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여기 동국대학 후문에 있는 제일 산부인과예요.
지금 빨리 좀 와주세요.
저는 죽을 것 같아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요."

그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울기만 했다.
아마 그 곳에서도 자궁암 말기로 진단이 나왔나보다.

그는 무당이 될 뻔 했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평소 건장했던 남편이
췌장암에 걸린 것이다.
그는 굿도 하고
자신이 받들고 있는 귀신들에게
떡과 음식을 받치며 빌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췌장암 진단을 받은지
두 달도 안되어
얼굴은 황달로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변해 갔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를 찾아 왔었다.
그 때 선교일을 하던 우리는 그의 남편을 위해
모두 사흘 동안 금식을 하며 기도해 주었다.
그러는 중에 그의 남편은 예수 믿고
편안히 천국에 임하는 모습을
우리와 그의 가족에게
보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남편은 하늘나라에 갔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흘이나
금식을 해 주는 사랑에 감동되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37세에 혼자가 된 불쌍한 여인이었다.
그에게는 초등학생인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었다.

이제 아버지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이대 부속 병원에서 내린
자궁암 말기 라는 진단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어미까지 잃게 할 수 없다고
그는 이곳 저곳 닥치는 대로 병원을 찾았다.
자궁암 말기라는 진단이 제발 오진이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최종적으로 받아 들이겠다고 마음 먹은
제일 병원에서도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보니
눈 앞이 캄캄해서 걸을 수 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그를 찾아
나는 비 내리는 저녁길을 걸어 제일 병원에 갔었다.

"사모님! 나는 수술도 못한데요.
남편이 없으니 얼마든지 자궁 적출 수술을 하라고 해도
의사 선생님들이 수술을 못한대요.
수술이라도 한 번 해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으련만...
수술을 못한대요."
그의 절망은
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를 데리고 교회로 돌아와
우리가 한 것은 기도 뿐이었다.
그 날 밤을 꼬박 새우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아비를 잃은 어린 남매에게
또 어미를 잃게 할 것 같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무자비한 분이 아니라는 확신이 왔다.

"주님! 과부와 고아의 신원의 소리를 들으시는 주님!
저 불쌍한 여인을 치료해 주십시오.
수술을 못할 정도로 병이 깊어요.
주님이 살려 주시는 길 밖에는 아무런 길이 없어요."

얼마동안 그렇게 울며 강청하였을까?
푸른 국화잎이 보였다.
국화잎이네! 하려는데
내 생각과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입에서는 쑥! 쑥! 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여인을 살릴 아무런 방법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쑥으로 치료해 보기로 했다.
이른 봄이었기 때문에
양지 바른 곳에 겨우 얼굴을 내미는 어린 쑥이 있을 뿐이었다.

그 쑥을 뜯어다가 절구에 찧고
헝겊에 쑥을 얇게 깔고
그것을 몸에 부치고 앉아 있었다.

사흘동안 그 여인도 나도 금식을 하면서
전혀 기도에만 매달렸다.
이 방법 밖에는 살아 날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식 첫 날
그 여인이 회개가 터졌다.
쉬지 않고 4시간을 울면서 회개를 했는데
얼마나 눈물과 콧물을 많이 흘렸는지
그 방바닥을 닦는데
비누로 닦어내고 또 닦아내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금식 둘째날
몸 속에서 벌레 같은 것이 기어 나온다고
그는 소리 소리 질렀다.
환부에 대었던 쑥을 보니
정말 피고름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여러번 새 것으로 갈아 주어도 끝이 없었다.
피고름이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쑥이 강력한 흡입제처럼 피고름을 흡입해 내는 것 같았다.

금식 사흘 째.
그는 몸 속에서 무언가 쑥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계속 쏟아지던 피고름이 멎고
이상한 액체의 분비물이 또 나오는 것이었다.
수없이 헝겊을 갈아내고 난 후에
그는 날아 갈 듯이
가벼워진 몸이 어쩐 일인가? 하고 의아해 했다.
몸에 고통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여인의 오빠들은
왜 수술은 안하고 병을 키우게 하냐고 교회로 항의를 하러 왔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병원에서 재 검진을 받아야 했다.
이번엔 중대 부속 병원까지 검진을 해 보았는데
병원마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저 냉증이 심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술도 할 수 없어서 두려움에 떨던  
그는 수술도 안하고 병이 나은 것이었다.

그 날 내가 제일 병원에 다녀온 이후 16년이 흘렀다.
37세 였던 그는 53세가 되었다.
지금도 건강하게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

그 세월 동안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은 전도사가 되었고
중학생 딸은 목사 사모가 되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불쌍한 과부를 고쳐주신 주님은
16년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우리 곁에 계신다.

그 날은 이른 봄비가 차갑게 내리는 날이었다.
비 내리는 저녁 길을 걸어서 나는 제일 산부인과에 갔었다.
그 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움에 파르르 떨고 있었기에...

오늘도 비내리는 저녁길을 걸어서
나는 삼성 제일 병원에 갔었다.
그 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움에 파르르 떨고 있기에...
16년 전에는 수술을 못하는 두려움이었고
오늘은 수술을 해야 하는 두려움이 다를 뿐이다.
사람은 달라도 주님은 그 날이나 오늘이나 동일한 분이시다.
그 날은 수술을 할 수 없었던 것에 감사하고
오늘은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그날 수술을  안하고 고쳐주신 주님은
오늘은 수술을 통하여 고쳐 주실 것이다.
그 분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