가세."
장차 세기의 테너로 평가될 재능을 타고 났다는 걸, 이 유력한 손님
한사람이 알아본 것입니다.
아직 제대로 연마하지 못한 부분만 다듬으면 훌륭한 재능이 반드시 빛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마터면 그대로 묻혀 버릴 뻔했던 천재적인 재능을 살려낸 것은
틀림없이 '운' 이었습니다.
그러나 운은 누구에게나 우연히 찾아오는 것은 아닐겁니다.
각자의 타고난 재능을 수련하고 연마하는 노력이 지속 될 때만 늦든 빠르든
이 행운의 여신이 찾아드는 것인가 봅니다.
결국 운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셈입니다.

1894년 11월 6일 나폴리의 누오보극장에서 가진 카루소의 데뷔 무대는
모렐리의 오페라 <라미코 프란체스코>였습니다.
그때 카루소의 나이는 21세였습니다.
이 데뷔 공연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합니다. 수확이라면 오페라 가수로서
일단 관심을 끌었다는 것과 지휘자인 빈센초 롬바르디에게 발탁되어
체계적인 오페라 수업을 받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카루소는 롬바르디를 만나며 카루소의 인생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신봉자이던 롬바르디는 카루소가 장차 대성할 재목임을
알아차린 첫 지휘자였습니다.
그는 카루소의 목소리를 참다운 베리스모의 구현이 가능한 목소리라 여겼고
카루소의 가창력도, 목소리도 새롭게 탄생합니다.
그리하여 롬바르디는 팔레르모 극장에서 자신의 지휘로 <라 죠콘다>를
공연할 때 카루소를 등장시킵니다.
이는 진정한 성공의 길을 터주는 계기가 됩니다

1897년에 가진 이 공연이야말로 '신화'로서의 카루소가 기록하게 된
최초의 성공무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공연을 계기로 하여 본격적인 오페라 출연이 시작되었고 밀라노,
부에노스 아이레스, 로마 등지의 오페라 극장에 연이어 출연함으로써
새로운 오페라 스타의 출연을 세상에 알립니다.
뒤이어,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0년의 시즌을 맞이하여 그는 마침내
동경하던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 무대를 밟습니다.
그의 나이 27세 때 이루어진 스칼라 무대에서 <라 보엠>의 루돌포 역을
불러 대단한 평판을 얻게 되는데요, 이 여세를 몰아 다음 해인 1901년에는
자신의 고향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 나타나 <사랑의 묘약>을 부릅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나폴리에서는 전혀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공연 이후로 두 번 다시 나폴리 극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1902년에는 코벤트 가든에서 <리골레토>를 불렀고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청년 카루소의 빛나는
미성과 박진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유럽의 모든 오페라 극장을 강타한 카루소의
열기는 드디어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으로 전해집니다.
메트로폴리탄과의 이 계약은 1902년 가을 시즌부터 시작되어 죽기 직전인
1920년까지 지속되었는데요,
이 기간 동안에 무려 607회에 달하는 무대 연출을 기록함으로써
이른바 '카루소 신화' 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카루소는 음반사에도 불멸의 공적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클래식음반의 역사는 그라마폰사가 밀라노에서
카루소를 녹음한 1902년 4월 11일을 기점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라마폰(1908년 이전의 공식명칭은 Gramaphon & Typewriter
즉 G&T)사의 녹음책임자 프레드 가이스버그는 1902년 4월초에
밀라노를 찾아가는데요,
당시 혜성처럼 떠오른 젊은 테너 카루소의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죠.
그러나 그가 출연한 라스칼라극장의 오페라 「저마니아」는 몇주간의 표가
매진돼 있었고 가이스버그는 극장의 직원을 매수해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어느 박스석에 앉아있다가 주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밖으로 쫓겨나는 등의
어려움 끝에 카루소의 노래를 확인합니다.
가이스버그는 카루소를 녹음하기로 결심했고 이 역사적 녹음은
1902년 4월 11일 오후 카루소가 머물고 있던 그랜드호텔 3층의 한방에서
이루어 집니다.

100파운드를 지불하고 녹음한 열곡의 10인치짜리 G&T 음반은
불과 5년전에 5천파운드의 자금으로 설립된 그라마폰사에 무려
1만5천파운드의 이익금을 남겨주었습니다.
1904년 2월 카루소를 전속계약한 빅터사의 2백30개의 카루소음반은
세계음반시장을 석권하면서, 카루소에게 지불한 로열티만 1백만달러가
넘었다고 하지요.
카루소음반의 성공은 그라마폰사로 하여금 당시의 최고의 가수들인
아델리나 파티(소프라노), 넬리 멜바(소프라노)와 프란시스코 타마뇨(테너)를
녹음하도록 설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많은 세계정상 오페라가수들과 피아니스트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들로
하여금 그라마폰사와 빅터사의 녹음용 나팔앞에 앞을 다투어 줄을 서도록
만들었습니다.

