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제일 많은 숫자의 국립공원들을 가지고 있는 애리조나..
그중에도 세계에서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곳” 첫째로 쳐주는 그랜드 캐년이
우리집에서 네시간 운전거리 밖에 안 떨어져 있음은 좋은 일이 아닐수 없다.
피닉스에 살게 된 3 년 3 달 동안 벌써 두번이나 다녀 왔으니까.
그리고 또 앞으로 한없이 자주 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교과서에서 익히 알게 된 그랜드 캐년에 첫 번째 간 것은
세살 미만 아이 셋을 안고, 업고, 손잡고 하나는 배 속에 품고 갔었던 30년전 일이었다.
시카고에서 엘에이까지 가는 길에 라스베가스를 경우할 참에 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 부부는 그랜드 캐년의 가치를 정말 몰라보았다.
물론 그 안의 빌리지에서 자기는 했지만 아이들 끌고 걸어다니기도 힘들고 해서
다음날 자동차로 겨우 두시간 정도만 구경을 하고
곧 떠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때 결론은 우습게도“거기가 거기, 다 비슷하구나” 였다.
장님 코끼리 만져보듯 했던 것이다.
어디를 가나 지층의 단면을 보는 것이니 한 곳만 보았으면 되었다는 이야기...
항상 ‘왔소! 갔소!’ 하는 식의 세상 구경…
안목 없는 무지를 자랑인양 하던 젊은 시절의 우리들의 천박함이 부끄럽다.



두 번째 간 것은 작년 여름, 여동생과 그녀의 두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 밤을 남쪽 입구 근처에 머물었었다.
버스를 타고 일몰까지 구경하고 다음날은 또 다시 일찍 일어나 구경하러 돌아 다니는데
“참 멋지다. 그렇지만 왜 사람들이 세계 일등으로 쳐줄까?” 라는 의문이 아직도 다 가시지는 않았다.
좀 더 개발하여 더 멋진 구경을 시켜주지 않는
미국 정부의 자연 보호 정신이 약간 답답하게 느껴졌고,,,

그러나 일몰은 내 평생 보지 못한 멋진 광경이었다.
그랜드 캐년은 두번이나 보았고 일몰까지 구경하였으니 다시 더 볼 것 없이 다 본 것처럼 생각하고 그곳을 떠났다.
자연에는 관심이 조금도 없는 두 틴에이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공연히 신경이 쓰여서 였는지는 모른다.

이번에 세 번째로 그랜드 캐년을 가게 되었다.
한국서 온 우리 대학 선배 언니와 형부와 함께 간 그랜드 캐년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비로소 감추었던 그 아름다움의 많은 부분을 꺼내어 새로이 맛보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일몰을 구경하였는데 호피 포인트에서의 두번째 일몰 구경은
다시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정도로 멋진 광경이었다.
한시간 가까이 여러 사람들 틈에서 그 순간을 앉아 기다리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그늘이 만드는 입체감과 기묘한 색갈들...
감격에 겨워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최고로 기분이 좋으면 찬양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이 내 평생 버릇이니까.

I love you Lord and I lift my voice
to worship you    o my soul rejoice
Take joy my king in what you hear
let it be a sweet sweet sound in your ear

남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작은 소리로 불렀지만 내 주위의 미국 사람들이 듣고
좋아하며 박수를 쳐 주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노래 알러지가 있는 남편까지 합세해서 넷이서 조용한 사중창을 하기까지 했다.
돌들이라도 그 광대한 조물주를 찬양할진대 어찌 입 달린 사람이 잠잠할수 있으리?

어메이징 그레이스…주님여 내 손을 붙잡고 가소서… 이와 같은 때엔 나는 찬송하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등등 생각나는 모든 노래를 불렀다.
마음에서 나오는 찬양을 하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왜 지난번에는 이런 감격을 맛보지 못했을까




장엄함… 한마디로 표현 할수 없는 엄청난 자연의 아름다움! 변화무쌍한 장관….
계절과 각도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고적 신비의 색갈들은 아무리 바라보고 또 바라 보아도 무엇이라고 표현 할수 없는 깊숙한 색갈들이었다.

지난 번에 하지 않은 것 한가지를 했는데 그것은 다음날 아침 하이킹이다.
해발 2200 미터 지점에서 간신히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 가는데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고 진땀이 절로 나왔다.

험한 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작은 들꽃들을 보았다.
고목들과 바위들과 새로운 나무들 틈새로 보이는 파란 하늘의 청명함..
맑고 맑은 공기..새들의 노래소리..
과연 세계 사람들이 가봐야할 곳 첫째로 손을 꼽는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았다.

세번째 가서야 처음으로 그 맛을 조금 알았다고 할수 있었던 것은 왜 일까?
계절을 잘 골랐을까?
하이킹을 해서 였을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수 있는 친구..선배언니 부부를 대동해서 였을까?
아, 그렇다. 그것이 다른 이유였다!
여행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 가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내 친 언니나 오빠보다 더 좋은, 오래동안 잘 알고 있는 정다운 사람들...
그들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배가 된 즐거움..그것이 비결이 아니었을까?

물론 위대한 모든 것은 범속한 사람들에게 쉽게 정체를 내주지 않는 법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자꾸 가까이 가면 비로소 조금씩 열어 주는 것..
갈수록 빠져들게 하는 그랜드 캐년의 아름다움에 눈이 떠져
이제는 기회만 닿으면 자꾸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좀 더 시간을 가질수 있다면 일출도 구경하고 싶고,
스카이 워크도 가보고 싶고, 무엇보다도 하이킹을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날 만난 몇명의 미국 젊은이들 처럼.
백팩을 메고 콜로라도 강가까지 내려가서 텐트를 치고 사흘이나 쉬고 온다고 하는
그들의 패기와 젊음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들은 해마다 그곳에 와서 그리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좋은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그리하고 싶다.
그리고 그랜드 캐년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체험하고 싶다.
언니 부부에게 해마다 오시라고 하고 싶다.(2008년 5월).


*듣고 계신 음악은 '안드레아 보첼리'가 노래하고 '크리스 보티'(트럼펫)가 연주하는 'Italia'입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크리스 보티 공동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