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회 - 게시판담당 : 최경옥, 정환복,설인실 - 11회 모임터 가기
벌떡 일어나는데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나보다 먼저 전화기를 든 남편의 목소리
아이구 어떻해요... 죄송합니다...
가슴이 마구 떨리기 시작한다 아버지께 무슨일이....
허리만 아프셔서 그렇지 식사도 잘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천식이 심해지시고 호흡곤란으로 돌아가셨단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이층에서 자고 있는 딸 지나에게
일어나 인터넷으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라하고
나는 전화로 여행사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본다
새벽 여섯시 전화 받는 곳이 한곳뿐이고 그나마 NO
비행기표를 구할 수가 없단다 구정 연휴라서
가방을 간단히 꾸려 공항으로 달려가고
하나 찾은표가 LA에서 11시 출발
그런데 그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는 덴버에서 LA까지의 표가 또 없다
엉엉 울면서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표가 없어서 못 갈것 같다고
LA 성매가 비행기표를 하나 구했단다 감사합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6시 40분
택시를 타고 아버지계신 병원에 도착하니 8시
아버지를 떠나 보내는 시각이 10시
나는 그렇게나마 아버지를 뵈올수가 있었다
이미 염을 다하신 모습의 아버지를
지난 졸업 30주년 파티에 갔을 적에
혼자 살고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한사코
내가 당신 아파트에 있으면 아버지도 나도 불편 할 것이라고
동생집에 머물기를 고집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맛있는 한정식을 저녁으로 먹은 다음날
아버지는 조기 몇마리를 사오셨다 동생집으로
"송자 해 먹여라 어제 맛있게 먹더라"
나는 그렇게 언제나 아버지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막내딸이었다
내가 미국으로 시집올 적에 나의 남동생들 말이
"아버지께 옳바른 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은 누나뿐인데 앞으로 걱정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평생을
"내 인생에 양보란 없다"를 고집하시며 살아가셨다
그래서 연세드시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참 많이 외롭게 지내셨다
그리고 외롭게 돌아가시었다
멀리 있는 자식은 아무 도움도 못되고 그저 그리움의 존재뿐일 뿐
아버지 감사합니다
많이 많이 사랑해 주셔서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송자야
아버님께서 사랑하는 딸 위로 받으시며 하늘나라에 편히 계실꺼야.
멀리 떨어져 계셔서 늘 마음 쓰이다가
이제 가슴에 모시고 살 수 있으니
이제 더 가까이 지셨네.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영란이는 내가 아는 영란이 맞니?
수지 사는 영란이?
며칠 전에 영란이 전화를 받고 송자 아버님께서 그렇게 가신 것을 알았단다.
송자야,
얼굴 조차 못 보고 떠나 보내서 정말 미안하다.
마음이 어떨지 나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오래 전의 얘기이지만 넌 금방 당한 일이니 ... 더 슬프겠지?
송자랑 나랑은, 아, 참, 예문이도, 초등동창이니 아주 오랜 친구지.
게다가 아주 예전에 이미 또 다른 인연이 있었지?
일제시대 때 우리 아버지와 송자 아버지 께서 같은 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단다. 우리 어릴때 같은 지역에서 살았고, 오며가며 교류가 있으셨던지
송자가 누구의 딸인지 이미 알고 계셨더라.
그 사진도 지금 오빠네 집에 노랗게 변한 채 잘 있다.
그래도, 언젠가 송자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송자는 멀리 있으니 내가 한번 아버님을 찾아 뵐거라고...
결국 약속도 못 지키고, 가신 소식 조차 모르고 이렇게 뜬금없이
영란이의 전화를 받고 알았으니 정말 송자에게 미안쿠나.
혼자 계신 날들이 더 길어지지 않은 것이 나으리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우리 아버지도 오빠식구와 같이 계셨지만,
남자들 혼자 사는 모습은 자식들 마음을 늘 아리게 하지.
송자야,
많이 슬프지? 그런 마음도 세월이 지나면 다 치유되는 것도 잘 알지?
그러니 가슴 아파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도 그 순간 다 아파하고 슬퍼하며
풀어 버리면 훨씬 지난 후에는 많이 담담해 지면서 받아 들이게 된단다.
그저 가시는 길에 꽃 한송이라도 영정에 놓아 드리지 못해 난 그 것이 더 마음이 아프단다.