「 축음기가 카루소를 만들었나 아니면 카루소가 축음기를 만들었나?.」
그렇지만 상업적인 성공과 대중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또다른 불행이
시작됩니다. 그의 캐런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이는 무대에서의
부담으로 이어진 것이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음악에서만큼은 ‘ 개런티에 걸맞는 훌륭한
연주를 해야한다’ 는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메트로폴리탄에서
시즌에 한두 편 주역을 맡은 것이 아니라 ‘하나만 빼고 다 맡을’ 정도로
몸을 혹사시킵니다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해야 했고, 무대 하나하나 마다 최선을 다했기에
그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소진이 컸던 탓에 너무나도 일찍 쓰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선 것은 1920년 12월 24일의
일이었습니다. 이 무대가 카루소의 공식적인 오페라 출연의 끝이었죠.
늑막염이 심하여 더 이상 노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921년 봄에 들어서서 카루소의 늑막염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완치 불가능
상태에 빠지면서 고향인 나폴리로 옮겨 갑니다.
그리고 그를 외면했던 고향 나폴리에서 1921년 8월 2일 오후에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그의 나이 48세 였습니다.
.jpg)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여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20세기 성악의 역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위대한 테너로
평가 받고있습니다.
강하면서도 동시에 서정적인 목소리, 호소력 있는 테너 음색으로 특히
저음부의 풍부한 울림과 온화함, 생동감, 부드러움, 풍요로운 표현력,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확한 기교, 뛰어난 연기력...... 사실, 그를 이르는 이러한
무수한 레토릭 중에서 그 무엇보다도, 벨벳과도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안에
꿈틀대는 인간의 진실을 담을 줄 알았던 것,
어쩌면 그것이 그의 노래를 시대를 뛰어넘는 불멸로 남게 하는 것이며
후배 성악가들로 하여금 위대한 테너의 신으로 기억되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호문언니, 춘자 증말 오랜만이야요.
항상 재밌는 글로 제가 젊어지는 건 아닌가해요, 고맙고요.
그 아름다운 왈츠가,
이 아름다운 아침에
계속 긁고 있으니 왠일일까요?????
호문언니랑 춘자의 춤추는 모습을 다시 그려봅니다.
곰배령~~~~
그렇지 않아도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온다했더니
드디어 나왔네요.
호문언니랑 춘자도 한 번은 꼭 가보셔야 수노언니랑 얘기가 될텐데....
모두들 모여서 한 번 가보시라여~~
도밍고의 "별은 빛나건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헌데, 어제 내가 올린 댓글은 어디로 갔나요??
하루에 한번씩 댓글을들을 처리하나보죠?
내가 단 댓글에 무슨 댓글이 올라왔나하고 궁금하여 들어와 보면
다 지워지고 없으니, 맴이 아주 씁쓸합니다.
너무 함량이 많아져서 그런가????
도밍고가 너무 많이 힘들어하면서 노래하네요~~~
사실 노래 부르는 사람은 등어리에서 땀이 흐르지요~~
노래 부르는 사람 오래 못 사는것 같아요.
마음 많이 졸리지요~~~
오늘은 화면도 노래도 아주 잘 나와서 참 좋아요~~~
용상오라바니!!
썅큐 베리마취입니다.
니 딸 엔젤라도 있는페이지? 너머간 앞장은 마지막 리풀달린 바로 아래 숫자를 크릭하면 나온다
그러니 이방은 현제 5이니 너머간것은 4를 누르면 되겠지 숫자 하나가 15분에 리풀이 달린것이다 총총
이제서야 납득이 가서 4번 3번 2번 다~~흝어 보았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카루소의 노래와 많은 기사들을 올려주신것도 보았습니다.
호문언니께서는 정말 모르시는것이 하나도 없으신 위대한 여인이십니다.(아부의 극치를 달립니다.)
용상오라버니에게 먼저 감사를 드리고요(카루소의 기사를 하나도 안 빼고 다 읽었습니다.)
언젠가 순호언니가 오시면 호문언니랑 순호언니 춘자와 영자가 한차에 타고 1번 해안도로를 타고
Big Sur에서 한밤 자고, 17miles를 지나 San Fransisco까지 한번 여행합시다.
아참, 우리 용상오라버니도 끼어 줄가요? 지난번 오인오라버니가 주무신 방에서 주무시고...........
생각만 해도 너무 재미있네요~~~~
순호언니!
깐놈으꺼 한번 일 저질르세요~~~
여행비는 내가 가다 Sol Bang에서 거둬가면 될것이고......
세 여걸(영자는 여걸들의 메니져)이 California가 무너져라하고 떠들어대며 실컷 놀아봅시다.
손님이 오셨습니다요~~~
아부라는 게 두드러기 나게 하기도 하지만
사실 기분은 은근히 좋잖아요?
안 그래요? 위대한 여인이시어...
사실 그 어떤 별명보다도 이번에 그 말은 엄청나네요.!!!
에스더! 나도 밀린 숙제 했어요.!!!
17 마일이나 상항 등 듣기만 해도 나는 벌써
함께 차 타고 신나게 소리 질러대며
미국의 악동이 되어 있는 흥겨운 정경 속에 빠져 있어요.
고마워요. 나도 끼워줘서...
위대한 여인! 이모!
