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솜씨가 워낙 없어서인지, 식순이 노릇 30년 인데도 아직도 타박을 받고 사는 처지이다.
맨처음에는 애교, 앙큼, 억지로 밀어 부쳤는데, 이제 나이가 먹으니 그것도 통하지를 않는다.

지금까지 친정엄마가 손수 담은 된장, 고추장 덕에 동네에서는 된장찌개 솜씨가 제일 좋다고 평판이 났는데도,
우리 남편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왜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하는데 장모님이 해주는 것과 다른 이유가 뭐냐" 라며 구박을 하기 일쑤다.
"남들은 최고로 맛있다는데, 왜 자기만 그래?" 라고 억지를 부리지만, 실상 내가 먹어봐도 엄청 차이가 난다.
그래도 끝까지 억지를 부린다.나도 열심히 하는건데 어쩔래?

또 더러는 사온것을 내가 한 것인 양 앙큼을 떨고 식탁에 올려 놓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다 들통이
나 버려 "될대로 되라"라고 살고 있는 중이다.
불평을 하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마는데 얼마전 부터는 그런 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맨날 그것이 그것인 식탁....

그래서 식기를 일본 요리집 수준으로 확 바꾸어 버렸다.
겉면이 까만색이고 속은 빨간색인 식기로 완전 세트로 장만을 했다.
물론 들인 돈은 10만원 안쪽으로.

그 효과는 100% 였다.
평소랑 똑같은 반찬인데도, 전혀 다른 맛을 내고 있었다.
명란은 어슷어슷 썰어서 참기름 조금 치고 깨소금 올리고 파 송송 썰어 담아내고,
오징어젓은 잘게 썰어 식초와 고추가루와 깨소금으로 다시 양념을 해서 담아내고,
갈치는 밀가루에 묻혀 노릇노릇 구워내고, 된장찌개는 호박과 두부를 작은 깍둑썰기로 썰어
바지라기 조개를 통채로 넣어 보글보글 끊이고, 밥은 잡곡에 흑미를 조금 많이 넣어 생색을 내고,
김치와 깍두기도 조금씩만 그릇에 담고, 계란찜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나물은 버섯무침, 호박무침으로.

이렇게 깔끔하게 차려 놓았더니,색상의 조화며 모든 것이 일식 집이 따로 없었다.
우리 아들이 하는 말이 "엄마, 이거 엄마 스타일 아니잖아? 왜 늙어서 새색시 처럼 구는거야? 이상하잖아",
"그냥 엄마 하던 대로 해" 라나. 그말에 의기양양하게  "지금 이 모습이 원래 나야" 했더니 우리 아이 배를 잡고 웃는다.
이 식사가 1인분에 얼마인 줄 알아?  적어도 2만원 짜리는 된다고...

자꾸 자꾸 늙어간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더 퇴보하는 것 같아 우리 식탁을 이 가을에 한번 바꾸어 보았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괜시리 마음도 정처없이 쓸쓸해져만 가는데 식탁 마저도 초라하면 더욱 쓸쓸할 것만 같아...
그래서 확 바꾸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