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생가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더 이상 예비중대 관사로 쓰이지 않고 단지 총각 장교들의 짐만 넣어두는 곳으로 변해버린 텅 빈집에서 우리는 앨범 속에 있는 낡은 사진에서와 같은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옛날 사진에는 없는 나보다 더 키가 큰 아이들을 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나는 이곳이야말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마음의 고향임을 실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방 골짜기든 미국이든 이 세상 끝 어느 곳이라도 남편이 있는 곳이 곧 내 고향이 되었고 내가 함께 있는 곳이 바로 그의 고향이 되었다. 푸른 제복을 입고 군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가 자라난 곳만이 그의 고향이 아니고 어디든지 부르심을 받고 가는 거기가 곧 목숨을 바쳐 사랑할 고향이 된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둘이서 한마음이 되어 성실하게 살아온 덕분에 가난하고 고달픈 순간에도 우리는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분주하고 힘들었던 삶의 고비들을 무사히 넘기고 이렇게 중년의 길목에서 지나온 길을 반추해 보며 앞으로의 삶에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앞으로 15년쯤 더 지난 후에 우리 아이들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오게 된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바램이 있다면 그 때도 여전히 내 남편이 이 나라의 군인임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우리가 겪은 모든 삶의 질곡들을 오히려 훈장인양 우리 아이들에게 기꺼이 전해 줄 수 있는 충직한 군인과 그 아내이고 싶다.
어느덧 죽변 백사장 너머로 노을이 붉게 타들어 가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먼 하늘을 바라보던 남편은 내 손을 슬며시 끌어다가 꼭 쥐어 주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