홈 첫 페이지 에스더 누이가 올린 댓글을 보니
Celine Dion의 I'm alive 그 노래가 좋다고요?
곡명은 맨 위에 있는데 두 분 모두 급하시긴...
지금 그건 찾을 수 없고 나중 광야 언니가
반복으로 수정해서 올리기를 기대하고
우선 우리의 추억에 잠겨 있는 폴 모리아의 Love is Blue를
저 뒷마당인 노래 마당에 올릴 게요.
전 어제 약간의 예행연습을 한 결과
제 분수를 다시 재삼 확인했습니다.
앞으로는 예전처럼
곧 올릴 폴 모리아의 화면에 있는 파도나
찾아 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곰도, 호랑이도, 멧돼지도 면회하는 건 꿈도 꾸지 않기로요.
그 녀석들 만나기도 전에 길목에서
들것에 실려 갈 수 있다는 것을
어제 골수에 사무치게 확인했으니까요.
제가 지금 외출하니 다녀와서 올릴 게요.
잘 먹을 게요. 헌데 내가 무슨 이쁜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여기 서울은 지금 비가 와요. 비가...!!!
나를 미치게 하는 비가...!!!
난 원래 해가 쨍하고 맑고 푸른 날
싱숭생숭 엉덩이 들썩 들썩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이렇게 비가 오면 참 자제하기가 힘들어지는
스타일이므로 오늘 마음이 참 그렇네요.
이거야 원!
"네 속 이제 다 들여다 봤어" 라는 이들 늘어나겠구먼....
사랑에 관한 췌언(贅言)
사랑!
그게 대체 무엇인가? 평생을 매달려 보았지만
아직 그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이고 신기루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덮어두자.
우선
얼핏 몇 개의 얼개가 떠오르는 게
1) 사랑은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한번, 두 번, 아니 수도 없이...
또 어느 때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기도 한다.
2) 해서는 안 될 사랑이란 없다. (맞아죽을 소리인가?)
3) 상대를 위해서, 상대방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
잊어준다, 떠나준다 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도 올바른 말이 아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잊기로 했다는 것은 무슨 말로 치장해도,
잊을 수 있을 만큼, 헤어져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한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순간에도
이별은 이별을 택할 만큼의 사랑만 한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짝사랑이나 스토커의 사랑은
순수한 아름다움은 있지만 역시 그런 사랑도
잘못 도치된 신기루와 같고 위험한 사랑 놀음이다.
이제 나는 사랑의 긴 여정(旅程)을
시간이 허(許)하는 대로 떠나려 한다.
그 여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너무나 집착이 강한, 거의 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 병을 앓고 있는 이,
Give & take 와 같은 너무 Cool한 사랑을 하고 있는 이,
자기목숨보다도 더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순애보적인 이,
상대가 마치 정복해야만 할 저 눈앞의 산인 듯
무작정 대쉬하는 저돌적인 이,
반대로 상대의 처분만 바라기에
먼저 전화 한 번도 못하는 새가슴의 사람, 등등등
그러나 이 모든 유형 중에 자기 스스로
어떤 가정된 상황과 전개될 양상을 설정해놓고
그 틀에 맞추려하는 골치 아픈 이들...
그 때 그 사람은 이렇게 내게 대답했어야 했다.
저 때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했어야 했다 식으로
자기 스스로 만든 틀에 스스로가 갇혀버린 이들이
가장 골치 아픈 모습이리라.
세상에 고정된 기준과 틀이 어디 있을까?
사랑은 움직이는 생명이다.
그것은 고정된 얼굴이 없다.
어느 방향으로 튀어오를 지도 모르는 럭비공이고
언제 어느 때 울릴 지도 모르는 핸드폰의 벨과도 같다.
자 우리 가끔 종점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랑을 향한 횡설수설의 긴 여행길에 나서자.
사랑 /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
꼼짝달싹 못하는 겁쟁이라니까요.
오늘도 바다에 잠겨 있었지요.
거기는 강아지가 없으니까...
나중 곰 배위에 올라타고 찍은 사진과
멧돼지와 달리기하는 사진,
호랑이와 족구하는 멋진 사진 기대할 게요.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
눈을 감으면
온몸에 새겼던 감정이
목련꽃 피어나듯 하얗게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애잔한 봄.
그것은 절절한 애틋함
막무가내 한 그리움이다.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은
다친 마음 풀이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하기 전에
관대함으로 마주보아야 하는 것을...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나누고 싶었던 순간이 생각나
대책 없이 목이 메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노래한 것일까.
방울방울 눈물의 의미를
이제는 깨달았을까.
왜 그토록 미쳤는지.
그리하여 왜 혼절했는지.
그리운 우리는...
김윤진님의 시..
저 위 파도 넘실대는 사진을 보니 2년전만 해도
1년에 20번은 다니던 꽃나루(화진포)가 손짓하는 듯
온몸의 세포를 깨웁니다.
다음은 6~7년 전 아이가 중 1년 때
방학숙제(=여행기)를 해주기 위한 여행 겸해서
찾아 갔던 화진포에 대해 내가 슬쩍
아들 녀석 대신 써준 숙제입니다.
