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덕수궁 돌담에서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35년 전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덕수궁 돌담을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