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그랜드 캐년의 인디안 소녀  조 회 48    

나는 지금도 그 인디언 소녀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아 우리 가족은 몬타나 국경을 넘어 아리조나를 거쳐 캘리포니아의 작은 집으로 여행을 감행하였다. 겨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모험스럽고 위험부담이 큰 것인지를 여러 군데서 느꼈지만 그랜드 캐년에서 본 그 인디언 소녀의 눈 빛은 여행하는 동안 나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미국 지도 한 장을 들고서, 가는 길을 따라 그어가는 노란 색 선이 점점 길어질 때 우리는 지온 내셔날 파크에 다다랐다.
우리의 여행 일정이 파크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어서 그 곳을 가로질러 그랜드 캐년으로 가기로 하였는데 출구를 잘 못 나오는 탓에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눈이 내려서 길은 미끄럽고 좁은 산 길이어서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무조건 앞을 향하여 올라가자 터널이 나왔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올 때 보다 더 무서운 공포감이 다가왔다. 산 아래에서 볼 때 아득해 보이던 봉우리들이 바로 창 밖으로 다가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아이들은 꿈 속을 헤매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극도의 긴장감으로 겨우 겨우 내려와 그랜드 캐년을 향하여 달렸다.
그런데 파크에서의 그 경험은 전초전에 불과하였다.

겨울에는 그랜드 케년 북쪽 입구가 폐쇄된다기에 반대쪽을 향하여 갔는데 ...
아뿔사!
길 옆으로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차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언덕 아래로 태고 적의 울창한 숲들이 보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암괴석들의 행진이 계속 되었다. 중턱 쯤 올라갔을까?
넓은 평야가 산 아래로 보였다.
말로만 듣던 인디언의 보호지역이었다. 이 광활한 땅의 주인들이었건만...
총칼 앞에 덧없이 산으로, 계곡으로 밀려나야만 했던 그 들...
길 옆으로 아주 낡은 텐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멍이 여기 저기 뚫려서 하늘도 보이고 바람막이가 될 것 같지도 않은데 거기서 인디언 가족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누가 살 것 같지도 않은 아주 조잡한 장신구들을...

우리는 뜻 밖의 폭설을 만나 온통 이 산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하여 그 인디언 소녀가 손을 흔들며 웃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엄마, 저 인디언 소녀, 내 친구하고 너무 닮았어요."하며 딸아이가 말을 건내었다.
"정말, 어쩌면 웃음이 저리도 해맑으니?"
인디언들은 아시아에서 아주 오래 전, 얼음이 언 베링 해협을 걸어서 이 대륙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실제로 인디언 아기들은 몽고 반점을 가졌고 그 들의 외모는 우리와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잠깐 내려서 작은 것이라도 샀어야했는데...
여행하는 동안 내내 그 소녀의 눈 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겨우 산을 내려와서 우리는 그랜드 캐년 간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눈을 맞아가며...

네바다 사막을 거쳐,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불빛을 지나 우리는 로스앤젤레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는 태평양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를 향하였다.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워즈워드의 시처럼 그렇게...

로키산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우리는 산을 피하여 다시 사막을 향하여 가기로 하였다.
리노를 향하여 가는 산에서 우리는 다시 폭설을 만났다.
바로 앞에서 가던 차가 여름철의 풍뎅이처럼 그렇게 길 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남편은 갓 길로 차를 세웠고 우리는 그 산 꼭대기에서 체인을 걸고서야 내려올 수 있었다.

눈도 차츰 멈추어가고 우리는 새해 첫 날의 밝아오는 태양을 맞이하며 캐나다 국경을 넘고 있었다.
기름을 넣으러 나오는 주유소 직원의
"해피 뉴위어"인사가 정감있게 다가오고 ,우리 오는 날을 알고 앞마당의 눈을 치워놓은 옆 집 짐아저씨의 따스한 마음씨가 전해져 오는 이 곳,
나의 집!
누가 말했던가?
여행은 또 하나의 귀환이라고...

written by 신금재
2004-05-24 오후 12:3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