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이 아이의 행동이 미심쩍다.
나는 사춘기여서 예민해 진 탓으로 생각하고
각별히 마음을 썼다.

저녁 반찬 투정을 했다.
전에 없던 행동이다.
이 삼일은 투정으로 끝나더니
이젠 아예 밥을 먹지 않는다.
내가 걱정을 하고 있으려니
막내 아들이
"엄마! 형아 하고 누나하고 식당에서 밥 사먹었어
형아는 배고프지 않으니 엄마 속상해 하지마." 한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다니?

늦은 시간 동생과 들어온 큰 애에게

"누가 너에게 돈을 주었니?"

"외삼촌이요."

"외삼촌이 우리집에 왔었니?"

"아니오. 학교에...."

"저 외삼촌이 저보고 상업계 고등학교에 가래요.
그리고 우리들 이젠 외삼촌 집으로 갈래요."

"외삼촌 집으로 오라고 하던?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큰 애는
무언가 비장한 각오를 한 눈빛이다.

무엇부터 생각해야 하는지
이럴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머리 속이 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우리집에 온지 몇 년이 되어도
전화 한 통 없던 외삼촌이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외삼촌 전화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니
아이는 모른다고 딱 잡아뗀다.

그 이튿날.
교회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큰 애와 딸아이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간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울며 울며 아이들을 찾아 다녔다.
애타는 나의 마음처럼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올 때까지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하루가 꼬박 지난 오후에 큰 애가 전화를 했다.
"사모님! 잘못했어요."
그 한 마디 하고는 엉엉 울기만 한다.

"어떻게 된거니 어서 말해봐."

"여기 영락 교회 고아원 인데요
빨리 와서 우리들 좀 데리고 가 줘요."

나는 급히 영락 교회 보린원으로 갔다.
고아원 밖에서 초조히 나를 기다리던
큰 애가 달려와 내 가슴에 와락 안겨 흐느껴 운다.

아이들에게 유일한 친척인 외삼촌은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항상 불안 했던 것이다.
친척인 자신도 누이 동생의 아이들을 기르지 않는데
아무 관계도 아닌 우리가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 되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집에서 아이들을 내놓는 날이
자기의 짐이 되는 날인 것이다.
아이들의 외삼촌은 들어가기 힘든 영락 보린원에 조카들을 넣기 위해
미리 서류를 제출하고 준비를 한 것이었다.
큰 아이에게 상업계 고등학교를 가라고 한 것은
고아들이 인문계를 가면
국가로 부터 한 푼의 학비 보조가 없기 때문이다.
상업계든지 공업계 고등학교를 가면
극빈자 장학금이 있기 때문이었다.
보린원에서 승락이 나자
조카들을 자기 집으로 오게 하여
자기 집 대문 안에 한 발짝 들여 보내지 않고
그 시간으로 아이들을 돌이켜 고아원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나는 보린원 총무과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으나
법적인 보호자로 증명 될 수 없어서
아이들을 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의 외삼촌에게만 아이들을 데려갈 권한이 있다고 한다.

큰 애는 사태의 심각함을 알아 차렸는지
계속 울기만 한다.
또다시 밤은 되어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나에게
주머니에서 외삼촌 전화번호를 꺼내어 내민다.

전화를 받은 외삼촌은 조금도 굽힐 줄 몰랐다.
오히려 자신은 어젯밤 처음으로 발 뻗고 편안히 잠을 잤다고 한다.
우리집에 가 있는 조카들이 언젠가 갑자기 자기집으로 몰려오면
자기는 부인과 이혼해야 된다면서...
영락 보린원은 시설도 좋고
대우도 좋아서 한 번 들어가기 어려우니
절대로 아이들을 내 주는데 동의 하지 않겠다고 강경하다.
사정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고
이 곳에 오지 않고
내가 서류를 가지고 그 곳으로 갈 터이니
도장만 찍어 달라고 해도 단번에 거절이다.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고 싶었다.

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이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끌고 왔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 이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끌려가게 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믿고
이 아이들을 나에게 맡기셨는데
정작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이 있는 것이 고통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동안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하면서 음식도 먹었고
나에게 불평 할 것도 많았으나
말도 못하고 지낸 것이다.

이 아이들의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나는 온갖 칭찬을 들었다.
어떻게 남의 아이들을 기를 수 있겠느냐
하늘이 낸 사람이라느니
심지어 천사라는 말까지 들은 것이다.
그런데 그 내막은, 나의 실체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이들이 우리집을 떠나고 싶을 만큼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기는 편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몇 년동안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한
사랑 점수는 0점 이었던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리고 나의 잘못을 낱낱이 회개했다.
"주님! 다시 한번 아이들을 저에게 돌려 보내 주셔서
그동안 잘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그즈음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입양하여
서커스단에서 일하게 했던 사건이 뉴스 때마다 떠들썩 했다.
입양한 어린아이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며
학대하고 폭행했던 사람들이 붙잡혀 가고 세상 사람들은 비정한 인심에
가슴을 치며 분개했다.
그래서 고아원마다 모든 절차가 까다로와졌다.

그 날부터 나는 매일 영락 보린원에 갔다.
큰 애는 유리창으로 내다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층계 계단을 두개 세개 한꺼번에 마구 뛰어 내려왔다.

"오늘은 집에 갈 수 있는거죠?"
아이들은 가방까지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번번히 나의 등 뒤에서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두 아이를 놓고 나혼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곳에서는 남매가 따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오빠가 동생을 보려고 해도
동생이 생활하는 아래층 복도에 가서
따로 불러 내야 한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보린원에 가서 사정 사정 했더니
그 곳에서 예외의 규정을 적용해 주었다.
또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 몇 명이
이 부족한 사람을 믿고 감사하게도 연대 보증을 서 주었다.

나는 연대 보증을 서 준 그 곳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허리를 깊이 굽혀 감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해보라고
이 아이들을 나의 품으로 돌려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 또 감사했다.

큰 아이는 "사모님! 다시는 다시는..." 하며 울먹이고

나는 "주님! 다시는 다시는...
이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을께요."하면서 울었다.

그 해에
큰 애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의 외삼촌이 염려 했던 대로
정부에서의 학비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이에게 지혜를 주시고
열심히 공부 할 수 있는 마음과 건강을 주셔서
큰 애는 3년간 계속 1, 2등을 하며 학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