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2회 졸업생 김춘선입니다.
김 희재는 제 필명이고요, 이 글은 1995년도에 쓴 작품으로 당시 어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상금을 300만원인가 받은 것이지요.
저는 1998년도에 <계간 수필>을 통해 문단에 등단을 해서 현재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대전에서 살고 있답니다.
요즘 군대 보낸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 분들이 계시는 걸 보고  그냥 이글을 올리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했던가요?
깥은 교복을 입고 있을때는 다 같아 보였던 친구들이 30년 세월을 겪고 보니 너무도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걸 봅니다.
그래도 우리 이렇게 그 세월들을 헤치고 살아 있음이 감사합니다.

글이 좀 길어서 몇개로 나누어 올립니다.



              죽변 기행

                                            김    희  재

  차가 포항을 지나자 오른편 차창 너머에 바다가 예전처럼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창문을 조금 열자 비릿하고 찝질한 갯바람이 확 끼쳐 들어왔다. 냄새만으로도 나는 이미 고향에 돌아 온 나그네 심정이 되어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뻐근하도록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오르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랜만에 그리운 이를 만난 듯한 감격은 이렇게 바닷내를 타고 밀려들었다.
끝도 모를 수평선 저 너머까지 주욱 따라 가며 널려있는 잔 구름들 사이로 크고 작은 배들이 풍경화처럼 점점이 박혀있는 것도 내게는 모두가 옛 앨범을 들추어내는 듯한 정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바다는 언제나처럼 변함도 없이 그 리듬과 동작으로 제 몸을 뒤집어 허옇게 거품을 뒤집어쓰며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다.
우리는 죽변을 찾아가는 길이다.
딱히 찾아 갈만한 집도 없고, 꼭 만날 사람도 없었지만 우리의 젊음과 추억을 찾아서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의 고향, 그 애들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