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면도날〉등의 작품으로 현대 영국 문학을 주도한 서머셋 몸. 그는 영국인이지만 파리주재 영국 대사관 고문변호사로서 활약한 아버지 덕분에 파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0년의 무명 작가 시절도 파리에서 보냈다. 때문에 그는 프랑스적인 색채를 많이 띄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모파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는 여러 계층의 삶의 모습과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소설 곳곳에 드러내는데 골몰했고 글을 쓸 때도 늘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를 사용했다. 같은 시대 어렵고 현학적인 표현을 즐겨 쓰며 독자들을 어렵게 할 때 그는 쉬운 언어를 사용하며 등장 인물들의 내면과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데 힘썼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57년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느 해 생일날, 친구들이 모여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인가?”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가 노벨상 문학상을 받았던 때를 언급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엉뚱했다.


“어디 보자, 그래 꼭, 한 가지 있군. 태평양전쟁 때였지. 한 미국 병사한테서 편지를 받았다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 ‘당신의 작품을 통독했는데 한 번도 사전의 신세를 진 적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작품을 더 집중해서 깊이 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이야. 나는 그때 소설가로서 그 이상의 기쁨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누구보다 글을 읽는 독자를 먼저 헤아리며 다양한 문학적 표현을 시도해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했던 서머셋 몸. 그는 작가로서의 신념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소설가는 자기가 말하는 바를 독자로 하여금 믿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