아! 참 英文은 후배와의 합작입니다.
<화진포를 다녀와서>
엄마와 나 그리고 누나 한 명과 아빠 우리 넷은 아침 일찍
출발했다. 새로 건설한 대관령으로 가니 꼬불꼬불한 정취는
없지만 평소 멀미가 심한 나는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중간에 문막 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특히 문막 휴게소는 화장실이 전국에서 깨끗하기로 1등을
한 곳으로 정말 깨끗하고 정원처럼 꽃과 詩도 있는 곳이다.
전국의 휴게소의 모든 화장실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 본다.
드디어 목적지인 화진포에 도착했다. 요즈음은 가을 동화라는 드라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빠는 10년 이상을 화진포를 즐겨 다닌다.
원래 아빠는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계절에 화진포를 즐겨 찾는다.
넓고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앉아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바다의 냄새, 바다의 숨결을 가슴속 깊이 호흡하며 거기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걸려있는 가을동화
파넬을 구경하고 해변을 감돌아 있는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 그리고 해양박물관도 구경했다. 조개, 상어, 고래 等
바다가 거기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다시 바다를 가까이 보며 우리는
조용한 어느 집에서 싱싱한 생선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그리고
설악산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올랐다.
바다와 산을 실컷 보고 마셨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우리는
화진포를 가서 바다를 한 3시간정도 보고 또 보았다.
그 푸른 바다를, 그 쪽빛 색깔을 실컷 보았다.
아빠와 가는 바다구경은 늘 그렇다. 수영하고 물장난치는 것보다는
그냥 바다와 각자 대화하듯이 바다를 마주한 채 바다를 마시고,
바다와 한 몸이 될 때까지 끝없이 밀려 왔다 스러지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가슴을 활짝
열고 그 바다를 가슴속 깊이 채우고 눈에 담아 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이런 여행의 의미보다는 가며오며
들르는 호텔의 오락실이나 사람들 모습, 멋있는 경치가 더 좋다.
<After I have been to Hwa-Jin-Po>
10411 Yong-Se-Yoon
Two weeks ago, my father, my mother, my sister,
and I went to Hwa-Jin-Po.
We started early in the morning.
We used new Dae-Gwan-Lyung,
and it was straight and comfortable.
Before we arrived there, we went to Moon-Mak resting place.
My father said, "It has the cleanest restroom in our country."
I saw many beautiful flowers and poems in there.
It smelled sweet.
Finally, we arrived Hwa-Jin-Po.
It's a famous place because many people saw
there in the drama named
`Autumn Story.' It was crowded with people.
I played with my sister on the beach.
I saw many panels of `Autumn Story' along the beach.
The next day, we visited `Sea Museum.'
I saw shellfishes, sharks, dolphins and so on...
Then we were hungry, so we had lunch near the beach.
I ate a sashimi and many delicious sea foods.
After lunch, we went to Mt. Seol-Ak.
We took a cable car.
It looked dangerous but it was very interesting.
We climbed up to Gwen-Gum castle.
I saw lots of mountain peaks and beaches.
They were very beautiful,
so I thought that we should protect our nature.
When we were coming home, my father said,
"We can talk with the sea if we open up our mind."
In fact, I liked a PC room more than the beach.
But someday, I'll be able to talk with the sea like my father.
저 멋잇는 화진포의 파도풍경을 용상오라버니가 찍으셨어요???
참으로 재주가 많으신 분이세요.
호문언니 말씀이 용상오라버니는 우리보다 확실히 "웃질"이라고 하시더니,
참말이네요~~~~
아드님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같은 마음으로 느낄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햇빛이 안 나서인지 좀 쌀쌀한데다 아침부터 파도풍경을 보니 더 춥네요.
쟈켓을 걸쳐입고 우리 바지씨가 뽑아다 준 향이 아주 좋은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긴장하지 않아도, 잘 난척 꾸미지 않아도 되는, 그러면서 존경심도 가는 아주 편안한 용상오라버니와
이렇게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너무 행복합니다.

하루꼬냐 ! 그깟거 같구 놀라여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도는 바로 여기 워싱톤주 서북부 끝 자락에 있단다
가장 높게 밀리는 파도로 유명하고 비경 그 자체란다 바로 건너에 카나다가 보이고 상상에 맡긴다 ~
그 곳에 가면 고뇌하는 '가 '자 붙은 사람들 10000 이 대한단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화가 문필가 여행가 등
각자들 챙기느라 얼마나 조용히 움직이는지 그네들에 모습도 볼만 하더구나 시애틀에서 4시간 운전 !
위에 사진 화진포는 지도를 보니 강원도 남한에서라면 가장 끝 동북주에 위치 한곳이구나
나성 악동들이 이번 여름엔 올라 올것 같은데 그곳을 안내하마 멀리에것 넘 동경하지 말고 가까이에서 찿자
가지도 못하니 이잉
헌데 조카 화진포 사진을 잘 찍으셨네유 오랬만에 love is blue 와 팝페라에 아리랑 또한 특색이고
글도 글이지만 어느때는 양념이 더 화려 하군유 총총
사실 가짜 대열에 서있는 장본인의 거개가 본인이 먼저 한 게 아니고
남들이 착각했는데 그걸 아니라고 시정할 기회가 없었다는
당치도 않은 얘기를 하지만서도요.
