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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인 딸과 87년생인 아들을 데리고 선교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1990년 3월에 남태평양 피지에 첫 발을 디뎠던 해, 딸은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갔고 아들은 기저귀도 채 떼지 못한 때였다.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남편은 ‘너희는 18세가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할 것이며, 대학은 반드시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애들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누누히 일렀었다.
피지 생활 10년이 지난 2001년 1월, 만 18세의 딸은 서울로 가는 10시간 비행 내내 울면서 울면서 피지의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를 뒤로 하고 대학을 가느라고 가족 곁을 떠나갔다.
그 이듬해.
딸은 서울에서의 첫 해를 힘겹게 적응하고 이제 왕성하게 활동하는 2학년이었고, 아들은 이곳에서 중3이었다.
그해 11월에 학기가 끝나는대로 아들과 우리 두 사람은 서울로 안식년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울에 가 있는 딸이나 곁에 있는 아들이나 한결같이 동생을 입양하면 좋겠다고 수시로 언급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서울에 있는 우리 교회의 한 친구가 ‘한국입양홍보회’라는 단체의 장을 맡아 아이들의 입양을 홍보 권장하는 일에 적극 뛰고 있었고, 우리 교회 내에서도 입양하는 가정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을 때였다.
원래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입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육이오 동란 때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여럿 데려다 기르셨던 시부모님의 영향 밑에서 커서 그랬는지, 자기도 결혼을 하면 두 세명 정도 입양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피지에 온 이후 남편은 자녀를 더 갖기 원했으나, 항상 새로운 일과 도전에 하루하루를 예측 못하며 살아가는 선교사의 삶에서 나는 일을 앞세워 그의 의견을 반대하곤 했다.
그러나 피지 생활 10년이 넘으면서, 특히 딸 아이가 독립해서 떠나가면서 나 자신도 입양에 대한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존재라는 점과, 그러므로 입양이야말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매우 심도있게 경험할 수 있는 거룩한 과정이라는 점이 큰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만큼 혈연이나 가족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 없이 마을 단위로 원시 공동체적 생활을 하는 피지인의 전통적 가족 개념으로 인해 입양이란 것을 남다른 사연을 가진 이상한 일로 여기질 않는 이곳의 사회적 풍토, 또한 이곳이 영어권인데다 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물론 그렇기에 능력 개발이 덜 되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 역시도 입양에 대한 고려를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다.
입양부모의 조건 중 나이가 50을 넘기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아직 48세이고 마침 안식년을 가기로 되어 있는 2002년 그 해에 실행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가능성은 없을 것이었다.
한 인간, 특히 자기가 낳지 않은 인간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존엄한 일이겠기에, 큰 일을 결정하는 데도 두려움을 모르는 남편과는 달리 소극적인 나는 입양을 하기에 유리한 여러가지의 긍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직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나 귀국할 날짜가 몇 달 안으로 다가오자 결국 떨리는 마음으로 입양에 대한 기도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여기고 계신지, 난 알기를 원했다.
날마다 진지하게 하나님의 의견을 여쭙던 어느 날, 드디어 그 분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졌다.
“…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고후6:11-13)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였다면 보답하는 자세로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이 구절이 결정적인 하나님의 음성으로 내 귀에 들리는 순간, 내 마음을 누르고 있던 모든 부담이 일시에 사라지고 마침내 입양을 결단하기에 이르렀다.
자, 그럼 입양을 한다면 누구를, 어떻게?
많은 토의를 거쳐서, 자매나 형제 또는 남매처럼 두 명을 입양하자는 것과 우리 나이를 생각해서 초등학생 정도가 좋겠다는 데 가족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우리처럼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도 입양을 할 수가 있는 걸까? 무슨 제약 사항은 없는 걸까? 현실적으로 안 되는 일인데 괜히 실제적으론 알아보지도 않고 우리끼리만 들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궁금해졌다.
거의 한국 신문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 집에 그 당시 어쩐 일인지 몇 장의 신문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거기 어디선가 언뜻 입양기관의 이름을 보았던 기억이 나서 뒤적여보니 한쪽 구석에 아주 작은 광고로, ‘입양, 이젠 기쁨입니다.’라는 글귀 밑에 그 기관의 이메일 주소가 보였다.
메일을 보냈다. 우리의 신분을 밝히고,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도 입양할 자격이 되는지, 그 절차는 어떠한지 문의했다.
그런데 채 며칠이 안 되어 빠른 회신이 왔다.
