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아주 익숙한 일상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
우리는 종종 낯선 곳을 찾아 떠납니다.
그것은
익숙함 속에서 느끼는 낯설음을
낯설음 속에서 느끼는 익숙함으로 상쇄시켜
일상의 나른함을 벗어버리고픈 몸짓입니다.
이 방은
그렇게 떠났던 낯 선 곳에서
보고 느끼고 겪었던 기억들을 저장하는
세번 째 기억창고입니다.
그대여.
너무 많은 기억들 속에 묻혀서 다 헝클어지기 전에
그 여행지의 추억들을 차분히 간추려 보시지요.
[ 위 사진은 5기 이 수인님 작품입니다 ]
1. you got it / roy orbison
2. One Love / Blue
3. A lover's concerto / Sarah Vaughan
4. Cotton Fields / CCR
5. The Rose / Bette Midler
6. TryTo Remember / Nana Mouskouri
7. Now and forever / Richard Marx
8. Cantaloop / US3
9. You Gotta Be / Des'ree
10. Joyride / Roxette
11. And I Love You So / Don McLean
12. Thank You / Dido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축제를 기획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듯이
야트막한 구릉에다 보리를 잔뜩 심어 놓고는 꽃마차까지 준비해 놓고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제주도 유채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소도구들도 있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보리가 아주 요긴했던 곡식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관광을 하기 위한 소품으로 쓰이다가 그대로 베어 사료로 쓴다고 했다.
먹을 것이 너무 넘쳐나는데 정작 먹을 만한 것은 없어지는 세상.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계속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서 저리도 분주하게 떠나는 것일까?
그럼 나는 왜 떠나왔는가.
무엇을 보고싶어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일상을 벗어나고자 무작정 떠나온 길.
벗어나고픈 일상이란 것이 나를 그리 괴롭게 하지도 않았건만 나는 늘 떠나고 싶어한다.
마치 주기적으로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이것도 늙어가느라 겪는 자연스런 심리 과정인지도 모른다.
보리밭에 한 줄기 바람이 솨아 지나갔다.
청량하고 맑은 소리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직 채 익지 않은 보리 냄새가 싱그럽다.
보리밭에서 사랑을 나누던 옛 소설의 주인공들 생각이 나서
응큼한 상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보리밭과 물레방앗간이 연애의 산실이었는데
지금 아이들은 어디에서 연인과 만나 밀어를 속삭이며 달큰한 연애를 할까.
하기사 나의 시절에도 보리밭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삭막한 도시 공간에서도 마구 청춘을 불태우며 사랑을 했지.
지금 아이들도 다 저마다의 공간 속에서 가슴 벅찬 사랑을 배우고 있을거야.
보리밭 사잇길을 거니는 내내 우리는 마치 스무살짜리 계집애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마치 처음 세상 구경을 나온 순박한 아가씨들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계속)
굴비 정식으로 점심을 먹기 위헤 일부러 찾아간 영광은 조그마한 소도시였다.
어딜 가나 촘촘하게 엮어서 매달아 놓은 굴비가 가득한 상점들이 많아서
여기가 정말로 굴비의 본산임을 인정하게 했다.
하지만 영광 굴비 한정식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내가 상상한 것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제법 큰 굴비가 따끈하게 구워져 나오는 밥상이었는데
정작 굴비는 도시에서 흔히 먹는 것보다도 볼품이 없는 것이었다.
대신 밑반찬들이 한 상 가득했지만 딱히 젓가락이 갈 만한 반찬도 없었다.
다시는 영광에 굴비 정식 먹으러 오지 말아야지.
1인분에 2만원도 넘게 주어서 더 만족하지 못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해남 대흥사를 향해 길을 나섰다.
영광에서 해남까지 가는 길은 <백수 해안도로>를 탔다.
길을 닦은지 얼마 되지 않은듯 보이는 해안도로에는 마침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산길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 옆에 피어있는 붉은 꽃이 해당화라니....