저 위 파도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도 아니고, 화진포도 아녜요.
화진포는 좀 더 얌전해요.
저는 아직 디카가 없어서 (=불쌍하다? 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기계식 카메라와 렌즈는
그 수량이나 품질에 있어 세계 최고의 수준이니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진 말아주시압)
제가 찍은 사진 컴에 올리는 거
스캔작업을 거쳐야 하는 둥 복잡해서 못해요.
하지만 화진포, 간성, 고성, 대진, 거진, 속초, 주문진, 추암, 북평, 등
각 해변마다 파도가 모두 특색이 있고 다른 멋이 있지요.
맑고 좋은 날씨일 때의 드물게 보는 조용하고 수줍은 몸짓,
하지만 동해는 역시 태생이 거칠은 남성의 큰 동작, 뭐니뭐니해도 바람 드세고
태풍을 예고하는 듯한 날씨일 때 방파제를 모두 집어삼킬 듯 포효하는 파도!
그거 장관이지요. 북평의 파도는 파도가 일직선으로 선 자세로 내려 오고
화진포는 전형적인 물결을 흩뿌리며 겹으로 오죠.
삼척의 바다와 그 해안은 현재 한국 제일의 공인된 바닷가 풍경이고요.
저는 삼척 조금 못 가서 용화리의 편안하고 고즈넉한 해변을 제일 좋아하지만요.
여태껏 얘기한 동해말고도 서해의 파도도 무시할 수 없어요.
최근 기름 유출 사건 바로 이틀 전에 가본 안면도!
파도가 7~9 열로 나란히 횡대대형으로 덮쳐 내려오는 그곳은 증말 장관이죠.
그 모래밭은 마치 모카 커피를 두텁게 깔아 다져논 듯한 정경이구요.
밤에 콘도 창문을 일부러 열어놓고 누워 있으면
그 으르렁대는 무시무시한 파도소리와
창문을 부셔버릴 듯한 바람의 위세에 마치 내 몸이 파도에 휘감겨
저 우주의 블랙홀로 삼켜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죠.
태안 신두리의 물안개 자욱히 깔린 밤바다와 새벽 바다는 또 어떻고요.
학암포의 탁 트인 그러나 조금은 외로운 정경도 보고 싶네요.
거기에는 인일의 자랑스런 詩人이 오롯이 태안의 물안개를 지키고 있죠.
언제 한번은 516 카페 여러분들과 모두 함께 가고 싶군요...
바다도 보고 시인도 만나고...
다음에 서해를 찬미한 어느 문필가의 증말 멋진 글을 올려볼게요.
아! 내 마음은 벌써 그곳에 푸욱 잠겨 있네요.
그러나 사실 제 속내는 이모가 그렇게나 독선적(?)으로
세계 제일이라는 그곳 워싱톤 주 끝자락,
캐나다도 보인다는 그곳에 날아가 있어요.
소위 <가>들이 많이 운집한다는 곳이니 말 안해도 알겠어요.
일단 많이 찾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니까요.
얘기 나온 김에 두마디만 더...
첫째: 난 젊은 시절 소위 한국의 베스트셀러라는 걸 일부러 전혀 안 보았어요.
그저 세계 고전 문학작품이나 들추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게 단순히 유행만은 아니라는 걸
불혹이 넘어서야 어렴풋이 알아 그 후 가끔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
그것도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들도 만나고 있죠 (책으로)
둘째: 저는 地理에는 맹달이라 했죠.
처음 이모 사는 곳이 워싱톤 주라 하셔서
저는 미국 수도인 워싱톤 근처에서만 몇날 며칠을 찾아 헤맸다는
믿지못할 바보스런 야그야요.
이모! 그리고 에스더누이! 이 흑곰이 사실은 이 정도에요.
그러니 공연히 띄우지 말아요.
금강산은 일만 이천봉이 아녜요. 60 여개에 지나지 않아요.
물론 그건 레토릭상의 기법이겠지만...
하기야 여의도에 있는 어느 중국반점에 모시고 갔더니
거기 현판을 보고 당시 한국 제일의 서예가이신
여초 김응현 선생님 왈
"이 사람들 이리도 보짱이 작은 가 백리향이 뭐야?
만리향 정도로는 작명해야지."
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만서도...
아! 그 분에게 서예 배우기는 뒷전이고 자주 둘이 함께
술집에 가서 퍼 마시던 때가 그립군요.
바로 그런 술집에서 <그렇게 남의 속도 모르고> 라는
샹송 번안곡을 처음 들었던 바로 그런 때가...
일세를 풍미하던 그런 천재분도 가셨는데 이런 천학비재한 곰이
이렇게 남의 사랑방에 털퍼덕 걸터앉아
주저리주저리 허튼 수다나 떨고 있는 꼴이라니......
