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의 죽음

워낙 사고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세상도 이럴진데,
이 제목을 보고 누군가는 하찮은 동물이 죽은게 뭐 대수라고
이런글을 올리냐고 절 욕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강아지의 주인도 아닌 제가
이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심란한 것은
말못하는 그 작은 동물의 영혼의 억울함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
이렇게 살풀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글을 씁니다.

어제였습니다.
저는 동문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강아지 '짱구'가 죽었다고 하네요.
앞집에 사시는 점잖은 할아버지 한 분이 키우시는 짱구는
한살 반 된 강아지입니다.
이곳은 다세대 연립주택이 많은 곳이라
서너살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꼬맹이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그런데 짱구는 그 많은 아이들이 아무리 주물럭거리고
귀찮게 해도 마냥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반가워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던 그런 강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짱구가 어제 맞.아.서. 죽.었.습.니.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공격적인 말 같아서
다른 말을 아무리 생각했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네요.

사건은 이렇습니다.
어제 저녁 무렵.
해가 길어진 요즘 아이들은 늦게까지 골목 어귀에서 모여 놉니다.
여느때 처럼 아이들은 짱구를 만지작 거리며
그아이들을 지켜보던 할머니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때...
한 어린 여자아이가 유난히 짱구를 괴롭혔더랍니다.

정말 이 동네에서 짱구를 보아온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결코 짱구가 성질이 포악하다거나 사나운 개가 아니란 걸요.
그런데 그 아이가 계속 강아지를 괴롭혔는지
짱구가 앙! 하면서 여자아이 손가락을 살짝 물어서
손가락에 이빨자국이 약간 난 정도?...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피...? 좀 빨개졌을 정도...?
짱구는 자기가 애 손가락을 좀 물어놓고는
지도 놀라서 할아버지 옆에 가서 기가 팍 죽어서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네요.
처음엔 손녀아이가 물리고(?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아무튼) 나서
한 이십 분은 그냥 잘 놀았다네요.
그런데 아줌마들끼리 두런두런 얘기하다,
짱구 주사는 맞았나?..어쩌고 하시다가 혹시 모르니
병원 한 번 다녀오는게 어떻겠느냐..해서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병원을 가셨다데요.

문제는 그 다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손녀 할아버지란 분이 무턱대고
동네 병원을 찾아 헤메당기셨답니다.
동네에 병원이 한 두갭니까?..
더운 날 이리저리 찾아다녔는데 못만나니까 열 좀 받으셨겠지요.
그런데 자초지종....
아이가 얼마나 다쳤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덜컥 각목으로 된 몽둥이를 들고 씩씩 거리며
온갖 욕을 하면서 나오셨더랍니다....
우리  00  어떻게 되면 내가 이 동네 개 란 개는 다 죽여버린다고.
손녀 어떻게 되면 그 개 키우는 집도 다 쓸어버릴거라고....
그 이상은 쓰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그리고 그 몽둥이가 작은 짱구 몸에 사정없이 내리치고
짱구가 갑자기 풀썩 쓰러졌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채....
짱구 키우시는 주인 할아버지 손녀를 물었다는(?)
그 죄로 한 마디도 못하시고 지켜보시기만 했나봐요....

손녀가 다치면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 당연히 아프고 화나시겠지요.
하지만요...
정말, 그냥 다니던 떠돌이 개도 아니고.
이 동네에서 다들 알고 보고 다니면서 다들 '짱구야.....쯔쯔쯔'
한마디씩 인사 삼아 건네던 그런 개를...
성격이며 하는 짓이며 다 아는 그런 개를...
더구나 정말 피가 나고 살이 패이게 그렇게 문것도 아니고,
강아지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자꾸 자기 건드려서 약올리면 앙! 하면서 이빨자국 나는거...
아무리 개를 키워 보지 않고, 개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건 아니다 싶어서.
어제부터 계속 이 생각이 나는데...

지금 갑자기 또 드는 생각은
내가 어제 약속만 없어서 그 시간에 집에만 있었던들...
짱구가 억울하게 맞고 있는 그 때,
나라도 나가서 그 할아버지한테 악악거리면서 대들었더라면
때리더라도 손녀 오면 상황 보시고 하시라고...
아무리 몰상식하거나 흥분을 했더라도,
사람한테는 치료비 생각나서 몽둥이질까지는 못했겠지요.
내가 그냥 한 대 맞거나 욕을 먹었더라도.
그렇게 억울하게 짱구가 눈감을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서.
너무너무 짱구한테 미안하네요.

오늘 아침에는 짱구 할아버지 아드님이 오셔서
건물이 난리가 났다고 하더군요.
병원에서 손녀가 왔으니. 상태가 어떤지는 아셨을테고
그러면 최소한 아까 이러저러 하여 잘못했다고
사과는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마디도 없으셨나보더군요.
그 댁 아드님이 오셔서
내가 이 집 손녀 치료비는 얼마가 됐든 물어주는데,
당신이 한 짓이 있으니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누가 맘대로 남이 키우는 개를 그렇게 하느냐고....
그런데,...
그 집에서는 삼십분이 넘도록
숨소리도 내지 않고 나오지도 않았답니다.
그 집 할머니 할아버지 출근하시는 분들 아니거든요....
글쎄요. 사람>동물...로 인식되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동물도 생명이 있는 존재가 아닌가요?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지만,
가끔 뉴스에서 좀 과하다 싶게 애완동물가지고
해괴한 행동 하는 걸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요?

오늘은.. 퇴근해서 오는 길에 어제 들은 그 이야기가
부디 헛소문이길 빌며
일부러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을 샅샅이 훑어보게 되었습니다.

평소같으면 오후 햇살에 늘어져 아스팔트위에 누워서
"짱구..자니? "
하면 졸린데 귀찮다는 듯 꼬리를 턱턱 두어번 털어주거나
아니면 아예 말을 못걸만한 구석으로 털레 털레 발걸음을 옮기던
그 녀석이 눈에 밟힙니다.
주책맞게 이 글을 쓰면서
불쌍한 맘 + 미안함 + 죄책감....에 눈물이 납니다...
부디... 부디....
짱구가 억울한 마음은 다 풀고 좋은 데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사람이라는 게 참 부끄럽습니다.
어디선가 본 우스개 소리가 생각나네요.
"개만도 못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
그말을 듣고 동물들이 자기들한테 그런 욕을 할 수가 있느냐면서
길길이 날 뛰었다는 이야기가요.
주절주절...제 답답한 마음을 푸느라 글이 길어졌습니다.
괜히 이 글 때문에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해드렸다면 죄송하네요.
혹여 동물을 싫어하시는 분들...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 절대 그런 걸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좋고 싫은 것은 기호의 문제이지만,
존중과 무시는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생명]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으니까요...  





출처/마이클럽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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