한국 국적만 포기하지 않은 상태라면 가능하다는 것과, 입양 절차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다. 그리고는 맨 끝에 이같이 덧붙였다. ‘현재 저희 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영아원에 곧 만 3세가 되는 쌍둥이 남아가 있습니다. 3세가 되면 이 아이들은 일반 고아원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생각해보시고 입양하실 의향이 있으면 조속히 연락을 주십시오.’
그것을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만3세? 쌍둥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조항이었다.
입양을 하겠다고 확실히 결단을 내린 것도 겨우 며칠 전이었는데, 그 대상의 성별과 나이와 현재 위치가 이렇게 급히 구체화되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메일을 받은 날은 남편이 출장 중이었다. 멍멍한 상태에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며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즈음에 마침 렬이가 우리 집에 와 있었다.
렬이는 내 ‘친구의 친구의’ 아들이었는데 당시 외고1학년에 재학 중으로, 쉬기도 할 겸 영어권 경험도 할 겸 몇 주동안 지내러 왔었다.
한국의 방학인 7월에 우리집에 왔는데, 이곳 학교들은 7월이 방학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몇 주라도 현지인 학교를 경험해보고자 우리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등교를 시켰다.
그런데 학교를 며칠 못 다니고는, 서울에서 학기말 고사를 치루느라고 너무 힘들었는지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고열과 심한 몸살로 일 주일 넘게 끙끙 앓는 것이었다.
만난지 며칠 안된 남의 자녀, 낯선 아이였지만, 몇 주간이나마 돌볼 책임을 맡았고 또한 객지에 와 낯선 집에서 홀로 끙끙 앓고 있는 것이 안스러워 찬 물수건으로 열을 식혀 주며 위로를 해주게 되었다.
참으로 시기 적절한 그 며칠 간의 경험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입양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분명히 섰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 구석에 그 때까지 일말의 부담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낯선 아이를 내 아이로 삼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스킨쉽을 과연 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었다. 그런데 렬이의 이마에 찬 물수건을 대주면서 비록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있다면’ 친밀한 스킨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경험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에 가라앉아 있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서늘해진 저녁 무렵,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커다란 정자 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서울에서 이런 메일이 왔는데요….’ 하며 내용을 얘기했는데,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다.
한참 있다 또다시 물어 보았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까요?’ 그래도 그 이는 아무 말이 없다.
집안으로 들어와 저녁 식탁에 앉았다.
아들과 렬이, 그리고 우리 두 사람, 이렇게 넷이서 밥을 먹는데, 평상시와 다르게 그 이가 아무 말이 없다.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이가 ‘예!’하고 벽력 같은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우리 모두 깜짝 놀라서 그이를 바라 보았다.
그이가 나로부터 ‘만 3세 되는 쌍둥이 남자 아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순간에는, ‘나이도 너무 어리고, 더구나 쌍둥이는 생각도 안 해 봤고…’하고 큰 관심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부터 자기 마음 속에 들리는 어떤 ‘목소리’ 때문에 마음이 매우 심란해졌다고 했다.
그 ‘목소리’는 차츰 분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이 아이들을 데려 오라!’ 하는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예’라고 대답할 때까지는 조금도 물러설 것 같지 않은 그 목소리는 그이가 저녁밥을 먹는 동안 점점 더 커지고 커져서 마침내 그 이가 그 명령에 굴복하여 ‘예!’라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변의 모든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 입양에 대한 생각을 주신 하나님,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넓히라고 권고하신 하나님, 렬이를 통해 실습까지 시키신 하나님, 그 분이 ‘이 아이들을 데려 오라!’하고 명령을 하셨으니 이제 모든 것은 결정된 셈이었고 우리는 이 모든 절차를 구체적으로 이끌고 계신 그 분께 대한 경외감과 감사함과 신비함으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입양을 결단하는 것은 우리 편에서 할 일이었지만, 누구를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소관이었다. 그렇게 빨리 우리 ‘아들들’이 결정될 줄 몰랐다.
그이는 며칠 후에 서울에 가서 딸아이와 함께 쌍둥이를 방문했고, 우리 교회의 형제가 때마침 생일 파티를 가졌던 태일이와 태현이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주어 그 테이프를 피지로 갖고 왔다.
그로부터 두어 달 후, 안식년을 맞아 온 식구가 서울로 갔다.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입양을 수속하는 과정과 마침내 아이들을 데려오던 날과 또 그 이후의 날들을 KBS 제작팀이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의 감동적인 해설이 거기에 덧붙여지고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할만큼 멋지게 편집이 되어 ‘쌍둥이 형제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200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영되었다.
