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
시,소설 및 기타 문학적인 글을 쓰실 수있는 공간입니다
장효심, 39세.
김희재
살다보면 아주 가까이 지냈던 사람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그저 이름밖에 몰랐던 사람
이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병원 입원실이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 본 날부터 헤어질 때까지 늘 누워만 있었다.
팔이나 손에 있는 혈관은 이미 다 죽어 버려서 목에 있는 대정맥을 뚫어 거기로 굵은 관을 심어 놓고 모
든 치료제를 주입하고 있었다. 이미 팔 다리에 있던 근육들이 많이 빠져 나가서 날씬하다는 표현보다는
앙상하다고 해야 알맞은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그녀의 얼굴은 기억에 남을 만치 예뻤다. 특히 깊고 그윽
한 그 눈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화장기라곤 전혀 없는 여자의 얼굴이 그렇게도 윤
곽이 또렷하고 피부가 매끈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만큼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장효심, 39세, F.
그녀의 침대 발치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고 그녀의 이름과 나이를 알았다. 6인실의 문간에 놓인 침상
에 누워 항상 열려 있는 문 쪽을 향해 누워서 복도를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녀는
말기 암 환자였다. 췌장암 수술을 하려고 개복을 해보니 암세포가 온 장기에 다 퍼져서 손도 대지 못하
고 그저 만만한 자궁만 적출을 해 내고 덮었다는 사실은 그 병동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공지사
항이었다.
가만히 누워 지내지만 그녀는 병동의 뉴스메이커였다.
처음 입원한 사람이 병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속에 그녀의 이야기가 있었다.
주치의가 아예 포기를 했다느니, 그저 진통제나 맞지 뾰족한 수가 없다느니, 너무 아파하기 때문에 고통
을 줄이기 위해 개복을 하고 온 몸의 신경을 다 잘라 버렸다느니, 암만해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 할 것이
라느니....
그녀의 방에서 내 방까지 오려면 문을 10개도 더 지나야 했다.
나는 복도의 왼쪽 끝에서 두 번째 방이었고 그녀는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방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묘한지 암 환자들 사이에도 동료와 경쟁자가 있었다.
대개 대장암, 위암, 유방암, 직장암 등 같은 부위의 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회복
기 환자들이 자기와 같은 부위를 수술한 환자들의 새끼 선생 노릇을 하며 누가 얼마나 회복이 빠른지 진
단도 하고 평가도 하며 병동의 무료한 시간들을 메웠다.
정밀 조직 검사 결과 초기로 판명이 되면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2기가 넘어가 항암치료를 꼭 받아야
하면 위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병동의 심리였다. 같은 날 수술을 한 환자들끼리는 누가 빨리 상처가 아물
고 있는지, 누가 빨리 거동을 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게 은근히 경쟁을 하였다. 몸에 주렁주렁 달아 놓았
던 호스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도 진도가 빠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환자들 마음이었다.
아침마다 우리 방에 마실 오는 영은씨는 아주 상태가 양호한 유방암 초기 환자였다.
유방에 있는 멍울만 제거하는 수술을 하러 들어 간 그녀가 마취에서 깨어보니 한쪽 유방이 다 베어져 없
더라는 이야기도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주치의가 남편과 상의해서 병신을 만들어 버렸는데 다행히도 조직검사 결과
가 좋아서 항암주사는 따로 맞지 않아도 된다고 어지간히 떠들고 다닌 덕이었다. 영은씨 덕분에 나도 병
동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언니도 되고 동생도 되었다.
효심이는 내게 언니라고 불렀다.
6인실 문간에 누워서 그 방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참견도 하고 환하게 웃음을 보내
기도 하는 그녀랑 친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찾아갈 적마다 그녀는 혼자 누워 있었다. 간병인도 따로 두지 않고 딱히 임자가 되어 돌보는 가족
도 없는 듯 했다. 빨대를 박아서 먹는 곽에 든 두유만 조금씩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다. 그 방
사람들 말로는 남편은 1주일에 한번 정도 얼굴만 슬쩍 비치고 가고 낮 시간에 친정 동생이 와서 두유랑
휴지 등을 챙겨주고 간다고 했다. 문병 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그녀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 아
니 오히려 밝았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방을 지나치는데 째지게 높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 여기 병원이야.
아니.. 내가 아픈 게 아니구... 우리 언니 입원했잖아. 응. 응.