그렇지만
긴장하지 않아도, 잘난 척 꾸미지 않아도
대하기 편안한 사람이라는 에스더 누이 말이나 (=존경은 필히 빼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로 척하고 분수에 넘는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제 글보다도 양념이 더 그럴 듯 할 때가 많아서 심심치 않다는 이모 말은
백번 천번 지당한 말쌈으로 접수합니다. 이상 오바.!
돈 붙이고 버려도 걸인도 쳐다보지 않는 그런 버릇이 있으시군요
그럼 우린 허튼 짓다구니 뒤나 쫓는 그런 ㅉㅉㅉㅉ
어제 사드린 자장면 bill 그 곳으로 보낼터이니 그리 아슈 !
이모는 우째 그리 말을 재미 있게 하신다여??!!
나중에 유머 강좌 학원 개설해도 되겠어요.
그 자장면 공짜 아니었어요?
한 번 공짜면 끝까지 공짜지...
차~암! 맴매하는 방법도 여러가지이시네...
|
본명 곽린애 예명 린애!
|
<서해는 여자다>
등록자 이종배
[서쪽 바다를 가르는 시악시의 붉은 댕기]
***西海,
돌아앉은 매무새가/ 초야를 맞는 시악시의 자태처럼 사뭇 수줍다.
낮이면 종일 해와 돌아앉은 매무새가 그러하고/
해질 녘/노을에 물든 홍조 띤 바다의 발그레한 낯빛이 그러하다.
서해는 女子다. 동해가 파르라니 상고머리를 한 머슴아를 닮은 뚝심 좋은 바다라면,
서해는 살폿살폿한 걸음으로 갯내음을 폴폴 날리는 시악시를 매양 닮았다.
삐뚤배뚤 바다를 끼고 도는 갯길의 토라짐이 그러하고, 들랑달랑 조바심을 내는
들물 날물의 변덕스러운 물길 또한 그러하다.
눈꼬리가 살쩌기 올라간 갯마을 시악시가 해를 등에 지고 서 있는 풍경이
서해와 마치 맞다. 그래 뜨는 해보단 지는 해가, 볕보다는 그림자가 어울리는 땅이다.
이제 그 서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여인네의 심사를 닮은 그 길은 안산에서
안중, 당진을 거쳐 서천, 군산, 목포까지 댕기댕기 풀어진다.
섧고 외로운 갯마을 시악시가 님을 기다리다 댕기를 풀어
한 자락 긴 실루엣을 만든 셈이다. 서해바다로의 길이다.
뭐라 조잘대며 부서지는 햇볕, 끝없이 뻗어있는 갯벌과 짙은 물빛의 바다가 서해다.
제일 먼저 만나는 서해의 바다. 섬이다. 제부도와 대부도, 영흥도를 향해 달린다.
서해안고속도로를 20여 분쯤 달리다 비봉 나들목으로 빠져 306번과 317번 지방도를
내쳐 달리면 제부도, 대부도 그리고 연도교로 연결된 영흥도까지 갈 수 있다.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려야만 들고날 수 있는 섬, 제부도. '모세의 기적'이라며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재주 덕에 오라비쯤 되는 대부도보다
반반한 얼굴값을 하는 셈이다.
물길이 열리는 시간은 날물 때로 대개 여섯 시간 가량.
길이 드러나면 자동차로 제부도로 들어 갈 수 있는데, 북쪽 포구 주변의 작은 자갈밭과
서쪽 해안의 제부리 해수욕장을 빼면 질펀한 갯벌로 둘러싸여 있다.
남쪽 해변에 우뚝 선 매바위는 들물이면 물에 잠겼다가 날물이면 밑둥까지
훤히 드러난다. 뽁뽁 발자국을 남기면서 바지락, 게, 바닷 가재와 한 집안이라는
일명 '쏙'도 잡을 수 있다. 백사장은 폭이 좁아서 밀물 때 서너 시간 정도만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는데 수심은 얕고 고른 편이다.
해산물과 갯벌이 유명한 대부도도 한 번 둘러 볼만하고, 얼마 전 다리가 놓여진
영흥도도 바로 곁이다. 시화호 방조제를 지나고 선재대교를 건넌 뒤 영흥대교를
가로 질러야 한다. 영흥도는 아직 개발의 손때를 덜 타 섬다운 고요함이 남아있다.
인천 앞 바다에서는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 섬을 빙 둘러 자그마한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 섬주민이 바람막이로 세운 서어나무 숲이 유명한 십리포 해수욕장은
풍경이 이국적이고, 장경리 해수욕장은 바로 해수면으로 넘어가는 해넘이가 장관이다.
제부도나 영흥도 어디에서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지만 장경리 해변이 그 으뜸이다.
모두 한 나절 코스로 충분. 섬을 한 바퀴 돌면 염전도 돌아볼 수 있지만
차가 없이는 쉽지 않다.
***짙은 바다
반짝이는 물꽃이 핀다/ 조잘대는 햇살의 웃음.
시약시는 고무신을 벗어두고/먼 바다를 바라본다.
아해는 그만 부서지는 햇살 속으로/ 내어 달린다.
이제 다시 아랫녘으로 달려 당진, 서산, 해미나들목 중 어데든 달려보자.
충청도 땅의 넉넉한 인심마냥 모두가 29번 국도와 32번 국도를 타면 한 데로 모여진다.
