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기 전 날 처럼 설레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먼 길을 떠나야 하므로
애써 잠을 청했다.
두어시간 자고 새벽기도 때 일어나
기도해야 할 이름들을 낱낱이 기도하고
길 떠날 준비를 하였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30세 초반의 황금 같은 나이에
주님의 인도 하심에 순종하여
흙, 풀, 나무, 물길을 따라
복음을 들고 들어가서
그 곳 농부들과 같이
스스로 흙이 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물이 된
최종철 목사님을 찾아 가는 길이다.

목사님의 목회 소식을 전해 들은
인일 10기 동기들이
며칠동안 사랑의 마음을 모았다.
어떤 동문은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어렵게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서슴없이 사랑 나누기에 동참하여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사랑 나누기 모음은
10기 이인옥 선배님이 중심이 되어
강력한 자석처럼 곳곳에서 사랑을 끌어 들였다.

우리는 그 사랑을 전하러 가는 심부름을 맡았다.
오전 9시 30분에 청담역 1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 시간 20 분 전에 도착한 것은 마음이 자꾸 앞서니
발도 빨라 질 수 밖에 없어서 일 것이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선배님들의 차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차 안에서 손을 흔들며 반가와 하는
세 명의 선배님들과 만났다.
오늘 이 아름다운 사랑의 나눔에
운전이라도  봉사하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운전석에 앉은 송영숙 선배님.
오가는 길에 먹을 김밥, 커피등을
새벽부터 준비해 가지고 나온 김진선 선배님.
빵과 음료수 과일을 꼼꼼히 챙겨오신 이인옥 선배님.

강원도 정선을 향해 가는 길에서
이인옥 선배님은 우리 동문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져 이 일을 이룬 것을 감사하고
마냥 행복해 하였다.

기암 절벽 위에 홀로 외롭게 서 있지만
그 기상과 절개를 지키고 있는 푸른 소나무
연두색 신록으로 번져가는 산은
그대로 연두색 꽃산 같았다.
맑은 물줄기 굽이굽이 따라가는 정선 가는 길.
가다가 길을 묻노라면
얼굴이 검게 그을린 건장한 농부 아저씨는
너무 친절하여 우리의 마음을 송구하게 한다.

산길따라 물길따라
얼마나 깊숙히 들어 왔을까?

저 앞에 언듯
숙암 교회가 보였다고
인옥 선배님이 환호했다.

숙암교회!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작은 교회는
처음 만나는 우리들이 낯설은 듯
매우 수줍어 하고 있었다.
교회에 들어가 보니
의자없는 예배당은
아주 작았지만  정갈했다.
교회 주보를 보니
지난 주일 낮 예배 모인 인원이 9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지난 주일은 부활절 이었는데...

목사님은 교회 건물 2층에 살고 계신 것 같았다.
어디를 가셨을까?
목사님은 안계시고
사람이 그리웠던 흰둥이와 누렁이만
땅을 구르며 우리를 반가와 한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기다리는 동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선 5일장을 가기로 했다.
송영숙 선배님이 오랜 미국 생활로
향토 냄새 물씬 풍기는 장터를 가고 싶어 해서이다.
또 기다리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인옥 선배님은 장터를 돌아 다니며 어린아이처럼
신바람이 났다.
빈대떡, 올챙이 국수, 콧등치기 국수, 배추 부침개...
쑥 떡, 찐 빵...
장터를 돌면서 우리가 사먹은 음식들이다.

혹시 목사님이 와서 기다릴세라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꾸려가지고
교회로 다시 와보니 여전히 아무도 없다.

기다림에 지쳐가려니
비까지 억수로 쏟아 붓는다.
깊은 산속 골짜기는 이내 물안개로 앞이 안보인다.

인옥 선배님이 지나가는 차들을 다 세고 있다.

"저 차가 목사님 차 인가봐!"

"아니야! 저건 버스인걸."

"저 차가 목사님차 같은 휠이 확 오는데!."