췌장암인데 열어보니까 다 번져서 수술도 못했어. 심란하지 뭐.
아마 오래 못 갈 거야. 뭐? 정말? 킬킬킬킬 ...그래. 알았어.
내가 이따가 전화할게. 끊어.."
복도를 지나던 내 귀에 또렷이 들린 그 목소리 주인은 효심이 동생이었다.
그녀는 효심이 면전에 선채로 문간에서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소리를 저렇게 해도 되는 건지....
며칠 후에 내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작별 인사를 하러 효심이를 보러 갔다.
그녀도 내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 얼굴 가득 서운함과 부러움을 담고 있었다.
"언니는 좋겠다... 수술도 하고 퇴원도 하고...나는 수술도 못했는데...."
나는 도무지 그녀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효심아, 세상엔 기적이 많다는 거 알지?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거 아냐. 하나님이 고치시는 거지.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꼭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 알았지?
나는 당분간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병원에 올 때마다 너를 보러 올게.
어디 가지 말고 꼭 기다려야 해."
내 궁색한 작별의 말에 그녀의 눈이 빛났다.
수없이 고맙다는 말을 되 뇌이며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죽어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려 했다.
그녀 앞에서는 내가 어떤 불평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내 발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집에도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게 남은 투병의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비하랴.
퇴원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나는 한동안 그녀를 보러 올라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기는 가도 입원실에 올라갈 마음이 선뜻 들지 않았다. 문병객이 되기엔 아직 내가 너무 환자티
를 벗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퇴원하면서 해 놓은 약속이 있어서 갔다가 그냥 올 때면 영 뒤
가 켕기고 찝찝했다.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났다.
아무래도 빈 말을 한 것 같아서 못내 편치 않은 내 속도 달랠 겸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서 올라갔더니
그녀의 침대에는 이미 다른 사람의 명찰이 달려 있었다.
방을 옮겼나 싶어서 간호사 스테이션에 걸린 칠판에 적혀있는 입원환자 명단을 샅샅이 훎어 보아도 그녀
의 이름은 없었다.
병원을 옮겼거나 다 끝났거나 둘 중의 하나려니 생각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리는데 누가 내 어깨를 뒤
에서 확~ 감싸 안았다. 깜짝 놀라서 보니 영은씨였다. 약을 받으러 왔다가 마침 입원실에 볼 일이 있어
서 올라왔다는 그녀에게 효심이의 안부를 아는지 물어 보았다.
"효심이요? 버얼써 죽었어요.
아마 근 한달이 다 되어 갈 거예요.
죽고 나서 병원이 한바탕 시끄러웠대요.
생전 코빼기도 안보이던 남편이랑 친정식구들이 대판 싸웠다지 아마...
글쎄... 효심이가 들어 놓은 보험금이 어마어마하더래요.
그 돈을 서로 자기들 거라고...... 초상은 칠 생각도 않고 그렇게 난리를 쳤다네.
그 놈의 돈이 뭔지....."
그녀는 아무 감정도 섞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내 가슴은 예리한 날에 베이는 것 같이 아렸
다.
황급히 그녀와 헤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왜 우
느냐고 물으면 딱히 한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것은 단순히 죽은 이를 추모하는 눈물은 아니
었다.
그 눈물을 타고 효심이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와 자리를 잡았나 보다. 이렇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여전히 내 마음이 아픈 것을 보니.....

김희재
살다보면 아주 가까이 지냈던 사람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그저 이름밖에 몰랐던 사람
이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병원 입원실이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 본 날부터 헤어질 때까지 늘 누워만 있었다.
팔이나 손에 있는 혈관은 이미 다 죽어 버려서 목에 있는 대정맥을 뚫어 거기로 굵은 관을 심어 놓고 모
든 치료제를 주입하고 있었다. 이미 팔 다리에 있던 근육들이 많이 빠져 나가서 날씬하다는 표현보다는
앙상하다고 해야 알맞은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그녀의 얼굴은 기억에 남을 만치 예뻤다. 특히 깊고 그윽
한 그 눈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화장기라곤 전혀 없는 여자의 얼굴이 그렇게도 윤
곽이 또렷하고 피부가 매끈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만큼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장효심, 39세, F.
