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을 끝낸 의사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과민성 장출혈인데  
병증이 심해서 더 나쁜쪽으로  진전 되었을지도 몰라요
다음 주 화요일에 정밀 검사를 받도록 합시다."
의사는 짧게 말했지만
그 표정이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 올 때 보다 집으로 돌아 갈 때가
마음이 더 무거웠다.
사업도 망해서 빚더미에 앉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죽을 병이 들었나보다.
악성 빈혈이 왔는지
눈앞이 까맣고 어지럽다.

나는 오랫동안 변비와 설사를 섞어하더니
몇개월 전 부터 혈변을 보기 시작했다.
변비이면 모를까
설사 할 때도 많은량의 피를 쏟았다.
이렇게 짧게 살고 갈 것을
그토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니...

여자는 가장 절망했을 때,
혼자서 슬픔을 삭힐 수 없을 때
어머니를 찾는가보다.
나도 모르게 인천행 전철을 탔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결혼을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권하셨지만
나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초에 남편은
돈을 잘 버는 사업가였다.
10개월 동안 물건을 만들어
2개월동안 매출을 하는데
1일 평균 3천만원을 판매한다.
3년 정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니까
돈도 많이 모이고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삶은 왜 그토록 허전하고
목말랐는지 모른다.
그것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의 모든 것이 다 망가진 다음에야 알았다.

돈 많고 건강하고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제일 먼저 사람이 망가졌다.
남편과 시동생들은 여자와 술, 도박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택한 길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내 인생을 돈과 바꾸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주님! 우리 집에서 돈을 다 가져가고
남편과 시동생을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기도한지 반년도 못되어
남편은 손대는 것마다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빚더미에 앉아
두 손을 들게 만든 것은
해로운 사람을 만난 것이다.
사람이 잘 되려면 해롭게 하려고 온 사람까지
오히려 돕는 자가 되는 것이고
사람이 안되려면 도우려고 온 사람까지
오히려 해롭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타락하여 받는 고통이 제일 클 줄 알았더니
사업에 실패하여 돈 없는 고통도
그 비참함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만큼 고통스러웠다.

나는  실패했을 때
몸이 아플 때  
남편과 사이가 안좋을 때
곱게 단장하지 않았을 때
절대 친정에 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
친정 어머니는 나의 아픔보다
천 배, 만 배  더 아프게 느끼게 되시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 한마디를
우리는 금방 잊어버리지만
부모님은 잊지 못하고 깊은 시름을 앓거나
상처를 안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은
사업에 실패한 모습 그대로
남편과 사느냐 안사느냐 싸우는 모습 그대로
혈변으로 창백해진 얼굴 그대로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은
누가 봐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모습 그대로
어머니에게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위장하기 싫었다.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이지만
보란듯이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하나님을  떠나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떵떵 거리고 싶었는데
하나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나의 연약함을 속이기 싫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못이기는 척하고 무릎 꿇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신 집 가까이에 오니
다시 망설여졌다.
나의 다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하실까
기절 하실지도 몰라.
이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
많은 생각이 실타레처럼 엉키고 있었다.

집 모퉁이에서 되돌아 가려는데
"집에 왔으면 들어오지 왜 안 들어오고 왔다 갔다 하냐?."
내가 오는 것을 창문으로 보고
마중 나오신 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머니를 보니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런데 어머니는 울고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담담하셨다.

"엄마! 우리 사업하던 것 다 망했어요.
집도 남에게 넘어가고 우리는 땅바닥에 내몰릴 거예요."

"할렐루야!."
어머니는 나의 참담한 절망이 무슨 노래나 되는 것처럼
"할렐루야"를 후렴구로 대꾸한다.

"엄마! 글쎄 우리 사업이 망했다니까!."

나의 악에 받쳐 격앙된 목소리에도
여전히 "할렐루야!" 대답 뿐이다.

"엄마! 거기다가 나 죽을 병 들었어!"

눈물이 글썽글썽한 나의 이 말에도
또 "할렐루야!" 하시더니
한 술 더 떠서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내 딸과 내 사위 어서 주님께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돈도 부수고, 건강도 부수고,
안 되면 생명을 부수어서라도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소리내어 기도까지 하시는게 아닌가?

"도대체 우리 엄마 맞아?"
한없이 심각했던 내가 맥 빠질 수 밖에 없잖은가

"정옥아!
돈도 부숴지고
건강도 부숴지고
자존심도 부숴져도 두려워 하지 말아라!
네 곁에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 네게 있으면 그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이고
네 곁에 금은 보화와 천하가 다 있어도
하나님 없으면 그 모든 것이 다 없는 것이다
물 거품 같은 것에 목숨 걸지 말아라!
어서 하나님께 돌아오너라!
하나님께 등 돌리고 네 멋대로 산 것을
어서 회개하여라.
하나님이 너와 네 남편을 구원하시려고
벌써부터 일하시고 계셨구나!
할렐루야다!

납득 될 수 없는 어머니의 태도에 약이 올랐다.
얼른 일어나 집으로 되돌아 왔다.

그날부터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나와 내 남편을 구원하시기 위한 작업이라면
더 부수십시오. 남김없이 부숴 주십시오.
재산도 부수고 건강도 부수십시오.
내가 주님보다 자랑하는 것들
내가 주님보다 의지 하는 것들을 다 부숴 주십시오.
새 것을 세우려면 옛 것은 다 부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다시 돌아가기 원합니다.
나혼자가 아니라 내 남편도 내 가족도 다 데리고
떼를 이루어 주님께 돌아가기 원합니다."

