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아들 둘에 이어 3총사 아들을 만들 기대에 부풀어있던 신랑은 딸래미를 순산하자 실망에 젖었다.
그 옛날 초음파검사를 했을 때 분명 아들이라고 했었지만 기계도 믿을게 못되는지 딸래미였다.
신랑이랑 붕어빵처럼 닮은 딸래미를 한달이 가까워 오도록 들여다보지도 않더니만
방긋방긋 웃고 성장하면서 현관 들어서면 딸래미만 무릎에 앉혀놓고 재롱을 즐기더니
여대생이 된 지금도 아주 볼상스러운 부녀의 다정함에 나는 방훼를 놓으며 초를 치곤한다. *^^*

딸래미가 초등 1학년 때 담임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시험 중에 컨닝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컴컴해지고 땅이 푹 꺼지고 눈 앞은 깜깜해져 버렸다.
내 생전 하늘을 우러러 정직을 모토로 삼고 살았고 자식 교육도 그렇게 강조하며 했었는데 컨닝이라니......
갑자기 내 인생의 한 쪽이 찌그러져 들어가는 느낌에
아들 두명에서 단산해야 하는 것인데 왜 저아이를 낳았나 극단을 달리는 생각을하며 당황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고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담임과 이야기하기 전에 딸래미를 조용히 불렀다.

이야기인 즉슨,
딸래미가 걸린게 아니고 그 뒤에 있는 아이가 컨닝을 하다가 걸린 것이었다고 했다
담임은 뒤의 학생을 야단을 쳤고 그 아이의 입에서는 앞에 앉은 **(내 딸이름)가
책을 꺼내서 보았는데 선생님이 아무 말씀도 안하셔서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자기도 그랬노라고 했단다.
뒷좌석 아이가 물고 들어가는 통에 딸래미의 컨닝이 들통나 버린 것이었다.

그러면 너는 왜 시험을 보는데 책을 꺼내보았느냐고 물었다.
딸래미왈.. 시험 중에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책에 그게 있는 것을 보아 찾았노라고 했다.
지극히 자연스런 사실...모르니까 책을 찾았다...
우짬 이리도 맹~한 것까지 엄마를 닮았는지 이뿌기 짝이 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근엄한 표정으로 일장훈시를 하였다, 시험이란 에또.........

나는 세 아이를 학교에 들어보내기까지 학습지나 한글 공부와 같은 것을 시키지 않고 놀아~ 놀아로 키웠다.
유치원 때도 담임이 문제아 취급을 할 정도였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따라서 시험의 개념도 아이들은 잘 몰랐고, 한글도 모르는 채로 입학을 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올백올백이라고 그네들 엄마들이 자랑을 할 때도 올백이란 단어는
여자들의 머리를 뒤로 쓸어모아 올리는 헤어스타일로 처음엔 알아들었다.
(올백이란 과목 모두를 백점 받은 경우를 올백이라고 함)

담임을 찾아가지 않고 전자우편(그 당시엔 인터넷이 보편화 안되어 국내통신회사의 전자우편제도를 사용)을 이용하여
담임에게 일필휘지 편지를 일단 넣었다. 담임의 심금을 울리는  ㅋㅋ
담임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는게 정상이 아니겠느냐고,
그럴 때 교사나 부모가 잘 이끌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답을 주니
심금은 내가 담임을 울린게 아니고 담임이 내 심금을 울려 버리게 만든 그분도 일필휘지였던 것 같다.
(일필휘지가 여기서 고생하네)

그 딸래미가 무럭무럭 자라 이제 대학초년생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주에 기숙사에서 짐을 꾸려 집에 온다.

이 다음에 내가 손주를 보면  
손주 앞에서 "니 엄마가 예전에 초등 1년 때...어쩌구 저쩌구.." 컨닝 사건의 비리를 무기삼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방학동안 집 안일과 살림을 시킬 한가지 부풀을 일이 생겼으니
이 계모같은 엄마는 이래저래 기대에 젖어 그녀의 사진을 전격공개한다.

사진 올린 것을 알면 뒥일라고 할 것이나 본인의 아킬레스건인 컨닝의 비리를 내가 알고 있으니 지가 워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