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다
등에는 오랫동안 사용해서 물이 나르기 시작한 검정 가죽의 쌈지 백을 메고, 한 쪽 어깨에는 천으로 만든 낡은 시장가방이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삽화가 그려진 책에 빠져든다
햇볕에 탄 맨얼굴에 아이보리 면바지, 밤색 면티, 하늘색 여름용 모자를 푹 쓰고 검정 단화를 신었으니 누가 보거나 말거나 마음껏 자유롭다

터덜터덜 걸으면서 책 읽는 취미는 혼자 놀기 잘하던 학창시절에도 곧잘 하던 일이었다
시험이 가까워진 토요일, 일요일이면 학교를 찾았다 교실 안이 지루해지면 책을 들고 밖으로 나와서 걸어다니며 시험공부를 했다
상인천여중을 다닐 때에는 인천여고 교문 쪽에 있던 은행나무 밑을 왔다갔다 하던 길과 라일락 향기 가득했던 연못이 좋았고,
인일여고에서는 외지고 조명이 조금 어두웠던 도서관, 노란장미와 분수와 아치가 아름다웠던 연못가, 나른한 오후가 생각나는 통일동산, 과학실이 있는 건물 주변 등이 좋아하던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