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같은 내가 콩꼬투리만한 아내에게
등을 떠밀려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우선 지금 사업적으로 최악이여서
내가 없는 동안 아내가 그 어려운 고통을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세상 물정을 아무리 가르쳐도
아내는 시집 올 때 그대로
언제나 철없는 쑥맥이다.
그런 아내에게 짐지우기에는
이 짐이 너무 무겁다.

머리에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하나 가득 찼다.
내가 이 삼일 자리를 비우면
무슨 큰일이 날 것 같아 불안하다.
청량리로 가는 버스가 왔다.
에라 모르겠다! 차를 탔다.
차창 유리에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던
아내의 얼굴이 어린아이 얼굴처럼 어른거린다.

"내가 지금 뭐하는거야!
저 어린애 같은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
기도원을 가다니! 멍청한 놈!"

막 떠나려는 버스를 세워
결국 내리고 말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니
아내가 준 돈이 손에 잡힌다.
그냥 이 돈 가지고 어디 하루 놀러 갔다 오는 게 더 났지
기도원은 무슨 기도원!

아내에게 되돌아 갔다.
사업장에 앉아 있는 아내는
왜 오늘따라 저렇게 작아 보일까?
왜 오늘따라 저렇게 더 어려 보일까?

내가 들어서자 아내가 화들짝 놀란다.
"여보! 아직 안 떠나셨어요?
제가 안 챙겨 드린 물건이라도 있나요?"

"아니야!
당신 정말 괜찮겠어?
나 없어도 견딜 수 있겠어?

"글쎄 걱정 마시라니까요.
여기는 나한테 다 맡기고 당신은 이 삼일 푹 쉬다가 오세요.
쉬시다가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면 더욱 좋고요."

다시 아내에게 등 떠밀려 나서는 나의 심정은
아내를 폭풍우 휘몰아치는  언덕에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나는 마음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나갔지만
다시 아내에게 되돌아 가기를 두 번 이었고
버스는 십여대를 그냥 보냈다.

내가 되돌아 갈 때마다
아내는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조차 도무지 모르는 얼굴이여서
더욱 내 가슴이 터진다.

"나 없는 동안 집에 일찍 들어가고
말 상대 안되는 거래처가 오면 무조건 나한테 미뤄 놔!
무례한 놈들 한테 괜히 당신이 상대하고 나서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 원해서 가기는 가는데
오늘밤으로 당장 내려올지도 몰라."
내 속이 얼마나 타는지 모르는 아내는
웃으며 고개만 끄떡 거린다.
...................................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마치 피난 행렬과 같았다.
아줌마, 할머니,어린아이들이
솥단지, 이불 보따리, 옷 보따리...
보따리 보따리를 들고,
머리에 이고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산은 아직 눈으로 덮여있어 추운 바람이 골짜기를 쓸어낸다.

그러면 그렇지!
기도원이라니?
할일없는 아줌마, 할머니, 어린아이나 오는 곳이지
나같이 건장한 남자가 올 곳이 못되는 곳이잖아
어디 남자가 한 명이나 있어?
내가 마누라 말 안듣는다면서도 결국은 이 짓을 한다니까

그 길로 뒤돌아 오려는 마음이 불끈 올라왔다.
그러나 갈 때는 가더라도
기도원으로 오르는 저 할머니 짐은 들어다 주고 가야겠어
나는 두 서너명 할머니의 짐을 지고 산 길을 올랐다.

"젊은이 참 고맙기도 하오.
이렇게 잘 생긴 남자가 혼자서 기도원엘 가니
젊은이의 처는 정말 좋겠소
젊은이의 처는 주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여자요."
할머니들은 내 뒤를 따라 오면서
칭찬이 자자하다.

"모르는 소리 말아요.
이 짐만 들어다 주고 난 다시 집으로 내려갈거요.
내 아내는 축복을  받기는 커녕
또 어떤 못된 놈에게 빚독촉을 받으며
갖은 수모를 당하고 있을지 몰라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이 말은
나를 더욱 빠른 걸음으로 산 위에 오르게 했다.