그렇게 3달동안 마음 속으로만 기도 하였더니
어디 산이라도 가서 마음껏 소리내어
기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은 예수와 교회에 대해서 무조건 반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머니의 서원 기도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도
무시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교회 간다는 이야기
예수, 하나님...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기도하러 간다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

"여보! 자양동의 한 사장 머리가 돌았나봐."
자양동에 수금을 갔던 남편이
뜬금없이 내 뱉는다.

"왜요?"

"매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돈을 안주더니
오늘은 나를 보자마자 400만원을 다 내놓는거야.
그러면서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준 돈이래.
500만원이 필요해서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더니
산에서 내려오는 날로 생각지도 않은데서
500만원이 생겼다는거야.
미쳤지!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가 있어?
거기다가 돈을 달라면 돈을 준다?
그래도 그렇게 미친 건 잘 된 일이야
좋은 쪽으로 미쳤으니 이렇게 우리 돈도 받았잖아.
당신이 믿는 하나님도 돈 달라고 하면 돈을 주나?"
비웃듯이 남편은 물었다.

"주고 말고요!
하나님은 믿고 구하는 자에게 구하는 것을 주셔요!"

"어쭈! 여기 머리 돈 사람 또 하나 있네
그러면 당신도 기도원에 가서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 천만원만 달라고 해봐!
정말 갖고 오면 나도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믿을께."

"정말이예요?
그럼 나 내일 기도원에 보내 주는 거예요?"

"그래 보내 준다니까
내가 약속하고 안지키는 것 봤어.
남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께."

나는 이것이 3달 동안 남모르게 기도한 것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었기에 그 기쁨은 표현할 길 없이 컸다.

"엄마! 나 내일 기도원에 가게 되었어요!
물론 허락 받고 가는 거예요."


그 날밤
가슴이 설레여서 한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른 아침
기도원에 가려고 가방을 챙겼다.
남편은 분주한 나를 보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혼자 기도원에 못 보내겠어.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 모르니
마음이 전혀 안놓이네.
여보! 안가면  안될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자
남편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럼 막내를 데리고 가.
순아! 언니와 같이 기도원에 다녀와라.
여보! 오늘 하루 뿐이야!
내일은 틀림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해!"
남편은 몇 번이나 나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겨울 방학 중이었던 막내 시누이는
빠른 움직임으로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시누이와 기도원으로 향했다.
내 인생에서도 처음 이었지만
시누이는 나보다 더욱 생소한 길이었다.
평소에 나를 좋아하는 시누이는
그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으로 마냥 즐거워 했다.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산 길은
하얀 눈으로 쌓여 있었다.
2월 3일!
혹독한 추위가 살을 에일 듯 매섭다.

깊은 산 속
넓고 넓은 예배당에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 들었을까?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어려운 남편의 허락을,
시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올라 왔을까?

밤 10시경에 저녁 집회가 끝났다.
그 중에 태반 이상이 자리를 떠나 숙소로 갔고
어떤 이는 찬양을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 밑에 뭔가 와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시누이가 누워서 코 밑에 얼굴을 빤히 놓고
내 기도를 다 듣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여지없이 또 따라 온다.
"언니! 기도 하지 말고 나하고 얘기나 하자~."졸라 대기도 한다.

할수 없이 산 속으로 높이 높이 올라갔다.
"언니! 언니!"
시누이의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시누이는 혹독한 추위와 칼같은 바람이 불어대는  
눈 쌓인 산 속엔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눈 위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님!"
한 번 입을 열어 보았더니
온 산의 바람이 다 몰려온 듯
'훅'하고 입 안이 얼어 붙는다.

"주님!
제가 주님께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부르고 있어요.
주님! 저는 이 명구 권사의 막내 딸이예요.
제 이름은 잊어 버리셨겠지만
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시는
저의 어머니 이름은
알고 계시겠지요?

나는 감히 내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내가 주님이라면 내 이름은
도저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쾌씸한 이름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깊은 곳에서 부터
오열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얼마 동안 울고 또 울었을까?
그 때부터는 하늘에서 솜 이불이 내려와
나를 덮어 주는 듯 조금도 춥지 않았다.
바람도 느껴지지 않고 온 산이 고요하고 평온하였다.

저 멀리 까만 돌 위에
반짝이는 글씨가 보였다.
"남편을 사랑하여라."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주님! 저는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랑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이 죽으라면 죽기까지  합니다."
항변하고 있는 나의 앞에
남편의 모습이 또렷히 보였다.
눈이 먼 장님에
귀머거리이고
벙어리 였다.
온 몸에 누더기를 걸친 더럽고 추한 모습 이었다.
사면이 높은 산으로 막힌 골짜기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죽을 불쌍한 모습이었다.

"아! 아니예요.주님!
이것은 내 남편의 모습이 아니예요.
그 사람은 젊고 건강하고 부유합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거지 모습의 남편은
뼈들이 끝없이 쌓여 있는
아골 골짜기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주님! 잘못 했어요.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오직 나만 사랑했어요.
그가 멸망의 골짜기에서 죽어가는 영혼임을 알면서도
단 한번 주님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의 핍박을 받기 싫었어요.
주님을 전하다가 제가 고통 당하는 것이 무서웠어요.
그러나 이제는 내가 죽을지언정
그에게 주님을 전하겠어요.
주님!
나의 눈을 빼서 그의 눈을 열어주시고
나의 혀로 그의 혀를 대신 하시고
나의 귀로 그의 귀를  듣게 해 주세요.
저의 생명을 취하여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나는 정말 그 곳에서 애를 끊어내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그렇게 울며 울며 또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른걸까?
남편은 아주 젊고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었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찬양하고 있었다.
남편 앞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다.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이 그 광경은 뚜렷했다.

아! 주님이 남편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로구나!

그 때 산 아래 성전에서
땡그렁! 땡그렁!
새벽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