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야~
느그 엄마와 난 초등부터 대학교 때까지 동창이란다.

초등학교는 집값이 싸서 살던 동네라 같이 했을 것이고, 중학교는 6학년 때 마지막 기회라고 하도 맞아서 할 수 없이 들어간 학교고, 고등학교는 떨어지면 창피하니까 3학년 말 쯤 기쓰고 공부해서 간신히 들어간 학교고, 대학교는 느네 엄마는 아니지만 난 공부 못해서 들어간 학교란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은 학교를 다녀도 같은 반 한 번 못했고, 대학교 때 겨우 같은 과를 해 봤지.

하지만 대학교 때 느네 엄마는 잘 나가는 훌륭한 학생이었고, 나는 저걸 잘라 말아 하는 철없는 데카당스였기 때문에 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단다.

그때 난 어찌나 철이 없는 젊은이였는지 도대체 내 고민에 빠져서(그것도 너무나 관념적인) 주위의 친구들을 차분하고 진지한 눈으로 살필 겨를이 없었단다.

세상에~   난 느네 엄마가 아주 부자집 맏딸인 줄 알았단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그 풍요한 분위기에 지레 그렇게 짐작하고 만거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숙제도 잘 하고 책임감이나 통솔력도 있고, 학점도 잘 받고,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어떤 교수에게도 너무도 사랑받고(그 교수는 내 졸업 논문까지 디를 줬단다 글쎄. 느네 엄마는 올 에이플러스였고 말야 우씨~) 암튼 좀 달랐어.

느네 엄마가 신고 다니던 여름 털구두라든지, 생각해 보면 너무나 초라했던 티셔츠나 바지도 그저 멋으로 그러는 줄 알았으니까. 국문과에는 그런 애들 좀 있거든.
암튼 난 느네 엄마가 아주 행복한 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는 풍족한 아이라고 생각했단다.
시선이 온통 나에게 쏠려 있던 아주 힘든 시기여서일까.

비슷한 시기에 연애도 같이 했고, 비슷한 시기에 고무신도 거꾸로 신고, 무슨 일을 같이 할 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은 친구였으나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 그러기에는 느네 엄마가 너무 잘났었거든.


작년에 그 긴 시간을 돌아 우리 오랜만에 만나 느그 엄마가 얼마나 대학 다닐 때 힘들었는지, 그 뿐 아니라 그 전 후의 시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는지 얘기를 들을 때 내 한 쪽 가슴이 미어지더라.
아이구 이 철부지야~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짧니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 뭐.  우리 같은 사람이 대학교 다닌 것만 해도 지금 생각하면 쪼매 기적이거든. 느네 엄마는 나보다 일찍 철이 들었을 뿐인데 그때는 철든 것도 나는 이해가 안되었던 거지.


어쨋든 오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만났고 난 내 인생 후반의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단다.
전화를 너무 오래 하는 건 맘에 안 들지만 다른 건 대체로 괜찮거든.ㅎㅎ

용산에서 느네 식구들 모여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우리 학교 정문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던 느네 아빠보다는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어 단숨에 달려갔단다.
동화 속에서 퐁~ 하고 나온 듯한 너의 모습과 다소 시니컬하게 보이는 느네 형을 보니 왜 그렇게 반갑고 고맙던지.

그 만남이 주는 여운이 너무 좋고 포근해서 며칠을 웃음 속에서 보냈단다.
그리고 만나는 애들한테마다
" 글쎄 춘선이 아들들 말야~...." 하고 얘기했단다.

그리 고운 네가 군대를 가는구나.
느네 엄마는 늘 애인 같은 큰 아들, 친정 아버지 같은 작은 아들이라고 말했지.
지하철로 들어가면서 따뜻이 엄마를 안아 주던 친정아버지 같은 아들이 군대를 가니 우리 친구 춘선이가 정말 마음이 많이 휭하겠다.

민우야~
더구나 카츄샤를 간다니 좀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여유는 있겠지만 그 속에서의 분위기, 아마 그리 즐거울 리가 없을 것만 같아 왠지 긴장이 되는구나.
너의 자존심을 잘 지키겠지만 정말 신중하고 담담하게 행동하길 바란다.
전에 카츄샤 하다가 다쳐서 용산 병원에 오래 입원했던 친구를 위문하러 용산 부대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치욕스럽고 기분이 묘하더라.
요즘은 조금 괜찮을까?
나의 과민일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 춘선이의 귀한 둘째 아드님 민우야~
우야든동 건강하게 잘 다녀 오렴.

그리고 아줌마 일하는 곳이 용산에서 가까우니(용산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뭐 먹고 싶으면 이리 오렴.
보는 사람 입맛 살아나게 잘 먹는 동생 하나 붙여 줄 테니.

힘내라!

춘선이도 힘내시고!
윤대령님도 힘내시고!
참, 엉아도 힘내시고!
힘내는 김에 나도 힘내고!