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을 쉬지 않고 이야기 하라고 하면
신이 나서 떠들 거리가 남자 들에게는 군대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 못지 않게
나도 두 아들 덕분에
군대 얘기라면 남자들 만큼이나 사연이 많다.

우리 큰 아들,
군대 가는 것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질색을 해
군 입대를 앞 두고 걱정이 컸다.
그런데 얼떨 결에 끌려 가는 소 신세가 되어 가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잠이 다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무사히 해 낼 수 있을까?

어느 날,
아들이 경기도 포천 이동에서 신병 교육을 받고 있던 중,
밤 9시가 넘어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댔다.
"부대입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 위로 휙휙 날아 다녔다.
사고가 난 걸까?
탈영은?

그러나 다행이다.
열심히 훈련 받고 있다는 소식과
훈련이 끝나면 부모님들 모시고 훈련 과정을 보여 드리는데,
그 때 어머니 대표로서 "격려사"가 있고,
현재 5명의 추천이 들어 왔으며 그 중의 한 분이니
3일 후에 원고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놀라서 누가 추천을 했냐 했더니,
아드님이 엄마가 국문과 출신이니 잘 할 수 있을 거라 했단다.
그리고 덧 붙히기를 만약 채택이 되면  4박 5일의 특별 휴가가 주어 진단다.

우리 남편 평소에 "그 따위 말 장난질"이라고 어쩌다 글 쓰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는데, 아들 휴가 보내 준다는 말에 솔깃 했는지,
"써서 보내 봐라" 한다. 그것도 "좀 잘 써서 보내 봐라" 다.
우리 아들 휴가 욕심에 애궂은 나만 코너에 꼼짝없이 몰리고 말았다.

며칠 후에, 내 원고가 채택 되었다는 소식이 왔고
몇 번 씩이나  이것 고쳐라 저것 고쳐라 지시가 왔고
드디어  퇴소식 날이 왔다.

음력 1월 무척 추운 날이었다.
한복을 입고 오라는 전갈에 머리까지 쪽을 짓고,
분홍색 두루마기까지 꺼내 입었다.
9시까지 도착해야 되기에 서둘러 떠났는데,
벌써 의정부쯤 가니 에스코트 할 차량이 기다리고 있다.

겁이 덜컥 났다.
웬일로 에스코트까지....?
남편도 놀라고 식구 모두가 놀랐다.
신병 교육대에 도착하니,
우리 차 주위로 군인들이 뛰면서 호위를 하며
어느 막사로 우리를 안내 했다.
조용하고 깨끗한 연병장엔 벌써 군인들이 정렬을 하고 연습 중이다.
막사 안에 들어 가니 주임 원사가 원고를 읽어 보라며 이것 저것 주의 사항을 준다.
신병들이 경례를 하면 어떻게 답례를 해야 하고
사단장 다음이 격려사 차례이고... 등등.
차질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리고 실제로 군인들과 연습을 3번이나 했다.

드디어 식이 시작 되고, 내가 떨까 봐, 남편도 특별히 연단 위에 자리가 정해졌다.
어머니 대표로서 내 이름이 불리어 지고 마이크 앞에 섰다.
떨면 안 돼.
기가 죽어도 안 돼.
저 아래에 있는 군인 아이들,
"내가 옛날에 가르쳤던 말썽꾸러기 중학생일 뿐이다"를
속으로 주문을 넣으며,
이미 다 외워 버린 원고를 천천히 읽어 내려 가기 시작 했다.
원고지 30장 분량이 왜 이리 길까?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연병장엔 내 목소리 만이 길게 길게 울려 퍼졌다.

어떻게 그 순간이 지나 갔는지
남편이 옆에서 "잘했어" 한다.
신병 한 명에 차가 2,3대 왔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아래에 있었는가?
한숨이 다 나오고, 좀 더 잘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4박 5일의 특별 휴가를 얻어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아들이 내 어깨를 주무르며 "엄마. 고마워. 내가 나가면 잘 할께"를 연발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니, 그 말은 금방 다 잊었는지
아들 얼굴은 귀대하는 날 아침에야 볼 수 있었다.

얼마 후, 부대에서 사진을 보내 왔다.
내 한복 입은 모습이 그럴 듯 해 보였다.
그리고 옆에 앉은 남편도 덩달아 그럴 듯 해 보이고
흡사 영부인이 군대에서 사열 받는 모습과 흡사했다.
벌써 이 사건도 1996년 일로
추억이 되고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경기도 포천쪽에 가게 되면,
일부러 8사단 앞을 지나가고...
그 때가
그 연병장이 그립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자기도 군에 가면 엄마가 "격려사" 꼭 써 줘야 돼 라며 다짐을 받더니
정작 본인은 더 큰 문제를 일병 시절에 저지르고 부모를 대동하고.
영국에 가서 보름을 지내는 일이 벌어졌다.  ( 이 사건은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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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려사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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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를 끝내고 사단장과 환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