"아니야! 저 차는 교회 앞을 달려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

어린아이 같은 이인옥 선배님과
눈 웃음과 미소가 천사같은 김진선 선배님과
거의 한 시간 동안 지나가는 모든 차를
목사님차다.
아니다 로 주고 받고 있다.

송영숙 선배님은 비 그친 풀밭에서 나물을 뜯고 있다.

전화국에 전화를 해보고
동네 아저씨께 물어보고
정선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목사님들 모임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 곳에도 가보고...

장장 5시간을 누구를  기다린 기억은
우리 네 사람 다 같이 전혀 없단다.
그런데 그 어떤 힘이 우리를
길고 긴 시간 기다릴 수 밖에 없게 했는지...

더 이상 못기다린다고 가자고 하는 사람도 이인옥 선배님이고
그럼 우리 이제 그만 가자! 고 하면 못내 떠나지 못하고
우리 떠나고 나면 목사님이 꼭 오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인옥 선배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려 5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목사님 내외를 만날 수 있었다.

십수년을 흙 속에 묻혀 그 모습 그대로 흙이 된 목사님.
흙 처럼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흙 처럼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십수년을 물 처럼 사신 목사님은
이젠 이 세상 모든 것에서
물 처럼 소리내지 않고 흘러가는가?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고만 계셨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온화하고 평안한 얼굴로 우리를 대했다.

너무 늦게 만나게 되어
함께 식사도 못하고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그저 우리 인일의 사랑의 모음을 전달하고
돌아 갈 길이 먼 우리는
서둘러 떠나야만 했다.

목사님 부부는
비록 만남의 시간은 10분 정도 였지만
반나절을 쉼없이 달려오고
또 어두워진 산길을  깊은 밤까지 달려가야 하는
우리 인일의 사랑을 오래 오래 지켜보고 서 있었다.

목사님 부부는 인일의 사랑을 통하여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목사님 부부만이 걷던 외로운 길에서
같이 웃고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라고 포기하고 싶었을 때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받으셨을 것이다.
인일의 사랑들이  모이고
우리 네 사람이 하루를 꼬박 달려온 이 만남은
목사님이 주님을 향하여 올렸던
무언가 뜨거운 기도의 응답이었을 것이다.
목사님은 이젠 하늘만 보아도
오늘 우리와 만났을 때
웃으셨던 그 깊은 웃음을
언제나 웃으실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인일인들의 사랑을 통하여
당신의 종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씀 하셨을 것이다.
인일동문들은 다같이 한 동역자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한 것이다.

갈 때는 가까웠던 길이
집으로 돌아 올 때는 몇 배나 길어졌는지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조금도 피곤함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초지일관 운전하는 송영숙 선배님 등 뒤에서 버릇없이
새까만 후배인 나는 콜콜 잠이 들어 버렸다.

꿈까지 꾸며 자다가 깨어보니
김진선 선배님이 숄을 접어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거기다가 졸음이 가득한 나를
그대로 전철로 태워 보낼 수 없다고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가셨다.
우리 네 명은 13시간 동안 차 안에서 있는 동안
서로를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한 형제 자매같이 가까와졌다.

깊은 밤
비로소 집에 가서  
밀린 집안 일을 분주히 하고 있을
선배님들을 사랑하며
나는 이 글을 쓴다.
캄캄한 산 골짜기 숙암교회 기도실에
다시 무릎 꿇고 앉으셨을 목사님 부부.
흙 속에 묻힌 세월이 결코 길다 여기지 않고
남은 세월도 또 그렇게 살아가실
목사님 내외의 반백의 흰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보탬이 될까하여...
  
인일이 뿌리고 온 사랑의 씨앗이
강원도 정선 뿐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어느 곳이든지
계속 번져 갈 것을 간절히 소원한다.

또한 이 사랑의 씨가 한 해 살이 풀이 아니라
사랑의 나무가 되어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해가 거듭 될수록
더 많은 열매로 풍성해 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