내 평생 실제로 해당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 라는 노랫말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참으로 정겨웠다.
어디선가 섬마을 선생님이 불쑥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계속)
해남 대흥사는 거의 가본 곳이 없는 이 몸이 다녀 온 곳이라 흥미진진하네요.
자아 계속하세요~~~~~~~~~~~~~~~~~~~~~~~~~~~~~~
<두륜산 대흥사>라고 했다.
서산대사의 기념사원인 표충사도 있는 해남의 대흥사를 품고 있는 산이 두륜산임을
산문에 내 건 간판을 보고서야 처음 알았다.
두륜산은 허황되고 과장된 소문없이 내공이 깊은 영산이었다.
산의 모양새며 산밑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산의 정기가 아주 맑고 그윽했다.
대흥사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아주 길고 숲이 울창했다.
차를 버리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탱자탱자 걷고 싶은 길이었다.
아직 벌건 대낮인데도 어둑하게 느껴지는,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대흥사는 이번이 초행길이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 답사를 온 적이 있었으니 30년이 넘어서 다시 찾은 셈이다.
그 때 무엇을 보았는지 머리로는 하나도 기억을 할 수가 없는데
잠재되어 있는 내 무의식엔 많은 것이 저장되어 있었는지 그냥 다 친숙하게 느껴졌다.
긴 신작로를 달려 절 입구에다 차를 세워 두고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마침 초파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절로 들어가는 길이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자세히 보니 산 색이 투톤이었다.
짙은 초록색 솔잎 위로 삐죽이 덧대어져 있는 연두빛 새순으로 묘하게 배색이 되어 싱그러움을 더했다.
소나무 사이에 끼어 있는 애기 단풍나무의 야광빛에 가까운 연두 새 잎에 손을 대면
내 손이 연두색으로 환하게 빛이 날 것만 같았다.
바야흐로 신록이 야무지게 여물어 가고 있었다.
신록은 청춘의 전유물이라 한 이가 무색하게 내 마음 가득 신록을 채우고 또 채웠다.
이 또한 도회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보물이 아닌가. (계속)
우람한 은행나무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느라 빙 둘러 서 있었다.
- 여러분 ~ 저기 산 꼭대기를 보세요.
뭐가 보이시지요?
산 꼭대기에는 아주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봉우리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 바위가 산머리에 떡 버티고 있는데 뭐가 보이냐니? 그냥 바위구먼.
- 잘 보세요.
마음이 착하고 공덕을 많이 쌓으신 분의 눈에는 저것이 그냥 바위가 아니라
부처님이 누워 계시는 것으로 보일겁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맞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일세, 그려.
- 어디? 어디?
- 저기가 머리고 저게 코네. 안보여?
- 으응.... 그러네. 나도 보여.
사람들은 왜 그리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실제로 보고 하는 소린지 모르지만 어느새 우리 일행들도 마음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누운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니 말이다.
내 눈에는 그저 커다란 바위로만 보였지만 나는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고 믿으면 그리 보이는 법이니까. (계속)
춘선아!
아무래도 내 눈에도 그냥 바위로 보일 것 같구먼.ㅎㅎㅎ
그야 바위를 봐도 풀뿌리를 봐도 부처를 느낄 수 있는거니까.
좋아유 계속 하서유~~~~~~~~~~~~~~~~~
유성의 어느 올갱이 해장국집에 가세요?
내 단골도 있는데, 같은 집일까? 거기서 한번 봅시다.ㅎㅎ
대전에 살때 이곳이 남한의 중심이라며 잘도 다녔지요.
남편과 새벽에 길떠나 절 근처에 도착하면
아직 표파는 사람도 안 나와 새벽 절을 한바퀴 돌고 나와
근처의 밥집에서 아침을 먹곤했지요.
싱그런 5월, 다니기에 제일 좋은 철인 것 같아요.