바다와 꽃길로 어울린 볼거리들이 한가로이 들어앉은 품이다.
당진은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는 왜목리 포구를 비롯해 작은 포구들이
석문 방조제를 지나자마자 이어진다. 서산과 태안은 꽃길로 이어져 안면도까지 달린다.
가장 때깔이 나는 곳이 안면도. 안면도는 해안선을 따라 이름 고운 해수욕장이
즐비하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삼봉, 방포, 꽃지 등 십여 개의 해수욕장이
낙조와 바다, 꽃길로 한데 어우러진다. 얼마 전 꽃박람회가 열린 꽃지해수욕장은
원래 해변가에 해당화와 매화가 가득해서 '꽃지'라고 불리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백사장과 바다위로 우뚝 솟아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장관. 쪽빛 하늘은 점점 잘 여문 포도 빛으로, 또 다시 귤색 감빛으로
바다를 물들인다.
해변 송림그늘이 좋고 서해의 바다치고는 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로 좋다. 서산 나들 목으로 나오면 천수만 방조제 한 가운데에 있는 간월도가
특히 운치가 있고, 한가한 볼거리가 많다. 백제인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은
그 웃음이 그 땅의 터박이 마냥 푸근하다. 온화하면서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고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지는 신비한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해미 나들목으로 빠지면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해미읍성도 돌아볼 만하다.
조선 성종 22년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이순신 장군이 잠시 머무르기도 했고,
고종 3년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천 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처형했던 순교성지이기도하다.
잠잠히 들어앉은 한가한 풍경이 운치가 있다.
***밤
붉은 해가 숫스럽게도/ 서쪽 바다로 돌아앉는다.
지는 해와 하늘빛은 / 서러웁다 못해 붉다.
얼마 만에 / 맞이하는 님인가?
시약시마냥 내 살결이 붉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변산반도다. 변산은 변산 해수욕장,
하섬 그리고 채석강, 적벽강, 모항 등이 아름다운 갯길을 따라 줄지어 길잡이를 하니
맘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비친 달을
따려다가 빠져 죽었다는 중국 채석강에서 그 이름을 빌린 채석강.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수성암의 단층이 이룬 절경은 마치 수천, 수만 권의 낡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 하여 한참을 멈추어 서게 한다. 격포해수욕장 역시 경관이
빼어나고 물이 맑고 깨끗하여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고즈넉히 터를 잡은
내소사, 개암사, 월명암은 애써 단장을 하지 않아도 고운 맵시가 그만이다.
내소사는 때 묻지 않은 정겨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찰. 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인상적이고, 대웅보전의 8짝의 문살에 새겨진 연화, 국화,
모란 등의 꽃문양은 채색이 벗겨져 나가고 나뭇결만 남았는데도, 갓 세수를 한
맨 얼굴마냥 끼끗하고 단아하다. 시간이 남는다면 곰소로 가는 길도 돌아봄직하다.
변산반도의 남쪽 관문격인 곰소항은 염전과 어항이 어우러져 전형적인
갯마을의 풍치를 맛볼 수 있다.
벌써 휘젓휘젓 늘어진 해안선을 따라 해안송의 그림자가 길 곁으로 눕고,
붉은 노을은 치마 자락을 펼쳐 하늘을 감싸 안는다.
***서쪽의 바다로 길
얼마 만에 님을 맞이하는가.
시악시 둥기둥기/ 백년가약의 님을 바라며 / 땅끝까지 열린 길을 따른다.
말씀데로 우물가에 바람난 츠녀인지 할멘지 지당간 ~~~~
위에 올려주신 시악시 붉은 댕기를 읽으니 오늘 밤 서해를 달리는 꿈이라도 꾸울려고 오늘 지도를보고 제부도 대부도
영흥도 백령도 십리포 당진 서산 까지만 맞이 하였으니 이런정도 꿈은 이룰수 있겠지라고 말입니다
프린트 아웃 했으니 냘은 나머지를 만날려고요
시악시 둥기둥기 백년가약의 님을 바라며 땅끝까지 열린 길을 따른다 오 케이!
헌디 소 한국이라도 한 열흘 잡아야 겠네유
그 슬픈 린애 노래를 좋아 하신다고야
어디서 요렇게 맛깔지게 쓴 서해 예찬론을 뽑아 오셨는지요?
동해처럼 가슴 설래는 감동은 적지만
서해는 참으로 <사색하기 좋은 바다>라고 생각해요
비 오는 날의 서해 바다는 더욱 그렇죠
그리고 호문 선배님 안녕하세요?
늘 정감어린 언니 글 보며 즐거워 하다보니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낸 듯 싶네요
선배님! 성자랑 미국 가면 1박 2일 책임지신단 말씀 아직 유효한가요?
제가 이마가 좀 훤하게 벗겨졌걸랑요 ㅋㅋㅋ
늘 따뜻한 글 속에서나마 뵙기를 바랍니다
언제 한국에 오신다면 우리 동해로 떠나요
동해가 남자래내요
유화백 님 !
