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구
허무해라.
5일간의 연휴(5/3 - 오늘)가 쏜살 같이 다 가버렸네.
닷새를 알뜰히 다 놀아도 션챦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리고 내려
암데도 못가고  죽치다가 일찌감치 저녁도 끝내고 와이셔츠 다려 치우고는 앉았어.
놀거 다 놀구난 허무하구 울적한 심사도 달랠겸.

근데 이 얘기 상쾌하지 않다고  하믄 어쩌냐?

1971년 인천여중 입학해서 바로.
원형교사 4층에 우리반이 있었어.
아침 등교길엔 신발장 옆에 변소가 있는걸 분명히 봐 두었는데
두, 세시간 마치고 변소 갈려구 내려와 보면 변소가 없는거야.   정말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지.
할 수 없이 오줌 마려운걸 참고 다음 쉬는 시간엔 변소가는 듯 싶은 애 뒤를 졸졸 쫓아 갔더니
그땐 단박에 변소가 나오는 거야.
다음날 혼자서 갈려구 내려오면 또 없어졌구.   제 때에 버릴걸 못 버린 하복부의 팽만감은 참으로 환장할 일이었지.
아슬아슬하게 실수는 안하고 며칠 후 미로같던 ' 변소 가는 길' 은 마스터 했어.

어이없게도 나의 변소에 대한 고정 관념은 '변소는 땅 위에 있는 것' 이었어.
2층이나 3층에 변소가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지.
도라무깡을 묻거나 시멘트를 바른 변소만 보고 커온 나는
머리 위에 변소를 이고 있는건 어느날 똥벼락을 예고하는 거라고 굳게 믿었거든.

그 시절 아파트가 있길 한가, 고층건물에 들어가  볼 기회도 읎구,  있다손 쳐도 변소까지 살펴볼  탐구심은 읎지.
수세식 화장실은 서울 우리 큰집에 가면 있지만 거기도 1층인 데다  변기 에서 흘러 보낸 배설물의 그 다음 진행과정이야
알 턱이 없잖아.   열네살의 상식으로는.
그래서 4층에 있는 교실에서 변소에 가려구 내려 올땐 무조건 층계가 끝나는 1층까지 내려오고 본거야.
실은 변소는 푸세식인데다 내 상식대로  땅위에 있긴 했지만 경사진 곳에 지어진 원형교사로 보면 2층에 있었던 거야.

해발 200미터 쯤 되는 중학교 졸업하구 오미터쯤 더 올라가 이래저래 상급학교인  인일여고에 입학했을 땐
영화여중 나온 내짝이 어리어리할때 난 제 집 처럼 총기있게 굴었지. 놀던 물 아닌감.

그렇게 커서 고 2 어느날.
그 충충한 회색 슬레트 변소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2층( 변소를 기준으로 보면 3층) 우리반 창가에 서 있다가
걔와 눈이 마주쳤어 .   우리반 ㅇ ㅅ .
나를 올려다 보며 두손을 오무려 제 입에 대고 외치는 말이
" 찬정아   내 자리에 있는 가방 뒷 자쿠를 열어 보면 생리대가 있으니 하나 만 던져 줘 "
걔는 꺼리낌도 읎이 광고 치듯 외쳤는데 나는 얼굴이 뻘개져 쩔쩔매다 멀쩡한 내 공책장를
찢어서 싸 던져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