예문아,
수지의 영란이가 그 영란이란다. 망둥이 영라니~
얼마나 경황이 없고 마음이 아프니
한국에 나왔었는데 우리는 몰랐네
아버지 명복을 빕니다
영순아! 아니, 예문아 !
그래 나 수지사는 이영란이야. 망둥이는 아니구
얼마전 송자를 박정순과 함께, 또 옛날에 테니스 멤버인
다른 학교 출신애들과 함께 만났었어.
1월 쯤에 정순네 부부가 니네 갤러리 갔었다구 하더라.
의리도 없이, 자기들 끼리 말야.
그런데 왜 그런지 알고 같애. 우리신랑이 김준호와 별로
교분이 없거든. 우리 영감 께서 꽤나 낯을 가려서 말야.
나는 그게 여태 살면서 왜 그런지? 퀘스쳔이야.
그래서 네 소식은 들어 알고 있어.
참 열심히 산다고라.
정말 꽃피는 춘삼사월에 젊잖은(?) 우리 부부 한번 놀러갈께
나의 영원한 소꼽친구 정순이네와 함께.
여기서 만나니까 조금 놀랬지? 기별도 없이.
이제는 요기서 자주자주 볼라요??????
나 오늘 합창 연습 때문에 일찍 퇴근해.
그래서 이만 안녕 녕녕녕.............
영란아
여기서보니 정말정말 반가워
송자 슬픈데 우리 반가워하니 미안하네, 이해해주지, 송자야?
정순이한테 설 지나 수지 가기로 약속했는데
우리 아들이 바빠 짬을 못 내고 있다.
가거든 너도 보기로 했었는데...
내가 가든 네가 오든 조만간에 볼 수 있겠다.
송자는 미국서 우리 언니를 잘 만나더구만,
가까이 사는 우리는 미국사는 사람들보다 더 못 만나고 산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될까?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맘이 쓸쓸하더니
16년쯤이나 지나 우리 어머니 돌아가셔서
아버지 모신 그 옆에 어머니 모셔놓고 되돌아오는데
엄마 돌아가신 건 애닯지만
아버지쪽 쳐다보면서는 '아버지 좋으시죠?' 하게 되더라
두 분 같이 계시다 생각하면 한편 마음에 위안이 돼.
미안하다 연락도 못하고
2월 11일 월요일에 도착하여 장례 치르고
다음날 언니와 함께 수원에 가 이곳에 계시던 수녀님들 만나 뵙고
(교통사고로 몸이 많이 아프신 분이 계셨거든)
저녁에 수지에 들러 그곳에 사는 친구들 만나고
수요일은 다시 삼오제 지내러 아버지 엄마 산소에 다녀오고
목요일 아침에 위장내시경하고 언니네서 가까운 경옥이네서
경옥이가 연락한 친구들 만나고
그 다음날인 금요일에 다시 아버지 엄마 ... 산소에 갔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 떠나 왔단다
사실은 너무 정신없이 그곳에 가는 바람에
한국 전화번호를 전혀 가지고 가지 못해
우리딸이 전화로 불러주는 두명만 연락한거란다
미안해
광희야
네가 우리아버지 못 가뵌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
인천서 먼 곳이라 미안해서 부탁을 못 했던거란다
양평이란것만 알지 자세한 지리도 몰랐고.
우리 아버지 이제 편안히 잘 계실거야
도착하고 바로 성당분들과 연도도 해드렸단다
송자의 아픈 마음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네..
친정아버지를 멀리 사느라 자주 찾아뵙고 돌봐드리지 못함을 안스러워하고 건강때문에 걱정하던 너였지.
효녀인 송자야 이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거야. 바쁘게 허겁지겁 다니느라 힘들었지? 건강 잘 챙겨라.
이번 주엔 두번이나 장례예배를 드리느라 바빴어.
한분은 동생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분은 아는 분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한밤중에 전화가 오면 가슴이 놀라고 송자 같이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하더라.
이제 우리 나이가 장례식에 가장 많이 다니는 나이가 됐나보다.
아버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셨다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겠구나. 무슨 말로 해야 위로가 될까.....
그래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인 것을 아는가?
돌아가신 뒤라도 아버지를 뵐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잠시 먼저 가신 것뿐이라 생각하며 천국에 가는 날 같이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자꾸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한국에 다녀왔단 소식은 들었어.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난 아버지에게 가끔 이렇게 말하지
"아버지 오래 사세요,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저에겐 많이 위로가 돼요"
하지만 얼마전 부터는 꼭 지팡이를 집고 다니시고 자주 넘어지신단다.