안녕하세요? 저 위 글 쓰신 분처럼
맛깔스런 글을 쓸 재주가 없으면
대신 그런 글을 찾아오는 재주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ㅎㅎㅎ.
7~9열 횡대대형으로 각각 100 여m 긴 꼬리를 드리우며
밀려 내려오던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의 파도는
지금 생각해도 전율(戰慄)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4기 오인숙 시인(詩人)의 안내로 만나본
물안개 어린 태안의 정경(情景)도
제 온몸에 이슬처럼 젖어 있고요.
갯벌은 역시 서해죠.
하지만 저는 사색의 호흡이 짧아서인지
역시 가슴 설레게 하는 동해를 늘 더 자주 찾지요.
우선 색깔 자체가 앗싸리한 동해 바다가
늘 내 가슴을 탁 터지게 하니까요.
그리고 고속도로 중 영동고속도로가
늘 내게는 만만한 탓도 있지만요.
그런데 두 분만 남자인 동해로 떠나시려고요? (남자 밝힘 증?)
그럼 난 남자니 여자인 서해로 떠나야하나요? (여자 밝힘 증?)
그러지 말고 언제 우리 516 카페 방문객 다같이
동해를 그리고 서해를
눈에, 가슴에 모두 담으러 날아보자고요.
바다에 가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마주하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소(小)한국이라는 생각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잖아요.
하늘과 맞닿은 저 바다는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그 넓고 좁음의 분별을 가늠할 수 없게 하니까요.
그러나 저러나 이모!
도대체 몇 명에게 1박 2일
무료숙박여행권을 남발하신 거예요?
돈 궤 거덜 나시는 거 아녜요?
내탕고 열쇠 빌려야겠지 지난해는 여러분들 올것같이 했지만 오직 나성 6 김 춘자만 다녀 갔는데
올해 기대 해보는 것이지 이 기다림에 부도들 내지 말것 헌디 오 인숙 시집좀 읽어볼수 없을까 ?
옥순 자! 그 남정네 품에 안겨 보자구 ! ---------------------- -------------------------------------- 그 어느날 !
조카 오늘은 또 지도 펴 놓곤 어제 서산 까지 펼쳤으니 그 이후 나머지를
갯벌 내음 맡으며 고동 까먹으며 밀리는 파도에 전율을 느끼렵니다 총총
빠르구나 어디가나 굼진 앙컷다 언젠가 두바이 타워를 냉큼 올리더니 ~~~~
그러니깐 조기 할미 할아비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장관!
쪽빛 하늘은 점점 여문 빛으로 , 또 다시 귤색 감빛으로 바다를 물들인다는 바로 그 꽃지
해변이구나 사진과 눈마춤 하면서 그려보는구나
조금전 6 김 춘자와 전화로 지도 보며 여행을 그렇케 했단다 여기 워싱턴 주를 반 바퀴 돌았지
확실히 앵두나무 우물가에 바람난 할메들이다 지도만 펼쳐도 좋으니
수노야 ~ 꽃지 해변 잘 거닐었다 그래서 늘 즐겁구나 총총
시인의 시집 중에서도 특히 일제시대 위안부를 다룬
서사시인 <귀향>이 절필중의 절필인데...
나중 언제 한국 오시면 준비했다가 드리지요.
그래도 무성영화 볼 때
변사의 흥겨운 설명 곁들인 대사가 흥미를 배가 시키듯이
이 품바꾼이 썰을 곁들여 앞으로
<귀향>의 몇 편을 여기에 올려드리죠.
그 60편일 뿐인 시집을 이 성질 급한 넘이
무려 한달이나 걸려서 가까스로 다 읽었다는 <귀향>...
울고 짜던 내 모습이 미워서인지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찾는대로 우리 고향 찾아 가는 할머니들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여행하자고요.
전혀 전문가의 안목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 풋풋하고 서투른
저의 설명과 함께 보다보면
왜 제가 그리도 <귀향>을 뒤집어지게 칭찬하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
미술작품도 지가 봐서 좋은 게 좋은 거라잖아요?
다 자기 안목만큼 자기 그릇만큼의 느낌을 받는 거니까요.
저의 이런 수다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의 일본과의 화해무드에서는
그 시집이 당분간 더 옴추러들 듯싶네요.
단 저는 Marquee를 걸어
詩를 한 줄 한 줄 천천히 올리는 거 질색을 하는 사람이라
그거 배우다가 한 시간만에 때려치웠죠.
저는 다른 건 몰라도 詩라는 게 한 줄 한 줄 음미하면서도
동시에 한 단락을 조망하고
또 동시에 전체를 조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마치 조물주의 작품 중
그 어느 것이 걸작이 아닌 게 없으리요마는
그 걸작품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걸작이라고
제가 꼽는 두가지 중 하나인 꽃을 감상할 때
꽃술, 이파리, 줄기 등을 접사렌즈로 보듯
가까이 보는 MICRO 안목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보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MACRO 안목을
작동시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저는 詩는 늘
시 전체를 한 쪽에 한꺼번에 다 올리는 걸 선호합니다.
자 저와 함께 곧 떠날 귀향 길을 기대하세요.
내컴은 이방이 열리지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