회장님 오셨네요.
정말 반가워요.
제가 잘 가는 올갱이국 집은 구암역 앞에 있는 아주 허름한 집이예요.
<옛날 올갱이 해장국> 이라던가....
암튼 집은 꼬지지한데 아욱을 듬뿍 넣고 끓여 주는 해장국이 시원해서 가끔 가요. (주로 손님 접대용 ㅎㅎ)
회장님 대전에 계실 때 기회가 되면 점심 한번 대접할게요.
저는 화요일만 빼고 오전에 수업이 다 끝나니까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는 내게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했지만
표충사 마당에 마주보고 서 있던 목백일홍 두 그루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목백일홍 (일명 배롱나무)은 나무 표면이 대패로 밀어 놓은듯이 매끈해서
원숭이도 오르지 못하고 미끄러진다는 나무로 유명한데
무슨 연유인지 그 마당에 있는 것은
마치 괴목을 다듬어 놓은 것처럼 가지 끝도 톱으로 다 잘라 놓았다.
분명 삐죽하니 제멋대로 뻗은 가지도 있었을텐데
나무는 마치 강제로 거세를 당한 것처럼 다 벗고 다 잘린 채 서 있었다.
나는 그 나무가 분명 죽은 줄 알았다.
이젠 가차없이 뽑혀 불쏘시개가 될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두어 군데에서 연한 새 잎이 그 맨들맨들하고 단단한 몸통을 뚫고 나와
윤기 나는 연두빛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생명의 힘.
아주 강한 것을 이긴 아주 약한 것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 작은 이파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도 강렬했다.
살아있음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기억하면
우리가 사는 동안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 터.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히 피조물인 인간이 생명에 대해 쉽게 단정지어선 안 되리라.
가만히 이파리를 만져보았다.
작고 연한 것이 파르르 떨며 내게 생기를 전해 준다.
마음에 뜨거운 기운이 확 퍼지며 코끝이 찡하다.
- 내게 생명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계속)
초파일을 이틀 앞두고 연등을 걸 준비를 하느라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웅전 옆 뜰에 마치 빨래줄같은 빈 줄만 마당 가득 매어 놓고
아직 등은 하나도 달아 놓지 않았다.
일기예보에서는 초파일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대웅전 앞부터 연등에다 비닐을 씌워 거는 인부의 손길이 배나 힘들어 보였다.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아침에 길을 나선 것이 마치 오래 전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산 그늘이 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서둘러 절을 빠져 나왔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아 내려오는 길은 걸음을 재촉했다.
일주문을 막 나서려는데 맑고 깊은 큰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친구가 뛸듯이 좋아했다.
그렇지 않아도 범종소리가 듣고 싶어 예불시간까지 기다리고 싶었단다.
떠나는 길손의 마음을 헤아려 깍듯이 배웅을 해 준 것처럼 울리는 종소리를 마음에 담고
우리는 두륜산의 호위를 받으며 대흥사를 떠났다. (계속)
오늘 밤은 완도 근처에서 유숙을 하며 싱싱한 해물을 좀 먹고
내일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보길도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옛 청해진, 장보고의 고장 완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었다.
육지와 연결된 거대한 연육교 덕분에 뭍이었다.
완도에서 보는 바다는 광활하지도 망망하지도 않았다.
다도해의 섬들에 갇혀버린 바다에서는 갯내음도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항구 근처의 수산물 공판장으로 갔다.
혹시 갓 잡아 온 생선을 경매가로 살 수 있을까 했는데 이미 공판장 문이 닫혀 있어서
할 수 없이 부둣가에 있는 어시장으로 갔다.
내가 가르치는 외국 학생들 눈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엽기적인 풍습이 바로
살아있는 낙지를 통째로 먹는 광경이라고 했다.