쌍둥이가 우리 가족이 되던 해에 중3이었던 –학령은 고1이었지만 한 학년을 낮추었었다.- 아들은 역시 18세가 되어 대학엘 가느라고 2005년 12월 5일에 피지를 떠났다. 그 날은 동생들이 온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다.
태일이 태현이가 우리 아들이 된지 4년 하고도 6개월이나 지난 지금.
두 녀석들의 재깔거리고 뛰고 티격태격하는 소리에도 이젠 익숙해졌고- 그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우리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장래를 이미 멋지게 설계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망이 벅차 오른다.
입양이었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쌍둥이’였기 때문에 초래되었던 많은 어려움의 시간도 어떻게 그렇게 흘러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지금쯤 큰 집에 덩그라니 우리 두 사람만 쓸쓸할 뻔 했는데, 생동감 넘치는 소음이 쉴새없이 넘치고 있으니 확실한 ‘노후대책’ 이자 가장 의미있는 ‘투자’라 할 것이다.
또한 태일이 태현이랑 살아 가면서, 이전엔 성경을 읽으면서도 채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속마음을 눈물만큼 진하게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얻은 것이라 할 것이다.
2007.05.07 05:20:09 (*.143.178.147)
그래 우리 게시판이 조용하니까
정옥이가 슬슬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좋아요
우리의 대부분, 땅만 바라보며 생존과 조바심으로 보내기 쉬운데
너의 글은 머리를 번쩍 들게 한다.
이곳엔 이런 글도 많이 필요해요.
대학과 함께 자녀를 떠나보내고 또다른 생명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물론 선교사의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런 결정이었겠지만
머리속으로만 이해하고 실지로는 행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비교가 되네.
그래서 선교사의 자녀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universal 한 인간이 되는구나 이해가 된다.
그곳에서의 사역에 지치지 않도록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 줄거야.
계속되는 글 기대한다.
아 정말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더니
우리의 사고 지평을 넓혀주는 정옥이의 이야기.
정옥이가 슬슬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좋아요
우리의 대부분, 땅만 바라보며 생존과 조바심으로 보내기 쉬운데
너의 글은 머리를 번쩍 들게 한다.
이곳엔 이런 글도 많이 필요해요.
대학과 함께 자녀를 떠나보내고 또다른 생명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물론 선교사의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런 결정이었겠지만
머리속으로만 이해하고 실지로는 행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비교가 되네.
그래서 선교사의 자녀들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universal 한 인간이 되는구나 이해가 된다.
그곳에서의 사역에 지치지 않도록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 줄거야.
계속되는 글 기대한다.
아 정말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더니
우리의 사고 지평을 넓혀주는 정옥이의 이야기.
2007.05.07 08:46:12 (*.241.125.90)
정옥아, 너의 그 야리한 모습과 하얀 얼굴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네게서 그런 큰 힘이 나오는 걸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며
그 동안 너의 마음씀이 느껴져 흐믓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종종 너의 글 볼 영광을 주렴. 고맙다.
인옥아 이 곳에 도착했니?
요즘은 내가 한 정신 빼놓고 사는 것 같아 가끔 불안해질 때가 있다.
왔으면 조만간 보자. 잘지내.
어떻게 네게서 그런 큰 힘이 나오는 걸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며
그 동안 너의 마음씀이 느껴져 흐믓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종종 너의 글 볼 영광을 주렴. 고맙다.
인옥아 이 곳에 도착했니?
요즘은 내가 한 정신 빼놓고 사는 것 같아 가끔 불안해질 때가 있다.
왔으면 조만간 보자. 잘지내.
2007.05.07 10:12:06 (*.241.140.130)
정옥아 반가워~
아주 잘 했어요(글 쓴 거 말이야).
네가 만들어가는 삶을 보니 같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웬지 분발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구나.
실은 분발이고 뭐고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지만, 그래서 꽃보다 예쁜 아이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지만.
너는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너의 인생을 만들어가니 참 진짜다.
사람과 맺지 않는 일이 없겠지만, 요즘 자주 어쩌다 이렇게 사람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민감한 일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며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일의 중요성이 더 인식되기 때문이겠지.
정옥이
그래도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가득한 곳에서 탈진하는 일 없겠지?
세상에....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글 전해 주려마.
고마워 정옥아~
인옥이 왔어?
(정옥아, 글 쓸 때 한 몇 줄에 한 번씩 한 칸 내려주면(문단을 조금 나눠주면) 읽는 사람이 좀 편하거든. 수정으로 들어가서 비밀번호 쓰고 한번 나눠 봐. 앞으로 계속 쓸 거니까 그치?ㅎㅎ)
아주 잘 했어요(글 쓴 거 말이야).
