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교직생활 30년이 훌쩍 지나버리고
이 학교에서 4년이 지나 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하는 올해..
나이먹어서 다른 학교로 옮길 때처럼 어색하고 쑥스러운 것은 없다고
이미 명퇴를 내어버린 선배들..
그 바람에 학교에서는 왕언니가 되어버렸다.

나이를 먹으면 나이값을 해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게 나이값을 하는 건지..
먼저 결혼도 하지않고 교직에 열정을 다바치다
작년에 정년퇴임한 선생님이 왕언니였을 때는
후배들도 잘 챙기고 관리자들도 잘 챙기두만..
도무지 나는 내 것 챙기기에도 바쁜데...

그러던 중 우리학년에 기간제 도덕교사로 임시 오신 한 선배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이는 거의 60을 바라보는 분이셨지만
첫눈에 나는 그 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우선 말씨..
우리들 중 가장 연장자셨지만 우리 후배들에게도
늘 말을 깍듯이 존칭어를 쓰신다.
목소리도 조용하시고 항상 얼굴엔 미소를 머금으신 분이다.

또한 그것보다도 아이들에게 대하는 말씨는 넘 아름답다.
우리는 못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거나 감정을 통제못하고
"넌 그것도 못하니?"
라고 한다거나.." 너 정말 그럴래?"
다소 위협적인 언사도 서슴치않고 했던 때가 한두번은 있지만
그 분은 역설적으로 전혀 화를 내시지 않고 웃으며
좋은 말로 바꾸어 말하신다.

한번은 우리반에 동욱이라는 아이가
"난 도덕시간 싫어요."
하고 가끔은 아주 부정적인 말을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넌 어쩌면 그리 귀엽게 생겼니? 발표를 참 잘하는구나.."라는 등
칭찬을 많이 해줘서 선생님께서 떠나실 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그선생님 참 좋았는데요..'하는 걸 보면 가장
솔직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음엔 맵씨..
나이 60 이되신 분이 나와 스타일과 취향이 비슷하시다.
허리에 벨트를 매는 걸 좋아하고 허리사이즈도 26이나 27이시다.
옷은 캐쥬얼 풍으로 입으셔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멋쟁이시다.
또한 그건 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이시다.
줄넘기를 3000번 넘게 하신 적도 있으시고 헬쓰는 지금도 꾸준히 하신댄다..
우리 방학하고 헤어지는 날 같이 해수피아를 갔는데..역시 벗은 몸매 또한 쥑이셨다..ㅎㅎ

그 다음엔 솜씨~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고 당신이 들어가는 교실의 청소는 도맡아 다 해주신다.
청소뿐 아니라 신규교사의 교실에는 환경정리까지 예쁘고 깔끔하게 해주셨다
임신으로 전담을 하는 교사가 교실이 없으니까 산가에 들어가며
자기 짐을 협의실 귀퉁에에게 가져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았는데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정리하려는 의욕도 또 어떻게 남의 짐을 옮겨야 할지도 몰라
그냥 놔두고 있을 때 그 분이 오셔서 세상에나..
그 좁고 정리가 되지 않았던 협의실을 넓게 꾸며놓으시다니...
50대,40대,30대,20대가 고루있는 우리 학년이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걸
해 놓으신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시는 분이다

그리고는 추워지기 시작하자 한두사람이 감기에 걸리니
당신이 손수 생강과 도라지, 대추를 사들고
큰 주전자에 생강차를 끓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아침 회의 시간에 한잔씩 따라주시는 그 마음..
거의 한달이 넘게 끓여주신 그 차 덕분에 감기에도 한번 안걸리고 방학을 맞이했다.


'아..나이값하는게 바로 저런건가 보다..'하는 생각이 바로 그 때서야 들었다.
누구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주시는 그 마음과 행동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존경과 사랑을 하게끔 만드는 그 분이 너무도 좋아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분 얘기를 많이 했다.
'사랑받는 행동이 어떤 건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 분에게서 많이 배운다.'라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석달도 더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분이 바로 옥규의 친언니시란다...

(이름이 비슷해서 혹시 옥규 아냐고 물어볼래다
생긴 것도 아주 다르고
또 하고 다니는 것도 옥규는 엄청 소탈한데 그 분은
일류 멋쟁이시라 연관이 안되어 안 물어봤거든)

에고...에고..
"난 옥규랑 사연도 많은데요" 했더니
"드라큐라 봤어요?" 하신다.

고 3때인가...아이들과 극장에 갔는데
다른 애들은 안걸리고 재수없게 옥규랑 나랑만 걸려서
억울하게 **당한 일이 있었거든..
부모님 다 불려가시고...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

아무튼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선배님이 옥규의 친언니라는 사실에
너무도 놀라웠고....세상은 참으로 좁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옥규는 참 좋겠다..그런 예쁜 언니가 있어서...'

그런데 옥규도 가끔 글을 보면 언니처럼 그렇게 살고 있잖니...
너무 부럽고 존경스런 자매들인 것 같다.

우리가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베풀고 살아가는 이 모습들을 본받아야겠다..
지금 그렇게 살아가는 친구들도 많이 있겠지?
내가 다 존경하는 친구들.....올해에는 모두들 더욱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