산 속에 어떻게 이렇게 크고 넓은 기도원이 있었을까?
수 천명이 운집해 있었다.
짐만 내려주고 빨리 집으로 돌아 갈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한 할머니가 기도원 안까지 짐을 들어다 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기도원 안에까지 들어가
짐을 내려 주고 막 밖으로 나오려는데
마음 속에서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이 정말 살아 있나 물어라도 보고 가야지"
라고 나를 부축인다.

어디 자리에 앉아볼까 하고
앞으로 가보니
사람들은 기도원 바닥에 각각 밍크 담요를 넓게 깔고
그것은 자기들의 자리라고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혹시 밍크 담요 자락 끝에 걸터 앉기만 하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한 맹수가 공격하듯
"거기 우리 자리예요! 어서 비켜요" 하며 쏘아 붙인다.

앞에서 부터 중간 지점까지
서너 번 그런 공격을 받았다.
"그러면 그렇지!
예수 믿는 것들!
내 이래서 예수 안 믿는 다니까!
자리 싸움 하려면 여기는 왜 와서 앉아 있는거야!
여기 온 여자들은 다 밥하기 싫어서 가출한 년들이고
여기온 남자들은 부도내고 갈 데없어 도망온 놈들이지.

하나님! 정말 당신이 살아 있는 신이라면
원수 사랑은 둘째 치고
당신 믿는 저 년 놈들 자리 싸움이나 말려 보쇼."

아무런 미련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데
한 할머니가 나를 붙든다.
"이보게 젊은 양반!
내 옆에 앉아 나랑 예배 한 번 드려주겠나?
내 아들 같아서 그러네.
그것이 내 평생 소원이었어."
그 할머니는 나에게 부탁이 아니라 애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할머니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는 사이에 밖에 나갔던 수 천명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빽빽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시끄러운 악기 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찬송을 하기 시작 했는데
나는 그 노래 중에 아는 것이 한 곡도 없었다.
열광적으로 노래를 지휘하던 지휘자가
뭐라고 뭐라고 외치면 그 거대한 예배당이 떠나가도록
그들은 함성을 질러댔다.

때는 이 때다!
이왕 여기에 이렇게 주저 앉게 되었으니
정말 하나님과 담판을 짓자!

"하나님! 당신이 정말 살아 있오?
그럼 어디 한 번 나에게 나타나
내 다리 몽뎅이 한 번 부셔 놓아 보시오!
그러면 내가 믿겠오."
나는 고래 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업 하다가 망해서 여기 까지 올라와야 했던
나의 비참한 울분이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불안과 애처로움이
예수 사랑 운운 하면서 자리 싸움하는
예수 믿는 것들에 대한 분노가
가슴을 꽉 막고 있는 큰 응어리 되어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나님! 살아 있으면 어서  나와 보라고
허공에 삿대질 하던 나의 손가락 저 끝에
까만 점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거기엔 십자가에 매달린 한 사나이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굴은 가시관에 찔려 흘러 내리는 피로
손과 발은 못에 박힌 상처에서
샘솟듯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창에 찌린 가슴에서 흐르는 피는
피의 강을 이루어
그 사나이의 몸에서 흐르는 피의 강에
내 몸이 잠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이 끓어졌다.
그러면서 나의 지나간 세월이
죄로 얼룩진 것을 알았다.

나는 부모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자식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남편이었다.
나는 자식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아버지었다.
나는 이웃들에게 살아 있어서는 안 될 이웃이었다.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나도 모르게 오열이 터져 나왔다.
내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죄에 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 무거운 죄의 짐을 감당 할 길 없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 주십시오!
하나님! 나를 용서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나를 죽여 주십시오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했다.
땀으로 온 몸이 젖었고
땅바닥을 주먹으로 얼마나 쳤던지
내 손은 시퍼렇게 부어 올랐다.
몇 시간을 몸부림치며 울어댔을까?
십자가에서 부터 흘러 내린 피의 강이
내 몸을 짖누르고 있는 죄의 무게를 씻겨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 때 나의 모든 죄의 짐이 없어지고
바위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입술이 내맘대로 움직여 지지 않고
이상한 움직임으로 변하더니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너무 울어서 흐느끼는 일종의 입술의 변화일까?
내 의지는 가장 이성적인데
제어되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이 언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감사와 기쁨으로 터질 것 같은
이 감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