뭐라해도 송자 편이셨을 텐데 마음속이 너무 많이 허전하겠구나.
기운내라,알지?
송자가 다녀 갔구나. 갑작스런 연락에 발 동동 굴렀을 네가 눈에 보이는 듯해. 나도 친정엄마 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어.
난 여기서 미국으로 가야했는데 거기 장례식은 대개 open casket이라 잠자는 듯한 엄마의 손을 잡아 볼 수는 있었지...
너무나 차가워서 그제서야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났었다.
여기 식은 그렇게도 할 수 없었을테니 더 가슴이 아팠으리라.
주위에 나이드신 분들이 점점 많아지니 이런 일들이 다 내일처럼 여기지는 나이가 되었네.
마음 아프겠지만 아버지께서 이젠 어머니와 함께 계실테니 그것으로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얼마나 당황했니?
그 슬픔은 누구도 알지 못하리.
이제 병도 아픔도 슬픔도 없는
하늘나라에 가셨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
나도 지난 주 날 아껴주시던 분을
보내드렸다.
암으로 4년 투병하시면서
돌아가시기 3일전까지
온몸에 암이 퍼졌는데도
진통제를 안 드셨다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던 분이야.
우리 아버님도 지난해 폐암 말기 진단 받으셨어.
막상 아버지께서는 아주 담담하시고
오히려 우리를 염려하셨지.
이제 우리의 나이가 50줄에 들어섰으니
이런 비보는 자주 듣게 되겠지!?
하지만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이니까
살아도 산것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래서 하루 하루 후회없이 살려고 노력하는데
잘 잊어버려.
송자야, 울고싶으면 많이 울어.
송자야, 늦었지만 깊은 위로의 맘을 전해.
아버지를 사랑하는 너의 마음 간직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셨을거야.
아버지를 위해 묵주기도를 계속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송자야, 힘내렴.
아버님 보내드리고 마음이 얼마나 아프니?
우리들이 완전히 요즘 부모님들과 자식들 사이에 끼어
보내드리고, 보내는 준비하고.....그러는 시기인 거 같다.
이럴 때야말로 서로 위로하고 마음 써 줄 친구들이 되어야 했건만
뒤 늦은 인사 용서해라.
뒤늦게 네 글 읽으며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결국 마지막 가시는 얼굴이라도 뵈었다니
휴~ 하며 마음을 쓸어내렸단다.
이젠 시시 때때로 눈물이 나겠지. 그래도 송자야......넘 많이 울지 말고 힘내기를.....
두선아....유진이랑 잘 지내고 왔니?
저 아래 글에 비밀번호 달아놨네. 어떻게 보는 비밀글'이야?
아버님은 분명히 편하게 가셨을거야.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그나마
뵈었으니까, 후회는 없으리라. 마음 아파하는건 너무 오래 같고 있지는 마라.
나도 오래전에 두분 다 보냈지만, 마지막 가시는 모습도 뵙지 못한것이 두고두고 아프더구나.
하늘나라 천국에 가셔서 어머님하고 지금쯤 행복해하실거야, 그러니 네 마음을 너무 혹사시키진
말아라. 우리는 이제 평생 두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하지 않겠니? 네가 빠른시일내에 우뚝 서길 바란다.
나 이영란이야.
일 주일 전에 아버님 상 때문에 한국에 와서 연거푸 이틀이나 만났건만
제대로 이야기도 잘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서 좀 섭섭하더라.
송자 네 덕분에 30년 가까이 못 보고 지내던 정원이와 은숙이와의 해후 .
정말 반갑고 고마웠어. 이 마당발아!
그날은 경황이 없던터인지
항상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은 네 모습에, 지칠 줄 모르는 왕 수다로,
네가 아버님과의 이별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었는데........
송자야
너무 맘 아파하지말거라.
하늘 나라에서 네 엄마 만나셔서 그 동안 외로움 다 푸시고
편안히 지내시라고 기도 많이 해 드려라.
이 글을 쓰며 생기 발랄하던 송자가 아버님 생각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 생각하니 , 나도 마음이 짠- 해온다
송자야
어서 마음 추수리고 예전에 네 모습으로,
즐겁게 밝게 지내렴......
어제 은숙이와는 통화도 했고 이메일도 받았어.
고마우이, 명랑아줌마 또 봄세!!!!!!!!!
씨유. . 사요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