그녀의 침대 발치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고 그녀의 이름과 나이를 알았다. 6인실의 문간에 놓인 침상
에 누워 항상 열려 있는 문 쪽을 향해 누워서 복도를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녀는
말기 암 환자였다. 췌장암 수술을 하려고 개복을 해보니 암세포가 온 장기에 다 퍼져서 손도 대지 못하
고 그저 만만한 자궁만 적출을 해 내고 덮었다는 사실은 그 병동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공지사
항이었다.
가만히 누워 지내지만 그녀는 병동의 뉴스메이커였다.
처음 입원한 사람이 병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속에 그녀의 이야기가 있었다.
주치의가 아예 포기를 했다느니, 그저 진통제나 맞지 뾰족한 수가 없다느니, 너무 아파하기 때문에 고통
을 줄이기 위해 개복을 하고 온 몸의 신경을 다 잘라 버렸다느니, 암만해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 할 것이
라느니....
그녀의 방에서 내 방까지 오려면 문을 10개도 더 지나야 했다.
나는 복도의 왼쪽 끝에서 두 번째 방이었고 그녀는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방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묘한지 암 환자들 사이에도 동료와 경쟁자가 있었다.
대개 대장암, 위암, 유방암, 직장암 등 같은 부위의 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회복
기 환자들이 자기와 같은 부위를 수술한 환자들의 새끼 선생 노릇을 하며 누가 얼마나 회복이 빠른지 진
단도 하고 평가도 하며 병동의 무료한 시간들을 메웠다.
정밀 조직 검사 결과 초기로 판명이 되면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2기가 넘어가 항암치료를 꼭 받아야
하면 위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병동의 심리였다. 같은 날 수술을 한 환자들끼리는 누가 빨리 상처가 아물
고 있는지, 누가 빨리 거동을 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게 은근히 경쟁을 하였다. 몸에 주렁주렁 달아 놓았
던 호스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도 진도가 빠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환자들 마음이었다.
아침마다 우리 방에 마실 오는 영은씨는 아주 상태가 양호한 유방암 초기 환자였다.
유방에 있는 멍울만 제거하는 수술을 하러 들어 간 그녀가 마취에서 깨어보니 한쪽 유방이 다 베어져 없
더라는 이야기도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주치의가 남편과 상의해서 병신을 만들어 버렸는데 다행히도 조직검사 결과
가 좋아서 항암주사는 따로 맞지 않아도 된다고 어지간히 떠들고 다닌 덕이었다. 영은씨 덕분에 나도 병
동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언니도 되고 동생도 되었다.
효심이는 내게 언니라고 불렀다.
6인실 문간에 누워서 그 방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참견도 하고 환하게 웃음을 보내
기도 하는 그녀랑 친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찾아갈 적마다 그녀는 혼자 누워 있었다. 간병인도 따로 두지 않고 딱히 임자가 되어 돌보는 가족
도 없는 듯 했다. 빨대를 박아서 먹는 곽에 든 두유만 조금씩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다. 그 방
사람들 말로는 남편은 1주일에 한번 정도 얼굴만 슬쩍 비치고 가고 낮 시간에 친정 동생이 와서 두유랑
휴지 등을 챙겨주고 간다고 했다. 문병 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그녀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 아
니 오히려 밝았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방을 지나치는데 째지게 높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 여기 병원이야.
아니.. 내가 아픈 게 아니구... 우리 언니 입원했잖아. 응. 응.
췌장암인데 열어보니까 다 번져서 수술도 못했어. 심란하지 뭐.
아마 오래 못 갈 거야. 뭐? 정말? 킬킬킬킬 ...그래. 알았어.
내가 이따가 전화할게. 끊어.."
복도를 지나던 내 귀에 또렷이 들린 그 목소리 주인은 효심이 동생이었다.
그녀는 효심이 면전에 선채로 문간에서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소리를 저렇게 해도 되는 건지....
며칠 후에 내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작별 인사를 하러 효심이를 보러 갔다.
그녀도 내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 얼굴 가득 서운함과 부러움을 담고 있었다.
"언니는 좋겠다... 수술도 하고 퇴원도 하고...나는 수술도 못했는데...."
나는 도무지 그녀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효심아, 세상엔 기적이 많다는 거 알지?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거 아냐. 하나님이 고치시는 거지.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꼭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 알았지?
나는 당분간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병원에 올 때마다 너를 보러 올게.
어디 가지 말고 꼭 기다려야 해."
내 궁색한 작별의 말에 그녀의 눈이 빛났다.
수없이 고맙다는 말을 되 뇌이며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죽어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려 했다.
