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필자가 유학 시절 병원에 밤일을 나가는 처를 대신해서 가사를 오랫동안 맡아 본적이 있었다. 두 사내아이를 키우면서 목소리가 쉴 정도로 악을 쓰며 하루를 마칠 때가 자주 있었고 바쁜 학업 가운데 집안 청소며 빨래를 도 맡아야 했었다. 수업을 받던 중 살짝 빠져 나와서 아이들 픽업을 위해서 땀나게 악세레이터를 밟으며 청춘을 보냈던 그 시절의 숨 가뿐 기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그들과 그 가사를 분담 할 수 있었다. 그런 고된 일이 끝나는 무렵 여자란 얼마나 强 한 존재인 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필자는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한국에 나가 시민 운동하면서 여성단체의 인권 일을 돕기도 하였다. 주기적으로 생리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여성들만의 불편을 감내하며 시댁에서 주는 긴장 속에 소진되다 보면 자신을 잃어 버리는 수가 허다하다. 자기 이름보다는 누구의 엄마로 통하며 일생을 마치는 한국 여인네들의 통념적인 모습이다. 특히 어렵사리 이혼을 선택하여 아이들을 키우며 발버둥치던 여인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기에 죄스러운 마음과 연민의 정을 갖는다. 허나 그들은 强하다 그래서 때로는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외롭게 휘청거리는 중년을 맞이 하는 여인들이 그간의 삶이 자신의 등을 돌리고 있었음을 깨닫는 시점이 있다. 남편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고 자녀 교육에 몰두하여 삶의 반 이상을 보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가슴 속에 고이 묻어 두었던 꽃잎 하나를 이따금 소리 없이 꺼내 보면서 꿈을 갖고 살아 왔으나 이제 남은 인생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면서 마음이 조급하여 진다. 특히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여인들은 가슴 속에는 채 마르지 않은 서러움들이 있다.
발목을 잡고 있는 경제적인 고난이 자신의 곁을 떠날 줄 모르는 여인들에게는 사실 조급함을 느낄 여유도 없다. 그래도 긴 호흡을 하고 잠시 사유(思惟)의 시간을 가질 때 여지 없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아픔이 있다. 가는 세월에 밀려 깊게 패어가는 주름살과 늘어나는 흰머리를 보면서 인생의 뒤 안 길에 서있는 자신이 서글퍼 지기도 한다. 이러한 삶의 단상 속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엄두 조차 안 난다.
그래서 중년의 나이에 어떤 경위에서 시작하였더라도 자기만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자 혼신을 다하는 여성들은 아름답다. 47세에 이민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을 하여 재벌이 된 마르샤 스튜워드(Martha Steward) 의 성공이나, 아이 딸린 가난한 이혼녀에서 억만장자 작가로 변신한 해리 포터 시리즈의 46세의 중년 작가 조앤 K. 롤링의 삶은 미국뿐 만 아니라 전 세계 중년 여성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새로운 꿈을 펼치고 있는 중년 여성!>
5년 째 카지노 딜러를 하고 있는 C 부인은 오래 전부터 그 일에서 일탈(逸脫)을 꿈꾸어 왔다. 그것은 순전히 딜러 생활이 주는 나른함 때문이다. 딜러 4년 차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견비통(肩臂痛)이라는 일종의 신경통으로서 하루 종일 수 천장의 카드를 움직이다 보니 근육에 어혈이 생기면서 팔이 제대로 안 돌아 가는 병이다. 지난 달부터는 오랜 동안 서 있는 이유로 무릎 관절에도 고장이 시작되었다. 지난 해 과로로 운명을 달리한 선배 딜러 김 언니의 비운이 자신에게도 다가 오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도 된다. 통증이 떠날 줄 모르는 어깨를 치료할 여유도 없어 퇴근 후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이 해주는 마사지에 의존하며 하루를 마감하지만 이젠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이 버겁다.
“딜러 직업의 한계는 다른 직업과는 달리 경력이 쌓여도 수입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현실에 있다”고 그녀는 강변한다. 그것은 오랜 경력의60세의 택시 운전사의 돈벌이가 20세의 운전사의 수입과 별 차이가 안 난다는 점과 같은 원리이다. 그래서 C 부인도 직업 자체만이 주는 비젼(Vision)이 적다고 늘 인식해왔다. 이따금 지친 몸을 침대에 맡길 때 베게 잎을 눈물로 적시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지키는 자신을 자학하기도 한다. 그 곳에서 탈출하려고 늘 마음을 먹고 있지만 쉽게 용단을 내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당장 가족들에게 필요한 의료보험 혜택 때문이다.
“딜러가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매일 일어나는 풍랑 같은 격정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는데 심한 갈등이 있다”고 C 부인은 토로한다. 오랜 고뇌가 거듭되면서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취미생활로 해왔던 지점토 공예를 통해서 손의 감각을 키워온 바이기에, 이러한 재능을 요하는 직업을 찾아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덴탈 랩’에 지원을 하여 치과 기공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도제(徒弟)식으로 업무 체계가 이루어지는 분야이기에 당장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기술이 손에 완전히 익혀져 작품을 만들 때까지는 수입이 전혀 없다.
오후7시에 호텔 일이 끝나면 그녀는 간단히 저녁을 들고 곧장 기술을 배우러 새로운 공간인 랩(Lab)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리고 자정까지 일을 배우고 하루 일과를 마친다. 이중 생활이 당장 힘에 부치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활기가 돈다. 그것은 도전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밤 늦게 일을 하는 그 장소가 비록 협소하고 갑갑하나 C부인에게는 삶의 숨결을 새롭게 일깨워준 공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성공한 사람보다 성공을 위해서 뛰는 사람의 모습 자체가 더 아름답게 다가오기도 한다. 일반 사람으로는 엄두를 못 내는 시도이기에 사람들은 그러한 용기에 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오늘도 자신이 밟아온 인생길을 차분히 정리하며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 있는 C 부인에게서는 나름대로의 풋풋한 희망이 보인다.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려하고
새롭게 뭔가를 배우고 참여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나이지요
올려주신 글은 많은 것을 공감하게 하며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도록 격려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중년여성들이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으로 자신의 시간을 이끌어간다면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