해물탕에다 산 채로 넣어서 끓이는 것도 기가 막히게 징그럽지만
더 끔찍한 것은 얼굴에 낙지발이 척척 감겨도 끄떡하지 않고 산 채로 먹는 것이라 했다.
그 학생들이 내가 산낙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ㅋㅋ
세발 낙지의 야들야들하고 고소한 맛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칼로 다지듯이 잘게 썰어 놓은 세발낙지에다 참기름을 살짝 뿌리고
새콤달콤한 초장에 와사비를 곁들여서 먹으면 입에 착착 감기게 맛있으면서
피곤에 절었던 눈이 번쩍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까.
실로 오래간만에 산 낙지를 먹었다.
대전에서는 이렇게 싱싱한 놈을 만나기가 힘들었는데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살아있는 해물을 보니 구미가 절로 당겨 실컷 먹었다.
낙지를 생으로 먹었으니 갑오징어까지 날로 먹으면 소화가 안될 것 같아서
오징어는 데쳐서 먹었는데 이 또한 별미였다.
갑오징어가 제 철인지 집집마다 수족관에 갑오징어가 가득했다.
갑오징어는 언뜻 보면 오징어가 아닌 복어 비슷한 물고기같이 생겼다.
내 평생 갑오징어가 그렇게 생긴 것도,
투명한 날개를 좌악 펼치고 헤엄치는 것도 처음 보았다.
아직 숙소도 어디에다 잡을지 정하지 않고
우리는 여행지에서의 첫 만찬을 여유롭게 마음껏 즐겼다.
잠은 완도를 벗어나 신지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 근처에 가서 자면 좋을것 같았다. (계속)
이름은 <토종 올갱이 해장국> 집이에요.
나는 주로 대전에 있는 날 아침을 그 집에서 먹지요.ㅎㅎ
앞으로 2주정도 학교에 더 나갈 예정인데,
학교 일도 마무리해야하고,
또 남편 전시회 일로 너무 바빠요.
이번 학기는 그냥 지나가야 겠고, 다음 학기에 꼬옥~ 만납시다.
꼭두새벽에 인천에서 떠난 친구네가 우리집 주차장에 당도한 것은 채 7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친구네 차로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우리는 유성에서 유명한 올갱이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으며 이번 여행 일정을 잡았다.
첫번째 행선지는 고창 선운사였다.
복분자와 풍천 장어가 유명한 선운사는 대웅전 뒤의 동백숲이 명물이었다.
마침 초파일 행사를 앞두고 연등을 다느라 정신이 없는 사찰을 조금 벗어나니 숲길이 나왔다.
포근한 흙길을 따라 빽빽하게 잘 자란 나무들 사이를 한가하게 거닐며
모처럼 마음껏 큰 숨을 쉬며 산림욕을 했다.
도시에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 공짜.
절로 들어가는 자그마한 실개천에 놓인 다리의 이름이 거창하게 <해탈교>였다..
정말로 이 다리를 건너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까....
끝도 없이 묻고 대답을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는 중생들의 바램이 오롯이 담겨 있는 다리치고는
규모도 작고 모양새도 아주 소박해서 오히려 정겨웠다.
하기사 성경에 나오는 요단강도 실제 가서 보니 그저 요만한 실개천에 불과했다.
요단강을 건너면 천국에 이른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실망스럽게.....
선운사로 들어가는 신작로에는
얼린 복분자를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 파는 장사들과
동백 기름을 소주병에 담아서 파는 아주머니가 줄 지어 있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그것이 이 고장 특산물임이 분명했다.
동백꽃.
그 송이가 벌어지기 전에는 봉오리가 새빨간 림스틱처럼 예쁘지만.
일단 다 벌어지고 나면 참으로 모양새가 볼품이 없는 꽃.
대웅전 뒤 숲에 지천으로 피었다가 거의 지고 있어서 더 귀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 노래 제목도 동백 아가씨라 했겠지.
동백 아줌마나 할머니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으니 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