그녀 앞에서는 내가 어떤 불평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내 발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집에도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게 남은 투병의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비하랴.
퇴원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나는 한동안 그녀를 보러 올라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기는 가도 입원실에 올라갈 마음이 선뜻 들지 않았다. 문병객이 되기엔 아직 내가 너무 환자티
를 벗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퇴원하면서 해 놓은 약속이 있어서 갔다가 그냥 올 때면 영 뒤
가 켕기고 찝찝했다.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났다.
아무래도 빈 말을 한 것 같아서 못내 편치 않은 내 속도 달랠 겸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서 올라갔더니
그녀의 침대에는 이미 다른 사람의 명찰이 달려 있었다.
방을 옮겼나 싶어서 간호사 스테이션에 걸린 칠판에 적혀있는 입원환자 명단을 샅샅이 훎어 보아도 그녀
의 이름은 없었다.
병원을 옮겼거나 다 끝났거나 둘 중의 하나려니 생각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리는데 누가 내 어깨를 뒤
에서 확~ 감싸 안았다. 깜짝 놀라서 보니 영은씨였다. 약을 받으러 왔다가 마침 입원실에 볼 일이 있어
서 올라왔다는 그녀에게 효심이의 안부를 아는지 물어 보았다.
"효심이요? 버얼써 죽었어요.
아마 근 한달이 다 되어 갈 거예요.
죽고 나서 병원이 한바탕 시끄러웠대요.
생전 코빼기도 안보이던 남편이랑 친정식구들이 대판 싸웠다지 아마...
글쎄... 효심이가 들어 놓은 보험금이 어마어마하더래요.
그 돈을 서로 자기들 거라고...... 초상은 칠 생각도 않고 그렇게 난리를 쳤다네.
그 놈의 돈이 뭔지....."
그녀는 아무 감정도 섞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내 가슴은 예리한 날에 베이는 것 같이 아렸
다.
황급히 그녀와 헤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왜 우
느냐고 물으면 딱히 한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것은 단순히 죽은 이를 추모하는 눈물은 아니
었다.
그 눈물을 타고 효심이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와 자리를 잡았나 보다. 이렇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여전히 내 마음이 아픈 것을 보니.....

2005.12.28 16:27:24 (*.234.131.125)
이 글을 평론가에게 보였더니
소설같은 수필이라며 호평을 하셨어요.
앞으로 저는 소설같은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소설을 읽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작가는 그저 화자에 불과하니까 말예요.
아셨죠?
소설같은 수필이라며 호평을 하셨어요.
앞으로 저는 소설같은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소설을 읽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작가는 그저 화자에 불과하니까 말예요.
아셨죠?
2006.01.03 08:30:39 (*.106.88.127)
춘선아!
이 글 왜그리 가슴이 아플까?
산다는 것은 뭐고 죽는다는 것은 뭘까?
우리는 평소 감사 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불평까지 ㅋㅋㅋ
그래서 가끔 대학병원 이나 장례식장에 으도적으로 가서 앉아있다 오란 소리도 있지.
지난 겨울에 백혈병 병동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급성이면 몇달을 넘기기 힘든데
만성이면 그래도 몇 년은 버틸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만성만 나와도...하는
바램아닌 바램의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때론 인간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는데
이런 땐 너무도 초라해져 가슴이 알싸해 진다.
그래서 영생을 생각하고 부활을 꿈꾸나 보다.
잘지내 나의 사랑 들이여!
이 글 왜그리 가슴이 아플까?
산다는 것은 뭐고 죽는다는 것은 뭘까?
우리는 평소 감사 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불평까지 ㅋㅋㅋ
그래서 가끔 대학병원 이나 장례식장에 으도적으로 가서 앉아있다 오란 소리도 있지.
지난 겨울에 백혈병 병동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급성이면 몇달을 넘기기 힘든데
만성이면 그래도 몇 년은 버틸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만성만 나와도...하는
바램아닌 바램의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때론 인간이 참으로 대단해 보이는데
이런 땐 너무도 초라해져 가슴이 알싸해 진다.
그래서 영생을 생각하고 부활을 꿈꾸나 보다.
잘지내 나의 사랑 들이여!
2006.01.03 11:06:03 (*.234.131.125)
신영아,
나는 말이야.
사는게 버겁고 지겨운 마음이 들 때면 언제나
내 등에 얹혀 있을 죽음을 앞으로 끌어다 놓고 바라다 본다.
