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달리는 차속을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들어와
세상이 문득 고요하고 막막합니다.

짙은 안개는
잠시 봄을 잊어버리고
세월을 잊어버리고
우리를
살금살금
인일여고 교정에서 뛰놀던
그 시절로 흘러 흘러 갑니다

무슨 반가운 기별이라도
전하러 가는 듯
버스는 안개속을 쉬임없이 달리고

여주 휴게소에서는
아카시아 꽃 꺽어
꽃반지 끼고
꽃묶음 만들어
갈피속에 넣어 간직하며
비밀을 속닥 속닥 속닥이던
동무들이 기다린다고
짧은 봄이 마구 달립니다.

전동에서
6년이라는 세월을 같이 했다는 것은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뜻에서
더욱 의미가 깊지요.

한번도 본 적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선후배도
"인일.." 이라는 이름만 대면 가슴이 설레고 설렙니다.

벌써 몇년 전의 일입니다.
제고 총동창회에서 주최하는 "동문의 밤" 이 힐튼 호텔에서 열렸을 때
1회의 박선배님이 우리 인일 동문들을 소집을 했습니다.
할 말이 있다며 "우리 인일의 힘을 보여주자"는
반강제의 부탁이었습니다.
공부만 잘 한다는 샌님같은 이미지를 벗고
"아, 인일은 노는 것도 일등이구나"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라고 하며
"두고 보겠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날
선배님은 그 모범을 보였습니다.
떠밀려 나가는 듯 하더니,
여고시절,
쫓아 다니던 이웃 남학생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다들 잘 사느냐고 묻더니
"열아홉 순정"을 멋드러지게 불러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것입니다.
인일은 공부만이 아니라 놀 때에도 일등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우리의 선배님
멋진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봄 소풍에서
박선배님과 같은 멋진 인일의 딸들을 만났습니다.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연분홍 치마 입고
수줍은 듯 다가온 새색시 같은 5월에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나온 봄 소풍,.................
파릇파릇한 연두빛 스케치 속에
빨간 줄장미가 졸랑 졸랑 울타리를 놓고
여학생들이 재잘 재잘 거리며 정점이 수를 놓습니다.

막상
단양팔경 이라고 와서 보니
멀리서 보던 풍덩 빠지고 싶은 호수는 아니지만
반대로
우리 인일들은
멀리에서 막연히 볼 때 보다,
가까이 보니 더욱 더 친근한 맛이
정이 새록새록 듭니다

정말
이 날은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웠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보던 낯 익은 이름들
김은희 선배님
김순호 선배님
어제 본 듯 반갑게 맞아 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요.
그리고 우리의 친구 김인숙 수녀님의 언니 김정화 선배님,
스케이트를 잘타던 멋장이 이미자 선배님
특히, 영분이 언니가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 인천 차는
노래방등 음향 시설이 고장이 나
황정순 위원장님이 난감해 있을 때
분위기를 살린다고,
미국에서 몇일 전에 도착해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언니는 감기 몸살이 심했는데도
끝까지 분위기를 잡아 주셨습니다.
영분이 언니를 도와 동생 영옥 후배도 고생이 많았구요.
덕분에
졸지않고 왔습니다.
또한 예쁜 송미섭 후배는
이것 저것 잔 심부름 하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일정에도 없던
저녁까지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길
즐거운 하루가 가는 것이 아쉬운 듯
붉게 지는 저녁 노을도
우리의 마음처럼
갈 곳을 몰라 방황을 하며 지평선 너머로 떨어집니다. 

함께 해서
더욱
즐거운 봄 소풍............

준비를 위해 애쓴
우리의 은기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거듭 거듭 감사 말씀 올립니다.
이 날은 하늘까지 우리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