네가 만들어가는 삶을 보니 같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웬지 분발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구나.
실은 분발이고 뭐고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지만, 그래서 꽃보다 예쁜 아이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지만.
너는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너의 인생을 만들어가니 참 진짜다.
사람과 맺지 않는 일이 없겠지만, 요즘 자주 어쩌다 이렇게 사람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민감한 일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며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일의 중요성이 더 인식되기 때문이겠지.
정옥이
그래도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가득한 곳에서 탈진하는 일 없겠지?
세상에....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글 전해 주려마.
고마워 정옥아~
인옥이 왔어?
(정옥아, 글 쓸 때 한 몇 줄에 한 번씩 한 칸 내려주면(문단을 조금 나눠주면) 읽는 사람이 좀 편하거든. 수정으로 들어가서 비밀번호 쓰고 한번 나눠 봐. 앞으로 계속 쓸 거니까 그치?ㅎㅎ)
2007.05.07 22:07:08 (*.143.178.147)
응 그래, 서울에 금요일 저녁 왔는데
토요일은 하루종일 자다가 깨다가
오늘 월요일인데도 아직 헤매고 있어
올해는유난히 엘러지가 심하게 극성이네
바깥에 나갈 생각도 못하고 유리창으로만 꽃이며 푸른나무며 보고 있어
새벽에 일어나 방안을 왔다리 갔다리
빨리 정신 차려야지
토요일은 하루종일 자다가 깨다가
오늘 월요일인데도 아직 헤매고 있어
올해는유난히 엘러지가 심하게 극성이네
바깥에 나갈 생각도 못하고 유리창으로만 꽃이며 푸른나무며 보고 있어
새벽에 일어나 방안을 왔다리 갔다리
빨리 정신 차려야지
2007.05.07 22:19:37 (*.246.203.157)
멀리서 날아온 귀한글,,
류정옥의 생기 넘치는 쌍둥이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나는구나!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모습이 엄마 똑 닮았구먼.
정인옥아~~
잘 도착했구나
억지로 시차 바꾸려고 애쓰지말거라
우리 나이는 적어도 일주일은 가는 것 같아.
미국하고 한국 엘러지는 다를텐데, 아직도 그러니?
약을 바꾸어 보면 효과가 있다고들 하던데.
(엘러지도 변한다고 하더라)
류정옥의 생기 넘치는 쌍둥이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나는구나!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모습이 엄마 똑 닮았구먼.
정인옥아~~
잘 도착했구나
억지로 시차 바꾸려고 애쓰지말거라
우리 나이는 적어도 일주일은 가는 것 같아.
미국하고 한국 엘러지는 다를텐데, 아직도 그러니?
약을 바꾸어 보면 효과가 있다고들 하던데.
(엘러지도 변한다고 하더라)
2007.05.08 11:17:27 (*.7.7.167)
국어선생님 조언대로 줄 좀 띄어놓았는데 몰겄네 -내 원체 진밥보다 된밥을 좋아해서 그런건지, 아님 이제 시력이 약화되는 때라는 걸 감안하지 않아서 그렇게 붙여놓았는지?-
근데 내 글 읽고 괜히 대단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진 말아 줘. 쌍둥이와 나 사이에 벌어지는 '가정 폭력'(?)의 현장을 네가 못봐서 그래....
타문화권의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일을 하라고 하신 거나, 내가 낳지 않은 쌍둥이를 기르라고 하신 거나 모두 나의 이 오만과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효과적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오만과 편견이 깨지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갈길이 멀다는 걸 알 수 있거든.
자, 그럼, 오늘도 친구들 모두, Have a nice day!!!
근데 내 글 읽고 괜히 대단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진 말아 줘. 쌍둥이와 나 사이에 벌어지는 '가정 폭력'(?)의 현장을 네가 못봐서 그래....
타문화권의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일을 하라고 하신 거나, 내가 낳지 않은 쌍둥이를 기르라고 하신 거나 모두 나의 이 오만과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효과적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오만과 편견이 깨지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갈길이 멀다는 걸 알 수 있거든.
자, 그럼, 오늘도 친구들 모두, Have a nice day!!!
차원이 다른 삶의 태도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존경한다.
너희 여섯식구 모두 건강하게 그분 사랑 듬뿍 받으며 생활하길 바랄게.
피지 섬의 소소한 일상도 적어주면 가고싶은 꿈을 키울 수 있을텐데..
네가 보는 모든 풍경이 우리에겐 아름다움일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니 상상만 한다.
고녀석들 이 빠지는 순서는 다른가 보네.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