사람이란게 약은듯 하면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죽음이란 것이
누구나 거쳐갈 관문임을 알면서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 줄 착각하고 살지.
그 어떤 것으로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벽을 지고 돌아 서서 마지막 카드로
죽음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고 나야 비로소
아부작대던 내 모든 욕망과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더라.
바로 코 앞에 나의 죽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움켜쥐고 안깐힘을 쓰던 모든 일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깨우치게 되거든.
어려서 부터 잔망스럽던 계집아이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모습이네.
나 한테 하는 말이야.
나이도 얼마 안 된것이 다 산 것처럼 까불고 있어. 그치?
나는 말이야.
사는게 버겁고 지겨운 마음이 들 때면 언제나
내 등에 얹혀 있을 죽음을 앞으로 끌어다 놓고 바라다 본다.
사람이란게 약은듯 하면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죽음이란 것이
누구나 거쳐갈 관문임을 알면서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 줄 착각하고 살지.
그 어떤 것으로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벽을 지고 돌아 서서 마지막 카드로
죽음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고 나야 비로소
아부작대던 내 모든 욕망과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더라.
바로 코 앞에 나의 죽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움켜쥐고 안깐힘을 쓰던 모든 일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깨우치게 되거든.
어려서 부터 잔망스럽던 계집아이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모습이네.
나 한테 하는 말이야.
나이도 얼마 안 된것이 다 산 것처럼 까불고 있어. 그치?
2006.01.06 16:47:57 (*.234.131.125)
기독교인들의 인사 중에 샬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평안", "평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샬롬이란 인사는 평화를 의미하긴 하지만
실상은 약한 자의 평화가 아니라 강한 자가 되어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내가 강해져야 남을 구할 수 있으며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어야만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강하지도 못하면서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습니다.
순수한 동기가 중요하고, 그 과정이 중요하고,
그 결과도 중요합니다.
이 중 결과지향적이면 늘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가지가 모두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런 설교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그를 돕고자 하나 정작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모르거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서로가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마음으로 돕는 모습은 우리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마음만 괴롭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우리는 강해져야 하고
무언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그 위대한 마음을 갖기 전에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가야합니다.
나를 나눌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 아침을 여는 참 좋은 느낌 - 힘을 가져라 (최복현) ---
이 말의 의미는
"평안", "평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샬롬이란 인사는 평화를 의미하긴 하지만
실상은 약한 자의 평화가 아니라 강한 자가 되어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내가 강해져야 남을 구할 수 있으며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어야만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강하지도 못하면서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습니다.
순수한 동기가 중요하고, 그 과정이 중요하고,
그 결과도 중요합니다.
이 중 결과지향적이면 늘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가지가 모두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런 설교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그를 돕고자 하나 정작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모르거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서로가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마음으로 돕는 모습은 우리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마음만 괴롭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우리는 강해져야 하고
무언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그 위대한 마음을 갖기 전에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가야합니다.
나를 나눌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 아침을 여는 참 좋은 느낌 - 힘을 가져라 (최복현) ---
2006.01.10 08:08:39 (*.234.131.125)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하늘과 같이 눈부시게 파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젊어져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정열이 살아나고
내일은 건강해져서
진리를 위해 양심의 고동을 울릴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을 활짝 열어
마음이 사라지고 더불어 사는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아침해와 같이 타오르는 붉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요동쳐서
좌절했던 자리가 도전하는 자리로 바뀌고
내일은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을 위해 진실의 고백을 나눌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이 손을 잡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정스러운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남은 건 어제의 실패와 어지러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흘린 진실한 땀과 소중한 노력으로
내일을 예약합니다.
- 좋은글 中에서 -
저기 저 하늘과 같이 눈부시게 파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젊어져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정열이 살아나고
내일은 건강해져서
진리를 위해 양심의 고동을 울릴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을 활짝 열어
마음이 사라지고 더불어 사는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아침해와 같이 타오르는 붉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요동쳐서
좌절했던 자리가 도전하는 자리로 바뀌고
내일은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을 위해 진실의 고백을 나눌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이 손을 잡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정스러운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남은 건 어제의 실패와 어지러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흘린 진실한 땀과 소중한 노력으로
내일을 예약합니다.
- 좋은글 中에서 -
다른 작품을 또 쓰려면 작업실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요. ㅎㅎㅎ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을 다 제 편이라고 생각할거예요.
오늘이 성탄절.
메리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